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 커서, 무엇을 적용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때 까지는 내가 편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려움을 주고 따뜻함 없는 벌이라는 방법으로 다루었었다.
큰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매를 들었는데 이제는 좀 컸다고 주위를 돌면서 도망도 가지 않으면서 웃기만 하는 것 이었다
내 자신의 분에 못 이겨서 더욱더 소리를 질렀던 적이 생각난다. 아마도 아이는 자신을 체벌하려는 부모와 상한 감정이 되고
싶지 않아서 분위기를 모면하고 싶은 생각에 삐치지도 않고 깔깔 웃음으로 대처했던 게 아닌 가 싶다.
그날 저녁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중에 자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으면, 자녀를 품에 안고 엄마의 마음을 전달하면서
함께 기도하면,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밖에서 실컷 놀다가 돌아온 아이를 안으니, 조금 쑥스러운지 또 웃음으로 대하여 왔다. 아이와 함께 앉아서 안아주며 기도하려고 하는데 눈물이 났다. 그 순간 먼저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온 것이다.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늘 빨리 학교 갈 준비해라, 숙제는 다 했냐’ 라는 행동에만 관심을 나타냈고 ‘오늘 주일학교 친구들하고 무엇 하며 지냈어?
무엇으로 인해 엄마에게 섭섭하고 서운한지를,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살피려 하지 않았다.
가을이 되었다고, 학교에서 모종을 키워서 집 담 곁에 심어 놓은, 검은 콩을 따가지고 들어와서 내게 건네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콩을 키우며 물을 줄 때에 나는 아이에게로의 관심이 행동에만 있었다.
콩을 키우며 관심을 갖는 행동의 주체인 자녀의 마음을 공감해 주려 않았던 너무 무심한 엄마였다.
장년기에 접어든 아들과 청년기에 있는 딸을 위해, 매일 같이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자녀의 마음을 헤아림에 둔한,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문제부모임을 깨닫고 가며, 예배와 공동체 나눔을 통해 힘을 얻고, 지금의 때를 온 가족이 잘 넘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