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나의 삶선 그래프 나눔!
-4조 한현정 나눔-

어려서부터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컸다. 아버지는 엄마와 나에게 군인 대하듯 항상 엄하게 대하셨고 아버지의 가정폭력, 도박, 바람 등의 사건으로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다. 10살 때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육지에서 이사를 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최소 1~2년에 한번씩은 이사, 전학을 다녀서 낯선 환경,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다. 17살 때 온 가족이 함께 부푼 꿈을 안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가서도 아빠의 폭력은 나날이 심해졌고 내가 대학교 1학년 스무살 때 아빠의 어김없는 폭력 사건으로 부모님이 캐나다에서 이혼을 하셨다. 엄마랑 단 둘이 남게 된 나는 엄마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23살에 엄마와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캐나다에서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인터넷으로 듣다가 한국으로 가서는 엄마와 함께 우리들교회 교인이 되었다. 2년간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 취직하려 아르바이트를 하며 준비를 했지만 연이은 최종면접 탈락의 사건으로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다 포기하고 영어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을 하면서 우리들교회 청년부를 다녔다.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8살에 결혼을 하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혼가정에서 자란 내게 신결혼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허니문 베이비로 첫째 딸아이를 임신하여 29살에 출산을 하였을 때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순간이었다. 현재 32살이 되었고 둘째를 임신 하였는데 둘째가 12주에 기형소견이 있었고 16주 이내에 심정지 할 확률이 높다는 소견을 듣고 너무 놀라 매일 날마다 말씀을 붙잡고 그래도 아이를 끝까지 지키고 낳으리라는 마음을 다잡으며 태명을 언약이로 지었다. 교회 공동체에서 너무나 기도를 많이 해주시고 우리 부부의 믿음 수준이 낮기에 수준에 맞게 아이가 잘 태어날거라고 믿었는데 8월 중순, 임신 16주가 되는 순간 둘째는 심정지로 먼저 주님 품으로 가게 되었다. 이 모든일이 아직도 너무 슬프고 솔직히 해석이 잘 안된다.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잘 낳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는데 왜 내게 이런일이 있을까.. 정말 힘들어도 공동체에 잘 붙어가려 노력하고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너무 허무했다. 지금도 그렇다. 유산 후에 아이를 출산 한 것과 똑 같은 내 몸의 신체변화와 고통을 느끼며 많이 우울하다.
-4조 박기림 나눔-
3대째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교회와 가깝게 지내며 자라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지의 바람사건을 통해
인생의 첫번째 큰 고난이 찾아왔고그 이후로 매일이 슬프고 힘들었다.그러다 좋아하는 연기를 하며남들에게 인정받고 상도 받으니
교만해져 친구들을 무시하여고등학교때 왕따를 당하며 하나님을 열심히 찾게되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서울로 오며 당시 우리들교회를 다니던
삼촌의 전도로 우리들교회를 다녔다.연기를 꾸준히 하며 주연으로 작품에 들어갔으나 배우로 성공하려면 어둠의 손을 택해야했고 그게 싫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소속사와 계약 논쟁과 영화사에서 오는 압박으로 인해 공황장애와 대인 기피가 찾아왔고 목장에 붙어 갈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 공동체에 묶여 가다보니 죄많은 저도 신결혼을 하게 하셨고 지금의 남편과 어린나이에 결혼을 하며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던 저에게 평생 누리지 못했던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평안함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계획에 없던 두 아이도 연달아 주셨고 그 사이에 남편의 군대가는 시간으로 홀로 육아와 가장역할을 하며 고난의 시간도 견뎌야 했습니다.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된 동기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데도 아이에게 화가 나고 조절이 안되며아이를 자꾸 저랑 동일시하며 훈육을 하는등 육아가 되지 않는거 같아 제대로 된 건강한 육아를 해보고 싶어신청하게 되었습니다!
-4조 나혜영 나눔-
어릴적부터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불안정한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6년동안 아빠의 직장 때문에 5번의 전학을 다니며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저는 처음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게 어려웠지만 점차 익숙해졌는데 중1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며 엄마는 가정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이때가 제 삶에서 가장 힘들고 또 마음의 방황을 많이 했던 때입니다.아빠와 함께 6년을 살다가 대학생이 되던 해 동생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엄마는 이미 재혼하신 상태여서 이혼가정에서 재혼가정으로 환경이 바뀌었습니다.새아빠도 저와 동갑인 딸이 있었는데 자식문제로 엄마와 새아빠는 끝없이 싸우게 되었고 재혼가정이 깨질뻔한 위기가 여러번 있은 후 저희 가족은 우리들교회로 인도되었습니다.대학에 합격하고 성적을 인정받은 것도 잠시, 임용고시가 좌절되고 취업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채 졸업하게 되었는데 우리들 공동체에서 위로받고 양육을 받으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처음 신교제를 하게 된 지금의 남편은 타교인이었는데 우리들교회를 출석했지만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다툼이 있곤 했습니다. 양육을 받고 결혼하여 부부목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온전히 말씀으로 하나 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자녀를 양육하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조금 더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자 부모학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4조 오한나 나눔-

어릴 적 부모님의 불화로 불안과 공포심이 항상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무대에 섰던 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후 엄마와만 살게 되었습니다. 불안감이 높아 학교 입학이 힘든 경험으로 남아있지만, 시험을 잘 본 기억과 배우지망생이 된 기억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연영과 대입실패로 인생의 가장 큰 실패의 경험을 맛보았고, 대학교 입학 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웠지만 연예고민,관계고난,진로고민으로 힘든 시간도 보냈습니다. 기숙사에서 만나 언니의 소개로 영국을 가게 된 것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29살에 미국시민권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곧 이혼을 한 것이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혼을 계기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제 자신을 깨닫게 되었고, 우리들 교회 오게 되면서 서서히 인생이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3월에 재혼하여 9살 아들을 키우게 되었고, 남편과 아들이 예수 잘 믿도록 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서 부모학교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4조 차선숙 나눔-

아버지의 음주, 도박으로 가난했고 가정이 화목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년기에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속으로는 위축되고 우울했지만 겉으로는 활달한 척, 모범생으로 살기 위해 부단히 애썼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집을 벗어나 생활하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점차 편안해졌습니다. 교사가 되어 돈을 벌고 대학시절부터 함께한 남편과 결혼하면서 많은 걱정들이 사라졌습니다. 내 노력으로 그것들을 이루었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김없이 자녀를 통해 고난을 주셨습니다. 내 죄를 보지 못하니 난임으로 고생한 5년이라는 시간이 참 지옥같았습니다. 직장맘으로 정신없이 지내던 중 낙태, 아버지의 죽음, 둘째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찾아왔습니다. 이사를 오고 우리들교회로 인도받아 내 죄를 보고 삶이 해석되는 경험을 하면서 지옥을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자기열심이 고개를 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자녀에게 하나님 믿게 해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부모학교를 신청했습니다.
-4조 박혜선 나눔-

어렸을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생활전선에 뛰어들다 전세금까지 사기 당한 엄마는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퇴원 하셨고,생활고에 두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19살 무렵 취업과 연애를 통해 점점 내 삶도 집 사정도 좋아졌고 원하던 대학에도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가 될 무렵 현실의 벽을 실감하며 연애도 실패하고 극심한 괴로움에 심리상담을 2년간 받으면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자녀도 출산 하였고 내 삶은 점점 더 안정을 찾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녀 양육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엄습 하였다. 그러던중 언니를 통해 우리들 교회로 인도 받았고, 내가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모태신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부모 학교 까지 신청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