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애착 간증] 장선 집사(5기 부모학교 수강)

저는 사랑 많으신 부모님 밑에서 평탄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출판사에 근무하였는데 직장에서도 성실함으로 능력을 인정받으며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결혼 전 남편은 저를 7년 간 집착적으로 쫓아다녔는데,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도 찾아올 것 같은 불안감에 떨며, 남편을 피해 다니는 지긋지긋한 관계를 청산하고자 2개월간 만나 줄 테니 제발 나를 놓아 달라는 어리석은 조건 만남을 제가 먼저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혼전임신을 하게 되었고, 임신 사실이 발각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서둘러 결혼식을 진행했는데, 결혼식을 올리기 직전에 아이는 계류유산이 되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 없이 엇나간 결혼을 하였지만 방송국에 다녔던 남편의 든든한 직업으로 인해 안락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남편의 실직으로 첫 아들이 생후 6개월 때부터 학습물 교정․편집 일을 재택근무로 하며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실직 사실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숨기며 그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모든 경제적인 문제와 두 아이에 대한 양육을 홀로 책임지면서 짜증과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남편은 청소와 물건 강박증으로 얼토당토않은 잔소리를 하고 성질을 부리며 저와 아이들을 힘들게 하였는데, 저는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도 않고 그럴 능력조차 없는, 성인 아이의 모습을 보이는 남편이 점점 무시가 되었습니다.
아내만을 의지한 채 10여 년 간을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안 청소와 정리, 화초 가꾸기와 물고기 기르기에만 몰두했던 무능력한 남편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던 저는 총명했던 아들만은 내 뜻대로 잘 키워 세상적으로 성공시키고 싶은 욕심으로 많은 전집을 사들여 다양한 독후활동을 해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아들에게 온갖 조롱의 말을 들으면서도 체험 학습을 하러 다녔고, 아들이 초3 때는 방학 기간 동안 23가지의 체험 보고서를 제출하는 열심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지식을 우상으로 삼아 맡은 일은 완벽하고 성실하게 완수했던 저는 아들이 학생으로서 공부나 숙제를 하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윽박지르며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 제가 아들에게 들었던 ㅈ 같은 년, 씨*년, 미*년, 장애자, 무뇌충 등 수많은 욕설 중 가장 기분 나빴던 욕은 무뇌충이었습니다.
아들이 불손한 행동이나 욕을 하면 저 또한 혈기를 부리며 체벌을 많이 하였습니다. 출판 마감에 쫓겨 늘 새벽까지 일하며 피폐해진 저는 제 기분에 따라 일관성 없이 아들을 대했고, 윤리적ampbull도덕적 기준이 높은 제가 유일하게 민감했던 때는 아들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질 때뿐이었습니다. 올바른 생활 태도를 설명해 주지도 못했으면서 아들이 조금이라도 제 기준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불같이 화를 냈고,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비난했습니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이 보기 싫어 4~5살 때는 현관문 밖으로 내쫓기 일쑤였고, 초등 때는 아들의 따귀를 때리기도 머리털을 쥐어 뽑기도 하였으며, 계속되는 쌍욕이 너무 듣기 싫어 아들의 입술을 비틀어 피가 난 적도 있습니다. 저의 손찌검을 막으며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아들에게 맞아 저의 온 팔이 시퍼렇게 멍든 때에는 '너는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갈 것이다.', '부모 말을 안 들으려면 고아원에나 가서 살아라.'며 독을 머금은 악인의 입으로 아들에게 온갖 악담을 퍼부으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런 저의 양육방식으로 인해 아들은 초등 3학년 때 유사 ADHD, 우울과 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았고, 산만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친구들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며 분노 조절을 못하여 커터 칼을 들고 친구를 해하겠다고 씩씩거리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등교 거부와 자살 위협, 억지 행동과 괴성, 부모에게 욕하고 대들기 등의 일탈행동으로 책임과 성실을 강조하며 도덕주의자였던 저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육탄전이 벌어졌습니다.
6학년 초에 아들은 잘못된 영웅 심리로 인터넷 야동 사이트를 떠벌리며 친구들에게 알려주다 그 말을 들은, 같은 반 여자 친구의 엄마로부터 언어성추행으로 고발당할 뻔한 사건을 통해 저는 2014년 우리들교회 목장에 인도되었고 그해 세례도 받았습니다.
첫날 목장에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말씀에 그동안 무능력한 남편을 짐으로 여겨 마음으로 살인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들이 내 눈 앞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했던 나의 죄가 깨달아져 처음 뵙는 목자님께 영접기도를 받았습니다. 나의 숨통을 옥죄는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아들까지 포기하고 싶어 수없이 이혼을 생각했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놀림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울먹거림에, 남편은 호적상 아이들의 아버지 존재 그 이상을 바라지 말자는 심정으로 참고 또 참으며 가정을 지켜온 내 형편과 수고를 다 안다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착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내 인생이 비참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내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해 주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다'에 말씀에 나의 악한 행실이 깨달아졌고, 남편과 아들의 남은 부분을 보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에 온 지 딱 1년 후 아들은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 남성의 주요 부위 음란 사진을 올려 학폭위에 넘겨질 뻔한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부정적인 행동으로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고,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라는 것을 선생님께 담대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특정인에게 올린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들이 친구들에게 사과하는 선에서 그 사건은 마무리됐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위기의 사건을 겪으며 말씀에 비추어 나의 죄를 봤지만 사춘기를 겪지 않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자랐던 저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들이라는 생각이 뿌리깊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의 권면으로 부모학교를 들으면서 모든 것이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동안 아들에게 칭찬이나 지지의 말 한번 해주지 않고, 제 감정에 따라 일관성 없이 양육했기에 불안정-저항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아들이 부정적․공격적 행동을 보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여린 아들의 불안감을 상승시키며 상처를 준 것이 바로 저였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연민으로 내 사연에 묶여 제대로 된 훈육을 하지 못하고 심하게 체벌하여 아들과의 갈등을 증폭시킨 자격이 없는 엄마라는 것을, 인지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아들을 망치고 정서적인 문제를 유발한 것이 바로 저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2년 전, 5기 부모학교 애착 강의를 듣고 온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를 하는 문제로 잠가놓은 방문을 아들이 수없이 발로 차서 열쇠로도 열리지 않게 되자, 열쇠수리업자까지 불러 방문을 열었는데, 저에게 온갖 탓을 하며 욕하고 조롱하는 아들의 모습에 또다시 지옥 같은 고통이 밀려오며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아들에게 '컴퓨터 방문 잠가놓아서 화났지? 성경 말씀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하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는데 엄마가 너를 노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하였고, 그동안 체벌하고 상처 주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늘 스스로를 옳다 여겼던 제가 우리들교회 말씀과 부모교육이 없었다면 결코 아들에게 사과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늘 잘못했고, 말로 해서 안 되니 체벌할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한 저였으니까요. 그렇게 제가 아들에게 가했던 악행들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며 점점 화평케 되어 가니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늘 부정적인 말만 들었던 아들은 항상 자기는 망할 인생이고 왜 자기를 이렇게 낳았냐고 엄마 탓을 했으며, 카카오스토리에 공개적으로 부모 욕을 써 놓았었는데, 작년 아들의 생일날에 자기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하였고, 교회 수련회를 갔다 와서는 우리 집이 정상적인 가정인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본을 보이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자신은 무직으로 편히 놀고 엄마처럼 돈 버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여 저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었는데, 공동체에서 말씀을 들어 왔기에 이 가계의 저주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자기 대에서 끊어야 한다면서 직업을 갖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초등 때는 공부를 곧잘 했던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와서 밤새도록 컴퓨터만 하고 학교에서는 잠만 자니 2학년 때는 반에서 꼴찌를 하게 되고 수학과 영어 학원도 모두 끊어버렸는데, 올해 3학년이 되어서 아들은 자신의 꿈인 기관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겠다며 학원에 등록했고 학교 방과후도 세 과목이나 듣고 있습니다. 그 후 국어 점수는 9점에서 85점으로, 수학은 12점에서 62점으로, 사회는 22점에서 92점으로 상상할 수 없는 점수가 나왔고, 전체 등수도 많이 올랐습니다. 2학년 때는 체육 시간에도 잠만 자니 교감 선생님께서 학과 선생님들에게 아들을 잠자지 못하게 하라는 특명을 내렸고, 시험 기간 중에도 지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랬던 아들이 학교 가서 공부한다고 일찍 깨워 달라고 하고, 16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가방에 책과 자습서를 챙기고 노트필기한 것을 자랑 삼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생님들과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냐고 모두 놀라며 개과천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이 자신을이렇게변화시켜 주셨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야 한다면서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회개, 기도, 노력이라고 해 놓기도 하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라는 성경 구절을 적어 놓으며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 중등부 장기 결석자였던 아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하여 지켜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남편과 아들의 감옥에서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힘들고 죽을 것 같았던 저를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품으로 안아 건져 주시고, 주님이 쏟아주시는 생수로 살아나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나의 사연과 연민에서 벗어나 사춘기 아들과 건강하게 소통하기를 원합니다. 낙심되는 사건이 올 때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가정에서 중심 잡는 그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