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4.2 주일 예배
마 10장 24-33절
두려워하지 말라
몇 주 전부터 어렵게 교회 다니기로 한 남편이 두 번 부부목장 가보고는 모두가 환자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나같이 문제없는 사람이 거길 왜 가서 망하고 문제있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교회 안 가겠다고 했답니다. 세 번 주일날 오셨는데 예배에 안들어오고 아이와 연 날리고 놀다가 마칠 때 들어왔다는 겁니다.
지난주 아이가 감기 걸렸는데 세균이 득실거리는 학교는 왜 데려 가냐고 억지를 부려서 아내도 구원 때문에 참다 참다가 폭발을 했습니다. 화가 난 남편이 살림살이를 집어던지고 멱살을 잡고 교회에 미쳤다고 나가라고 하고 아이들은 무서워서 울고... 그러나 갈 곳은 교회밖에 없고 아이들의 상한 마음을 만져 주시길 바라고 멱살 쥔 남편을 밀치고 교회에 왔다고 합니다. 교회까지 오게 하려고 수고를 했는데 와서도 이렇게 됐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들 가운데 수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남편이 다 된 줄 알았던 면접시험에서 떨어졌고, 자동차 사고가 나고, 딸이 나가서 집에 안 들어오고 파리를 배회하고 있고, 집이 경매되어 갈 곳이 없고, 우울증 자녀의 학업부진이 힘들고, 어떤 목자는 남편이 너무 무서워서 교회까지 와서 힘들게 할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쟝르별 시기별로 고난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두려움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아야 될 이유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4.25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 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예수님도 바알세불이라는 귀신의 우두머리 소리를 들고 조롱 받으셨으니 우리가 욕먹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 사랑하는 예수님이 그런 말을 들었으면 우리는 더 한 소리도 들어야 됩니다. 집주인은 예수님인데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고 했거늘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겠느냐 말입니다. 욕먹기로 당하기로 작정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애통한 자 가난한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아무리 핍박의 예고편을 듣고 왔어도 전도하면서 나는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집에서 교회에서 대접받지 못해서 부들부들 떱니다.
시기마다 대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딸 넷에 막내로 대접받지 못했고 결혼 생활 자녀 대접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여자 목사로서 말할 수 없는 교계의 높은 벽으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종류별로 시기마다 대접받지 못하게 하셔서 하나님만 사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집 사람들이랴!
아버지가 부도났으면 자식도 당연히 고난 받아야 하는데 너만은 하면서 빚을 내서라도
가르치려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제자도를 기쁨으로 받아야 하는데 사랑 한다면서 기득권만 받고
고난은 딱 싫어 하는 우리들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남편이 미쳤다고 나가라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핍박받을 때 주님께로 피하는 샘플이 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도 바알세불(귀신의 왕)이라고 조롱을 받으셨는데 나는 어떤 모욕을 받고 있습니까?
*무엇을 대접받고 인정받지 못해서 떨고 두려운가요?
아니면 대접받지 못해서 하나님만 사모하십니까?
26절: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조롱하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원어를 보면 확실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려워 말라가 세 번 나오고 마지막에 긍정의 명령으로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대상과 두려워야 될 대상을 확실히 분별해야 합니다.
왜 두렵습니까.
마음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자식이 공부를 안하면 그 애가 대학에 못 간다는 걸 예고해야 합니다. 공부 안 하는데도 붙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운 겁니다. 남편이 노름을 하고 주식을 하고 있으면 망하기로 작정하고 작은 집에 갈 준비를 하는 것이 두려워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망하는 것이 몸서리치게 싫으니까 두려운 겁니다. 믿는 내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못 살아서 섭섭하고 속상하니까 두렵습니다. 그러니까 술 끊어라 해도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어느 정도 해서 안 들으면 내가 망하기로 없이 살기로 작정을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의 욕심도 선행도 다 드러납니다. 욕심으로 했는지 진심으로 했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안 끊어지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좁은 집에 살기로 작정을 하면 평안합니다.
적용)
안 변하는 그 사람 때문에 무엇을 작정하시겠습니까?
남편을 미워하고 교양으로 가장하고 살았다면 남편이 가신 다음에 너무 두려웠을 것입니다.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말씀 앞에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제가 사랑하지 않았다면 형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참은 것도 드러나고 욕심도 다 드러납니다. 우리는 기다릴 것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도영이 부모님이 자기 속의 인간적인 것에서 도망하고 예수님께 피했기 때문입니다.
도영이의 탈선을 부모가 숨겼다면 군에서 믿어보겠다고 감격의 편지를 보냈을 때 누가 은혜를 받겠습니까. 다 드러냈기 때문에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려고 오셨고 제자들은 이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로 핍박받는 사람은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한 것이 소망의 구절이고 욕심으로 한 사람은 두려움의 구절입니다.
적용)
*모든 것이 드러난다면 소망이 되는가/ 두려움이 되는가
언젠가 드러나서 증인이 되는 것은
2. 어두운데서 말씀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두운데 있어도 일러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주님입니다. 아프고 돈 없고 배반 당한 각자의 어두움 속에서도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어두움의 세월이 있기 때문에 신비하고 오묘한 말씀을 깨닫게 되고 오래 듣다보면 광명한 데서 전파하라 명령하실 때가 오게 됩니다.
앞에 말한 집사님이 나가라고 소리치는 남편을 뒤로 하고 교회에 왔습니다. 어두움과 두려움에 아이들과 함께 왔습니다. 설교를 듣는데 목사님도 맞아봤다고 하니까 위로가 됐다고 자신의 혈기를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니 남편이 집을 나가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고 합니다. 내 죄가 뭘까 묵상하면서 혈기를 부리는 순간 변한 것이 없는 모습을 보았다고 내가 아들 낳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의를 회개했다고 합니다.
아주 어두운 가운데서 일어났던 일인데 일주일 내내 회개하고 올렸더니 광명한 데에서 이렇게 설교 중에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두운 가운데서 말씀만 들으면 약재료가 될 줄 믿습니다. 복음 전파는 비밀스럽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이단들이 비밀스럽게 합니다. 테입도 안 주고 와봐야 된다고 하는 곳이 이단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듣게 공개적으로 자랑스럽게 해야 할 복음 전파입니다. 항상 내가 진실인가가 문제입니다.
적용)
나의 어두움에서(질병, 이혼위기, 실직, 자녀문제..)무슨 말씀을 듣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몸을 죽이고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합니다.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두려움의 밑바닥에 목숨이 있고 돈 명예 병이 두렵습니다. 요즈음은 생존의 문제보다 나의 자존적 교만 때문에 두렵고 자존심 체면 때문에 두려워하고 자식을 들들 볶습니다.
. 한겨레21에 강남의 한 주부 기사가 났습니다.
깔고 앉은 집값이 행복지수가 아니며 자녀 교육 때문에 일산 목동 대치동으로 왔고 남보기엔 아쉬울 것이 없는데 늘 초조하고 불안해서 옆사람이 짜증이 날 정도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도움은 주지 못하고 말로만 닦달을 하고 자기 열등감으로 아이들을 오히려 힘들게 한다.
남편도 아내가 힘들어서 주말이면 골프장으로 직행하는데, 쿨(cool)한 것 같지만 사실은 콜드(cold)하게 산다.
이런 엄마에게 리더십이 있겠습니까.
일등 엄마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부모가 최고입니다. 우리들교회 남편 중에서 큐티는 왜 하냐, 일대일은 왜 하냐, 애들 학원이나 알아보고 공부 한 자나 더 가르쳐라 이런다고 합니다.
강남에서까지 내 가족만 끼고 돌면 망하는 겁니다. 잔소리장이 엄마가 집안을 말아먹습니다.
지옥은 헬라어로 게헨나 입니다. 아하스가 힌놈의 골짜기에서 우상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 자식을 죽입니다.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바치는 곳이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 자식 때문에 지옥을 삽니다. 지옥을 경험하게 하시는 이유는 빨리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지옥을 겪으면 빨리 돌아옵니다. 자식들이 공부 잘하면 잘 안 돌아오니까 뭐가 축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9-31절
노동자 품삯의 16분의 1 가치 밖에 안 되는 참새 한마리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런데 왜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까. 현재와 미래를 단절해서 생각하기에 거짓말을 합니다. 현재 내 신앙상태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챨스 하츠는 무엇이 파멸되었다는 것은 소멸되어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건강을 해치고 재산을 잃고 타락하면 인생사회에서 일인자의 신분을 망쳤다는 것뿐이다. 하나님을 떠나고 영혼이 망하면 없어지는 것보다 몇 천 배 더한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옥에 던져서 아주 없애버리면 좋겠는데 영원히 죽지도 않고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죽지도 못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 지옥입니다.
적용)
*나의 자존심 욕심 체면 때문에 자식을 지옥불에 지나게 하며 나도 지옥을 살고 있지는 않 은지요?
*진정한 일등 부모가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데서 말씀하시는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3.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32절: 누구 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 를 인할 것이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걸 숨기는 이유는 내가 편하고 싶어서입니다. 조오련 선수가 수영을 잘해서 현해탄은 건너도 태평양은 못 건넙니다. 천국 가는 길에 선행이 약간 도움이 되지만 천국에 가려면 예수 비행기 안 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나를 알아주셔야 됩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 아내 직장상사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것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방탕한 아들 바람 피운 남편 때린 남편에게도 주님 때문에 무릎을 꿇는 그것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주간조선 기사에 또 이렇게 나왔습니다.
사랑이 식는 부부에게는 또 한 가지 특성이 있다. 양보와 타협을 못한다는 것이다. 가트맨 박사는 지난 35년간 3000쌍 이상의 부부를 연구한 결과 행복한 부부나 이혼하는 부부나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문제 중에 69%는 싸우나 안 싸우나 결국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단지 불행한 부부는 이 69%의 이슈를 싸울 때마다 지겹도록 반복하며, 한번 꺼냈다 하면 말을 삼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면서 싸움을 극대화한다.
반면 쿨하게 싸우는 행복한 부부들은 69%의 문제를 다룰 때도 말을 다듬어가면서 무척 조심스럽게 꺼내고, 싸움이 격해지면 즉시 화해를 시도한다. #43090;우리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잠깐 쉬자#43091; #43090;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말이 지나쳤네#43091; #43090;다시 말해 볼게#43091; 등의 말은 싸움이 가열되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앞에 나온 집사님이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이분이 힘들게 사는 것은 불신결혼의 결론입니다.
어제 시댁에 제사가 있었는데 내가 변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제사에 오지 말라고 답이 왔습니다.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말씀 보고 여전한 방식으로 일하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부인이 있으면 안 오겠다고 하더랍니다. 시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까 집에 갔다가 끝날 때쯤 다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하고 집에 왔습니다. 낙망하기에 충분했던 다섯 시간을 묵상과 목장보고서 쓰는데 할애하고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당하기로 결단하고 요동없이 갔더니 술에 취한 남편이 가족을 위해 벚꽃놀이 가자고 하고,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남편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너 사단이야’ 이런 말을 듣는데까지 가지도 않습니다.
내 자존심이 집채 만하게 다가와서 자기부인을 못하고 사과를 못합니다. 똑똑한 새댁이 결혼 일년 만에 이혼하겠다고 왔습니다. 남편하고 시어머니 앞에 잘못했다 한 번만 빌어보고 이혼을 해도 하라고 했더니 경기를 하면서 저를 보기 싫어하고 어떻게 그 시어머니에게 빌 수 있냐고 합니다. 다 엄마의 결론이라고 엄마가 얼마나 신앙교육을 안 시켰으면 저러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사과 한 번을 못해서 이혼을 합니다.
내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고 자기변론을 하니까 주님이 나를 부인하고 남편 시어머니가 나를 부인하는 겁니다. 성경이 맞고 안 맞고가 아니라 내가 보이냐 안 보이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기 전에 성전이 강도의 굴혈인 것을 아셨습니다.
내 몸이 성전인데 내가 거룩하지 않고 내 몸이 강도의 굴혈인 것을 봐야 합니다. 일이 나기 전에 봐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강도의 굴혈인 것을 봐야 합니다. 내가 거짓되고 가증하고 더러운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문제아 도영이가 외박을 하고 학교를 안가도 그런 아들을 받아들이고 사람들 앞에서 숨기지 않았기에 예수님이 그 부모님을 시인해주셨습니다. 군대간 도영이가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군대에서 세례도 받고 신앙 생활 잘하고 있으며 청소년 시절 자기의 방황으로 부모님 가슴에 피멍들게 힌 것을 뼈져리게 후회 한다고. 100번을 태어나도 아버지 어머니 아들로 태어 나겠다고. 정말 표현 할수 없이 사랑한다고 썼습니다.
그렇게 속을 썩였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부모님은 중국지사로 발령받고 아들을 어떻게 할까 했더니 먹여주고 훈련시키는 군대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뜻을 이루십니다. 아이가 나갔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 속에 강도의 굴혈만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렇게 돌아옵니다.
우리들 교회의 모든 목장보고서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오픈으로 가득합니다.
적용)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기위해 무릎 꿇고 빌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우리집 부부 싸움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브레이크가 있는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두려움과 사랑 두 가지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짜증나지만 사랑 때문에 하는 일은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두려움은 마귀의 속성이고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두려움은 지식과 지혜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두려움 가운데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실수로 돌아갑니다. 두려움은 아무 힘도 없고 평안과 고요가 있어야 지능도 능력도 체력도 있습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에서 옵니다. 이 세상에는 천국과 연결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두 개를 다 가지려고 해서 두렵고 고통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선택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택할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기도
주님을 사랑하고 스승이 핍박을 받았기에 나도 모욕 받는 것 당연합니다.
그런데 인정받지 못해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시길.
두려워 할 것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분별하게 하소서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는데 진실하게 하시고 끝까지 인내하게 하소서
어두움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잘 듣고 인내하여 광명한 데서 전파하게 하소서.
내가 참새 한 마리보다 귀한 존재인 것을 믿습니다.
내속이 강도의 굴혈인 것을 보게 하소서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도록
힘들게 하는 남편 아내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상사에게 순종하게 하소서
너무 두려운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해달별이 떨어지는 내 사건에서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