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주일
참 지혜로운 성도 (마11:25-27)
지난주에 이어 지혜로운 사람과 다르지만 이번에는 참 지혜로운 성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할 것 같으면 저희 아버님과 남편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이북에서 8.15광복 6개월 전에 벌써 서울에 내려와 계셨고 6.25전쟁 6개월 전에는 벌써 부산에 내려가 계셨고 1.4후퇴 6개월 전에는 제주도에 내려가 계셨고 그 때마다 모든 쌀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때마다 떠나는 연습을 하셔서 열 처녀 중의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한 것 처럼 떠나고 떠났습니다.
그것을 이어 받아 저희 남편도 늘 전쟁에 대해서 준비를 하면서 저에게 시집살이를시켜도 전쟁이 나면 만날 계획을 짜면서 짝수 해, 홀수 해 어디에서 서로 만날 것인지 너무 열심히 예비하며 가끔 가다 짝수 해는 어디냐고 물으면 제가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과 사니까 내가 얼마나 고생이냐고, 그런 얘기를 할 때는 눈이 반짝 반짝하면서 지혜롭고 슬기롭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지혜롭고 슬기로운 것이 아니라 아침 일찍 일어나고 부모에게 효자이고 환자를 잘 돌아보고 바람도 안피우고 이렇게 처자까지 챙기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 지혜로운 성도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참 지혜로운 사람은 첫째,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고 합니다.
25절: 여기서 슬기롭다는 뜻은 이해력이 있고 신중하고 지성을 갖춘 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다 갖추었는데 학자들은 자칭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총칭해서 말하자면 세례 요한과 같은 자, 이 세대 사람들,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한 가버나움의 고을들, 그리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어린아이들은 단순하고 무식하고 경험이 없고 아무 것도 모르고 무조건 의지합니다. 누가 총칼을 들고 죽인다 하면 어린아이가 천국지식을 자랑하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천국 지식이 없습니다. 그냥 엄마 품에 파고 드는 것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과연 참 지혜로운 성도가 아무 것도 없어서 엄마 품에 파고드는 사람에게 나타내신다고
했는데 우리는 한 쪽에서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올바르면
원어로 예수님이 "내가 스스로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찬성하며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고 어린 아이같은 자에게는 나타낸 것을 한 쪽에서는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길 수가 있는가 하지만
천국의 은혜가 열려있지만 누구에게 임하는가, 이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는 닫혀 있을
수밖에 없고, 임할 수가 없고, 하나님의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식해도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에게는 열려있다고 하는데 자칭 지혜로운 사람은 거부합니다.
자칭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할 줄 안다고 교만합니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겸손한 것인데 내가 겸손하다고 아는 사람에게는 겸손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자기가 겸손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아는 자는 이미 겸손이 아닙니다. 내가 100% 죄인이라서 겸손하려고 해서 겸손한 것이 아니라
겸손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 149:4에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라" 인간이 100% 죄인이라 인간의 지혜를 꺽기 위해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내 옆의 모든 사람을 통해서 내 지혜를 꺽을려고 수고를 하십니다.
오늘 말씀으로 적용을 한다면 주님이 전적으로 감사하다는 이 일에 우리도 감사해야 되지 않겠는가, 항상 적용이 중요합니다. 내 식구가, 내 잘난 남편이, 내 잘난 부모님이 너무 지혜롭고 슬기로워서 똑똑해서 못 믿고 못 깨닫는다면 오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 전적으로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똑똑한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 왜 저 사람은 못 깨닫고 듣지를 못할까, 왜 저렇게 산만하고 집중을 하지 못할까, 이런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을 분해하지 말고 이제 감사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예수님이 감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적용 질문> 지혜롭고 슬기로운 잘 난 내 옆의 식구들이 주님을 모르는 것에 감사하고 찬양이 됩니까, 주님을 나타내시고 나를 겸손케 하는 환경으로 밀어 넣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부지런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눈에 섬광이 번쩍이는 남편이 교회만 가면
졸고 찬송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졸아서 눈 좀 뜨라고 쿡쿡 찌르면 "내가 다 듣고
있어" 하나도 안 들으면서 자장가처럼 들었습니다.
저는 집에서는 바보같아도 교회만 가면 눈이 반짝 반짝하고 남편이 좀 들었으면 좋은 말을 하실 때 정확하게 남편은 잠을 자도록 사단이 방해를 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조는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다 너무 슬기롭고 지혜로와서 조는 것입니다.
남편이 바보라는 하는 저는 잘 믿고 남편이 잘 못믿는 것을 보면서 진정으로 감사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것을 먼저 만나주신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 감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재미있게 하시는지 이번에 개인적으로 세계적인 메일이 3개나 왔는데 이태리의 지롤라모 마르첼로 백작을 위한 기도제목을 어떤 분이 주셨는데 이분은 이태리에서 유일하게 많은 고서를 개인적으로 소장해서 개인적인 집안 도서실을 소유하고 있어서 각 처에서 학술 연구를 위해 다 찾아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급히 발생된 문제는 다빈치 코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빌 게이츠가 홈페이지를 오픈했는데 빌 게이츠 측은 교회측도 아니고, 다빈치 코드의 저자인 댄 브라운 측도 아닌,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현 자료에 근거해서 일반인을 돕고자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지롤라모 마르첼로 백작집에 빌 게이츠측에서 어떤 사람을 보내어 상주하여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 백작에게 큐티를 전해서 말씀을 알아듣기도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빌 게이츠쪽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연구를 하시는 분은 유대인 부모사이에서 자신은 천주교 신자라고 합니다.
다빈치 코드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막달라 마리아
후손들이 프랑스로 가서 메로빙거 왕조를 형성한 사실이 알려지면 개신교든, 천주교든
온 교회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프 스테이에서 막고 있다고 한답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곳이 시온 수도회이고 너무 그럴듯한 추리소설로 온 세계가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댄 브라운이 너무 저질이라고 빌게이츠가 연구를 해서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연구하러 온
파견된 여자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만 했을 뿐 교회 설립을 전혀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구교건, 개신교건 교회는 이익을 위해 꾸며낸 신빙성이 없는 모임 단체일 뿐이고 사도 바울은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이익을 위해 만들어 조작된 증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자유를 택한 삶을 살아야 되는데 이성관계 역시 그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역시 이성과 동성연애자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판되어서는 안될 그냥 인간 본연의 생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닌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이성관계를 맺었던 여자다 라는 것입니다.
댄 브라운은 저질적으로 횡설수설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사실이다, 그 모든 것들은 다빈치의 자료들이 말해준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신앙인이고 히브리어 라틴어 영어 이태리어, 모든 것으로 성경원본에 주역서를 다 읽었고 모태 신앙이고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매일매일 읽었던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빌 게이츠가 전 세계의 제일 부자이고 거기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줍니까,
도와준다면서 다빈치 코드의 허상을 밝힌다면서 더 확실한 것을 홈페이지에다 적는 것을 보면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들은 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에게 나타나지 않는 예수님이 나에게 나타나신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제가 빌 게이츠보다 높은지 저에게 그런 기도제목을 보내어 왔습니다. 다빈치 코드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데도 모두가 열광하고 있는 이것이 똑똑한 내 남편이 안 믿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못 믿고 자기 도서관을 이용하러 다녀갔다는 사실에 업되어 있는 백작과 같습니다.
갑자기 일개의 여자 목사가 빌 게이츠를 얘기하는지 저도 이상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통하여 기도할 만한 자에게 기도제목을 주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어쩔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믿는 어린아이와 같은 나눔을 공개하기를 원합니다.
<2년 전 5월에 새신자 수료 후 말씀의 원가지에 잘 붙어있겠노라고 해놓고 실은 불평, 불순종, 억지예배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위암진단을 받고 믿고 싶지 않아서 한 달을 걸려서 재검을 받는 동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놀라기도 하고, 어이도 없고, 하나님께 서운하기도 하고 열심으로 전도했던 사람들이 주님을 뭐라 할까 걱정도 되고..무슨 일이든지 돌격 앞으로! 성품이었는데 맥이 탁풀려서 도무지가 힘이 올라와 주지를 않습니다. 교만했던 모습들이 부끄러워지고 집에 있기에도 힘들고 이 와중에 일을 한다는 것도 서글펐습니다. 말씀이 궁금했습니다.>
안 들은 것 같은데 우리들교회에 오면 말씀이 궁금해집니다. 이 분은 세례를 지난 주에 받으신 초신자입니다. 이 초신자가 어떻게 말씀을 적용했는지 이번 주에 올라온 글입니다.
<마태복음이 중단되고 제게는 생소한 데살로니가전서,
주님 제 눈에, 제 귀에, 제 마음에다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는지 말하라고,
장래 노하심에서 건지시기 위함이라고,
자기 나라와 영광에 합당히 이르기 위함이라고,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하는 사랑이라고,
장차 받을 환난을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이라고,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심이라고,
노하심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심이라고,
주님께 직행하게 하심이라고, 신기하게도 제가 알아 듣습니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리다가 한 방에 갈 뻔했는데 스톱시키시고 제 정신
들게 하시고 말씀 넣어주시고 한가지씩 인도하신 아버지. 암이 사랑인것 조금씩
인정이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돌격 앞으로!!! 이 성품에 꼭 맞습니다.
그렇게 가기 싫던 목장에서 살아나고 사랑하는 형도 형제되게 하시고 밤중에 찾아가서
"형이 암이다" 한 마디에 오네시모도 낳게하시고 수요예배에 세례까지 받게 하시니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하셨습니다. 세례식날 받은 지체들의 그 큰사랑을 어떻게 갚을지..
지금까지 네 분의 목자님들이 나 같은 것을 유리처럼 다뤄 주셨는데 생각만으로 고맙고 배부르고 감사합니다. 입원까지 기다려야하는 7주.. 안에서 세포가 자라는 것같은 두려움에 힘들었는데 그동안 목장에서는 비오는 토요일엔 등산을 가주고 교구에서는 야외로 나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게 해주고 교회에서는 세례식 해주시고.. 어느덧 4일 남았습니다.
온 교회가 제게 주시는 위로는 세상의 그것과 달라서 비참하지 않게 잘 받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집안에서는 내일 있을 결혼식에도 빼준다고 배려하는데 저는 내일 가서 전할 말 있습니다.
수술하기 전에 용서빌고 내가 만난 아버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성령께서 해야 할 말을
내 입에 넣어주시고 가족들의 마음도 열어주셔서 고난이 축복의 재료로 쓰이게 하소서.
앞으로의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고 말씀안에서, 교회안에서, 지체들속에서, 제정신으로
자~알 가고 싶습니다. 참..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되기를" 올해 기도제목이었는데..
정확하십니다.> 이런 분이 어린 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제가 지난주에도 암 걸린 자매들을 심방을 갔었는데 우리들교회에 온지 몇 달된 자매는 할렐루야! 하면서 "모두가 다 이상해요, 내가 암에 걸렸는데 새벽부터 전화하고 6시부터 문자를 날리면서 자동차 연수받는데 정신차리고 날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 지난 주에 등록하신 새가족도 암에 걸려 찾아갔는데 이 분은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안 듣고에 따라 제가 천국과 지옥을 보았습니다. 첫 주에 심방을 갔을 때도 담임목사가 심방을 가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시지만 그레네 시몬처럼 크게 은혜받을줄 믿습니다. 말씀이 있으면 어린 아이처럼 들리고 주님을 나타내십니다. 할렐루야!
<적용 질문> 주님이 나같이 연약한 자에게 보여주시고 드러내시는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참 지혜로운 성도, 두번 째는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입니다.
26절: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숨기는 것이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신 것이 감사한 정도가 아니라 더 나아가서 옳소이다, 진짜 맞는 얘기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강도를 세게 해서 이것을 직역하면 "옳습니다! 그 아버지여, 당신의 선하신 뜻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내 남편이 안 믿어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지존파가 믿어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내 남편이 안 믿는 것은 내가 세상을 골랐고 학벌을 골랐고 돈을 골랐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나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가 안 믿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고통 속에서 믿어보니까
내 지혜로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힘들어서 이렇게 깨어졌는데 어떻게 잘 난 내 식구들이 깨어지겠는가, 내가 이제 할 일은 내 죄만 보고 가는 것, 이것 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내 죄만 보면서 눈물흘리며 가는 것, 잘 난 사람은 내버려두고 감사합니다, 옳습니다!만 외치면 됩니다.
이 땅이 다 인줄 알고 누리는 사람들이 복음까지 잘 깨닫는다면 말이 안됩니다. 모든 것을 갖추신 분이 암이 걸렸습니다. 제가 가서 "이 세상의 것을 다 누리다가 어떻게 암까지 걸려서 예수를 믿을 수가 있어요? 정말 분해 죽겠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불공평합니다.
다 누리다가 웬 은혜로 암까지 걸려서 예수를 믿는 겁니까? 그만큼 내가 왕노릇 하는 자는 복음을 깨닫기가 힘듭니다. 내가 울면서 깨달은 말씀에 같이 울고 기뻐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못깨닫는 사람은 왜 못깨달을까 하지 말고 전적으로 감사하라고 했으니까 그가 반응하지도 아니하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고 옳다고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영적으로 세워지려면 육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면 안되니까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입니다.
왜 잘난 박사가, 장로가, 장로 아들이, 목사가, 목사 아들이, 권사가, 권사 딸이 왜 못깨달을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은 지식을 자랑하는 것인데 지식을 자랑하는데 심판과 구원의 복음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란 선의, 기쁘신 뜻, 은혜로운 뜻이란 의미인데,
good will, good pleasure, gracious will 입니다.
아버지의 자비로운 뜻을 알고 있는 유일한 아들인 예수님의 감격적인 표현입니다.
내 사건에서 역설적으로 감사합니다, 옳습니다의 아버지의 뜻을 아는 자가 참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남편은 완전 무결하게 간 검사도 매달 하고 어디를 놀러갈 때도 준비하다가 다 탈진합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부모님을 꼭 끝까지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체크하고 오래 살 것처럼 해도 거기다가 5년 뒤에는 무의촌에 들어가서 불쌍한 사람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살면서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자기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준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경제권도 안주고 제가 걱정이 되어 은행을 갈 때도
강도당할까봐 누구를 붙이고 집에만 있던 제가 부족하니까 잘난 척하지 않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족해서 주님께 나아간 저에게 주님은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연한을 알려주셨습니다.
남편의 구원을 놓고 눈물로 기도했을 때 정확한 날을 나에게 알려주셨고 구원이 임박해서는 날마다 간증이 나오게 하시고 결국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완벽한 그에게는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비밀의 하나님 나라가 결국은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하면서
남편만 쳐다보지 않고 제가 이웃을 위해 살았을 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나갔을 때
정확하게 구원의 때가 임했습니다.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똑똑한 사람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자신이 부족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구원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구원을 예비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보이시는 이것이 옳소이다, 아버지의 뜻이란 것입니다.
그렇게 전쟁나면 만날 생각은 해도 진짜 구원에 대해서는 예비를 안했습니다. 라면에 부탄가스까지 준비하는 사람이 성경은 읽지 아니하고 교회는 가서 졸고 이 땅의 똑똑함과 완벽함이 영생을 준비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준비하다가 우리는 맨날 싸웠습니다.
목욕탕에 물 받아 놓아라, 물받았다가 맨날 버리는데 전쟁나면 우리만 살자고 하면 됩니까? 그냥 죽으면 되지, 어떻게 우리만 살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눈 앞에 보이는 구원만 예비하는 사람을 보면 먼 구원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안 보이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했으니까 그저 이것은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내 옆의 믿지 않는 식구들의 구원에 대해 어떻게 예비하며 살아가는지,
내버려 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참 지혜로운 성도, 세번 째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입니다.
27절: 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소원이 있다고 합니다. 계시를 주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소원때문에 지존파가 계시를 받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계시를 받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이 소원이 없어서 계시를 못받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들의 뜻이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임이 믿어져야 되는데
요17:7에도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라고 합니다. 의심의 틈이 전혀 없는 모습인데
사28:26에도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아브라함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스스로 있는 자는 모세에게, 사랑의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각각의 하나님으로 계시를 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계시를 받는 인생은 성경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들의 소원은 내 영역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아버지를 더 알아가는 기쁨을 주시는 것인데 내가 무엇이관대 아들의 소원이 되는 인생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아는 성도는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이기 때문에
참으로 함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형편없는 나는 그래서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아들의 소원이 되는 대단한 인생인데 지혜롭고 슬기로운 남편은 날마다 죽겠다는 등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버지를 모르니까 지혜를 모르고 지혜를 모르니까 때를 모르고 때를 모르니까 해야 될 말, 안해야 될 말을 모르니까 상처줄 말과 안할 말의 분간을 못해서 겉으로 안 그런척 하면서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습니다.
혼자서 선하지만 이번에 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교회의 장로님, 권사님이셔서 밖에 나가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누구보다 예수를 잘 믿는 행복한 가정인듯 가족 찬양의 주제가가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로 가족 찬양 경연대회에서 상을 타는 가정이었습니다.
한번 화가 났다 하면 밖으로 집어던지고 상 집어던지고 엄마 때리고 누구도 아빠의 분노앞에 버틸 자가 없었는데 이런 아빠를 두려워 하면서도 밖에 나가면 엄마는 "우리 장로님은 천사 표예요" 라고 말씀하시곤 했답니다. 다른 교인들도 그렇게 믿는 듯 했습니다.
교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님, 권사님이셔서 엄마는 혹시나 집안의 비밀이 누설될까봐 우리들의 입단속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몹씨 불안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조성하시는 공포분위기를 며칠마다 겪어야 하는데 동네가 떠나가도록 악을 쓰고 때리고 싸우는 소리가 며칠마다 이어졌는데 아빠는 발 안씻는다고 바가지로 머리를 때려서 머리가 찢어져 피가 나고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저를 마당에 집어 던지고 그런 제가 당하는 폭력보다는 제가 가장 크게 당하는 상처는 엄마 아빠의 불화입니다.
교회가서 누구보다 행복한 척 하시는 엄마의 스트레스를 모두 제게 푸시는데 극단적으로
과잉보호를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반찬 먹는 순서까지 엄마의 뜻에 따라 먹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저는 억압적인 가정 분위기에 거기에다 한술 더 떠서 행복한 척 위장해야 하는
교회생활에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비밀이 많은 것을 견딜수 없었습니다. 싸우고 터지고 악 쓰는 것을 왜 그대로 드러내어 놓을 수가 없는지, 왜 우리가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 되는지 불안한 가정보다 이중적인 삶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원론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나는 영만 구원받고 육은 괜찮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이원론입니다. 육과 영이 따로 분리된다고
하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우리 집이 차라리 절에 다니면 덜 했을텐데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와 목사님께
거짓말을 밥 먹듯하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인형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제가 숨이 막혀 죽든지 말든지 엄마의 요구에 따라 철저하게
교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엄마의 줄에 묶여 연극을 하는 인형이었습니다. 제가 이빠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언어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섭게 자라면 오금이 저려서 반항도 나가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왜 자꾸 이런 글들이 올라 올까요? 천 이백만 기독교인 중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글들이 올라오겠습니까. 모든 교회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데 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까짓 맞고 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쿨하게 사는 것이 좋은데 맞았다, 때렸다 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것입니다. 맞고 때린 것이 뭐가 부끄러운 얘기입니까.
저도 맞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가정과 교회 생활로 인해 내면은 썩을대로 썩어버렸고 제가 너무나
이상한 사람같이 생각되었고 누구도 나와 같이 당하는 고통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했는데
우리들교회에 이런 간증이 실린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너무 많아 자기는 너무 놀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 자매의 간증을 듣고 자기와 같은 자가 또 있구나 하면서 너무 놀랐는데 이것이 빙산의 일각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긴장속에서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아빠의 분노를
경험하는 것도 힘들었고 엄마가 숨막힐 듯이 저를 조종하는 것도 힘들었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커서는 선교 단체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건강하지 않는 교회에서 자라 선교단체에 가게 되면 거기서 정착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열심히 그러다가 거기서도 여기서도 자기 쉴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하다가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교회의 얘기는 아닌데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입니다.
공동체의 고백에 주일마다 올라온다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기도 하고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서 왜 이런 일이 없겠습니까, 우리들교회가 이상해서 이런 글들이 올라오겠습니까? 가장 건강하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비참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주 품으로 달려드는 사람, 하나님이 계시하는 자라야 말이 어눌해도 학식이 없어도 가장 잘 말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적용 질문> 하나님은 내게 어떤 방법으로 보이시고 가르치십니까? 주님이 내게 계시하여 보여주신 것(환경, 배우자, 자녀, 물질)에 대해 어떻게 다스리고 사는지 나누어 봅시다.
날마다 등장시키는 집사님의 목장 보고서의 귀퉁이의 글을 제가 읽었습니다.
나는 닥쳐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나의 그물인 것 같다고 적용하셨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언제나 유혹과 핍박의 그물이 있기 마련인데 내 그물이
무엇인가 했을 때 닥쳐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내 그물이라고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건은 100% 옳으시다고 하면서도 남편이 돈도 안 벌고 바람피우고 나갔는데 남편이 안 들어오는 것이 편해 진 것이 그물이라고 합니다. 예배만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모든 것이 무디어져 버린 것이 그물이라고 합니다.
너무 분하고 속상해서 펄펄 뛰어야 하겠는데 나 왜 이렇게 행복해도 되지? 라고 하는 것이 그물이라는 것입니다. 혼자있는 것이 익숙해져서 내 속의 가증한 것들이 죄라고 합니다. 남편이 안들어오는데 남편대신 회개하지 않는 것이 그물이랍니다.
옛날에 남편이 나갔을 때도 이런 글을 올렸는데 남편은 집과 아이를 버리고 나갔는데 예수 없이 행복할 수도 기쁠 수도 없는데 저 상한 마음을 누가 덮어주겠는가 라는 글을 썼습니다. 이 자매가 돈이 없고 집도 없이 월세집에 살면서 우유배달을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 할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이야말로 진짜 잘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를 사랑해주시고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진솔한 말, 진심 어린 말이 진짜 말을 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온 수도회가 어떻고 메로빙거 왕조가 어떻고 마리아가 어떻고 그렇게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은 사람들이 키에르케고르, 니이체를 부르짖으면 너무 말을 잘하고 똑똑한
것입니까? 진짜 여러분이 말 잘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말을 잘 하고
참 지혜로운 성도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계시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참 지혜로운 성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아버지의 뜻들 아는 자라고 합니다.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라고 합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감사합니까? 똑똑한 내 남편이 안믿어져서 감사합니까,
나같은 것이 믿어서 감사합니까. 더 나아가서 옳소이다가 됩니까?
지금 모든 식구가 안믿고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따로 노는 식구들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래도 나는 주님의 소원이 있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인생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아는 인생입니다. 모든 것을 내게 주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건강도 재물도 이 세상도 다 주셨는데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만 주시는 것, 이것 또한 믿습니까?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다스릴수 있는 것, 없는 것을 주께서 아시고 내게 알맞는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비추시지 않으면 아무도 알 자가 없습니다.
주여, 나를 창조하시고 비추어 주십시요.
이렇게 기도하시면서 '창조의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