#9673; 귀머거리들아 소경들아 (이사야 42:18-25) #9673;
시작하기]
우리 인사 할까요? - 헛맹세를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혹시 나는 한번도 헛맹세를 한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이사야는 재미있는 성경인 것이 구약의 복음서에 비교하기도 하고, 전체 성경 중에 보석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사야서를 반으로 나누어 1-39장을 제1 이사야, 40-66장을 제2 이사야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 전체가 66권인데 이사야서와 맞아 떨어집니다.
특히 40장부터 회복의 메시지, 복음의 메시지가 시작됩니다. 예수가 오심으로서 복음이 시작된 것과 일치합니다. 이사야서는 구약에서 메시아 예언을 가장 많이 한 책입니다.
이사야서는 웃시야가 죽던 해부터 히스기야를 이어 므낫세 시대까지를 예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 왕 때 북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고, 유다는 앗수르의 2차례 공격으로 인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임에도 종교적으로는 타락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 오늘 말씀의 배경입니다.
병들기 전 하나님 앞에 선하였던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 생명을 15년 연장 받고 나서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는 눈물로 기도하였는데 그것은 많은 나이에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였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히스기야는 39세에 죽을병이 들었는데 병 고침을 받고 3년 뒤에 아들을 낳았으니까 당시의 단명하던 왕으로서는 정말 늦은 아들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선한 모습을 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므낫세가 악한 왕이 되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히스기야가 교만하게 되었을 때 쯤 이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오늘 본문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진행하기]
이제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18절 귀머거리들아 들어라? 소경들아 보라? 하시는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진짜 소경이나 귀머거리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더러 이렇게 말씀하신 걸까요? 바로 내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이 때 “예, 아니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아닙니다” 하고 변명하지 맙시다.
42장 7절에서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이 때 바리새인들처럼 이유를 따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보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들은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하니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은 소경된 자에게 눈을 뜨게 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나는 병자가 아니고 소경이 아닙니다. 저 집사, 내 남편, 내 아내, 시어머니가 소경이고 병자입니다 라고하면 안 됩니다. 진짜 소경은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하는 사람이요, 듣지 못하면서도 잘 듣고 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진짜 귀머거리입니다.
나눔1] 나는 소경입니까? 나는 혹 귀머거리입니까?
소경이라면 왜 소경입니까? 또는 귀머거리라면 왜 귀머거리입니까?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을 한번 생각해 보실까요? 진짜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소년 한사람이었습니다. 안 보이는 것을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을 너무 잘 보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이 잘 안 들리고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소경일까요? 누가 귀머거리일까요?
19절 소경은 내 종이며, 나의 보내는 사자가 귀머거리이고, 여호와와 친한 자가 소경이며, 여호와의 종이 소경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뒤집는 말씀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망할 때 유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는 망하지 않는다는 영적 교만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니까 보고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왕이, 제사장이, 선지자들이 타락하여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철우 목사님도 목사 안수 받은 지 11년. 교만할 때가 되었는데도 이만큼 겸손하게 있을 수 밖에 없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십니다. 이러한 환경이 아니었으면 더욱 교만 해졌을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는 어떻게 하실 것이다. 내가 봉사했는데, 내가 OO인데, 내가 몇 년 교회를 다녔는데 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영적으로 소경이 되는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첫째는 “내가 소경이 아니다”라는 오해와, 둘째 “내가 하나님의 종이니까” 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나눔2] 내 눈을 막아버리는 영적 교만이 무엇입니까?
나의 어떤 교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소경이 되었습니까?
자, 우리는 신앙의 년 수나 직분이나 혹은 QT한 해 수들을 자랑하지 맙시다.
20절 이번 말씀에서는 왜 소경 되었다고 하십니까?
QT 잘하는 방법은 첫째 관찰을 잘하고, 둘째 질문을 잘 하는 것인데, 오늘 말씀에서도 그 방법대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유의치 아니하고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경되었습니다.
왜 유의치 않았습니까? 왜 들으려 하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보니까 유의치 아니하고, 너무 귀가 밝아 많이 들으니까 오히려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주 역설적인 말이지요.
그것은 세상의 것들과 종교적인 것들 까지도 너무 많이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과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 그 자체를 들읍시다.
TV나 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를 주일 설교로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유익한 것은 있으나 성장은 없습니다. 설교는 예배에 참여해서 내 모든 것을 드리는 시간에 주시는 것입니다.
너무 들을 말씀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말 말씀 그 자체를 들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잘 본다고 생각하지만 소경이고 잘 듣는다고 하면서 귀머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눔3] 내가 보고 듣는 것 중에서 끊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스포츠 중계를, 특히 축구 중계를 끊지 못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참 정리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21절 교훈은 율법을 말합니다. 율법을 크고 존귀하게 하시는 이유는 보고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대로 살면 존귀하고 크게 된다는 뜻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22절 처럼 도적 맞으며, 탈취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생고생입니다. 율법대로 살지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정작 큰 문제는 노략을 당해도 구해 줄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해도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해석해 줄 지체도 없고 기도해 줄 공동체도 없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살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 처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도와주고 기도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것입니다.
나눔4] 내게는, 해석해 주고 도와서 기도해 줄 지체가 있습니까?
아니라면 내가 막막한 처지에 처한 사람의 해석을 도와주고 기도해 줍니까?
우리들 교회는 강한 공동체가 있어서 너무 아름답고 좋습니다. 함께 항오를 이루고 같이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입니다. 부부목장에서 더욱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23절 힘든 상황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소경이요, 다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불행 중 불행입니다. 누군가가 얘기해 줄 사람 이 일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 장래사를 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나눔5] 내게는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서 털어놓을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남이 힘든 일을 얘기할 때 들어 줄 수 있는 있는 사람입니까?
도적맞고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는 일이 생고생이라 했으나 그런 것들을 잘 견디면 유익이라 생각되는 것은 고생을 당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잘 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들어 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들어 주는 것입니다. 곧 23절처럼 귀 기울이고 장래사를 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어떤 얘기라도 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섣불리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처방하려 하기 보다는 잘 들어 주는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저 잘 들어 주는 사람에게 정이 갑니다.
24절 누가 야곱으로 탈취를 당하게 하고 누가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셨습니까?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범죄는 그 백성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한 것과 그 율법을 행치 않는 것입니다. 마땅히 가야할 길을 걷지 아니하는 것도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범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범죄할 수 있습니다. 연약하고,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참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그 길을 빗나가기 때문에 그만 두지 못하시고 야단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책망은 꾸짖는 것입니다. 말씀에 책망 받고 돌아오면 할렐루야입니다. 바르게 함은 비뚤어 진 것을 바로 펴는 것, 그래서 빼앗기고 포로가 되게 하셔서 의로 교훈 하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나의 범죄함으로 인함이라고 고백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빈이가 병원 두 번 입원했는데 한 번은 열로, 두 번째는 맹장으로 이었습니다. 더우기 맹장은 기형이라서 쉽게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기도했습니다. 아!!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40장 2절에서 두 배의 죄 값을 치렀다고 하신 것처럼 내 죄를 바라 본 것입니다. 두 배의 벌은 억울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죄를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이것이 영적인 눈을 뜨고, 영적 귀를 여는 것입니다.
25절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 율법을 벗어난 일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으므로 하 나님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베푸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방에 불붙듯 하지만 영적 무지로 깨닫지 못하며, 마음에 두지 않는 영적 무감각으로 일관합니다. 하나님은 알아듣지 못할 때 손을 대십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문둥병이 무서운 것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목장에서 고통을 털어 놓읍시다. 영적으로 예민함이 중요합니다. 참는다는 것은 아픔을 느끼지만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눔6] 하나님께서 내게 깨달음을 주시기 위해 주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정리하기]
진짜 소경은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하는 사람이요, 듣지 못하면서도 잘 듣고 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진짜 귀머거리입니다
영적으로 소경이 되는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가장 영적으로 소경이고 영적으로 귀머거리인 것은 영적 사건을 통해서 깨닫지 못하고 고통에 대하여 느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통을 통해 내가 깨닫고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손길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1.내가 영적소경이요, 귀머거리인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합시다.
2.내 눈을 막아버린 영적 교만을 회개합시다.
3.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잘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4.율법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5.들어주고 해석해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기를…….
6.영적 무감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 예민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