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11 주일예배 비 극 삼하17:23 김형민 목사님
요즘 제가 묵상하는 잠언의 6장과 7장은 우리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적용, 특히 아내와 남편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이 나오는데 6:32에 생각이 모자라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치고 상처를 받고 망신을 당하며 수치가 씻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결혼 4-5년차로 벌써 연애 시절의 감정이 사라지는데 하물며 20-30년 사신 분들이 자기의 아내를 한결같이 사랑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관계는 고귀하게 지켜내야 하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폭적인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이는 안 됩니다.
제도는 근본적으로 불안하지만 그 제도 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온전해지기 때문에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서로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하를 보면 이 언약의 관계를 잘 지켜오다가 깬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이 성실하고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해 오다가 밧세바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죄 값을 치르는 것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잠언의 말씀과 같이 생각이 모자라서 자기의 영혼을 망쳤습니다.
다윗이 범죄 이후에 생각이 흐려졌습니다. 압살롬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세바의 반란을 맞게 되면서 또 인구조사를 하는 범죄를 하게 됩니다. 앞으로의 반란을 막기 위해 인구조사를 해서 자기의 기반을 든든히 하지 않으면 또 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체의 정욕으로 인한 범죄 후 갓 선지자의 경고를 받아 회개를 하고, 여러 시험과 환난을 통해 다윗이 낮아지지만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겨가는 비참한 형편에 놓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히도벨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신복입니다.
이 아히도벨이 얼마나 똑똑했는지 후새의 계획보다 아히도벨의 계획이 훨씬 더 탁월했는데 만약 아히도벨의 말을 압살롬이 받아들였다면 다윗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하16:21에 다윗의 후궁을 백주에 동침하여 아버지를 철저하게 짓밟도록 가르쳐 주었고, 그런 아히도벨의 기획 안은 16:23에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게 여길 정도로 그는 탁월한 자였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장이나 가정, 정신세계 등에서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아히도벨을 만납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권력가들이나 CEO들이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는 것을 신문지상을 통해 알게 됩니다. 아히도벨과 같은 권력가들이 왜 비참한 결과를 맞을까요?
하나님과 동급으로 나에게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아히도벨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아히도벨은 경제문제, 먹고 사는 문제, 돈 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성공과 취업, 연봉이라는 아히도벨을 내려놓지 못하므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못합니다.
CCC나 YM에 천여명이 넘는 간사들이 있지만 다 무급으로 봉사를 합니다.
이들은 선교지에서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 하도록 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고백을 합니다.
아히도벨의 능력이 너무 대단해서 하나님 앞에서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하나님과 동급, 아니 더 강력하게 느끼는 것들입니다.
오늘 이것을 인식하고 내려놓는 것이 예배를 통해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아히도벨을 제거하고 하나님 앞에 정신 차리지 않는 한 신문에 나는 사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요즈음 가장 각광 받고 있는 것은 굴뚝 없는 산업인데 그중에서도 치열한 경쟁의 핵심에는 연예영화 산업이 있습니다.
크리스챤 연예인을 인터뷰해 보면 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잡아가는 것은 스케쥴입니다. 인기가 없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종종 약물에 노출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기, 명예, 돈의 아히도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세상 문화를 리드하는 세속적 경향 속에서 하나님만을 쫓는 사람을 만났는데 브라운 아이즈라는 그룹의 나 얼 형제입니다.
이 형제는 탁월한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앨범이 50만장이나 팔렸는데도 TV에 출연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주면 좋지만 거기에 빠지면 도저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음악으로 많은 불신자들을 전도하며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나를 보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주님을 보라’고 하는데 이것이 아히도벨을 버리는 것입니다.
<적용> 내 마음 중심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과 동급인 아히도벨은 무엇입니까?
아히도벨은 세련되고 능력있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나에게 접근하지만 여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인생의 무덤을 파는 것과 같은 형국으로 몰아갑니다.
하나님이 아닌 아히도벨은 심령의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줄 뿐이므로
말씀 앞에서 아히도벨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아히도벨과 두려움이 떠나가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17:14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아히도벨이 우리 가운데 있어도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물경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하나님보다 아히도벨을 택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스챤으로 인생이 변화될 여지가 많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먼저 섬기던 교회의 고등부 학생이 교회에 가끔 나와 우울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았다가 가곤했는데 지극히 내성적이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학생의 가정환경이 얼마나 불우한지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서 월급을 탈 사이도 없이 아버지가 다 가불해 가시며 가정을 돌보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장학금이 나와 전해주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 엄마가 병원에서 전화를 받아 가 보았더니 그 아이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아히도벨을 깨지 못하면 이 아이처럼 자살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아히도벨을 모시면 우리의 죄가 사망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은 그 모략을 파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회복해야 합니다.
<적용> 어떻게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회복하시겠습니까?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하신 일이 있습니까?
17:23 아히도벨은 자기 명예에 금이 가 죽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의 사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성공, 명예, 물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뭘 하는지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강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영혼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이 대단한 아히도벨이 그렇게 살다가 죽을 일도 아닌데 자살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자기 명예에 오점을 남기는 것을 못 참는 것이 세상입니다.
탁월한 기획안이 거절당하고, 왕따 당하는 것을 못 참아
조용히 말을 타고 고향 집에 돌아가서 정리를 합니다. 아히도벨은 완벽주의자입니다.
목사님의 아버지는 평생 한 직장에 다니시다 퇴직하신 분으로 9시에 출근 6시에 퇴근하신 분인데 시계를 보지 않아도 그 시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고 착하게 살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실이라는 병에 걸리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합니다.
퇴직 후 식당을 손수 운영하셨는데 새벽에 나가고 한 밤중에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암에 걸려 돌아가셨지만 그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도덕이나 성실이 아히도벨이 되어서 우리의 육신과 정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인생이 비극이 될 수밖에 없었던 2가지 이유는
그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과 심한 열등감 속에 사로잡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30-50대 남성들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의 아히도벨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니면 하나님 앞에 깨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숨 쉬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붙드는 아히도벨이 있지만 우리가 희망이 있는 것은, 아히도벨처럼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영생의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 2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무나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20대 후반에 법대 야간에 들어가 기도와 큐티하면서 공부하여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경영하며 자기와 같이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을 격려하며 도우는 모 변호사님과의 인터뷰에서
그분 안에 열등감과 불치의 아히도벨이 있었지만 하나님 앞으로 나왔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지금의 모든 영광과 물질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나누기를 원한다는 고백을 들으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아히도벨이 있지만 하나님보다 강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히도벨과 같은 비참한 삶을 살지 않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