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 수료식 대표 간증 - 이금옥 집사님

웃픈 이야기 하나 할게요, 실화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초등학교 3학년과 수업을 하는데, 주장 글을 써 보는 시간이라, 학생에게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학생은 엄마한테 친구와 놀게 해달라고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왜? 엄마가 못 놀게 하니?' 했더니, '친구와 놀면 숙제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못 놀게 해요.' 그러면서 '그런데 친구가요, 저보고 이런 말을 했어요,
있잖아 우리 사춘기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춘기 때에 우리 마음대로 하자, 그때는 우리 마음대로 해도 엄마들이 꼼짝 못한대.' 하더라는 겁니다. 웃기는데 슬픈 이야기입니다.
----------------------------------------------------------------------------------------------------------------------------------------------------------
저는 오늘 저의 부모님께 받은 양육과 제가 자녀들에게 한 양육을 살펴보며 부모의 양육태도가 어떻게 대물림되어 자녀 대까지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저는 아들을 낳아서 공인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인정받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들 말입니다. 제가 아들을 낳을 때는 정트리오를 키운 이원숙씨나 가수 이적 씨의 엄마인 여성학자 박혜란씨의 책이 잘 나갈 때였는데요, 그분들이 쓴 책을 열심히 읽으며 우리 아들도 저렇게 잘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5살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가르치고 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한 번은 대학로를, 한 번은 예술의 전당에서, 연극이며 음악회를 보았습니다. 허세가 만발했던 시대라고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제가 어릴 적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 그 때에 내 눈에 넘나 좋아보였던 것을 마구마구 시켰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아이가 이루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장이 서는 날마다 술을 드시고 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엄마를 때렸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너무 싫고 창피했습니다. 아버지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내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 날 충격으로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 나 같으면 좋기만 하겠구만 쟤는 뭐가 서러워서 저럴까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에 아버지로 인해 언제나 팔자타령 신세타령을 하며 우울했던 엄마는 아들 딸을 심하게 차별했습니다. 여름에 가끔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서 푹 끓이곤 했는데 엄마가 끓이는 것을 봤는데도 닭고기는 구경도 못한 채 저녁에 빈 솥을 닦곤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것이 많고 신기한 것도 많아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엄마는 여자가 이야기를 좋아하면 빌어쳐먹는다고 하면서 주둥아리 닥치고 일하라고 욕을 했습니다. (나중에 왜 많고 많은 욕 중에 빌어먹을 년, 이라고 했을까 생각해 봤는데 옛날 사람들은 빌어먹는 것이 가장 두려웠나봅니다.)뿐만 아니라 밥도 언제나 제 손으로 차려먹게 했습니다. 저는 방치된 아이였습니다. 완득이가 따로 없습니다. 제가 바로 완득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아무튼 그런 현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힘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지요. 내 감정을 표현해봤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데다가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점점 입을 닫게 되었고 시키는 것만 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의 애정결핍과 불안과 우울은 자라면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대인관계도 잘하니 깊숙이 감춰졌습니다. 저의 그림자는 아주 맥을 못 추는 듯 보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내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습니다. 남편에게 실망하는 일이 잦아지자 저는 결혼생활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실망을 시키는 남편에게 급히 마음의 문을 닫고 알아서 잘 살아야겠다 했습니다.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알아서 사는 것은 제겐 아주 익숙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들을 낳았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아들에게 다 주고 싶었습니다. 너무 잘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뭐든지 아들이 원하기 전에 미리미리 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힘든 일을 겪는 것이 차마 볼 수 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들이 어렸을 때에 누려야 할 권리들, 정탐하고 탐색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도전하고 좌절하고 덤벼보고 성취하는 것, 이런 권리를 온통 빼앗았습니다. 힘든 것은 다 나에게 맡기고 너는 공부만 하면 된단다. 가 저의 주제가였습니다.
그럴수록 아들은 소극적인 아이, 말없는 아이, 숙제 안 하는 아이, 무기력한 아이 가 되어갔습니다. 저는 아들의 이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고 아들의 부족하고 덜 떨어지고 지질한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지만 아직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남편이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며 외도를 하여 집안을 내팽개치고 가출을 해서 남의 이야기로만 듣던 흉년이 제대로 왔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하나님을 부르고 말씀을 깨달아 갈 때 저는 비로소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의식 깊숙이 감춰져 있던 그림자에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겉으로는 공부도 잘하고 회사도 잘 가고 결혼도 해서 잘 사는 듯 보였지만 언제나 그림자에 시달렸던 제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저의 애정결핍과 불안과 우울은 제게 심한 열등감이 되었고 낮은 자존감을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부족한 모습이 숨겨진 내 모습 같아서 참을 수 없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깊숙이 꾹꾹 눌러 두었던 나는 불행하다가 올라올 때마다 그래 내 아이는 나같이 살면 절대로 안 된다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인해 어그러진 양육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어린 시절에 거절에 대한 상처로 멈춰버린 저의 둔감한 감정은 아들의 성향과 기질과 감정을 헤아릴 줄 모르는 둔감형 엄마가 되게 했습니다. 많이 수고했지만 말씀이 없어 온통 치우쳐 있으니 그렇게 무시했던 울 엄마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엄마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편이 집을 나가고 해달별이 떨어지는 흉년 앞에서 말씀이 뚫고 들어왔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이루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셨는데 돌이켜 보면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진 축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붙어만 있었더니 하나님은 제가 누구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의 열등감과 수치와 부족을 보게 하시고 그럼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딸이다 하시고 나아가 사람 살리는 이타적인 사명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나는 구원받았으니 이대로 충분하다. 내 아이도 나처럼 살아도 되겠다. 구원받으면 충분하다 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소년부 교사입니다. 고등부 친구 중에 팔을 긋고 자해를 하는 친구가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공부도 최상위권이고 모범생인데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이 너무 싫어서 자해를 하고, 한 학생은 자기 맘대로 살면서도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팔목을 긋곤 합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팔을 긋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 친구들의 속마음은 동일합니다. 내게 사랑과 관심 좀 가져달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지요.
부모교육을 통해서 제가 그토록 원했던 것도 사랑과 관심이었고 우리 자녀들이 원했던 것도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부모교육을 통해서 좋은 엄마가 되는 것에 한걸음 내딛은 우리는 행운아입니다. 예배와 말씀과 공동체를 통해서 좋은 엄마 되기가 이어지고 내 아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이도 똑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살려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