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마 9:14-17)
-우리 이렇게 인사해 봅시다.
-내게 죄가 있음을 알고 지낸 한 주 이었습니까? 또 내게도 병이 있음을 고백하셨습니까?
시작하기]
지난 주 말씀에서 주님은 마태를 뽑아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이 때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쾌락주의자로 몰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경건주의들이 되어서 주님을 쾌락주의자로 몰고 있습니다.
주님을 좇을 때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잘 좇을 수 있는데 새 술은 복음이고, 새 부대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관입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행하기]
첫 번째로“어찌하여”가 없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14절을 읽습니다)
은사 보다는 말씀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은 말씀, 말씀, 하다 보니까 형식과 우월주의가 되어 안타까워 하셨는데, 이번에는 요한의 제자들의 경건주의 때문에 오늘 또 안타까우신 주님입니다. 금식하는 기간에는 금식을 해야만 옳은 걸까요?
문제는 바리새인 보다 요한의 제자들이 더 심각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질문] 새벽기도를 하는 게 옳은가요?, 안하는 것이 옳은가요?
답변] 정답은 없습니다.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 생각이 앞서서 남들 금식하는 데 예수님이 잡수시는 것이 틀렸다고 가르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요한의 경건주의가 쾌락주의 보다 더 힘듭니다.
경건주의는 ‘내가 의롭다’는 고정관념을 사단이 넣어 놓았기 때문에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사단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사고(思考)를 고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나눔=나는 어떤 사람입니까?-경건주의?(나는 의롭다고 생각함), 쾌락주의?(그냥 즐기자는 식)
[3-4사람 나누기]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의 스승이 옥에 갇혀 심각한데 전통적인 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가장 존경하는 스승 요한이 옥에 갇혔는데, 그저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식구들-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워서 죽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그러고 계십니다.
나눔= 내가 죽게 생긴 일이 벌어졌는데 옆에서 그냥 먹고 즐기고만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4사람 나누기]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은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먹고 마시는 일인데 이런 일이 금식하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금식만이 제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먹고 마시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나눔= 나에게 금식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3-4사람 나누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번째로 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5절을 읽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엔 급식하지 말고 기뻐하고, 신랑을 빼앗길 때 금식하라 하십니다.
지금, 요한이 잡혀 금식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은 인간의 스승 요한에 집착하여 슬퍼했으나 주님은 신랑 예수가 죽었을 때 예수를 죽인 그 악 때문에 금식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들리고 순종이 잘 되는 사람 즉 신랑과 함께 있는 자는 금식 안 해도 되고, 말씀을 빼앗긴 자 즉 신랑 예수를 빼앗긴 자는 금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금식은 삶이 변화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탐심을 정리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지금 금식 할 때인지 아닌지는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눔= 나에게는 지금이 금식할 때입니까? 또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육적인 남편을 빼앗겼습니까? 진짜 신랑, 예수님-말씀을 빼앗겼습니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목사님은
세 번째로 “내가 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6, 17절을 읽습니다)
낡은 옷은 요한의 절기를 지키는 금식이요, 생베 조각은 예수님의 새 시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의 옷을 기워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입혀주러 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새 술(포도주)을 가져오셨으니까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이래야 둘 다 보존이 되는 것입니다. 새 가죽은 잘 늘어나 큰 그릇이 되지만 오래된 가죽은 경직되어 찢어지고 맙니다. 큰 그릇이냐 작은 그릇이냐의 차이, 곧 내가 얼마나 잘 변하느냐 안 변하느냐의 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적용입니다. 말씀을 듣고 QT하면서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가치관과 생활 패턴이 문제입니다. 형식적인 금식은 안해도 되지만 내가 새 가죽 부대가 되기로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지 말고 내가 변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적용입니다. 정말 설교 잘하시는 목사님이 옆에 오셨다면 영혼 구원을 위하여 축복해 드릴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가 양적으로 팽창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고 사람 살리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손해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윈, 윈” 으로 더욱 채워 주실 것으로 확신하셨습니다.
또 우리 목사님은 목사 안수를 받으셨어도 청빙하는 곳이 한군데도 없어서 교회를 시작하셨더니 바로 새 부대가 되어 사람 살리는 교회로 새 장을 열어 가게 되었습니다.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 같은 남편, 아내, 부모, 자식이 변화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변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입니다.
나눔= 내가 바꿔치기 해야 할 새 부대(가치관)는 무엇입니까?
정리하기]
주님 말씀의 새 술을 우리의 가치관인 새 부대에 담으려면
첫째, “어찌하여”가 없어야 되겠습니다.
둘째, 때가 중요합니다.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셋째, 내가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지 말고 내가 변합시다.
기도]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새 부대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가족관계에서 터지고 쏟아지고 버려진 경험을 당한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요,
그 때문에 새 부대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