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음의 한 가족으로 맞이하는 유아세례의 자격, 준비사항, 당일 순서를 안내합니다.
부모님 모두 세례(입교) 교인이어야 하며, 목장을 참석하고 계셔야 합니다.
대상자는 36개월 이하의 유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돌 전에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 필수 숙제 미 제출 시에는 세례 절차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제출하신 분에 한 해 본인 차례가 되면 교회에서 세례 날짜 예약을 위해 연락을 드립니다.
아래 유아세례식 진행순서를 숙지하셔서 세례식 당일 예배시간 20분 전까지 본당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유아세례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 시간 | 제목 | 내용 | 비고 |
|---|---|---|---|
| 1분 | 호명 | OOO, 부모님과 가족들, 축하해주실 목장식구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 부모는 미리 등단하여 대기한다. 강대상의 오른쪽에 가족, 목장식구들이 집례자를 향하여 같이 선다. |
| 설명 | 유아세례는 본인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때까지 부모가 신앙 안에서 잘 양육하겠다고 대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 하객들이 나와 정렬하는 동안 잠시 설명한다. | |
| 1분 | 서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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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분 | 물세례 | 예수 믿는 OOO, OOO씨의 자녀 OOO(이)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 |
| 공포 및 축복기도 | OOO(이)는 우리들교회 유아세례교인 된 것을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아멘! 축복기도 | 공포한 후에 집례자가 아기를 건네받아 축복기도한다. | |
| 1분 | 축하행진 | 집례자가 아기를 안고 회중석으로 행진하면 뒤에서 부모와 목장식구들도 함께 행진 | 행진이 시작됨과 동시에 축복송을 부를 수 있도록 한다. |
| 2분 | 선물전달 | 행진 후 부모들은 강단 중앙에 회중을 향하여 서고 축하를 받는다. | 가족과 목장식구들은 준비한 선물을 전달한 후, 자리로 돌아간다. |
| 2분 | 인사/나눔 | 부부가 회중을 향해 나란히 서서 인사하고 짤막하게 소감을 나눈다. | 집례자는 아이를 안고 서 있는다. |
| 마무리 | 집례자는 아기를 다시 부모(아빠)에게 안겨준다. |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예식입니다. 그것은 보이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무리들이 그 교회에 참가하는 엄숙한 입회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에 대해서는 은혜의 계약인 인침을 받는 표가 되며(로마서 4:11, 골로새서 2:11~12)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갈라디아서 3:27, 로마서 6:5) 중생과(디도서 3:5) 사죄와(마가복음 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을 살겠다고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을 봉헌하는(로마서 6:3~4) 표와 인침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백성의 무리에 속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안에서 죄로부터 구원과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령이 어른들에게나 마찬가지로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어져야 하며 불신자의 어린이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구약에서 할례로 이루어졌는데 신약에서 그 대신에 세례가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를 받는 아이들은 복된 아이이므로, 본인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때까지는 부모가 신앙 안에서 잘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례의 뿌리는 할례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창세기 17:9)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 당대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이 대대로 지킬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할례가 신약에 와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세례로 전환된 것입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나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1~12)
세례의 참된 의미는 베푸는 양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 3:21)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의식보다 내적인 심령의 변화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들은 주로 종교개혁 당시에 일어난 과격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을 일명 재세례파(Anabaptist)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자아의식이 없는 유아에게는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하며 성경에 “유아세례”란 말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성경의 통일성을 잃어버려 일부다처(一夫多妻)도 주장합니다. 유아세례는 믿음의 조상에게 하신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값진 유산이 유아세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를 많이 시행해야 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살도록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유아세례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말씀드립니다.
세례의 근본은 할례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세례를 알려면 구약의 할례를 알아야 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할례는 난 지 팔일 만에 행했습니다(창세기 17:12). 그렇다면 신약의 믿음의 자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유아도 언약 아래 있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의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사도행전 2:39)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베드로가 한 첫 번째 설교입니다. 여기 나오는 약속은 그 앞 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사도행전 2:3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회개를 통해 세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 범위에 “너희 자녀”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나 그 자식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편 127:3)고 했습니다. 육적인 아담의 피를 받고 난 자녀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를 베푸는 것은 계약의 후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유아세례는 계약의 후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유아도 홍해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넜습니다(출애굽기 12:13~14, 14:15~16).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린도전서 10:1~2)라고 했습니다. 이 거룩한 공동체에 유아도 다 포함된 것입니다.
고넬료의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받고 성령을 받았을 때 베드로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사도행전 10:47)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세례 받은 자들이 누구인가?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니”(사도행전 10:24)라고 했습니다. 이 무리들의 반열에 어린아이라고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던 경건한 자이었습니다(사도행전 10:2).
빌립보 지역에서 베푼 첫 세례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지역에 가서 빌립보 교회를 개척할 때입니다.
믿음의 자손들은 선택받은 생명입니다. 한나는 기도하여 아이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사무엘상 1:20)고 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 주신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요 상급입니다(시편 128:3). 그러므로 언약의 백성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복중에서도 성령 충만했습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누가복음 1:15~16)고 했습니다. 후에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엘리사벳을 찾았을 때 그 복중의 생명인 세례요한은 오실 메시야가 방문함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누가복음 1:44)라고 했습니다. 산모의 성령 충만함은 복중에 있는 태아에게 영향이 미칩니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자손에게 주는 세례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부모 신앙의 감화로 자녀가 거룩해집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린도전서 7:14)고 했습니다. 믿는 부모에게 주신 자녀는 부모의 거룩함으로 신령한 반열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님이 세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게 하심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영혼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요나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니 하나님이 그 백성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요나가 불평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요나 4: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기성 세대보다 자라나는 어린 영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어린아이는 겸손의 표상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다투고 교만한 행위를 보고 어린아이를 불러서 세우시고 겸손을 가르쳤습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 18:4)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1:29)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천국의 주인입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꾸짖을 때 엄하게 책망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마가복음 10:14~16)고 했습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아세례는 어린아이에게 주시는 선의의 언약입니다. 여기에는 신령한 복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① 부모는 유아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자녀들에게 미친다는 확신을 얻습니다. ② 어린아이들은 교회의 권속이 되어 다른 회원들에게 위탁하여 거룩한 도를 배우게 됩니다. ③ 이 세례가 후일에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진지한 열정을 지니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완전한 성결을 주장하는 것은 교만의 산물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교회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많이 베풀어야 하고, 부모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자라도록 경건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아름답고 신령한 유산은 믿음을 선물로 물려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복중에 자녀를 잉태하여 출산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나실인적인 심정으로 주의 약속한 도를 따라 키우기로 작정하는 신앙고백은 자식을 하나님의 장중에 있게 하는 부모가 행할 가장 아름다운 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