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기 부모학교 5강 스케치

찬양 : 다 표현 못해도,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이성은 목사님
기도-----------------------------------------------------------------------정승은 집사
인생의 목적이 세상적 성공이었습니다.
엄마의 암, 남편의 부도로 무너졌습니다.
주께서 맡기신 자녀를 바르게 사랑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양육하지 못하고 고난과 상처를 붙들고 씨름하며 회피성향의 남편을 탓하며 살았습니다.
내 욕심을 채워줄 아이로 키우려고 앞서가는 엄마였습니다.
너는 왜 매사에 나를 힘들게 하느냐며 상처를 주어 자신감이 없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두 아이를 눈에 보이게 편애함으로 외로웠을 큰딸에게 온전히 다가가고 싶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던 마음이 저의 자기애와 욕심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사춘기를 앞둔 딸과의 관계를 부모학교로 준비하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온전한 자녀로 키우는 것임을 알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큐티예배---------------------------------------------------------------박성근 목사님
(본문 : 출애굽기 37: 1~16)
부모학교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강의를 내가 좀 더 잘 흡수하고 더 잘 받아들이고 말씀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언약궤, 속죄소, 진설병 상에 대한 말씀을 오늘 주신 이유를 잘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가 잘 안될 때 먼저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를 하고 난 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깨닫게 해주실 것이니 씀보기 전에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막, 성전에 있는 언약궤, 속죄소, 상에 대해서 출애굽기에 계속 많이 나옵니다.
지겹기도 하지만 이 말씀을 통해 지겹게도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하나님이 나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왜 계속 똑같은 말씀만 계속 주시나요? 내가 이렇게 지독하게 안변하는 모습이 뭐가 있는지 발견하고 내려놓고 직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공동체 안에서의 말씀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오늘 브살렐을 통해 궤와 속죄소, 상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브살렐은 어떤 사람인가요?
브살렐이 성막건축의 총 책임자라고 합니다. 금속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담당하였다고 합니다.
브살렐의 이름 안에는 ‘하나님의 보호’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건축에 쓰임을 받고 그럼으로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참여한 부모학교 수강생과 강사님들도 브살렐처럼 오늘 언약궤, 속죄소, 상을 만들라고 사명주신 것처럼 내 사명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누나부대를 몰고 다니는 임동혁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임동혁의 어머니가 임동혁이 어린시절 아들을 그렇게 잡았다고 합니다.
임동혁은 굉장히 감성적이고 엄마의 푸쉬와 협박으로 피아노를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임동혁의 어머니가 2009년도에 갑자기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듬해인 2010년에 임동혁이 바로 결혼해 뉴욕에 갔는데 결혼해서도 엄마가 늘 깨워야 일어나던 습관 때문에 아침에 혼자 일어나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 1년만에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나름 실력이 있는데 굉장히 감성적이어서 음악계의 이단아 같았고 그 엄마가 나름 자녀를 열심히 키우려고 노력했겠지만 자기 생각으로 자녀를 최고로 키우려다보니 30대 초반이 된 지금 임동혁의 어머니도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맺었고 아들 임동혁도 1년 만에 이혼하는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언약궤를 만드는 것이 구별되고 거룩하기 위해서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양쪽 고리에다 긴 막대기를 대는 것을 보면서 오늘 강의를 들으며 우리 자녀를 어떻게 구별되게 양육해야 하는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유, 초등학생들도 인도하기 참 힘들지만 청소년들은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을 어떻게 구별되게 인도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자녀를 위해 내가 끝까지 울어주고 회개하며 가는 부모가 되라고 하십니다.
임동혁 어머니와 같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식에 부모가 안와서 자살하는 자녀보다..... 사고를 쳐도 교회 오는 자녀가 사랑스럽다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떡을 떼고 나누는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 안에서 궤와 속죄소와 상을 만든 것을 보면서 브살렐이 애굽에서 훈련받았던 실력을 사용케 하시는 것을 보면서 내 자녀를 어떻게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진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 그 사람은 고아였습니다. 부모역할이 너무 중요합니다. 내가먼저 회개하고 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여도가 다른 기수에 비해 너무 저조합니다. 다음 주가 아버지 학교인데 홈페이지 들어가 보신 분 계신가요?
숙제도 많이 올려주셔야 합니다. 거의 참여도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번 기수가 참여도가 가장 낮아요.
브살렐을 하나님이 보호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보호받아 오셨는데 우리 가정을 내가 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숙제를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강의를 듣고 간다는 생각이 아닌 내가 속죄소, 언약궤, 상을 만든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5강

‘사춘기의 이해’-----------------------------------------------------김형민 목사님
영상먼저 보고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사도 (설민석 해설)▶-----------------------
영화 ‘사도’는 250년 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사건, 왕이 세자를 죽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대의 비극적 스캔들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주인공 사도는 본명 ‘이 선’,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첫째아들은 ‘효장 세자’로 10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다. 영조가 41살에 늦둥이로 낳은 자식이 바로 ‘이 선’사도이다. 늦둥이라 이쁜 것도 있지만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겠는가?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소질이 발달하게 된다.
덩치가 커지고 힘이 엄청나게 세서 무술에 심취하게 된다.
또 영조는 문치주의를 갈망하는 군주였기 때문에 여기서 부모와 반목이 생기게 된다.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틀어지게 된 것은 왕의 업무를 세자가 대신 맡아보는 ‘대리청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대리청정’하는 14년 동안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사도가 실제로 영조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아버지,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영조가 화를 버럭 냈다.
‘야!!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무슨 세자야? 넌 자격 없어. 필요 없어!’
세자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되는구나.’
‘아버지, 아버지, 오늘 이런 일을 했습니다.’하면,
‘뭐야? 네가 왕이야?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보기 싫어, 저리가!!’
여쭤 봐도 뭐라 하고, 알아서 해도 뭐라 하고.......사도세자는 아버지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꾸중만하는 아버지였다.
청심환을 먹지 않고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나중에는 정신병이 오게 되는데 의관을 정제하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되니까 내가 옷을 입으면 안된다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그래서 ‘의대증’이라는 병이 걸린다. 옷을 입힐 때 옷이 살갗에 닿기라도 하면 칼을 꺼내서 옷 입히는 궁녀를 해치고, 쳐다본다고 내관을 해치고 겉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사태가 이르게 된다. 결국 ‘임오화변’이라고 하는.....작은 뒤주에 갇혀 아버지의 손에 죽게 된다.
여기서 잠깐~~!
아무리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정신병이 걸렸다 해도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을 죽일 수 있는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럼, 영조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일단, 그 집안의 가계도를 보자.
영조의 아버지는 숙종이었다. 장희빈의 남편으로 유명하다.
장희빈이 후궁이었고 또 다른 후궁이 있었는데 이 여자는 천민이었다. ‘무수리 최씨’였다.
이 천민의 자식이 ‘연잉군’이다. 훗날 영조가 된다.
여기에 배다른 형, 장희빈의 아들 ‘이 윤’이 있는데 숙종이 승하하고 ‘윤’이 왕이 되었으니 이 사람이 ‘경종’이다.
그런데 경종은 후사도 없고, 몸도 항상 아프고, 항상 피곤해 한다.
그러니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소론들은 항상 이것을 걱정하는데 비집권 야당이었던 노론들은 ‘아! 경종은 끝났구나. 차기 대권주자로 연잉군 옆에 붙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잉군과 결탁을 한다.
그리고 아뢰기를 ‘후사가 없으니 세자가 아닌 세제 책봉하시옵소서. 그리고 몸이 아프시니 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대리청정 하시옵소서’ 간언한다.
그래서 ‘대리청정’을 하는데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다.
이 때 경종과 소론의 눈밖에 나서 노론들이 죽임을 당하고 쫓겨나고 난리가 난다. 이 때 연잉군도 얼마나 무서운 나날이었을까?
이러다가 경종 건강하라고 올린 ‘감’과 ‘간장게장’을 먹고 배탈이 나서 경종이 죽는다.
그래서 왕이 된 사람이 바로 영조, 연잉군이 되는 것이다.
영조는 왕이 되면서 3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천민의 자식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배다른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영조 본인만 아는데 당시 모든 사람들, 경종 측근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 왕이 되고 나서도 영조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영조 즉위 31년, 기사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그 생감과 간장게장 내가 형님한테 올린 게 아니라고 이놈들아!’라고 글을 쓴다.
얼마나 30년간 가슴속에 트라우마로 있었으면 나중에 그런 글을 썼겠는가......
그리고 세 번째 트라우마는 노론이 만든 임금이라는 것이었다.
왕이 되고 보니 노론이 자기를 허수아비 세우려고 하고 꼭두각시 세우려고 하니까 사망 군데에 다 적인 셈이었다. 그래서 영조는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믿을 건 나밖에 없구나’라며 항상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
이러면서 성격이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깐깐해지게 된다.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 채식위주로 소식하고 꼭꼭 씹어 먹고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었고 하루에 15시간이상 되는 살인적인 정무를 딱딱한 바닥에서 허리 펴고 앉아서 끝까지 감당했다.
이런 영조에게 꿈나무가 태어났으니 바로 41살에 얻은 자식 사도세자 ‘이 선’이었던 것이다.
늦둥이가 너무 예쁘니까 태어나자마자 세자로 책봉을 하게 된다.
‘세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장성한 다음에 자질이 있다 싶을 때 책봉을 하는 것인데 그냥 젖먹이 아이를 세자 책봉한 것이다. 이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품속에서 자라야 하는데 세자로 책봉되니 동궁으로 옮기게 된다. 이 세자가 사는 동궁이 왕실의 동쪽에 있다. 왜냐하면 해가 떠오는 방향이 동쪽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태양’이라 해서 동궁전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아버지, 어머니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그를 살피는 보모가 있어야 했는데 엉뚱하게도 영조는 자기가 죽인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경종의 궁녀들을 사도세자의 보모로 앉히게 된다.
문제는 이 보모들이 아버지와 자식을 이간질 시키고, 또 무술을 가르친다. 사도세자의 부인인 해경궁 홍씨의 기록 ‘한중록’을 보면 ‘동궁전에 보낸 것, 세자를 일찍 책봉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고 이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단절하는 시작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루에 3번 찾아와야 하는 인사도 오지 않고 어쩔 때는 6개월도 안오고 나중에는 1년 동안 찾아오지 않게 된다. 그러니 대화가 중단되고 불통은 의심을 낳고 오해를 낳게 된다.
미친 짓을 하고 궁궐 밖으로 놀러나가고 내관을 죽이고 궁녀를 죽였는데 죽인 사람이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의 목을 자르고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자랑처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조가 바로 자식을 죽인 것이 아니다. 불러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식과 진솔한 대화를 하고자 한다.
‘너 왜 그러니?’
‘울화증이 치밀어 그럽니다. 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으셔서 짐승이나 사람이나 닥치는대로 죽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영조는,
‘내 그러지 않으리.’ 하며 자식을 감싸 안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4년 동안 또 대화단절, 불통의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사도세자의 화증은 점점 더 깊어져서 나중엔 칼을 들고 ‘내가 우리 아버지를 어찌 어찌 해치우고 싶다’라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내뱉게 된다.
이 사실을 영조는 자기 아내 영빈 이씨를 통해 듣게 된다.
영종은 결심을 하고 아버지 숙종의 사당에 가서 ‘오늘 역적을 차단하겠습니다’고 고하고 칼을 차고 가서 사도 세자를 부른다.
처음에는 자기 손으로는 못 해치니까 자결을 권한다.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네가 죽으면 300년 종사는 보존할 수 있다.’
아침 7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그때가 양력으로 7월 4일 무더운 날에 하루 종일 실랑이를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뒤주에 가두고 사도는 8일 뒤에 주검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사도세자가 그린 ‘개’의 그름을 보면 강아지들이 어미 품이 그리워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고 있는데 어미 개는 등을 돌리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도 세자의 아픔이 담겨 있는 작품이 아닐까.......
사도 세자는 그의 아들 정조(제 22대 왕)에 의해 추모되었으며 춧날 1899년 왕(장조)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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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낼 수밖에 없는 부모, 반항할 수박에 없는 자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음이 짠하죠? 이 영상을 보면 우리 교회에서 하지 말라는 부모양육의 모든 모습이 다 들어있습니다. 때를 못 맞췄고,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할 때를 못 있었고, 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연에 충실하게 복종했던 영조......너무나 성실했던 부모......그것을 해석하지 못해 계속해서 반항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없고 주변의 이상한 공동체 안에서 자란 사도세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 아픈 영화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 중 청소년 부모님들, 손들어보세요.
자녀에게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이런 비극을 극복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가지 케이스가 있을 수 있는데 영적 공동체를 만나 극복한 케이스, 말씀을 가지고 부모님이 변화되거나 부모가 변화되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공동체 안에서 극복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서 볼 수 있고,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가끔 자기 스스로 공부하거나 변화의 전기를 맞아서 부모는 변화되지 않아도 스스로 변화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 인물로 ‘융’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부모가 목사였지만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학대수준으로 학대를 했는데 아이가 고민을 합니다. 이 당시 시대가 오프라인의 시대였기에 소년 융에게 있어서 볼 수 있는 것,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뭐였는가도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손에 목각인형과 연필과 종이가 들려져 있으니 그것들과 대화하면서 종이에 그림 그리면서 자기의 내면세계를 직면하고 무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인의 의식들을 그림들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집단 무의식에 대해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목사였고 부모가 불화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으로 동기부여가 된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아이도 그렇게 되려나?'
그러나 지금 시대는 오프라인의 시대가 아니라 온라인의 시대라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모 본인이 불행했다면 본인의 사연을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본인의 사연이 조금이라도 자녀에게 비치면 자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모아이는 아이이고, 부모는 부모인데 부모가 건강하지 못하면 영종처럼 끊임없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내 사연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가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를 자녀에게 투영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잠깐 하다가 마는 행동일 수도 있는 것들을 마치 그 아이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자녀에게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의 자녀에 대한 철학은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입니다.
사연을 극복하지 못하는 부모는 다른 아이들 속에서도 내 모습이 비춰지는 아이에게 내 자녀가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는 성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사연의 반대에 있는 아이들이 있는 집단에 내 자녀가 진입하게 만들고 그룹을 짜고 학원 보내고 괴외를 하며 간섭을 합니다. 왜 그 아이가 싫을까요? 성전의 문에는 다양한 문이 있습니다. 샘물도 있지만 분문도 있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성전이 완전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장기 중에는 심장도 있지만 대장도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구성이 된 것인데 유독 싫은 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연 때문에 자녀가 힘들지만 또 부모들의 사연이 작동해서 그들을 헤어질 수 없게 잡아들 수 있는 존재가 자녀이기도 합니다.
힘든 자녀 때문에 힘들어도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재결합, 재혼을 해도 그 사이에서 출산을 하면 재혼 정착 확률이 높아집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커가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인 내가 문제이구나.....나 때문에 아이들이 수고를 하고 공동체에서 내가 먼저 진단을 받아야겠구나....생각을 해도 공동체에 나오는 것이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처방받는 것이 힘듭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스스로 나를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자님들이 우리를 분별해 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너무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평생 잊지 않을께요. 그대로 잘 따르겠습니다.....’ 하십니까? 그러기 너무 어렵습니다. 내 자신을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것이 옳은 줄 알고 쌓아왔던 것을 무너트리기 싫어서 열심히 달려왔고 그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었는데 자녀가 그렇게 안할 때 우리는 미칩니다. 소위 방어기제가 되고 그것이 쌓이면 성격이 되고 가치관이 됩니다.
알고라도 당하면 억울하지는 않을텐데 방어기재들끼리 싸우니 끝이 없습니다.
마음을 안다는 것이 알면서도 기분은 나쁜......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도 하기 힘들면 치료적 관계(상담)로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가 목장에서 나에게 뭐라고 하면 속상하고 내 핵심이 찔림을 당할 때 화가 납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저도 완고해서 깨지기 힘들고 고집이 많은 사람인데 인정하고 붙어서 지금까지 오면서 나도 사연이 많아 힘들지만 계속해서 듣고 가면서 옳다고 여기고 하루하루 인정하며 가는 것 뿐입니다.
그냥 하루하루 조금씩 그렇게 늙어가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렵지만 또 쉽습니다.
하나님은 참 구체적이십니다.
은혜를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스킬을 주십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하는 직업교육의 순서가 틀렸습니다.
영성 지향적 사회복지가 진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복지적인 문제, 가난의 문제, 아이들의 비행문제......영성 지향적 사회 복지적으로 접근하면 부모문제로 보고 부모가 목장이라는 공동체에 들어가고 부모가 먼저 문제를 직면하고 아이도 가치관을 보고서를 통해 공유합니다. 아이도 각자의 그룹에서 나누고 부모와 공유함으로 말마임아 근본적인 변화를 보였다는 논문으로 학회를 하신 우리들 교회소속 집사님이 계십니다.
자녀를 일찍부터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터치가 될 때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구도가 잡히게 됩니다.
책에 나와 있는 사례들.........
'이상심리' 앞부분을 다루려고 합니다.
청소년기의 몸과 머리의 부조화......머리가 몸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금방 이야기하고서도 금새 다른 말을 하는 부조화시기가 청소년시기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화가 납니다.
부조화를 이루는 증상이 유독 청소년기에 심합니다.
덩치가 커져서 겉으로 보기엔 잘 할 것 같지만 아직 머리와 조화가 안된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이 시기에 자녀를 이해하는 것이 힘듭니다.
이 때의 아이들은 자아중심성이 생깁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자신이 됩니다.
아무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는데 자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엄청 신경을 씁니다.
안씻어도 되는데 씻는데 집착하거나........
다른 사람들도 자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깁니다.
아무도 신경 안쓰는데.......^^
남들은 자기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본다고......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계속 창피하게 여깁니다.
또래집단에 헌신하게 됩니다.
항상 그룹을 지어다니며 친구 있냐, 없냐.......에 집착하고, 전에는 목장예배도 잘 따라오다가 안오는 것도 친구가 없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가끔 중학생이 됐는데도 잘 따라오는 아이는 발달이 늦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를 떠나 또 다른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기입니다.
아직까지 계속 부모와만 같이 있는 아이들도 있는데, 건강하지 못한 부모는 내 자녀가 의미 있는 친구관계를 만드는 꼴을 못 보는 부모도 있습니다. 자신을 배반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부부관계가 안 좋은 엄마들에게서 그런 증상이 많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무 집착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가 되면 또래에게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헌신이라는 표현은 예배라는 뜻입니다.
예배는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래집단에 헌신한다는 것은 친구가 가자고하면 지옥이라도 따라갈 것 같은.......친구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친구가 가자고 하면 지옥이라도 따라갈 것 같을 때에는 내 아이가 잘 발달하고 있구나.....생각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 50대 된 남자집사님들이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 밴드에 집착하고 밴드에서 바람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시 또래 집단에게 헌신하기 시작한다고 해요.
친구들도 좋지만 친구들과는 적당한 경계,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부모님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친구들이 헌신으로 가는 경우가 많고 부모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은 친구들과도 헌신이라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관계를 맺는 아이들도 있고 헌신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아이는 친구들과 친구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헌신하고 있습니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와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라고 보면 될 것이고 헌신하는 아이라면 부모와의 틈이 많다고 보며 될 것입니다.
그러니 훨씬 예전에 비해 말이 줄고 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부모에 대해 예전에 없던 반항심, 다른 부모와 비교하게 되고 부모가 마음에 안들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이런 과정이 있고 이런 단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본인들이 얘기를 할 때 발달과정을 먼저 이해하고 너무 많은 얘기를 하기 보다 부모가 내 사연에서 작동하는 것들을 먼저 분별해 나가야 합니다.
정리된 상태에서 자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이야기하고 은혜가 있는 상태, 정리된 상태에서 얘기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 죄를 보고 내 사연에서 나오고 정리한 다음 아이들의 발달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배우고 아이들에 대해 대처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부모들이 사연에서만 벗어나도 훨씬 건강한 부모자녀관계가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기 사연 때문에 자녀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별로 질문 받도록 하겠습니다.
1조 : 자녀가 add + 우울증, 강박증 약을 먹고 있습니다.
아빠와의 관계는 너무 좋은데 나와 남편과의 관계, 나와 자녀와의 관계가 조금 이상합니다.
자아가 없이 맹종으로 살다가 자아가 생기면서 ‘나’라는 사람의 목소리를 내니까 남편은 우리들 교회 가더니 ‘이 여자가 변했구나’ 합니다.
엄마의 굴종의 모습 때문에 아이들이 병들었나요?
나의 사연에 겨워 일관성 없이 해대는 민감함, 권위적 잔소리들로 아이들을 힘들게 햇습니다.
첫째 아이는 병명없이 손바닥이 다 벗겨지고, 둘째는 손톱이 다 없을 정도로 물어뜯습니다.
집사님은 오랫동안 주보 편집장으로 계셨는데 강한 강박의 병으로 아파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지요.
2조 : 아이가 5세 남자 아이인데 부모를 때린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상처를 내기도 하는데 어찌해야 하나요?
친구들과 놀 때 하면 안 되는 행동들을 할 때 안된다고 하면 공격을 하는데 혼을 내지는 않고 안된다고만 해왔었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혼내는게 아니고 눈을 마주보며 단호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단호하게 제지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계속 받아주면 그 행동을 계속 강화시켜주는 꼴이 될 거예요.
3조 : 자녀들이 청년이 되었는데 부모 말을 안들어요. 평소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시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관계 회복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그 자녀가 부모를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리며 지금 상황에서는 끈을 놓지 말고 소극적인 방법을 활용하며 사랑을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자를 많이 활용하세요.
그러면서 아이가 나를 필요로할 때를 놓지지 말고 기회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4조 : 중2, 중1, 초4 아이 셋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별히 큰 아이가 상처가 많아요. 아이가 너무 조숙해서 청소년 때 나타날 증상이 5학년 때 나타났습니다.
음란 채팅을 하고, 때마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래도 공동체 안에서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2인데 오히려 중2 지랄병이 없이 너무 잘 조용히 잘 넘어가고 있어서 이상합니다.
잠복기라고 하죠^^
남자아이들만 키우다보니 성적인 문제에 민감한 편입니다.
집사님이 성적인 문제의 사연에 매여 있으신 건 아닌가요?
목사님께서 수요설교 때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성전 이야기를 하면서 성전에 지성소가 있는 데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고....그래서 성교육을 하라고 하셨지요.
몸의 지성소가 무엇인지......지성소는 너희들의 성기라고 설명해주시고 아무나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시오.
생명 지키는 적용은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적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첫날 밤을 정말 아름답게 보내기를 축원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성교육도 성경에 근거해서 시키시길 바랍니다.
성전의 지성소는 실제로 그 당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의 문제와 마음의 문제가 연결되어있습니다.
율법은 음란과 미움을 가르쳐준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음란, 성...... 마음 깊은 곳에는 음란, 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뛰어넘지를 못합니다. 반박을 하면서도 심리학 역사가운데서 뛰어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인간의 바닥에는 음란, 성이 있고 그것 때문에 미움이 생긴다는 것을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야동을 본다고 하는데 중학생은 일본어를 야동을 통해 배운다고 할 정도입니다.
5조 : 초등학교 5학년 딸, 2학년 아들이 있습니다. 둘 다 학교에서 맞고 왔습니다. 따로따로......너무 떠들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가 맞았다고 하는데.......외관상으로는 멀쩡해보여서 괜찮다고, 다음에 또 그러면 가만히 안두겠다고 하고 넘어갔는데 저녁에 남편이 와서 당장 그 부모 전화번호를 알아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딸이 거기서 약간 시원함을 느꼈는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결론은 이 아이가 엄마가 없고 친척집에 사는 아이였다는 거예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부모들이 제일 실수하는 부분에 대해 좋은 질문 하셨습니다.
아이가 맞았다.......초등학교는 조금 다릅니다. 학교폭력 예방도 있고..........학교마다 학교의 교칙이 있습니다. 청소년 육성제도, 청소년 보호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요즘 학교는 스쿨 폴리스가 다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은 엄한 처벌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엄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아이가 맞았다고 하면 일단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네 죄를 봐라, 용서해라, 너는 믿는 아이잖니....하면 안됩니다.
이럴 경우가 부모의 사랑을 보여주기에는 절호와 찬스입니다.
가해한 아이의 처벌보다는 아이와의 회복을 우선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엄마아빠가 나에게 힘이 되는구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학교에 가서 머리를 풀(?) 필요도 있어요. 내새끼 누가 건드렸어???하면서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처벌이 아니잖아요.
부모는 교칙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내 자녀가 가해입장이라면?
무조건 싹싹 비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 저에게 도움요청을.......^^
어떤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잡기놀이를 하다가 쓰러지면서 모서리에 부딪혀 하반신 마비가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상대부모는 같이 놀던 아이가 밀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분명히 사고인데.......상대방은 이것으로 팔자를 고치려고 할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한쪽이 길길이 뛰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부터 위로하고 달래주어야 합니다. 혼자 아이를 두지 말고 안아주고 집안 안분위기를 밝게 하고.......
학교에서 일어난 사고는 합의사항이 아니라 공제처리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학교장은 부담이 될 것이라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력에 스크레치가 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제처리 요구를 하고 교육위원회에 진정할 것이라고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어버버하고 있을때가 아니예요.
교칙을 어겨서 학교를 퇴학당할 경우......부모들이 학교에 가서 내 죄를 보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얘가 이렇게 된 것이 내 죄다.......나 때문에 이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
담배 피운 경우도 부모가 가서 회개하는 적용.........을 하구요.
피해 입혔을때는 일망타진, 피해 입었을때는 용서하고, 다짐받고.......
분별하고 지혜도 필요합니다. 지식도 필요합니다.
6조 : 20살, 8살 아들이 있습니다. 20살 아들은 교회를 안나오고 있고 학교는 전문학교라는 곳을 다니고 있는데 최대 4박5일정도 집에 안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의 죄를 많이 보라고 해서 혈기를 많이 부리는 엄마였기 때문에 들어오면 그냥 밥 차려주고 하는 선까지 할 수밖에 없어서 그날그날 하루하루 지내고 있습니다.
잘하고 계시네요.
7조 : 초4, 초2아들이 있고, 저는 우울증이 있어 약을 먹고 있습니다. 의사는 눈치 많이 보지 말라고 하지만 남편이 교회 다니는 걸 많이 반대해서 눈치를 많이 보며 살고 있어요. 큰 아이가 7살때부터 부부가 많이 싸웠고 지금 소아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어릴 때 일 때문에 많이 못 돌봤고 아이는 우울하고 무기력합니다. 종종 자기가 태어나지말걸 그랬다고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2학 년때 짝에게 많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엄마인 저는 제 교양을 지키느라 개입을 못해주었습니다. 아이가 존재감 없이 학교에 다녔지만 남편과 상의할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들 교회는 남편의 극심한 반대로 수요예배만 나오고 있습니다. .남편은 교회가는 것 너무 반대합니다.
부부목장에 가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에게도 굉장히 좋을거예요.
정기적으로 부모가 같이 일주일에 한번 씩 외출하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주 줄 수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개입이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아이는 치료를 안받고 있나요?
남편이 못 받게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먼저 말이 통하는 게 중요하고 그것이 아이가 살 길일 것 같습니다.
현재 여자목장 목자님도 자녀문제로 고난을 많이 겪으셨으니 잘 묻고 가시면서 회복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