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19-주일
새 부대의 샘플(마9:18-26)
이번에 새가족 모임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이 많이 있었는데 귀부인처럼 보이는 두 분이 오셔서 그 중 한 분이 우리들교회에 대해 열렬히 비판을 하셨습니다. 형식이 없고 찬양은 왜 이렇게 길고 크며 수요예배 때 찬양을 듣고 토하실 뻔 했다고, 이 자리에 왜 앉아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새가족 모임에도 오시고 오늘도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분은 큰 교회의 권세님으로 아들이 아프니까 그 얘기를 다 듣고도 전혀 거부반응이 없으시고 경청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새 부대는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되게 하시는 것인데, 누구를 되게 하시는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보겠습니다.
1. 자식 때문에 길이 없는 사람을 새 부대가 되게 하십니다.
1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니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마가복음은 안 믿는 사람을 위해 썼기 때문에 치유의 목적을 두어서 혈루병과 야이로에 대해 긴 본문을 할애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치유보다는 주님의 말씀의 핵심이 중요하기 때문에 짧게 이 본문을 필요한 부분만 썼습니다.
우리가 지난번부터 쭉 봤을 때 예수님이 중풍병자와 문둥병자를 고쳐주시고 세리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가 낫고 문둥병자가 낫고 세리 마태를 불러주시면 손뼉치고 옆에서 굉장히 기뻐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와 밥을 먹느냐, 왜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계속 따집니다.
왜 힘든 사람이 살아나는데 같이 기뻐하지 못할까요?
교회에서 성경을 그다지도 많이 알고 공부하는데 바리새인들이 하는 일은 비판하고 따지는 일입니다.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따지다가 죽였는데 지금은 훨씬 많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항상 이것은 있는 일이다 생각하며 그 바리새인들이 따지는데,
17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느니라
1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누가 반응을 했는가 하면, 한 직원이 반응을 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회당장이라고 합니다. 회당장은 모든 바리새인들의 우두 머리격이 되니까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에 그들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회당장보다 직원이란 표현을 했는데 마태도 그런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썼습니다. 직원이란 말은 다스리다, 주관하다, head의 뜻이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회당은 신앙생활 뿐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배가 드려지고 그곳에서 율법을 가르쳤고 재판이 행해졌는데 그 일을 행하기 위해서 지방 장로들인 10명의 회당 관리자들이 있고 특별히 3명의 원로 장로들이 있어서 나머지 7명의 회당 관리자들을 감독하고 지도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회당장겸 직원은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이 사람이 엎드려서 절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 회당장이 엎드려서 ‘방장 죽었사오니’ 죽음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에게 형식과 경건과 금식주의에 대해 이렇게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죄를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시지만 죄의 최종 결과인 이 죽음마저도 정복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죽음마저도 정복할 수 있는 믿음을 유대인 회당장인 야이로가 가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보면서 왜 그들하고 먹느냐, 금식하지 않느냐고 따지는데 너희들 중의 최고인 CEO가 내게 와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잘나서 그런 것입니까?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너무 급했기 때문에 자식이 방장 죽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엎드렸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급해야 합니다. 자식의 문제는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내 믿음이 무너지는 것도, 생기는 것도 자식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여기 한 아버지라 하지 않고 한 직원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회당장이라도 자식의 문제는 비켜갈 수가 없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람들은 따지고 있는데 무색하게도 회당장은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인지 모릅니다.
<적용> 신앙생활하면서 구원문제가 아닌 비본질적인 문제로 사람들을 비판하고 잘 따지는지 내속의 바리새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됩니다. 새 부대는 바로 이런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길이 없는 사람, 자식이 무엇인지 자식이 죽게 되니까 새 부대가 저절로 됩니다. 인간은 자존적인 교만이 있어서 특히 남자들은 아무에게도 엎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신흥종교처럼 보이는 나사렛 목수에게 엎드리는 것은 딸이 아프니까 다른 소리는 필요가 없습니다. 딸이 아픈 것은 내가 아픈 것이고 딸이 죽은 것은 내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가장 무서운 원수인데 원수의 목전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비본질적인 문제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해본 사람은 ‘아멘’이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있는데 우리들교회는 뭐가 길고 형식이 없고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여러분들에게 은혜 받게 하기 위해 창조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 받을까, 어떻게 하면 은혜 받지 못하는 시간은 없앨까 하면서 가는데 전통에 젖어있으면 이런 것들이 짜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분도 새가족 모임에 가서 왜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연이 없어서 그 분을 오게 하셨고 저는 계속 그 분을 완전히 표적삼아서 몇 시간을 얘기하다가 다시 그분에게 돌아가고 얘기하다가 다시 그분에게 돌아가며 손을 한참 봐드렸는데 오늘 이 자리에 오셨어도 제가 자유함을 가지기에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누가 이렇게 엎드립니까? 저는 오늘 우리들교회의 류화숙전도사님의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그 분이 왜 평신도 집사에서 전도사를 하게 되었는지, 그것은 딸 때문입니다. 그 딸이 우리들교회에 와서 조금 지난 다음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것이 있습니다. 제가 어제 그 글을 좀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없고 호랑이 시어머니에 별로 먹을 것도 없는데 이런 딸을 보면서 어떻게 엎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새 부대는 자식들 때문에 길이 없는 이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딸의 마음을 도무지 잡을 수가 없습니다. 중학생이 일진회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데 거기서 짱이 되었다고 합니다. 폭력을 하고 금품갈취를 하고 맘대로 학교를 안가는 딸을 데리고 있는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니까 간구를 합니다. ‘주여, 오셔서 몸에 손을 얹어 달라고 그러면 살겠나이다’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회당장의 간구를 예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적용> 자녀문제에 도저히 길이 없어서 주님께 엎드려 내가 새 부대가 되어진 일들을 나누어 봅시다.
19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예수께서 이리 데리고 오너라 하지 않으시고 그냥 이 간구를 듣고 일어나 따라가셨습니다. 태희 엄마의 간구로 예수님은 이미 일어나 따라오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일어나 따라오시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간구를 할 때 우리들교회 식구들도 목자들도 모두가 앉아만 있지 말고 일어나 따라가는 목자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주님의 겸손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들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만나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체력적으로 약해져서 목회는 영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체력으로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제 계속해서 말씀만 전하기를 모든 성도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어떤 사람들은 6개월을 따라다니고 6개월 동안 중국자매도 우리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양육을 시켜보고 10개의 모임을 인도해보고 여러분들도 하면 저처럼 될 거니까 일어나서 따라가시기를 바라고 또 예수님이 일어나 따라오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따라가신 것은 이미 기도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이 따라가시면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겸손한 회당장이었는데 그만 지체해버렸습니다. 열 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다가 지체했습니다. 회당장이 완전히 기분이 나빠서 약간 흔들렸습니다. 자식 때문에 길이 없었지만 아직도 지위와 권세의 길이 있기 때문에 역시 지위와 권세는 대단하기 때문에 흔들린 얘기를 여기는 약화시켰지만 정황으로 다른 복음서를 보면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항상 지위와 권세가 있을 때는 내 가정에 집중을 합니다.
23절: 예수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이 안 오니까 피리를 불고 통곡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24절: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저들이 비웃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니까 피리를 불고 요란을 떱니다. 주님이 혈루여인에게 머물렀다면 뜻이 있는 것이고 가다가 혈루병 여인을 고쳐주면 회당장 야이로가 너무 기뻐해야 하는데 내 사건에 집중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의 간증과 믿음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지체하는 것만 야속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면 이제 내 사건만 집중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 고치느라 나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내 기도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목사님은 왜 나를 안보고 저 사람만 보는가, 목사인 나도 고루 고루 평등케 하려고 그렇게 애쓰는데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내 기도를 잊어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일어나 따라가시는데 어떻게 비웃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훤화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똑같이 큐티하고 우리들교회에 나와도 이제 내 아이는 떨어지고 남의 아이는 붙었습니다. 내 식구만 집중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간절하게 보였어도 떨어지면 예수님을 비웃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이 붙은 것이 전혀 기쁘지가 않고 다른 식구들이 구원받는 것이 전혀 기쁘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회당장의 권력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지체하는 일이 있을 때는 나를 단련하시는구나 생각하면서 잘 기다려야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셨어, 하나님도 내 사건이 해결이 안되는거야, 하나님도 지금 도망가시는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태희 엄마를 보면서 예수님이 지금 따라오시고 계셨습니다. 딸이 얼마나 이랬다저랬다 했는지 모릅니다. 큐티모임을 오면서 딸을 데리고 왔는데 말씀을 잘 듣는가 하면 갑자기 신경질을 내고 엄마를 갈구고 하늘에서 땅 끝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간이 6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늘 형편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어야 했고 버스나 지하철은 타고 다니질 않으려 했고 어렸을 때부터 사치를 좋아하고 돈을 잘 쓰던 터라 규모를 줄이지 못하고 날마다 엄마를 갈구었습니다. 이쯤되면 보통 사람은 아무리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해도 비웃게 됩니다. 데려와도 별 볼일 없고 낫지도 않고 쟤는 왜 저모양인가 라는 생각을 자꾸하게 됩니다.
<적용> 나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기쁨에 관심이 있습니까? 주님이 나의 기도에 대해 지체하심에 얼마나 인내하십니까, 인내가 안되는 이유는 내 속의 무엇때문이라고 생각됩니까?
2. 새 부대의 샘플 두 번째는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같이 수치가운데 끝없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식 때문에 길이 없는 것보다 더 나아가 수치가운데 끝없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20-21절: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새 부대는 모든 것을 갖춘 회당장 보다는 혈루 여인 쪽이 더 새 부대의 모델이 됩니다. 12년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처절하고 수치의 총집결판 이고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마음이 곤고하다는 표현도 사치스러운 고통입니다.
저는 이번 새 가족 모임도 너무 재미있고 새 가족 모임인지 부흥집회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분이 동성애를 오픈해주셨습니다. 동성애야말로 바람피우고 부도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비참한 상황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모든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나가라고 한답니다. 전도를 하려고 해도 너는 성경이 말하는 죄인이데 우리에게 전도를 하려고 하느냐, 동성애자에게도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정죄감으로 몸부림치면서 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숨어있고 숨어있다고 합니다. 이 분의 바램은 우리들교회를 다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들고 힘들다 하니까 여기까지 손을 대시는데 현대에 얼마나 동성애자가 많습니까. 여러분 자녀 가운데도 다 있을텐데 아무도 오픈하지 않으니까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들교회에 포문을 여시는구나, 정말 이것은 땅 끝까지 내려가는 수치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들교회에 와서 들어보고는 부도와 바람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강조했는데 제가 곰곰히 묵상했는데 진짜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이 이렇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진실이라면 오셔서 손을 얹어 달라는 믿음보다 뒤로 와서 겉옷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은 야이로보다 주님이 먼저 보실 수밖에 없습니다. 오셔서 보다 뒤로 가서 옷을 만질 수도 없는 공동체에서 소외당하고 따 당한 사람으로 12년 혈루증을 어떻게 앓았는지 태희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가 백화점에서 옷을 사 줄테니까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날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큐티모임에 데리고 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큐티모임에 왔지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말씀으로 키워야 된다는 말에 반응한 사람은 태희 엄마였습니다. 딸 둘을 중학교 때부터 데려다가 앉혀놓았습니다. 겉옷 가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그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한다며 주일에 데려오고 학교 안가면 어른들의 화요 모임, 월요 모임을 데리고 왔습니다. 뒤에 드러누워서 자는데 자도 데려왔습니다.
중학교부터 큐티모임을 그렇게 데리고 왔는데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이제 고3 때 다시 담배를 피우고 이제 술도 마시게 되었습니다. 한 달이면 2-3일을 빼고 거의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신랑은 몽유병같이 밤중에 쏘다니는 아이였습니다. 집에서 완전히 내놓은 아이였습니다. 공고를 다니면서 수능 400점 만점에 100점이 목표였던 아이였습니다. 이런 아이를 같이 만나고 계속 술을 먹고 일요 큐티모임도 안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이를 가지고 고3 때 아무 대책도 없이 공부도 못하고 몽유병같은 아이, 얘도 병원에 가야하고, 걔도 병원에 가야하는 아이인데 더구나 정신과 약도 먹고 감기약을 먹고 담배피우고 술 마시고 어떻게 아이를 낳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이를 낳기로 결단했습니다. 성령이 잉태하신 사건으로 생각하고 유수한 교회에 다니고 있는 그 신랑 부모님 앞에 가서 아 아이를 계속 교회를 데리고 오고 큐티 모임에도 데려와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결혼을 시키겠다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아이는 낳지만 결혼은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된다고 그 아이가 와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눈물로 가서 호소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결혼을 시켜야지 3월부터 공동체에 속해서 애도 낳고 학교도 다닌다고 그렇지만 모두가 죽이자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낙태시키자고 했습니다. 저와 집사님은 아이를 낳기로 결단하고 그 집 앞에서 계속 빌고 빌어서 내가 그 아이를 낳아도 내가 키운다, 사위도 다 내가 돌보겠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그 믿음의 어머니뒤에서 무사히 결혼을 하고 다시 믿음의 생활을 했습니다.
배불뚝이가 되어서 학교에 부끄러움도 감수하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 아이가 기형아가 나올 것인가 온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고 8월 10일 그 유명한 유하를 낳았던 것입니다. 우리들교회의 가장 귀여운 아이, 그 아들을 볼 때마다 다 죽이라고 했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 벌써 그 아이가 7살입니다. 아주 대장이고 유년 주일학교를 제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하는 딸을 보면서 제가 본 류화숙 전도사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나면서 지금까지 10년 넘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큐티로 인도하고 전도하고 아이들을 중학교 때부터 재수생 모임에 꼭 데리고 오고 딸이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마다 오픈을 했습니다.
제가 밀라노에 코스타에 갔을 때 우리 집사님들 나와서 간증하라고 했는데 간증한 그날 고등학교 때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가나안 여인을 하는데 본문대로 귀신이 들린 것을 오픈을 하는데 모두가 쟤가 시집을 갈 것인가, 저렇게 맨날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었다 귀신이 들렸다 하는 것을 오픈하는데 6년이 지나도록 반복이 되는데 제가 본 류화숙 전도사는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살 길이고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이미 안식을 누리고 쉼을 누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12년 수치가 그대로 다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해도 끝나지 않는 수치, 공동체에도 들어올 수 없는 수치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그 딸은 누구보다도 빨리 결혼을 했고 누구보다도 은혜 넘치는 결혼식을 했고 그 문제아 신랑은 가장 장모님을 존경하는 신랑이 되어 있었고 결혼 이후 7년 동안 너무나 잘 살고 있고 자기 집이 너무나 크고 좋아도 정말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지금 장모랑 사는 단칸방을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고 이런 신랑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지난주에 청년부에 나와서 이것을 나눔을 했습니다. 말씀대로 나와서 얼마나 잘 적용하는지 모릅니다. 수능 100점이 목표인 아이였지만 컴퓨터 전산학과도 졸업했습니다. 지난번에 취직이 되었는데 임시직에 되었지만 이제 잘 하면 정규직에도 이력서를 내어서 되게 해 달라고, 둘이서 여전히 우리들교회에서 제일 멋쟁이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두 딸들이 유치부, 유아부에서 막강 파워 선생님입니다. 태희가 모르는 것이 없고 태희가 한 번 앉아! 하면 다 앉습니다. 유년주일학교, 부활절 연습시킬 때 제압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못합니다. 이쁜 선생님, 태희가 하면 천하통일이 됩니다.
신랑이 너무 정확하게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시댁에서는 고마운 것을 잘모르고 있더라구요. 저한테, 장모한테 고마워해야 하는데 아들도, 손자도 낳아줬는데 신랑은 부모님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본가는 너무 잘 살고 있고 여기는 봉천동 단칸방에 있어도 자기 집에 안갑니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을 살렸습니다. 이분은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찾아가서 계속 빌면서 그 선생님들을 다 데리고 왔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빌면서 선생님들을 계속 데리고 왔는데 서울대학 선생님들도 얼마나 데려왔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에 사람이 왔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그러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안타까워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그 모습 그대로 봐 주면서 간절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적용> 지금 내가 수치가운데 끝없이 있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21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이런 그녀를 예수님이 돌이켜 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22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아무리 숨어있어도 처절하게 하는 기도, 불쌍한 자의 기도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일시적인 병 나음은 다시 병이 나서 죽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구원이어야 하고 믿음이 우리를 구원해야 됩니다. 주님은 혈루여인에게 병이 낫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을 받겠다 하셨습니다. 저는 병이 낫지 않아도 구원이 무엇인가를 태희 엄마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병이 계속 낫지 않고 지금도 온전히 낫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뭔가, 그 상황에서 도망가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미 안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주 수요 모임에 안식이란 무엇인가? 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가? 죄하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다 도망가고 싶기 때문에 안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는 죄목 1호가 안식일을 어기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 때문에 고소를 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을 누리고 못 누리고 가 예수 믿으면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태희 엄마는 한결같이 안식을 누렸는데 딸이 왜 이 모양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살려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도 평신도 모임을 하면서 큐티모임이 무시를 당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언제나 몸으로 말로 앞서서 변호했던 분입니다. 진실로 한결같이 오는 모습에 제가 증인입니다. 선생님들 모시고 오면서 선생님 아이들 밖에서 봐 주고, 유명한 우리 한재덕 선생님의 아이들을 밖에서 계속 봐주고 주일에 선생님을 큐티하게 해주고 밤낮 아이 봐주고 너무 바쁜데 집에서도 호랑이 시부모님들이 갖은 욕을 하는데 그것 다 받아내고 딸 난리치고 거기에다 사위에다 손주까지 키워야 했습니다.
저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샘플이 바로 이 분이 아가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들교회의 전도사를 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그때도 이 여인이 초대교회를 했을텐데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성경책에 올라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생겨진 일이 과연 지금도 있을 수가 있는가, 우리들교회를 보면서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일어나고 치유가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교회에 힘든 사람들이 올 줄 알고 예비하시고 뽑아내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 수치가운데 끝없이 있는 사건 때문에 가족이 구원되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한 일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25절: 야이로 무리들은 비웃었는데 무리를 내어보내신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비웃는 무리는 내어보낸 후에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시는 예수님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언제나 비웃는 사람은 그 때도 지금도 있습니다. 그 때도 류 전도사를 외적으로 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고 실력이 무엇입니까. 서울대 나오면 실력입니까? 사건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가장 큰 실력이 아닙니까. 저는 그분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제가 부목사님 면접을 좀 하면서 전도를 몇 명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렇게 최고의 학벌을 가지신 분이 전도를 한 명도 안 했다는 묵사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상담하고 양육을 하는데 여러분들이 무슨 자격으로 무시합니까.
이렇게 비웃는 무리는 내어보낸 후에야 기적을 베푸십니다. 내 속에도 예수님을 비웃는 마음이 있다면 내어보내지 않으면 주님이 기적을 베푸실 수 없습니다. 구원이 임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분이 어떻게 승리하고 그렇게 기쁘게 살면서 모든 사람 앞에 자기 약재료를 다 내어놓고 하고 있는데 그분을 무시하면 제가 용서가 안 되는데 하나님이 용서하시겠습니까.
<적용> 내게 비웃는 마음은 어떨 때 생깁니까? 각자의 삶에서 예수님을 무시하고 비웃었던 사건이 있었다면 나누어봅시다.
혈루여인은 구원 받으니라 했는데 소녀는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26절: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병 고침의 소문은 온 땅에 퍼졌는데 죽으니까 비웃고 살아나니까 온 동네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예수 믿어서 번영의 소문보다는 십자가의 소문이 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따라가다가도 뭐가 안 되었다면 비웃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해도 다 비웃고 지금 당하는 고난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주님이 먼저 고쳐주신 이는 회당장보다 혈루여인입니다. 어떻게 힘든 사람이 모이게 하실까 생각하고 치유하시는 이 중심에 태희 엄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좋은 교회를 만나면 방황이 끝난다고 합니다. 저야말로 일류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설교하면서, 상담하면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예수 믿고 만난 친구들과 한 교제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학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교회가 중요하고 정말 친구가 중요합니다. 말씀 안에서 만난 친구는 금보다도 귀합니다.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커 나가고 말씀으로 만난 공동체의 친구는 말할 수 없는 재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교회에 하면서 더 더욱 듭니다. 그런데 태희 엄마를 보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애들 말씀만 들으면 된다며 공부를 하나도 안 시켜도 딸들이 유치부, 유아부를 꽉 잡고 있습니다. 태희는 유아교육과를 졸업했고 태미는 총신대 신학과를 다니고 있는데 태미에게 일대일을 받았던 아이가 너무 잘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과외공부를 하나도 안 시켰는데 결국 말씀으로 모든 사건을 해석하는 너무 지혜로운 두 딸이 되어있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사람이 무시했는데 결론적으로 모든 것을 성공한 분이라 믿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를 하면서 내 인생에 태희 엄마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립니다. 태희 엄마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한결같이 그렇게 힘든 가운데 한 번도 불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