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을 받으라
지난주일 saddle back 교회의 비치보이스 멤버의 한사람이었던 사람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방탕한 생활을 하여서 여자가 몇백명 아니 천명이 될수도 있어 회개를 하려도 이름이 생각이 안 날 지경인 이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어떻게 깨끗함을 받았을까요?
깨끗함을 받으려면 1절~
1,첫째 항상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8복 설교후 허다한 무리를 좇게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것이 자기 자리라고하십니다.
영적으로 준비 되면 세상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사랑과 겸손의 자리입니다.
명설교인 마:5~7장 8복 설교를 하시고 말씀대로 살으시려고 산 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좋다고 8복설교를 듣고 좇았다 떠났다 하는 백성입니다.
내가 내려 가려해도 허다한 무리가 좇아 왔을때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2절~ 한 문둥병자에게 가는 것이 자기 자리라고 합니다.
예수님 처럼 가장 힘든 사람에게 가는것이라고합니다 어떻게 내려옵니까?
1985년 하버드 교수인 헨리 나우웬이 캐나다에 있는 정신 박약자 공동체인 라 리쉬에 들어가
감정 표현을 못하는 아담을 돌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면도하고 이를 닦아주고 약을 먹이고 치료실까지 가는데 2시간이 걸렸습니다.
차라리 낳지 안았으면 좋았을것 같은 아담을 돌보는사이 나우웬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래된 연인처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낮은데로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없어도 좋을 사람 도우며 안식을 누리는것 입니다.
신비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사랑, 용서, 넉넉함. 인내를 가지고 힘든 사람을 도울때 오는 평화입니다.
아담이 무엇을 해서가 아닌 있는것이 핵심입니다.
성공을 향해 오르려는데서가 아닌 내리막길에서 만난 아담을 통해 무력(없을 무 힘 력)의 위력을
깨달았습니다.
"아담은 사랑을 일깨워 준 백년 손님입니다."
저도 힘든 사람이 내게 안식이 됩니다.
환란당하고 빚진자 오라고 했습니다. 교인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숫자에 매이는 것은 저의 어쩔수 없는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여자 집사로 목사로 섬기다 보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허다한 무리가 따랐는데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 왔을때
따라온 사람은 문둥병자 하나였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외로움이 있습니다.
예수님 설교 들으면 절로 좁은길 가는것 같아도 요:6장66절에 보면 제자중에 많이 물러 갔다고합니다.
깨끗해지는 것은 좁은길 가는 것입니다.
허다한 무리중 문둥명자 만나는 것이 안식입니다.
저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이 제게 안식입니다.
뉴질 랜드에 갔을때 은둔생활을 하다시피하는 어려운분을 만났습니다. 저의 설교를 듣고 책을
통해 은혜받고 너무나 사모함으로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만남에서 안식을 느꼈습니다.
성도는 허다한 무리중 한 문둥병자에게 나가야합니다. 이것이 내가 가야 할 자리입니다.
새가족에 등록하신 분의 간증입니다.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 밑에 자랐습니다. 칼로 어머니 몸에 상처를 낸뒤 소금을 뿌리는
아버지를보며 자랐고, 10살때 가출을 했는데 성폭력을 당했다고합니다.
29세에 결혼을 했는데 아버지와 똑같은 남자와 했답니다. 그후 이혼을하고,
천리교 신자인 엄마 밑에 불교 영향권에서 다시 예수를 믿기 까지 고생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을 만나고 기뻐서 가정을 느끼는 곳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권사님 가정에 도우미로 계시면서 가정을 느끼고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분을 모아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며 제가 안식을 누립니다.
박상은 장로님의 회견중에 과학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리주의, 인간욕구, 물질주의, 업적지향주의가 황우석 교수의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를 두고 창조주의 영역에 침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생명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한것입니다.더디 걸리지만 성체줄기세포 연구로 불치병을
극복해야 하는것입니다. 그 자체로 목적 존재이므로 수단적 존재로 여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적용) 나는 어떤 높은산에서 내려와야 합니까?
적용) 우리는 얼마나 허다한 무리를 좋아 합니까?
2,두번째로 깨끗함을 받으려면 주의 원함과 나의 원함이 맞아야합니다.
예수님이 8복대로 사는 모델로 문둥병자와 만나셨습니다.
문둥병은 감각이 없습니다. 죄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한 문둥병자가 맞아 죽을 각오로 나온것입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고 다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일에 종사 하는 것과 하나님 자체를 관심갖는 것은 다릅니다.
완전한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 아닌 깨끗게 해달라는기도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이라고 극도의 겸손함으로 주님의 원함을 믿는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병고쳐 달라고가 아닌 깨끗게 해달라는 구원이 목적인, 원함이 있는자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적용) 주님의 원함을 믿는자입니까?
적용) 구원을 향한 목적이 먼저 입니까?
3절~ 이런 원함이 있는자에게 손을 대십니다.
새신자로 오셔서 간증하신 집사님은 원함이 있는사람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그곳에 오신 모든분의 사연을 다 듣고 " 내가 제일 행복하네요"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8복 얘기후 죄얘기 하시고 드러내면 고쳐주신다 하십니다.
중독에 걸리면 자기죄가 안 보입니다.
주님이 손대시면 자기죄가 보이고 깨끗게 됩니다.
큐티 하는 것이 얼마나 깨끗게 되는 비결인지 모릅니다.
헨리 나우웬은 말합니다.
고통받는 사람때문에 우리는 두렵습니다. 그래서 자기 고통에 따른 고백을 합니다.
"나아질거에요. 나아졌군요. 괜찮아 질거예요." 공허한 얘기인줄 자신도알고 상대도 아는
위로가 안되는 말을합니다. 이런 말을 안해도 됩니다.
"친구야. 기도하지. " 고통 받는이들 옆에서 말없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이면됩니다.
치유는 변화를 뜻합니다.
치유란 측은히 여기고 같이 울고 웃고 고통에 동참하는것입니다.
의사는 치유를 할때 사례를 받기 때문에 파괴적으로 까지 갈수 있습니다.
보살핌을 첫째로 할때 치유란 선물을 받습니다. 보살핌이 인간 답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을 만질때 마다 자신이 치유됨을 느꼈습니다.
나는 오히려 아담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남을 높일때, 평안하고 남을 낮출때 불안합니다.
우리들 교회의 부흥은 서로 보살핌에 있습니다.
서로 보살피다 보면 치유는 내게 일어납니다.
그러려면 낮은 자리로 내려와 문둥병자의 자리에 오셔야 합니다.
적용)힘든 지체를 보살피다 치유 받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3,세번째 깨끗함을 받으려면, 공동체에 들어와야 합니다.
4절~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선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힘듭니다. 조용한 선행은 치유의 뿌리입니다.
보상이 기대되지 않는선행이 진짜입니다.
문둥병자 공동체 생활 하라고 도와 주셨습니다.
율법으로 인정 받으라 하십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예물을 드려 증거하라 하십니다.
수장에게 인정 받아야 공동체 생활이 가능합니다.
나의 때가 될때 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일이 많이 있습니다.
적용) 나는 지금 어떤 것에서 인내 하고 기다려야 합니까?
어떤 여선교사님이 사역지에서 세례를 베풀기위해 남자 목사님이여야만 한다고해서 비싼 비용을 들여 일년에 한차례씩 목사님이 오셔서 세례를 준다고합니다.
그 교단의 법을 따라야합니다.
적용도 간증도 때가 차야 합니다. 구원 사역때문입니다.
빵때문이 아닙니다. 허다한 무리의 목적이 빵때문이었습니다.
결혼시에도 재물을 자랑하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허다한 무리는 경계의 대상입니다.
일대일의 인격적 삶으로 만나야 합니다.
깨끗함을 받는 목적은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들어가 증거하라하십니다.
신앙 공동체(제사장)를 통해 확인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공동체가 동역하는 것입니다.
비치보이스 멤버가 교회나와 예배드리며 정죄감에 고통받을때 양육이 필요한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깨끗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공부하는 공동체에서 한자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옛습관이 나오는가
근심했지만 주님앞에 죄 씻음 받은 형제 자매의 증거로
9개월간 교제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관계를 안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교인이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이렇게 삶으로 드러나는것입니다.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격려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나병은 천형의 병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깨끗해 지길 원하십니다.
악에서 벗어나 거룩해 지길 원하십니다.
좁은길 가는것이 깨끗해 지는것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사건을 보면서 신앙 공동체안에 있지 않기에 낮은자리로 가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 주는 것이 좁은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상과 지식 가지고는 사랑할수도 깨끗함 받을수도 없습니다.
오직예수! 어린양의 힘만이 가능합니다.
이효숙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깨끗함을 받는 비결입니다.
기도; 좁은길로 가는 것이 깨끗함을 받는길입니다.
각자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와
문둥병자 같은 배우자 부부, 자녀가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할수 있다면
돌 맞을 각오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내가 문둥병자 같은 마음으로 주님앞에 나아가길 바랍니다
나을수 없는 문둥병을 깨끗게 해주신 주님이 병고쳐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