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26 주일 예배 (마 9:27-29)
너희 믿음대로 되라
(기도)
주님께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어려운 환경에서 믿음대로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녀 때문에 길이 없고 끝없는 수치 가운데서 새 부대의 샘플이 되신 류화숙 전도사님을 지난주에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한명의 엄마 백수기 집사님을 소개 합니다.
엘리트 가정의 자녀인 도영이의 방황 가운데서 우리의 오픈이 왜 수치가 아니고 어떻게 믿음대로 되는가의 모델로 쓰임 받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학교 선생님인 이 엄마는 아들의 방황이 얼마나 수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며 말할 수 없는 탄식 자체였는지 도망가고 싶은 현실에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중 고등학교 6년간을 끝이 안 보이는 방황의 늪과 담배와 술과 일진회와 폭력으로 연루되어 수시로 학교와 파출소 경찰서를 다녀야 했습니다.
학교를 데려다 주고 오면 다시 담을 넘어 나오는 아들의 충동성 부적응의 상태를 계속 지켜 보아야 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고 결석일수는 차오르는데 아무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전화가 두렵고 아들의 뻔한 거짓말이 믿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3월 내 결석 안하고 학교 오는 담임반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귀해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아들이 속을 썩여보면 일등하는 아이만 좋아하지 않고 끝에 부터 59명에게 인사를 하고 기뻐하며 모든 아이를 귀하게 여기게 된다고 봅니다.
밤새 오락실 앞에서 기다리며 지친 몸으로 새벽기도에 나가 울며 변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주님 언제 까지 인가요. 좀 되어지는 것이 있어야 안 믿는 시댁에 전도하지요’하며
그럴듯한 표적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속 썩이는 아들 앞에서 믿음대로 되는 것이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보겠습니다.
1.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믿음대로 되는 것이다.
27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 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새 시대의 샘플은 자식 때문에 길이 없고 끝없는 수치 가운데 있는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치유를 받고 혈루여인이 고침 받는 사건을 보면서도 역시 예수님을 따라오며 불쌍히 여겨 달라는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두 소경과 귀신들린 벙어리 였습니다.
이들이 따라오며 소리 지른 말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말은 ‘다윗의 자손’과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병 고쳐 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 첫 사람이 이 두 소경이었다. ‘다윗의 자손이여’는 약속의 메시야를 부르는 독특한 표현이다.
이 메시야를 두 소경이 알아 본 것 입이다.
눈 뜬 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못 알아 보았는데 가장 인생의 비극을 당한 육적 소경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로 알아 보았습니다.
성경의 그 많은 예수님의 조상 중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표현 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수식어를 쓴 것은 다윗의 인생을 공감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 입니다.
다윗이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간음 했어요,살인 했어요, 배반 당했어요 .거짓말 했어요 자식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그 아들이 나라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고난 중에 주님 이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입니까
하지 않고 그 고난 중에 자기 죄를 철저히 보았습니다.
시 51편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내 죄과를 내가 안다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다고 고백 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이 이런 고통의 때마다 자기 죄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자손이 예수님이라는 고백을 소경이 처음 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죄의 고백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슬퍼 하심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행복해야지 왜 슬퍼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내 죄 때문에 슬픈 사람은 얼굴이 슬플 수가 없습니다. 죄 때문에 우는 사람은 회개와 용서함을 받기에 얼굴이 행복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누가 이런 고백을 하는가
바리새인 보다는 회당장이 하고 회당장 보다는 혈루여인이 하고 혈루여인 보다는 두 소경이 했습니다. 못 보는 비극 속에서 기도할 대상을 정확히 보았습니다.
인생은 100% 죄인 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 가운데서 믿음대로 되라는 것은 기도할 대상을 정확히 알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기도할 것인가! 바로 눈물의 인생을 걸어간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정확히 알고 떠나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고 수고 했지만 그 자식 때문에 주님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면 감사할일이지 어떻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자식을 나에게 묶어 준 것은 모성애의 본능으로 가정을 지켜가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도 자식이 훌륭하면 구원 때문에 애통하기 보다 인간적 본능에서 못 떠나 자식을 하나님께로 데려가지 못하고 자식 자식 하다가 본인도 기도할 대상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어떤 드라마에서
아들이 집을 나갔는데 부모가 어떻게 잠을 자고 웃을 수가 있으며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하다가 몇 년 만에 결국 이혼하고 패가 망신을 합니다. 자식이 내 것이라고 우상이 되어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나에게 붙여준 자식이 속을 썩이건 안 썩이건 구해야할 대상이 하나님이고 다윗의 자손에게 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악하고 음란해서 잘되면 교만하고 안 되면 수치스러워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소리 지르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겠습니까?
열왕기하 4장에 보면 대상을 정확히 알고 소리 지른 수넴여인이 나옵니다.
엘리사를 공궤하던 이 가정에 아들을 주셨는데 어느 날 이 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믿음 없는 남편과 종 게하시에게는 ‘평안이니다라’고 대답하고 엘리사에게 가서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 지를 대상을 정확히 알고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해야 합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믿음 없는 사람에게 내 속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남편에게 했다면 엘리사를 당장 죽이라 했을 것이고 그러면 아들이 영원히 죽습니다.
내 소리 들어줄 사람 .믿음의 사람. 하나님께 소리 질러야합니다.
내 감정대로 집에 가서 교회 목사님 욕하면 남편이 언제 예수 믿겠는가
우리는 본다고 하면서 얼마나 소경인가 나는 영적 소경인 것을 깨닫고 있는가.
우리의 소경된 부분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약점인 그 부분에서 장님이 되어 있다. 돈 자녀 시댁 학벌 외모....이야기만 나오면 들으려 않고 눈을 감아버립니다.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불쌍히 여긴다. 그것은 동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동정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 부분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러야 합니다.
바로 백수기 집사님이 내 자식이 이런데 어떻게 교단에 설수 있느냐고(남편이 교회를 나오지만) 예배 때 마다 그리고 목장에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적용>>나는 누구에게 소리 지르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본다고 하면서 얼마나 소경인가.
내가 영적 소경인 것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어느 부분에서 소경인가. 어떤 부분에서 눈을 딱 감고 싶은가
나의 소경된 부분을 이 시간 내어놓고 그 부분을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 합시다.
하나님은 때가 될 때까지 몰고 가십니다.내 죄를 보기 전 까지는 사건을 계속 주십니다.
2.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 믿음대로 되는 것이다.
눈과 귀가 열리기 위해 소경이 한 것이 무엇인가.
28절: 예수께서 집에 들어 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하니
주님이 방문 할 줄을 알고 그 집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혈루여인처럼 겉옷만 만져도 낫겠다는 간절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도영이 엄마가 바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수요예배로 목장예배로 일대일 양육으로 가라고 하면 순종하고 열심히 끈임 없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사건의 때마다 오픈 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니 문제가 해석되기 시작 하고 눈이 밝아 졌습니다.
그리고 29절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처럼
사랑으로 관심으로 눈물로 주님이 만져 주셨습니다. 가장 힘들 때 아들이 안나오는 중고등부를 섬기고 힘든 학생들을 만져 주기 시작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아들도 학교 안가고 집에 있다고 학교 성경 공부 반에서 오픈하니 아이들의 마음이 녹아져서 공사중인 아이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눈이 밝아지면 마음이 밝아지고 얼굴이 밝아 집니다. 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얼굴이 어두우면 아닙니다. 자식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도영이가 달라지지 않아도 해석이 되니 식구들의 얼굴이 밝아지고 온 교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열등감 없이 오픈하며 중계방송을 하며 기도하니까 도영이가 교회에 오면
‘네가 사람이냐’ 하지 않고 모두가 달려가서 보석으로 안아 주었습니다. 이상한 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태도 때문입니다.
만져 주지 않을 수 없도록 열심히 오고 오픈을 하였습니다. 내식구가 사랑 받고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내 책임 내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죽고 싶었던 낮아짐 속에서 옛날엔 부끄러웠던 문제아의 부모가 교단에 서야할 이유를 깨닫고 나니 어떤 아이도 품게 하셨습니다.
큐티 하면서 소경이었던 자기 죄를 보면서 세상과 짝했던 나의 불구 신앙을 보면서
내 자식을 내가 어쩔 수 없다고 내가 0%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일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어제는 일찍 들어 왔으니까 교회 가겠지 하면 안가고 오늘은 새벽에 와서 안되겠구나 하면 교회를 가면서 부모를 훈련시킨 아들입니다.
아들이 잘났으면 이렇게 눈물로 성경을 보겠는가 하면서 기도 할 때
내가 죽은 다음에 아들이 돌아온대도 감사하면서 내 할일을 할 때
내 힘이 완전히 빠져 나갈 때 물위에 띄우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졸 학력 내려 놓겠다고 고백 할 때 조금 학교 가는 반복 반복 속에서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며 하나님의 은혜로 고등학교 졸업의 관문을 통과케 하시고 엘리트 부부가 너무 기뻐 할 때 온 교회가 축제였습니다.
전문대도 하버드 간 것 보다 더 기뻤는데 미달인 4년제 대학까지 갔습니다. 여전히 학점이 안나오고 기숙사 핑계로 교회를 오다 말다 하지만 기뻐 합니다.
울면서 기도할 때 도영이 엄마 얼굴이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속을 썩여도 품고 울고 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만져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지금도 되었다함이 없지만 안보이던 것이 보이는 이런 것이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내 태도에 따라 사랑 받게 하십니다.
적용>> 나는 하나님이 만져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목자가 만져 줄 수 밖에 없는 목원인가.
즉시 즉시 순종을 하면 안 만져 줄 수가 없습니다.
오픈을 안 하고 순종을 안 하니 만져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10년을 와도 남편이 교회 안나오고 자식이 속을 석여도 오픈을 못하니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분이 있었습니다. 오픈을 안 하니 만져 줄 수가 없습니다. 누구 탓을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만져주는 목자인가.
내 자식이 공부 잘한 다고 긍휼의 마음이 없는 것이 나의 소경된 부분입니다.
주님께 인도하는 자식은 다 보석입니다.
눈이 열리게 되면
3. 예수님의 소문이 온 땅에 전파 됩니다.
30.31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온 땅에 전파 하니라.
눈이 밝아 져도 엄히 경계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도영이 엄마가 남편 때문에 조심하였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하다가 때가 되면 이렇게 온 천하에 알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적과 표적의 예수님만 전할까봐 전전긍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무 은혜를 받아도 믿음이 승화 되지 않으면 오픈을 견디지 못합니다.
큐티 모임을 하면서 녹음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어디에 있는지 모를 바리새인 같은) 의식해서 적용이 인위적이 될까봐서입니다.
이모임 까지 수고하여 걸어온 사람을 가장 사랑하고 이곳에서 제자 훈련이 되기를 원해서 입니다.
설교 방송도 조심스럽습니다. 유명해 지는 것보다 양육이 있는 큐티 모임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온 땅에 소문이 퍼져 나가게 하십니다.
천재 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 위대하고 노력 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큐티 모임이 생의 원동력이었고 지금 교회를 해도 언제나 만나면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 목장은 이런 모임 입니까?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은 각자 영혼 구원 때문에 애통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이 삼심 년 걸어오면서 이제는 내 인생을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엄히 경계하셔도 살아난 사람은 예수의 소문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32절: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눈이 열리니까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눈이 밝아지고 보게 되셨습니까? 그러면 입이 열려야 합니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는 바로 영적으로 할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기도 못하는 것도 영적 벙어리 입니다. 입이 열리는 것은 예수의 소문을 내는 것 즉 전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입이 열리는 것입니까?
춘화 자매가 실직하고 집에 있는 여전히 늦잠 자는 남편에게 밥 차려 놓고 ‘맛있게 드세요’ 할 때 주님이 네 마음 안다 하시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커피 드실래요 다녀 올게요 라고 말한 것 때문에 하루 종일 기뻣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벙어리가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벙어리는 누구인가
할말 못하는 사람, 대화가 안 통하는 부부, 세상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벙어리입니다. 기도 못하는 것도 벙어리입니다. 기도는 학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있는 사람의 책에 나오는 용서해 주고 배려해 주는 사랑의 언어는 바로
벙어리가 말하게 되는 나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군대 가기 전 날 도영이가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자기는 아버지처럼 문제 아들을 매일 학교에 데려다 주지 못할 것 같다고 벙어리의 입이 열려 고백했답니다.
34절: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51922;아 낸다 하더라
나에게 임한 구원이 제일 중요합니다. 내 눈과 입이 열렸는데 누구에게 상처를 받겠습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인정하지 않고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뭐가 잘되면 학벌이 좋아서 또는 의사의 치료를 잘 받아서라고 합니다.
부인 자식이 변화 되어도 여자 목사라고 오지 않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매주 또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던 도영이가 군대에서 자대 배치 신체검사에서 팔에 문신한 것이 드러났을 때 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어서 예수님의 형상을 문신 했다고 베드로처럼 돌쇠의 신앙 고백을 해서 훈련소의 분대장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고백을 기쁘게 받으시고 군대에 있는 동안 어려운 친구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도영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속썩이고 사랑받는 도영입니다. 왜 이렇게 도영이가 사랑을 받을까요?
누가 알까 두렵고 알리지마 알리지마 하니까 얼굴이 어둡습니다.
십년을 부인을 힘들게 하시던 남편이 자식이 속을 썩이니까 지난 주 오셨습니다.
부인의 얼굴이 밝아 졌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졌는지를 이제는 알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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