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삶선 그래프 그리기
조장: 김진영 집사
조원: 곽영화, 김영미, 김유진, 여윤정, 이지현, 이은영Q, 정은숙B
1. 김진영 조장님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께서 맞벌이 부부여서 고모들이 많은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혼자서 뭐든 해야하는 첫째, 엄마의 고부갈등과 시댁 갈등사이에 눈치보며 성장했습니다.
고입 시험 떨어져서 원하지 않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는 꼭 붙어야겠다는 결심으로 공부하여 대학교에 입학하고 새로운 신들을 섬기며 사는 중에 집이 폭상 망했습니다. 그때 엄마는 무당하러 간다고 했고 나는 할머니 댁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5년간 도피 유학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출산때 행복했지만 친정고난과 동생관계와 시댁과 친척 고모들과의 관계에서 힘들다가 남편의 외도와 건강의 문제로 제일 힘들었을때 우리들교회 공동체로 인도받고 주님을 만나고 양육받으며 예배에 올인하여 평강했지만 코로나로 매너리즘에 빠지고변하지 않는 불신 남편과 엄마의 소천으로 슬러프가 왔지만 현장예배가 온전히 회복되고 목장지체를 대면하여 만나게 되고 미워했던 엄마가 우상이라는 공동체 해석으로 말씀이 더 들리고 다시 평강해졌습니다.
2. 곽영화 집사님
어린시절 맞벌이 부모라서 늘 바쁘셨고 이직으로 여기저기 옮겨다녀서 외롭고 불안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을때 변화 굴곡이 없이 살았는데 자기 연민에 빠져서 살았왔는데 커섬보니 그게 아이였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온 지가 11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교회 지체들은 내가 처음으로 온 줄을 압니다. 중학생때 음악전공 시작했고 대학교를 재수하고 음대로 진학을 했을때가 행복했습니다. 힘든 시기는 25살때 2011년에 3살 어린 남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이였고 그 계기로 가족들이 우리들 교회로 왔습니다. 결혼을 빨리 했고 남편의 직업으로 집에 없어서 독박육아로 힘들었고 내 스스로가 과잉보호가 심해서 아이를 혼자서 못놀게 하는것이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목장에서는 내가 평안하고 평강해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사실 너무 힘듭니다.
3. 김영미 집사님

3남2녀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전부터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당뇨로 인해 아프셨습니다. 그때부터 엄마가 지방에서 부산에서 살다가 반복하고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저를 업고 장사하시면서 살앗습니다. 나는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는 큰 일없이 지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집이 가난함을 알고 외모 외적에 약간 주눅이 들었고 중 고등학생때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이 힘들었습니다. 먼저 발견한 트라우마를 모르고 계속 살다가 학교 끝나고 일본으로 유학하고 직장생활 하면서 알고 지냈던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직장 취지과 결혼 출산육아때가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첫아이와 제왕절개로 염증 생겨서 육아가 힘들었지만 남편 도움 엄ㅂㅁㅅ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방으로 간 남편이 외도한 것이 해와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으로 우리들교회로 와서 점점 회복중입니다. 남편이 외도를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여서 목장 첨방으로 스스로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원동기는 나의 유년시절을 살피고 싶었고 자녀양육을 잘하고 싶어서 지원 동기하였습니다.
4. 김유진 집사님

5세때 엄마랑 함께해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5살 이후 엄마가 직장생활 하셔서 같이 있어주시지 않아서 우울했습니다. 엄마가 15세때 발레를 시켜 주셔서 무용하고 나서 성격이 많이 변했습니다. 17-20살때 무용하고 서울예대 입학하고 무용하고 공연했을때가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이때 잘나가고 인정받으니 교만해서 하나님보다 무요에 빠졌고 신은 없다고 하고 무용우상으로 살았습니다. 공연으로 미국으로 왔다갔다하면서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준비를 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미국 학생비자에 떨어지고 난 뒤 불신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했지만 신혼초부터 남편의 혈기로 인해 우울과 자살시도하고 무기력증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임신하고 낙태하지 않고 낳고 참고 살고 있는중에 선배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어서 목장예배와 함께 조금씩 말씀으로 나가가게 하면서 예배 회복이 되어 더이상 우울증약을 복용안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고 기쁩니다. 남편도 인정도 해주고 평안한 맘을 주시고 제주도에 관한 안좋은 일이 있었지만 제주도가 고향인 남편을 따라 적용으로 제주도에 올5월달에 와서 살고있습니다.
지원동기는 처음 판교성전에서 부모학교를 나왔는데 일상생활에서 적용과 실천이 잘 되지 않아서 이번에 다시 온라인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5. 여윤정 집사님

어린시절 크게 문제 없었습니다. 지방에 살았고 욕심이 많아서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공부를 했지만 대학입시 실패로 인해 재수생활을 시작했을때 엄청 울고 많이 힘들었지만 서울에서 재수학원 다니면서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교 생활과 연애때가 행복햇을때 교회도 안가고 술과 음란으로 살다가 취업도 안되고 원하던 회사 취업에 실패와 실연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장녀로 살면서 부모가 힘들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힘든 일을 말안하고 혼자서 해결하는중에 인터넷으로 컴패션 인턴으로 채용되어 다시 교회로 돌아갔고 중국취업이 되었을때 행복했습니다. 중국 일자리에서 큰 역할줘서 부담이 되었을때 상해에 있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중국에 살다가 임신했는데 남편의 직장으로 미국에 가서 출산하면서 힘들었고 한국에 와서 독박육아과 부재중 남편으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한때 남편이 이단에 들어가 있다가 빠져 나와서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부부목장도 같이 나오고 있지만 남편은 아직까지 참석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적으로 힘듭니다.
지원동기는 우리들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듣고 가고 있지만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는 남편이 싫고, 올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눈 깜박이는 틱 증상으로 정신과에 가서 검사 받았는데 주의적저하가 나타나 놀이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나도 항우울제와 잠이 덜깨는 약을 복용하여 아이에게 혈기로 쏟고 감정기복이 심한 상태가 많이 나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도움을 받고자 지원했습니다.
6. 이지현 집사님(병원예약으로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했지만 사진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지원동기는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사회성 부족인 엄마로 두 아이를 양육하는데 힘든 정이 있습니다. 출산 전까지는 나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고 아직도 나 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어 두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교육을 통해 내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할수 있는 부모가 되길 원해서 지원을 했습니다.
7. 이은영Q 집사님

1남2녀중 장녀이였기에 유년시절에 첫째의 책임감을 지고 살았지만 대체적으로 그때에 맞게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에 교회 청소년부들 친구들보다 낮은 학교로 진학으로 낮은 자존감과 학교 친구와 싸움으로 교회 청소년부 임원을 때리치고 나왔을때 힘들었지만 고3 여름방학 전국 수련회때 처음으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인해 교회랑 친구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회복이 되엇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미국에 계신 큰아버지의 권유로 자퇴하고 미국 유학길 올랐지만 1년만에 IMF가 와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졸지에 대학교가 사라졌을때 힘들었지만 낮은 고등학교로 인해 원하는 과로 대학교 진학햇습니다. 졸업하고 돈모아서 본격적으로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길 오르면서 같은 대학교에서 남편을 만나 같이 공부하고 음란으로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알바하면서 공부하고 신앙생활은 교회만 갔고 힘들때는 빠지고 돈 번다고 빠졌던 생활에 석사 실패로 인해 처음으로 자살시도 계획했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결혼과 출산으로 가장 행복했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힘든 외국생활이지만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남편의 시험이 실패로 일본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일본생활 1년중에 남편이 갑자기 이혼서류 내밀면서 이혼요구했고 이혼 협박과 감금과 남편의 자해 칼부림등으로 아이와 저는 남편의 협박과 폭력으로 하루 아침에 한국으로 급하게 쫓겨났던힘든 시간에 청년부 섬기고 잇던 여동생의 인도로 우리들교회로 왔습니다. 이때 다시 평안해졌고 행복한중에 남편이 다시 재결합하자는 권유에 올 3월에 일본에 들어가려고 비자 취득 중에 아빠의 췌장암 판정과 수술불가능한다는 이야기 듣고 일본에 들어갔지만 들어온 날부터 이혼불수리 취소하고 도장찍고 한국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의 거절로 인해 남편의 가정폭력과 협박과 자살시도 자해 자살기도등 긴박하고 위험한 순간이였을때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공동체 처방으로 이혼을 당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남편이 인정하지 않지만 커플링을 다시 끼고 있는것을 보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말씀으로 해석을 하고 가고 있기에 다시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지원동기는 이런 역기능적 가정과 갑작스런 아빠의 부재중과 한국과 일본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불안한 아이를 어떻게 믿음으로 양육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부족함과 개선함점을 찾고자 지원했습니다.
8. 정은숙B 집사님

18세때 엄마가 하루만에 소천함으로 우울과 무력감이 생겼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36세때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때 우리들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복하고 가는 중에 갑상선암을 걸리다가 힘들어서 다른교회로 갔습니다. 출산하고 7년동안 떠나있다가 여전히 우울하고 무기력함으로 2년전에 다시 우리들교회로 돌아와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지원동기는 자녀 양육 잘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