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26. 주일
구원을 얻으리라 (마10:16-23)
이번 주간에는 아프카니스탄의 압둘 라흐만이라는 사람이 1990년대 파키스탄에서 외국 NGO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이문제로 부인과 이혼을 했는데 최근 벨기에로 망명하려다 실패를 해서 아프칸으로 돌아갔는데 지금 사형에 처해진 운명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아프칸 대통령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으라고 했는데 아프칸에서는 어떠한 외국의 개입도 거부하겠다, 성직자들이 만약에 서방의 압력을 받아서 개입을 하면 사람들에게 찢기어 죽이게 하겠다, 이런 엄청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프칸 인구의 99%가 무슬림인데 종교의 자유는 허락하지만 개종은 불허합니다. 앞뒤가 맞질 않는데 그렇다면 압둘 라흐만이 사형을 받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까? 구원을 얻으리라 했는데 압둘 라흐만이 얻는 구원은 어떤 구원일까요?
사람이 태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려면 노력이 없이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고 싶은데 그 노력을 내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과제를 주시는 것이 참으로 축복입니다. 하나님도 내가 태어나서 커 가도록 과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것은 핍박입니다.
핍박이 나를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는 축복입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보냄이,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 보내는 것이 또 전도하려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합니다. 지난주에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 가라했는데 그들이 공회에 넘겨주겠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17절) 이방인들에게 끌려가고(18절), 부모 형제는 다 나를 대적해서 죽게 한다(21절)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무서워서 예수를 믿겠습니까? 가라 해놓고 이런 엄청난 일이 온다고 합니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정적으로 박해가 있다고 합니다. 점점 박해가 오는데 제일 무서운 박해가 가정에서 받는 것인데 특히 믿는 가정에서 받는 박해가 제일 센 것이라고 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장차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게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예수 믿는데 이런 문자적인 핍박이 옛날에는 많이 있었고 지금도 북한에는 행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어느 나라 얘기인가 하면서 주기철 목사님 얘기만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절해서 받은 고문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이 잠 못 자게 하는 것, 잠을 못 자면 비몽사몽간에 우상에게 절할 번한 적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요도에 긴 꼬챙이를 넣어서 막 쑤셨다고 하는데 7년 동안 그런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 전파자들은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늘 있었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는데 당시 로마는 식민국가에게 관용 정치를 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안이 아니면 거의 자치권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여전히 유대교 중심의 사회, 종교 생활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로서 율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돌로 칠 정도로 과격했고 정말 무서웠습니다. 오죽하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어린 양에게 가라고 했겠습니까?
문자적으로 핍박을 받는 것이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데 여기까진 아니라도 저도 이번 주에 핍박을 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감당할만해서 이제는 이런 일이 제 앞에서 일어났는데 우리들교회 교인과 누구를 만났는데 그분이 저 앞에서 여자 목사는 망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장신대, 감신대 다 틀렸다고, 왜 이런 교회를 나가냐고, 저런 교회 나가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모든 것을 너무나 갖추고 있고 돈도 많고 학벌도 많고, 앉으나 서나 전도에 앞장서는 분이기 때문에 책상을 두들겨 가며 목사 당장 그만 두라고, 당신 오늘 이런 얘기 들어서 복있는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교양있는 제가 이런 인생을 살 줄 상상을 못했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 교회를 시작할 때 이런 얘기를 들었으면 교회를 안 할 줄 주께서 아시고 이제 알맞게 때가 되니까 이런 얘기를 듣게 하셨습니다. 여자가 아니면 안 들어도 될 얘기, 내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런 얘기를 들어도 상처받지 않는 것은 말씀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제일 가까운 믿는 사람들이 핍박을 한다고 하는데 산헤드린 공회는 전통과 관습으로 똘똘 뭉쳐서 나사렛 이단으로 여기는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했고 여기서부터 시작된 박해는 이방인 로마로 옮겨져서 상상을 불허하는 핍박으로 연결되어서 결국은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핍박이 영광으로 가는 것을 미리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핍박으로만 여겨집니다.
제가 옛날에는 시집살이 핍박, 남편 핍박을 골고루 받다가 이제는 종교적 핍박까지 받게 되니까 하나님이 저를 수준 높게 보시고 제대로 코스를 밟아가시게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핍박은 받아도 감사한 핍박으로 생각하고 항상 저를 겸손케 합니다. 가끔씩 제가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나서지 않게 되고 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의 저라면 어떻게 이런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교회가 여자 목사라 싫어서 안오는 남자가 십중팔구입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하라' 하시니 당합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핍박은 받아서는 안됩니다. 제가 어저께 말씀을 준비하다가 우리들교회 홈피에 들어갔더니 어떤 분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여러분 우리 집사람은 큐티만 하고 살림은 안해요. 이번 주 내내 김치만 먹었어요. 목사님은 가정이 먼저인지 교회가 먼저인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후에 이 글을 금새 지우셨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하나가 안되면 살림을 해도 큐티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남편은 제가 집에만 있는데도 늘 성경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집에서 할 일 다 하면서 성경을 보는데도 너무 싫으니까 성경만 보면 밥이 나오냐고 했습니다. 성경을 봐서 의로운 핍박이라면 그것이 종달새의 지저귐이 됩니다. “음, 또 지저귀는구나” 정말 아름답게 여유가 있는데 진짜 받아야 될 핍박이라면 살림을 해야 합니다. 살림을 안해서 핍박을 받는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지 우리는 말만 들으면 잘 모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잘 압니다. 알아서 적용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교회야말로 가정회복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줄을 여러분들이 아실 줄 믿습니다.
<적용>-우리 조상 중에 순교자가 있습니까? 우리 집안에 최초로 복음이 들어온 경로를 말해 봅시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받은 핍박이 무엇이 있는지 나누어봅시다.
-요즈음 내가 받는 핍박이 있다면 주님때문 입니까, 나때문 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고 거듭나지 않으면 핍박을 받는데 제일 삼가야 될 것은 17절에 사람들을 삼가야 됩니다. 우리를 넘겨주고 회당에서 채찍질하는 사람들을 삼가야 하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교양있고 교회다니고 친해도 의지하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깨어서 불신앙의 사람들을 삼가야 되고 의지해서는 안되는데 전도하는 것을 핑계삼아 친구삼고 도움을 바라고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의 대상이지 바라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생 사람과의 관계에서 배반을 당하고 아파하면서 시간을 소모합니다. 그 또한 우연이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사람을 잘 삼가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4대째 모태 신앙에 어렸을 때부터 교회의 반주를 하고 봉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 사람을 삼가지 못해서 부자 장로님 집에 시집가서 아주 혼이 났습니다. 그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이제 순결해서 모든 사람을 믿기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습니다. “내가 워낙 사람을 잘 믿잖아, 너 나 사람 잘 믿는지 알지? 나는 사람을 의심할 줄 몰라” 이런 얘기는 성경적인 얘기가 아니고 아주 어리석은 얘기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분별의 영이 생깁니다.
로리 쉘인홀은 남편이 닉슨 행정부의 백악관의 의장대의 일원일 때 만났다고 합니다. 그분이 글을 섰는데 <남편은 선교사의 아들이었고 선교 현장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를 만났을 때 백악관 보안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FBI가 철저하게 그의 뒷조사를 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나는 선교사의 가정에서 자란 것과 신원배경이 그의 인격을 보증해준다고 생각하고 나뿐아니라 내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도 그가 멋지고 흠잡을 때 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답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여자인 것 같았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큰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항상 하나님께 드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고 항상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언제나 휴가 때가 되면 아프기 시작하여 휴가가 끝날 즈음에 아픈 것이 나았다고 합니다.
난 비참한 기분이 들었고 목사님께 상담요청을 하면 목사님은 언제나 내가 순종하는 여인이 되어야 하고 더 순종적인 된다면 하나님께서 남편을 주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결책이 없어서 나는 완벽한 그리스도인 아내가 되기 위해 많은 세미나를 다녔고 결혼관련 서적을 읽었으며 신실한 아내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성경공부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하는 얘기는 남편이 무엇을 잘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남편의 보호의 지붕아래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너는 그 지붕아래 있을 때에 아이들과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잘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의 복종이다. 내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들교회의 가르침도 흑백논리로 보면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르침은 내마음에 죽음과 낙담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처방을 내릴 때 똑같은 얘기를 가지고도 얼마나 다르게 얘기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사건을 통해 남편이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있고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이제 이런 남자들의 특징을 부인을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제가 보면 바람피우는 남편들이 부인들과 이혼하기 위해서 부인을 정신병자로 몰아갔는데 20년의 노하우입니다. 남편이 바람피우면 부인은 기가 막혀서 우울증이 오는데 정신 신경과에 가면 갑자기 나가라고 하고 이혼하자고 하면서 우리 부인은 정신병자라고 합니다.
<이 사람도 점점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거짓말을 하면서 점점 이상한 여자로 보이게 말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중상모략하는 자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남들에게는 알려져서는 안되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는 내가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이 있었는데 그가 19세 때 부모님이 선교현장에 가기 위해 아들을 미국에 두고 4년간 떠나있었는데 그때부터 포르노 잡지를 보게 되면서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포르노 잡지를 보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그는 너무나 고지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년 동안 한 집에 살았지만 그가 단 한 번도 포르노 잡지를 본 것을 목격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포르노 보는 습관이 우리의 가정의 모든 생활을 파괴했습니다. 포르노 잡지로 외로움을 달래던 남편은 이제 스트립쇼를 보러가기 시작했고 매춘부를 찾았고 모든 일들은 완벽하게 감춰졌고 그가 그런 일을 할 줄은 아무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속았습니다.
믿었던 누군가에서 속였을 때 참담해지고 내자신을 신뢰할 힘조차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남편이 포르노와 매춘부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고 위기에서 구해달라고 교회 장로들을 찾아갔더니 “당신이 좀 더 좋은 아내였다면 당신 남편이 포르노를 찾겠느냐, 예쁜 여자를 찾겠느냐, 당신이 너무 강해서 남편이 편한 여자를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당신이 날마다 거부하는 불순종한 아내였기 때문 아닌가?”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교회도 어떤 분이 오셨는데 남편이 너무 기가 막혀서 목사님께 얘기하니까 그 남편이 헌금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당장에 부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고 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서 왔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거절했기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감으로써 자기 의를 증명했습니다. 요셉이 자기 의 때문에 감옥에 갔지만 요셉 때문에 감옥이 형통해졌습니다. 내가 배신을 당했을 때 배신이 나를 대적하는 것으로 바꾸기를 사단은 원합니다. 배신당했을 때 내가 형편없고 절망하고 낙담하고 내가 모든 상처를 다 받아들이기를 시작하는 것을 사단이 원합니다. 요셉처럼 의를 행하다 감옥하도 그곳을 형통케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박해를 받는 것이 정해져 있는데 박해를, 핍박을 어떻게 받습니까?
박해를 이기는 방법, 첫 번째가 16절에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합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라고 말씀하셨다면 주님이 보호하시고 아시고 계신다고 합니다. 주님이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처방을 내려 주시고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뱀같이 지혜로와라,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우리가 지혜만 쓰게 되면 순교가 필요 없습니다. 증인은 순교와 똑같은 말인데 지혜만 쓰면 끌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로만 복음을 전하면 안되고 이것은 악에 대한 실제적인 통찰력이 없이는 안됩니다. 선이 없는 지혜는 간사한 것이고 지혜가 없는 선은 악한 세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혜롭기 위해서는 선과 악의 개념을 정리하지 않으면 사건마다 지혜롭고 순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전쟁하는 교회입니다. 설교는 우리들교회의,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교회는 모두 힘든 사람이 오셨는데 새가족 모임에서 여러분들의 모든 사건을 다 듣고 제가 거기에 맞는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의 아픔에 대한 설교를 합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오픈함으로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이 치유해 주시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혜롭고 순결하게 해야 합니다. 이때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의 훈련은 일대일 양육, 목장예배가 가장 큰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같은 목장에서 일대일 교사를 하지 않고 다른 목장에서 하는데 12주 동안 서로가 깊은 관계전도를 하다보니까 서로가 최선을 다해 나누지만 자기 처방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사연을 듣고 가슴 아파하다보면 자기 목장에 가서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했어도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솔직히 사과해야 합니다. 결국은 아무 말도 다 할 수 있고 받아들이는 교회가 될 수 있어야 하지만 과정에서 분명히 오해들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100% 죄인의 공동체이고 아직 성숙한 부분에 까지 가지 못한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가 저렇게 오픈해도 되느냐고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시하고 있는데 이럴 때 여러분들이 같은 입장으로 비판한다면 우리들교회는 밥이 됩니다. 지혜와 순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오픈 하는 것은 우리들교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은 항상 직분이 높은 사람이 무조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변명하지 않고 책임지려고 직분이 있는 것입니다. 혹시 이때 즈음 오픈하여 괴로운 목장이 있다면 염려하지 말기 바랍니다. 건강하다는 표시입니다. 문제가 안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기도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20절을 보면 항상 누군가를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사랑을 말해 주었다면,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령으로 말했다면 그가 내게 무슨 불평을 하더라도 우리는 다 받아넘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이기심을 말하면 누가 뭐라고 말하는 것을 못 견딥니다. “내가 왜 틀렸냐?”고 합니다. 염려하지 말 것은 목자가 이상해도 그런 목장은 목원들이 훌륭합니다. 하나님은 꼭 알맞은 사람들끼리 붙여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넘겨줄 때에 염려하지 말 것은 고난의 때나, 합격의 때나 똑같이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남편이 갔을 때 에스겔 18장을 주셨고, 아들이 떨어졌을 때도 말씀을 주셨고, 딸이 붙을 때도 말씀을 주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저를 십자가지기 위해서 말씀을 주시지 잘난 척 하라고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제가 에스겔 간증을 18년간 해오면서 똑같은 간증을 하는데도 말씀하시는 자가 아버지의 성령이기 때문에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운동력이 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픈해도 하나님께서 치유해 가시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기 죄를 보는 훈련이 우리들 가운데 날마다 있기 때문에 아무리 문제가 일어나도 늘 해결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문제가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목회자 세미나, 박사집회, 신학교 집회 등 집사로서 감히 설 수 없는 집회에 섰지만 그 때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얼마나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처방을 내려줄 때 흑백론으로 하면 안되며, 어떤 경우는 가만히 있어야 될 경우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해보지 않으면 처방이 잘 안나옵니다.
<적용> 내가 지혜롭고 순결하지 못해서 핍박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두 번째는 모든 고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사람을 삼가야 합니다.
사람을 삼가야 하는 부류에도 21절에는 믿으면서도 가족 우상주의가 많습니다. 가족 우상주의는 결국 자기애, 자기 사랑입니다. 이해타산에 걸리면 다 죽는데 내어 줍니다. 어떤 검사가 늘 조폭들을 다루었는데 조폭들이 의리가 있는 것처럼 영화가 나오지만 자기가 본 조폭세계는 의리가 없다고 합니다. 위해서 죽는 것 같지만 밥줄이 걸려 있기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인생이 100% 죄인인데 어떻게 조폭이 의리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속으시면 안됩니다. 친구는 말 할 것도 없이 대적하는데 그래도 마지막 보루인 가족마저도 대적이 된다고 합니다.
로리 쉘인홀은 남편의 배신을 통해서 이런 글을 썼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전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잘 알아서 어떤 부분에 상처를 받는지 잘 알고 속이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힘을 향해 내 자신을 공격하는 법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동정심과 충직과 사랑의 갈구와 지능과 능력과 타고난 신뢰는 용이하게 잘 짜여진 드라마에서 오히려 나를 공격합니다. 나를 배신하는 공격자를 우리가 너무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빼앗기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배신자와 더불어 행복해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배신에 몸을 떨고 있습니까? 그래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면 진짜 속은 것입니다. 남편에게 속는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 속는 것입니다. 배신에 몸을 떨고 있다면 하나님이 사람답게 살게 해주시려고 핍박과 고난과 배신을 허락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핍박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증거하지 못합니까? 배신의 현장, 가출의 현장, 어디에서도 나를 끌어주고 넘기고 죽는데 내어줘도 복음 전할 환경입니다. 그러면 요셉처럼 그곳이 형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잘 삼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게 끌려갔습니다. 동족에게 배반당하고 계속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아그립바 왕에게 끌려가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로마로 가려면 배를 타고 전해야 되는데 자기 돈 한 푼도 안내고 증거했습니다. 끌려간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권세자, 총독에게 안가도 남편에게만 가도 거짓말할 궁리부터 합니다. 아예 맡겨버리면 말씀을 주십니다.
아프카니스탄의 압둘 라흐만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부인에게 이혼을 당했습니다. 벨기에 망명을 거절당해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 왔는데 당국에 고발한 자가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죽이고 싶은 부인과 남편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부인을 미워하지 않고 개종하지 않고 하나님 때문에 주께로 피해서 맡겨버리니까 전 세계에 알려지고 그 일 때문에 아프칸의 복음화가 앞당겨질 예정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때문에 한국의 복음화가 이렇게 앞당겨 졌는데 사형을 당해도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니 이것보다 더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라흐만은 구원을 얻었고 이것이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개종하지 않고 있어야 되고 그 때마다 적용이 다 다른데 대단한 지위와 학식을 가지고 나올 것이니까 사람들을 사실 삼가기가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와서 개종하라고 하는데 얼마나 삼가기가 어럽습니까? 그런데 내가 사람을 삼갔음에도 끌려갔다면 증거하기 위함을 알라는 것입니다.
채찍질하는 사람을 삼가지 말라고 해도 우리가 삼갑니다. 삼가야 할 때가 있고 삼가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삼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지금 우리가 순교도 안하고 현시대에 어떻게 적용해야 되겠습니까? 요즈음은 남편들이 바람피워서 이혼한다는 것이 집집마다 주제가입니다. 이혼하는 남편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이상한 말로 채찍질 하는 모릅니다. 없는 얘기 다 만들어 내어 유리하게 해야 되니까 이것이 지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받는 대접입니다.
나는 채찍질 하는 사람이 무조건 싫다는 마음을 삼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채찍질 하는 그를 통해서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를 안 맞아본 사람은 인생을 논할 수 없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매를 맞아 보았는데 매를 맞아보니까 정말 살기가 싫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우리들교회에 와서 아무리 은혜를 받고 집에 가서 매를 맞으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이가 악물어진다고 했습니다. 매를 맞아보니까 제가 너무나 자존심이 센 것을 알았고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되었습니다. 말씀이 없을 때는 교양이 있어서 참아야 되니까 이가 다 부스러지는 것 같았는데 말씀이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교만하구나, 내가 맞아야 될 정도로 교만하구나, 나중에 가다 보니까 맞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내게 평강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각종 어려움을 가지고 오시는데 매맞아 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제가 맞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맞아 본 사람은 어쩌면 남편에게 매를 다 맞냐고 너무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그때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겉으로는 너무나 부러운 부부이지만 얘기만 안했을 뿐입니다. 남편에게 핍박받은 것 중에 제일 유익한 핍박이라면 매맞은 것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땅 끝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삼가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감정의 상태를 다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같이 울어줄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침몰당하기 않고 교만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람나고 부도가 나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지금 증거하라고 제가 맞아 보았습니다. 인간적인 사랑도 삼가야 하고 인간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삼가야 하고 내 자신의 사람냄새도 삼가야 하고 내 자신의 선에 속는 것도 삼가야 하고 내가 착하다는, 내 자신을 가장 삼가야 합니다.
<적용> -나를 넘기고 채찍질 하고 대적하여 죽이는 식구를 위해 무엇을 합니까?
-내가 지금 삼가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나중까지 견뎌야 합니다.
22절에 이 세상에 구원 얻을 이름은 예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은 십자가로 대표되고, 내가 적용해서 사는 것이 십자가 지는 삶이고, 이 땅은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 지고 잘 살면 예수믿는 자가 너무 미운 것입니다. 나중까지 견디는 것이 필요한데 쫓겨날 때까지 이루어 가는 구원이기 때문에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끝까지 이루어 가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잘 견디는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답게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끝까지 견뎌야 할 사람과 장소는 어디인가? 내가 너무 견디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피아노 선생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었고 외모도 받쳐주어서 결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견디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끝까지 견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부부가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호적이 더럽히지 않은 것입니다. 알콜 중독자라도, 마약 중독자라도 이혼 안하고 부부가 끝까지 살았다는 것이 양가 부모의 예단 1호입니다. 그만큼 같이 살기가 힘듭니다. 같이 살았다는 것만이라도 존경과 박수를 받아야 합니다. 박 목사님의 부모님은 무조건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가난한데도 10남매를 키우셨습니다. 독립군 투사처럼 자기들이 다 알아서 컸을 겁니다.
네 번째는 끝까지 견디디가 너무 힘들 때는 주님께서 피할 길을 주십니다.
23절: 끝까지 견딜 때 저동네로 피할 길을 주십니다. 주님께 어디로 피해야 될지 물어야 합니다. 피할 길은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의 피할 가장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 나라 뿐, 예수 뿐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여기서 피할 길은 영어로 the way입니다. the way는 예수님만이 피할 길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안 당해보면 이렇게 처방합니다. 수 십 년을 매 맞다가 용기 있게 탈출해서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빨리 집에 돌아가 비세요" 하면 안됩니다. 이럴 때는 영육간에 건강해져야 합니다. 맨날 맞다보면 정신적으로 이상해집니다. 그때마다 처방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 부인이 건강해서 오직 예수가 피할 길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감동을 끼쳐야 됩니다. 피할 길이 예수임을 알게 되면 그때 들어가면 됩니다. 아직도 피할 길이 두렵고 무서우면 들어가면 안됩니다. 무조건 핍박만 받지 말고 뱀같이 지혜롭게 잠시잠시 피하여 견디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회심하고 난 뒤에 광주리를 타고 밤중에 도망을 갔습니다. 지혜롭게 피해야 될 때는 피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가 얼마나 지혜를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피할 때는 분명히 피하고 죽을 때는 분명히 죽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모든 동네를 다니지 못해서 인자가 오리라는 것은 재림의 긴박성보다는 원어를 보면 ‘결코’라는 부사를 써서 재림 이전에 온전한 복음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죽기 전에 우리 식구가 구원받지 못할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식구가 구원받는 것을 꼭 눈으로 봐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일은 복음 전하기 위해서 끝까지 내 삶에서 견디는 것이 주님께 피하는 것임을 알고 성령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시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순교는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까지 가지 않아도 내가 기다리고 배려하고 화내지 않고 칭찬하고 손이 가고 발이 가고 들어주고 격려하는 모든 것이 순교가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도 들어줄 수도, 기다려 줄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께로 피하는 길임을 믿습니다. 내 집에서 여전한 생활방식으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 대단한데 가서 전도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사람이 세계를 선교합니다.
똑같은 죽음을 봐도 순교의 죽음이 있고 저주의 죽음도 있습니다. 유영철이 죽인 한 아들을 보고 둘째아들이 자살하고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