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부모학교 조장 세미나 스케치
◎일시: 2017년 3월 29일 수요일
◎장소: 판교채플 비전홀
◎시작 기도/ 이정숙 조장님

◎인사 말씀/박성근 목사님

결혼 8년만에 이번 주 월요일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내는 어머니가 기생 라합 이었던 수치를 솔직히 오픈하며 인내 했지만 결혼도 못하고 있던 보아스가 룻을 만나결혼을 하고 하나님께서 잉태 하게 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가게 하신 것처럼, 저도 잠병에 걸려 대학도 재수하고 직장도 잘 안 되고 결혼도 늦었고 심지어 자녀까지 늦게 주셨지만 모든 것을 약재료로 내어 놓고 기다렸더니, 보아스처럼 영적 후사를 허락해 주신 것 같다며 기뻐했습니다.
오벳은 보아스와 룻의 자녀일 뿐 아니라 나오미의 자녀라고 하셨는데, 내 자녀라는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자녀라는 말씀을 저에게 주 신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공동체의 기도가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루어 가는 역사적인 순간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하는 큐티 본문으로 결혼 하고,룻기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어가는 영광스러운 본문 말씀일 때 생명을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립니다. 정말 아버지의 마음으로 부모학교에 임할 것 같습니다. 조장님들께도많은 성령의 열매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변화된 삶/7기 이지혜조장님

◎섬기는 사람들 소개및 조장 역할 안내/장해연 총무님
<조장의 역할>
1. 조원들을 배려하고 품고 기도해 주세요.
2. 나눔은 경청해 주시고 답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있는 조원들은 강사님께 연결해 주세요.
3. 조원들에게 일주일에 1~2번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부모학교 잘 참석할 수 있도록 권면해 주세요.
4. 조장 역할을 위해 지각하지 않습니다.
5. 부모학교 필독서 <당신도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있다>를 꼭 읽어 오세요.조장님들이 먼저 읽고조원들에게 권면해 주세요..
6. 지역주민을 세심히 배려해 주세요.
7. 매 주 출석부를 체크 해 주시고 적용 과제는솔선 수범하여 홈페이지에 올려 주세요.
8. 부조장을 뽑아 조별 나눔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올려 주세요.
9. 조장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주세요.
◎삶곡선을 통한 나의삶 소개/김신재 평원님

“8기여러분들은 복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오늘 본문에 모세의 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하였다고 하셨는데, 담임 목사님의 항암치료도 끝났고 담당 목사님은 영적 후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7기에 섬겨 주셨던 조장님은 중독이 끊어졌습니다. 말씀으로 해석하시고 많은 부분 승리 하셨지만, 알아도 실제적으로 적용 못 하셨거나 방법을 모르셨던 부분을 부모학교를 통해 구체적인 도움을 받고 회복
하시니 기쁨이 넘칩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일류로 키우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인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자녀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부모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모 교육할 때 조장 한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살아나면 그룹 사람들 모두가 살아 납니다. 조장이란 책임이여러분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할때 우리 자녀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강의 시작 전에 말씀과 기도로준비하는 시간이 있는데요, 기도하고 시작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날 강의와 조원들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평강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조장으로 불러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타적으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환경이 된 것에 감사하면서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조장님들의 팀웍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가 조장님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감정 정리를 건강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엄마를 돌봐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늘 갇혀 지냈습니다. 30살 때 남편을 만나 기뻤는데 결혼 준비 과정 중에 남편 가정이 이혼 가정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한갈등을 겪으며 우리들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산후 우울증이 심하게와서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억눌렸던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공동체와 말씀의 위력으로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는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며 이제 별 문제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잘 섬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모학교를강의를 들으면서 얌전한 저의 아이가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가 힘든 일이 있어도괜찮다며 숨어서 울어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아이의 공격성이 드러나 힘들어 하고 있는데, 다시 부모학교를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양육에 대한 프라이드가완전히 무너져 아프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라며 왔습니다.
나 조장님
임신했을 때 아이가 장애가 있을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낳아 보니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00일쯤 장애 판정을 받고 많이슬펐습니다. 성격이 워낙 긍정적이고 저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 물고 버텼습니다. 아이가 7살 때 한 쪽 눈이 실명 되어 많이 무너졌고요. 13살 때 청력까지 안좋아 지면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그 동안 슬픔을 표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고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내 보이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밖에서는 상량했지만 약한 아들에게다 풀고 모진 말을 많이 했습니다. 아들은 교회에 오면서 엄마가 많이 변했다고했습니다. 5기 부모학교를 수료했는데, 왜 다시 조장으로부르실 까? 하고 아들에게 물어 보니, 맛있는 것을 더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살림하고 음식 하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그래서아멘으로 순종했습니다.
다 조장님
저는 유머러스하고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빠와 평범한 엄마 밑에서자랐습니다. 11살 때 아빠가위암으로 천국에 가셔서 슬펐습니다. 5~6학년때는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중 2때는 가정 형편 때문에 진로를 포기해야 해서 그 때부터 방황을 많이 했지만 20세때는 미스코리아가 되어 기뻤습니다. 돈 많고 아들이 하나 있는 이혼남을 만나 결혼했을 때는 너무 기뻤는데결혼 하자 마자 외도와 폭력, 부도까지 내면서 사랑 받지 못하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전처의 아들은 애정 결핍으로, 제가 낳은 딸은 애정 과잉으로 전형적으로편애가 심한 엄마입니다. 남편이 부도를 내고 도망 간 뒤 시누이의 전도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찍 과부가 되신 엄마에게 약점을 보이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 삶이 곤고 해도 백조처럼 웃는 삶을 살다가, 있는 모습 그대로 나누는 우리들 교회를 만난 것은 저에게 새로운 출생과도 같이 기뻤습니다. 저의 편애로 아들은 방황했고 딸은 은둔 형으로 힘들어 했는데, 제소견에 옳은 대로 하지 않고 아들은 채워주며 딸은 비워내며 가는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라 조장님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고 어머니와 늘 싸우셨습니다. 그 사이에서 돌봄을 받지못해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애정 결핍은 있었지만 감정이 얼어 붙어 있었는지 힘들다는 생각을못했습니다.
공부를 매우 잘했는데, 고3때 교통사고가 나면서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학교 신문사에 있으면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술을많이 마시며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습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 했고 저를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는 남편을분별하지 못하고 엄청 사랑하는 줄로 알고 결혼 했습니다. 남편이 이상해서 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것을 알고 아이들에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육아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10살, 딸이7살 때 남편이 외도로 가출을 하면서 해 달 별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 망해서 43살 때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고 그때 터닝 포인트가되었습니다. 남편 고난과 물질고난으로 원망만 했는데, 말씀을 보며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분노 애정 결핍으로 인한 쓴 뿌리 등 제 안에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부부 목장에서 남편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도몰랐고 제 안에 선한 것이 없다며 남편도 피해자라고 고백하니 그때부터 남편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감정이 키덜트처럼 멈춰 있고 일 중심적이며 성취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부모 교육을 통해 치우쳐 있는 부분이 균형을 잡아 사람 중심으로 좀 바뀌고 싶고요, 고등부를 10년째 섬기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회복하여 사명 감당잘 하고 싶습니다.
마 조장님
저는 6남매의 막내인데, 위에 오빠가정신 질환이 있어 11살부터 집안일을 하며 자랐습니다.언니 오빠들은 나가 살았고, 저는 집안의 모든 일을 책임지며 엄마 역할까지 해야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힘이 생기니, 지나가던 할머니가 자기 딸 공장에 사람을구한다는 말만 듣고는 엄마에게 삼천원을 달라고 해서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쓰며 잘 살아보려고 해도 잘 안되었습니다. 인생의 나락을 칠 때, 인격적으로주님을 만나 기쁘게 살았습니다.30살쯤 믿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은 해결되었지만 개인주의적인 남편과자녀 양육 문제에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신앙적으로도 무기력해지고 우울해 질 무렵 우리들 교회로 오게되었습니다. 지금은 고2, 중3, 초6, 세 아이의 엄마인데요. 제가책임감이 강하고 일 중심적이다 보니 자녀들에게 대화보다 책임을 강요하게 됩니다. 그 부분이 늘 부딪쳐서부모학교에 도움을 받고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바 조장님
저는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무섭고 억압적이긴 하셨지만 초등학교 때까지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결혼 전 27세까지 가장 역할 하는 것이 힘들어 도피하다시피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둘 다 불신이었지만 남편과 나름 잘 살았는데 34살 때쯤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하고 우울증이 와서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자녀는 남매를 두었는데, 제가어린 시절 억압 받았 듯 딸을 많이 억압했습니다. 딸은 제 잔소리와 혈기로 인해 10년 동안 술 마시며 방황을 했습니다. 지인을 통해 우리들 교회를소개 받고 딸만 회복되면 살겠다 싶어 먼저 등록 시켰는데, 와서 보니 제가 문제였습니다. 딸은 모태 신앙인 사위와 결혼 했고 부부 목장도 잘 나갔는데 딸이 잔소리와 혈기가 심해 사위가 이혼을 요구하며집을 나갔습니다. 사위가 몇 개월 만에 다시 들어 와 회복해 가고 있지만 아직 아기는 없습니다. 제가 자식 우상이 있어 자녀들에게 사건이 올 때마다 사돈을 원망했는데요, 수요예배말씀을 듣고 비방하지 않겠다고 적용했습니다.
사 조장님
저는 아버지는 3번째 결혼, 어머니는2번째 결혼에서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엄마와 친밀하게 지낼때는 행복했는데 엄마가 저를 외면하고 종처럼 부릴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장사를 나가시고 저는동생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학교가 피난처가 되어, 학교다니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서울로 이사 오면서 고등학교 중퇴를 시켜서 또 암울해졌습니다.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살다가 23살에 교회에 나가면서 재미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하나님이 사랑한다는그 말씀이 엄마의 핍박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다 성공하고 잘산다는 간증만 있어서 믿는 남편과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고 선을 보고 신 결혼을 했습니다.그러나 365일 중 366일을 싸웠다고할 정도로 전쟁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이혼을 꿈꾸고 저는 별 남자 없을 것이라고 회의적으로살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많이 떠 돌며 하나님께 기도 하던 중 우리들 교회로 인도함 받았습니다. 우리들교회 다니면서는 예전처럼 많이 힘들지 않습니다.
민수기 묵상을 하며 제가 무엇을 계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50년 된상처, 10년된 상처, 20년된 상처등… 상처를 계수하고 있더라고요. 구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그런 제 모습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에서 떠나기 위해 조장으로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아 조장님
저는 7기 부모학교를 통해 자녀와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자녀의 불안이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말씀으로 묻고 가고 있었는데 조장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가위로 잘라 버리고 싶을 만큼 불행해서 생각하기 싫습니다. 엄마아빠가 서로를 죽이려고 하신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10대에는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어서 나약하고주눅 들어 생활했고 왕따도 당했습니다. 그래서 무시의 감정을 너무 힘들어 합니다. 지금은 말씀을 듣고 찌질한 어린 시절을 소중히 껴안고 가고 있습니다. 무시받고 왕따 당하던 제가 20대에 인기를 얻으면서 조절이 안 되어 많이 놀았습니다. 우리들 교회를 다니는 부모님을 둔 남편을 만나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혼전 임신으로 결혼했지만 남편은 저에게 잘 해주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연년생 자녀가 태어나고경제적으로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러 던 중 부모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죄 고백을 하게 되었고 자유함을 누리게되었습니다. 지금 자녀 양육도 힘들고 돈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다는 것을 경험하며 이루 말할수 없는 감사를 하게 됩니다. 오늘 수요 예배를 통해, 중보해 주시는 지도자와 기다려주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왕따 당한 상처로 무시한다고 나쁘게 본다고 생각하며 지옥을 살았던 제 모습을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자 조장님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동생이3명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동생들 학교를 보내야 하니저의 학업을 포기 하라는 말씀에, 내성적인 성격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오는 친구들을 보면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 뒤 사람들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다 천사 같은 줄 알고 믿는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시누이 5명에 시부모님과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우울증도 왔고 자녀들도사랑하지 못했습니다.큰 아들이 공고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제 뜻대로 인문계에 보낸 뒤 아들은 마음의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저에게울음 섞인 볼멘소리를 할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시어머니가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시어머니의 하나님이저의 하나님이 되지 못해서 CTS를 통해 목사님 설교를 듣고 저만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든 것은 시댁 식구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또 부모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로 자녀를 키우다 보니 몰라서상처를 주었던 것이 힘듭니다. 부모학교를 통해 저의 성장기도 알고 싶고, 큰 아들과도 회복하고 싶습니다. 또 제가 섬기는 유년부에 힘든 아이들이 많이 오는데, 그런 아이들을 돕고 싶어 오게 되었습니다.
차 조장님
저는 초등학교때까지는 무난하게 지냈는데, 10대 후반에 아빠가 바람을 피우면서 엄마에게 이혼을 해 달라며 밤마다 벽에 술병을 던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빠에게 “개새끼”라고했다가 아빠에게 쇠파이프로 맞을 뻔 했는데 저는 안 맞고 엄마만 맞으셨어요. 그 때 큰 충격이었습니다.제가 23살 때 아빠는건너 옆집 아줌마와 바람이 나셨는데, 어느 날 두 분이 사고로 동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빠가 너무 힘들게 하셨기 때문에 슬픈지도 몰랐습니다. 그 후로엄마와 저는 유원지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20대에는 장사 하느라 한 번도 놀러 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일찍부터 다니면서 바리새인이 되어 재미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직장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하루 아침에 실직을 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어찌나 힘들게했는지.. 임신했을 때도 쌀 포대를 저에게 던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은알고 보니 저보다 한이 많은 남자였습니다. 그렇게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와서 막내를 낳았는데, 아토피가 심했습니다. 저는 잠이 많은데 새벽마다 가렵다고 깨우고, 첫째는 얼마 전 가습기사고로 폐질환 2등급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남편과 싸우는저에게 딸이 “쳐 맞기 싫으면 입 다물라”고 해서 부모학교에오게 되었습니다.

카 조장님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선생님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자상하셨고 어머니는 하나님의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청소하고 밥 잘하며 착한 딸로 인정 받으며 자랐습니다. 사춘기 때 엄마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표현하지는 못했습니다. 신학교를졸업하고 교회 직원으로 있다가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하며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너무 억울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 하기도 했습니다. 회식 때도 노래 시키면 애국가나 찬송가, 동요를 부르고 주님만 사모한다며 술 안 먹고 화장실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그러니 직원들이 술 취한 과장님과 저를 택시에 태워 보낸 것 같아요. 그 때 술 취한 과장님이성추행을 하셨는데 주님께 도와 달라며 기도 했어요. 그러니 과장님이 노상 방료하겠다고 잠시 택시를 세웠고그 때 문을 잠그고 집에 와 버렸습니다. 29살에 결혼해서 연년생으로 아이들을 낳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아이들이 5~6살 때쯤 우리들 교회에 왔습니다. 딸이 10대쯤 되었을 때 저도 뒤늦게 사춘기 감정을 겪으며 너무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은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고, 딸은 척추 측만증으로 아파 있었고 저는 속으로 삭이던 것이 표출되니 너무힘들었습니다. 딸이 힘들다고 할 때는 제가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런 것도 못 견디니.. 참아..”이런말 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남편은 노후 대책이 중요해서 제가 계속 일을 하기 원했습니다. 40살이 넘어서 사회 복지사, 간호 조무사, 노인 복지사등.. 자격증을 다 땄어요 그리고 면접 보러 가기 하루전날 쓰러졌는데 희귀성 난치병을 진단 받았습니다. 그래서 눈이 잘 안보이는데 이렇게 부르심 받은 것에너무 감사합니다. 우리들 교회에와서 너무 감사한 것은 율법적인 하나님이 아닌 여러 모습의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모 학교를통해 내 자신을 알고 감정에 반응 하는 타이밍이 느린데, 인간 관계에 대해 배우고 싶어 왔습니다.
타 조장님
저는 전라도 깡촌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며 엄마를 때리셨습니다.초등학교를 언니 이름으로 입학했고 사춘기가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와 자존감 없고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가난해서 아무것도 못해주는데 하나님 아버지는무엇이던지 해 주신다는 말에 위로가 되어 10대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인정 받기 위해 공부를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들어 가고 돈을 벌면서 하나님을 떠났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며 재미있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왜 살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하는 허무함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불신 결혼을 했지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부터 소통이 되지 않아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들딸을 3년 터울로 낳았는데 양육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편은양육은 도와주지 않고 주말도 없이 일만 했습니다. 남편은 3년전에 밴드를 통해 중학교 때 짝사랑을 찾아 외도를 하고 이혼을 요구 했습니다. 만난 지 한달 만에 아이들앞에서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엄마와 못 살겠다고 하고 가출 해 버렸습니다. 그때 우리들 교회가가정을 중수 하는 교회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해서 목장을 소개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십으로 듣지 않고 말씀 안에서 고난을 나누는모임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남편은 혼외 자까지 출생해서 따로 살고 있습니다. 맡겨 주신 두자녀가 있는데, 말씀대로 잘 키우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파 조장님
유복한 가정에 걱정없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습니다. 남편과는 첫 눈에 반해 결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원하는스펙을 갖추어서 한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외국으로 가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후 몸이 계속 안 좋았습니다 외국에서 돌아와 시댁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시누이들이 거의 매일 와서... 아이들을 키우며 시누이 뒤치다꺼리까지해야 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겨우분가를 했지만 남편은 거의 집에 안 들어 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이라도 잘 키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유명한 사립 유치원부터 열심히 치마 바람을 날렸습니다. 아들이 초6 딸 4학년 때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가서 기러기 엄마로 있었는데 남편과 소원해지는 것 같아 다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친구는 뒤를 밟아 보라고했지만 겁이 나서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아들이 19살때 조울증으로 미국에서 죽을 뻔 했습니다 겨울에 옷을 벗고 나가 동사 직전에 발견되었습니다. 정신 병원에서 초점없이 저를 바라 보는 아들을 볼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아들을 미국에서 데려와 한국에서 검정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딸은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놓고 왔습니다. 아들은 조울증이 1년만에 다시 재발하였습니다. 친구가 우리들 교회에 계속 와 보라고했는데 거부하다가 아들이 아프면서 제가 먼저 가 보겠다고 하고 전도 축제에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외국에 있는 사이에 사업을 벌이다 몇 십억의부도를 냈습니다. 아들이 3번째 재발 했을 때, 딸이 아빠를 붙잡고 아빠가 교회에 와서 한번만 말씀을 듣고 부부 목장에 가 주시면 소원이 없겠다고 해서.. 남편은 2015년부터 우리들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조증이 오면 굉장히 차분해지면서 말씀을 목사님 수준으로 하는데, 그때아빠와 같이 천국 가고 싶은데 아빠가 말을 안 듣는다며 애통하게 기도를 하니 남편이 부부 목장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등록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100% 응답 받는 기도> 설교를 듣고는 등록을 하고 작년 겨울에는 일대일 양육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보호 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룻기 말씀을 들을 때 지체들의 권면으로 남편을찾아 가 7년만에 관계 회복도 되고 남편도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렇지만아직도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부모학교는 예전부터 신청하고 싶었지만 일 하느라 시간도 없고 돈도없어 못했는데 가족 연합을 위해 이번에는 목숨을 걸고 신청 했습니다.
하 조장님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신 부모님은 늘 부재중이셨고 항상 싸우셨습니다. 지금 부모님은 별거 중이십니다. 15살 때 온 식구가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20살 때 성경 공부 단체에 들어가 5년동안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단체 안에서 신 결혼하고 싶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짝사랑만 했는데, 좋아 하던 형제가..다른 자매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정신이 조금돌아서 한 달 정도 입원을 했었습니다. 25살에 단체에서 나와 27살불신 결혼을 했습니다. 딸을 하나 낳았는데, 딸이 중1때 가출을 3일 했고 그 것으로 남편은 아이를 혹독하게 때리고 저는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 후 신앙과 삶의 괴리로 인해 가정 사역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5년 동안 어머니 학교 상담, 결혼 예비 학교로 봉사하며 섬겼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외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과저는 지금 부목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3주 전 23살 된딸이 독립을 했는데 딸과 소통을 잘 하고 싶어 부모학교에 왔습니다.
◎8기 부모학교를 위한 기도회/ 홍지원 초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