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부모학교 애착 강의 후 간증> 2 2015. 10. 27 경미현 집사
“지헌아 수시입학 알아봤니? 자기소개서 썼니?” 요즘 들어 둘째 아이에게 하는 제 잔소리의 전부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했으니 이젠 너가 알아서 하라’는 저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딸아이는 “xx년 니가 해봐”하며 아래위로 눈을 부라리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 가버립니다. 순간 멍~해지며 ‘내가 왜 자식한테 이런 험한 소리를 들어야 하나..’ 하는 섭섭한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집을 나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한참 후에 딸아이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둘째의 등을 쓰다듬으며 “혼자 하기 힘들지? 엄마랑 같이 하자”라고 하니 어두웠던 아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습니다.
저는 대학 4학년생 큰딸, 고3생 둘째딸, 고2 셋째딸을 가진 50 초반의 주부입니다.
철도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달리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난 저는 어린시절 교회를 다니며 세례를 받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외로움과 자기연민을 키우며 성장해 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정경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으로 삶은 곤고했고, 결국 저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내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교회를 떠난 채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7년 연상인 남편은 외로운 나를 대접해주고 존중해줄 거라는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였고, 외로움은 늘 제 가슴에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보상 받기 위해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며 방치한 채 직장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처음엔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채우느라 43세에 대학과 대학원 총 7년 동안 나 중심적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눈문을 보며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뿌듯함과 기쁨 뒤에는 세 명의 아이들과 남편의 수고와 외로움이 깔려 있던 것을 몰랐고, 한참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전혀 눈길을 줄 수 없었으며 내 열심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세 딸들에게 보여주면 그자체가 산 교육이라고 자부했었습니다.
둘째는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수련회 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전체 왕따와 뒷 담화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을 두려워하며 학교생활을 힘들어하기 시작 했습니다. 담임 또한 둘째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말씀 하셨습니다. 왕따의 원인이 우리 아이에게도 있다는 생각에 학교생활 잘 할 수 있게 지도한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담임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와서는 둘째에게 명령하듯 “학교 갈 때 머리 좀 잘 빗고, 조금 일찍 서둘러 지각도 하지 말라”고 하며 “왕따의 원인이 너한테도 있으니 신경을 써야 되지 않겠니?”라고 나무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둘째는 상처가 심한지 울고불고 떼쓰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를 때려가며 억지로 학교에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춘기 일거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둘째는 머리가 아프다며 조퇴를 자주 하더니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욕이라고 전혀 하지 않던 아이가 “X발, X나”하며 불같이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아침마다 학교에 보내려는 저와 가지 않겠다며 버티는 딸과의 거친 몸싸움이 이어졌고, 둘째는 우역곡절 끝에 고등학교 1년을 마치고 교회근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고작 4일을 울면서 등교했지만 결국엔 등교일수 부족으로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서로에겐 잊혀지지 않는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는 책장의 책을 갈기갈기 찢으며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 쳐놓고 안방에 와서는 제 옷장의 옷을 마루에다가 다 던져 놓고... 그런 다음 소파에 누워서 이불을 덮고 눈만 내밀고는 저의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도둑이 들었다가 간 집하고 똑같았습니다. 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고 “엄마 30분 동안 나갔다 올테니 그동안 정리해놔”하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후에 “왜 그랬니?”라고 물어보면 “그냥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며 자기도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나만 싫어한다고 합니다. 나만 좋아해 달라는 딸에게 “내가 어떻게 너만 좋아해 줄 수 있니?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는데...”라며 일장 연설을 합니다. 그러면 둘째는 “나는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으니 이제부턴 나한고만 있고 나하고만 얘기도 하고 나만 바라보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지헌이의 부탁이 왜 그리도 무겁게 느껴졌는지... 어디 한군데 매인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몰려오곤 했습니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지헌이는 한참 사랑을 독차지해도 모자랄 판에 동생 막내 때문에 보이지 않는 희생을 한 것 같습니다. 나이는 1살 차이지만 동생에게 양보해야했고 많은 것을 박탈당하며 엄마아빠의 사랑마저도 저당잡혀야만 했습니다. 그런 지헌이에게 저는 ‘동생 대할 때는 서너살 위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나무란 적이 많았습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지헌이는 늘 불만인 모습과 투정이 심하고 징징거리며 우는 아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울다가 스스로 지치겠지 아니면 그러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야단치기 일쑤였습니다. 6세가 된 후 처음 유치원 입학시 상담했던 선생님이 좋았던지 담임은 나몰라라 하고 그 선생님만 졸졸 따라다니며 치마꼬리 붙잡고 울던 모습도 생생합니다. 유치원 버스에 올라서도 내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울한 모습으로 끝까지 저를 쳐다보는 지헌이를 볼 때도 제 마음은 그리 아프지가 않았었고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무심한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야 하며 나의 양육태도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내다 둘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너무 말이 없는 것 같아 초등학교 4학년 때 심리검사를 받아보았습니다. 검사 결과 ‘경계성 지능’ 이라고 나왔고 사회성을 키워주는 놀이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는 그 결과지를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찢어버리고 좀더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는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7년 후 고등학교 입학 이후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길래 심리검사와 IQ검사를 다시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7년 전과 똑같았습니다. 신경정신과에서는 경계성 지능은 부모와 아이 간에 애착형성이 잘 안 되어서, 대인관계에서의 애착에 대한 내부작동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순간 뒷통수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수 있는 최적의 환경은 아이와 함께 있어주고 놀아주는 것과 적당한 자극이 최고의 환경적인 요인들이라고 뒤늦게 알게 되어 버렸습니다. 애착이 이렇게 중요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젖 먹이는 동안에 애착형성이 다 되는줄 알았습니다.
비록 때는 늦었지만 지금은 지헌이랑 함께 잠도 자기도 하고 손도 만지기도 하고, 샴푸도 가끔 해주기도 하고 얼굴도 부비부비 합니다. 그런 제가 싫지 않은 듯 아이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감돕니다. 엄마가 있다는 안정감이 지헌이의 얼굴에서 그대로 반영됩니다. 지금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함께 병행해서 받으며 지낸 지 2년이 가까이 되갑니다. 그리고 체중이 80k가 넘는 거구에서 4개월 동안 PT를 통해서 20k 정도를 감량하고 나니 조금은 자신감 붙어보이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남 의식하고 남이 자기한테 뭐하고 할 것 같아서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눈 맞춤도 곧잘 하곤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 공부는 헛되고 또 헛되다고 했는데...
나 자신의 성취를 위해 시작했던 마지막 논문학기부터 시작된 지헌이의 방황은 지금도 계속 ing~~중입니다. 그런데 지헌이 홀로 ing~아니라 저와 함께 하는 방황 ing~ 되었습니다. 서로 관심 가져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연습이 서로에겐 이젠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해야할 저만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인 교수가 되어 세상에서 성공한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영화로운 날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직 내 옆에 있어줘”라는 지헌이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음성과 징조로 들리며, 나의 구원을 위해 지헌이가 수고한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엄마의 때를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추신 : 홍지원 강사님의 강의 주에 기억에 남는 말은 애착은 죽을 때까지 간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강의 정말 좋았고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둘째랑 애착관계 잘 맺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