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선 그래프를 처음으로 그려 보았다.
어린시절 늦둥이로 귀함을 받고 자라다가 대학을 진학하며 집을 떠나 결혼 전 까지 홀로 있던 시절은 +20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며 지냈던 20대 초반의 극 우울을 -20
결혼 후 평탄한 일상을 +30
아이가 태어나 이런 저런 기쁨을 느끼는 육아의 시기가 +40
남편의 창업 후 경제적 어려움은 견딜 수 있는 일상이었고,
가장 극 우울은 -100으로 2006년 내가 마흔 넷 되던 해에 일어났다.
그해 1월 둘째의 교통사고 4월 재골절, 5월 친정 엄마의 소천, 7월 재재골절, 9월 큰딸의 난소종양으로 난소하나제거, 그날 동시에 둘째의 재재재골절이 있었다.
최악이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 10월에 둘째의 고관절 사건이 왔다. 지금은 문제 되지 않으나 3,40대에 앉은뱅이가 될 수도 있다. 그 말에 한국의사가 성장호르몬을 맞추지 말라고 했음에도 중국의 대학병원에 가서 다양한 검사를 하고 무리하게 성장호르몬을 맞추었던 것과 아이를 잘 케어하지 못하여 다리가 완치되기 전에성한 다리에 무리한 힘을 가하게 한것들이 생각 났고, 그 모든 것에 내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내 죄악이 있었고, 비로서 내가 죄 덩어리 자체임과 절대 선이신 하나님에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피의 의미를 알았고 그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어서 내가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100에서 +100으로 극과 극을 그 순간 느꼈다.
그 이후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하나님이 끝내셔야 한다는 말과 내 고난이 내 죄 보다 가볍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둘째의 동성애 사건은 또 한번 바닥을 치는 사건이었으나, 마이너스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주께서 함께하시고 마음을 나눌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믿음은 오르락 내리락을 하겠지만, 내 평생 따를 교회와 공동체가 있으니 평강함을 누리며 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