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7: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하나님이 불로 사르는 것 같은 고난으로 나를 찾아오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랑이가 공황발작과 같은 증세를 일으켰습니다.
울기 시작하더니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입으로 과호흡을 했습니다. 숨을 천천히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 차라리 차가운 물을 좀 마셔보라고 야단을 쳤더니 물을 삼키지 못하고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고 물과 침을 질질 흘렸습니다. 가서 찬물로 세수를 좀 하라고 했더니 자기 방에 들어가 책상에 엎드려 헥헥거리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엎드린 자세로 좀 있게 내버려 둘 것을, 바닥이나 빈백소파에 누우면 더 안정시키기 좋을 것 같아 눕게 했더니 증세가 더 심해져 양손이 오그라들고 숨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중간에 몇 번 제가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제가 도와주려고 하면 팔을 뿌리치고 주먹을 쥐고 저를 노려보는 등 저를 더 화나게 했고, 제가 곁에 있으니 오히려 숨을 더 가쁘게 몰아쉬었기 때문입니다.
9학년 스케쥴 변경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스트레스 받더니, 과외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해야 하는데, 수학 문제를 어떻게 50문제나 다 풀겠냐며, 문제에 답을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기 시작하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3시 50분이면 가야한다고 그러지 않았냐며 울면서 신경질 부리고 오히려 숙제는 하나도 안하고 있는데, 정말 무시가 되고 꼴보기가 싫었습니다. 서너 살된 어린아이처럼 울다가 코로 숨을 못 쉬겠다고 더 흥분을 하며 난리를 치는데, 저 보라는 듯이 더하는 것 같아 정말 화가 났습니다. 이것까지 받아줘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럼 숙제 하지 말라고, 안해도 된다고 하며 달래주기가 싫었습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증세가 악화되면서 'Let me kill myself!'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말 불이 내려와서 사르는 것 같은 두려운 사건이었는데, 이것이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시는 사건이며 기도에 응답받는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정말이요, 하나님?' 저는 이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했어야 했습니까? 도저히 공감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공감을 합니까? 아버지 이렇게 연약한데 나중에 어떻게 그 빡빡한 9학년 스케쥴을 소화를 합니까?'
손이 오그라들고 몸이 마비된 채 계속 과호흡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며, 이것이 공황발작이라고 과호흡증후군이라고 머릿 속 지식은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숨을 천천히 쉬기만 하면 되는데, 아랑이는 제 말에 반응하지 않고 분노를 폭발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동생부부가 들어왔고, 제부가 아랑이를 진정시켰습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과호흡 증후군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과호흡 증후군이 발생해서119 구급차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증세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많은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긴장을 풀어라', '진정해라', '숨을 천천히 쉬어'와 같은 말은 피하고, 이 환자들을 더 흥분시킬 수 있는 사람이나 물건, 상황은 다른 곳으로 잠시 피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눈을 맞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이 숨이 막히는 것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런 느낌은 실제이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안전하다고 안심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의 상황을 돌아보니 아랑이를 더 흥분시키고 힘들게 했던 사람이 바로 저였음을 깨닫습니다. 아랑이의 고통에 무감각했고, 저에게 보이기 위해 더 과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세 살 짜리 아이처럼 문제 답을 모르겠다고 울어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서 함께 문제를 들여다보고 힘든 마음을 위로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아도 아이를 정죄하기 이전에 그 힘든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했습니다. 한 달 전 제부가 아랑이를 훈육한다며 매를 들었을 때 아랑이가 처음으로 공황발작과 과호흡 증후군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매질의 공포가 아랑이로 하여금 난생처음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했다고 제부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냉정함과 아이를 향한 무시와 정죄가 아이의 마음에 더한 공포를 일으켰습니다.
저는 다른 지체를 미워하고 그 지체의 아이를 무시했습니다. 엊그제 별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상해서 동생을 미워하고 덩달아 조카들에게도 소원했습니다. 화가 나서 동생에게 이틀이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완악한 마음이니 어찌 아랑이가 나름의 고난으로 울 때 체휼이 되고 애통이 됐겠습니까? 과호흡을 하는데도 제가 숨을 천천히 쉬라고 해도 제 말에 사랑이 없어서 그런지 아랑이가 제 말에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랑이를 안정시킨 것은 괜찮다고 지난 번에도 그러지 않았냐고 침착하게 안심시킨 제부였습니다.
아이의 많은 일을 겪고도 저는 여전히 제 아이를 잘 알고, 아이의 일에 잘 대처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저의 한계는 아이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며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 이토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교만한 저를 용서해 주시고, 부디 아랑이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아버지,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아랑이 아빠를 무시했던 것처럼 아랑이를 무시했습니다. 아버지, 아랑이를 고쳐주시고 아랑이의 영육이 강건케 해주세요. 다시는 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제부가 매질의 공포로 아랑이에게 공황발작을 일으켰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공포도 없었는데, 냉정하고 공감 못하는 엄마가 되어 아랑이에게 공황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 부디 아랑이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이버지, 이런 상황에서도 마땅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저의 교만을 용서해 주세요.
아랑이는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손발의 마비도 풀렸습니다. 제부가 어땠었냐고 묻자, 손이 저리고 무감각해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눈물을 그치고 오직 한가지만 생각했습니다. 과외는 가야한다. 이것이 보상이 되면 안된다. 더이상 묻기를 그치고, 어서 일어나 과외 받으러 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가야돼?' 과외 못 가겠다, 취소하자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아랑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준비해. 가야지.' 과외가는 차 속에서 아랑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랑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과외를 마치고 내려 왔습니다.
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 쭈뼛거리는 목소리로 '아까 힘들 때 엄마가 잘 못 도와줘서 미안해.'하고 말했습니다. 아랑이는 또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흘려 듣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아이들은 다 듣고 있는가 봅니다. '엄마한테 어떤게 화가 났어?' '힘들다고 하는데 엄마가 와서 보지 않았잖아. 계속 화면만 쳐다보고.'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더 도움이 됐을까?' '엄마가 와서 봐줘야지.'
사실 저는 아랑이가 일부러 더 힘든 것처럼 과장하고 관심받으려고 하는 것이 싫고 무시가 됐습니다. 그런데 자기연민에 빠져 인생을 더 파괴하고 우울증의 나락에 빠져 살며,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음란하게 살았던 것이 바로 저의 모습입니다. 아들의 연약함을 통해 제가 얼마나 지체들, 심지어 자녀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불로 사르는 것 같은 두려운 일이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정에 임하는 일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고난을 숨김 없이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일이 우리 가정 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본 것처럼, 지체들이 우리 가정의 고난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에 주목할 것을 믿습니다. 날마다 큐티하며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서 저의 죄와 부끄러움을 보고 날마다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는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