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 정경화

17조 임은경

17조 손금순

17조 이정희

17조 현순희

17조 윤영돈

*정경화
충청도 서산에서 태어났고 고향에서 부모님과 저녁먹고 누워서 별보던 기억이 제일 행복한 순간들이였다
가족이 모두모여 가난했지만 참 따뜻한 기억이다.+ 90
초등학교6학년 엄마가 돌아가시고, 중3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힘듦과 고아가됐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90
서울로 이사와서 단칸방에 세자매가 살았고 오빠둘은 기숙사에 들어가 살아야했다.
돈이 없어서 연탄불도 못피우고 학교 수업료도 못내고 교복외엔 외출복이 없었다 -70
27세 결혼하여 28세에 첫아이출산 하면서 행복하고 감사했다.
30대후반50대초에 남편이 노조일로 집에도 안들어오고 (도박, 당구등),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혈압두번, 안면마비 -75
우리들교회왔다 53세에 청주로 이사오면서 입성하면서 남편탓, 남탓하며 혈기,분노로 죽을것 같았는데 양육받으면서 내모습과
내죄를 보게되면서 원망이 그치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80
50대후반 가족여행으로 한라산 백록담 정상정복하며 가족애가 두터워지고 성취감에 행복했다 +80
60세 현재 속초로 이사와서 딸이 넘어져서 얼굴이 긁히고이가 금이가고 연단의 사건이 발생했다.
-90 현재 겪고있는 일이라서 더 크게 힘듦으로 느껴지는데, 아직 치료중이지만 약재료삼아 목장과 예배드리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매여가도록 기도하고 딸의 회복을 위해 병원다니고 이번사건을 잊지않고 새기며 가길 기도합니다.
*현순희
부여에서 태어났는데 5살때 살때 안양으로 아버지가 올라오셨는데 9살때 까지 자랐고 그때는 큰 어려움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까지는 동생이 아파서 엄마가 저한테 화풀이를 해서 엄마가 좀 무서 웠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엄마하고 굉장히 가까워 졌고 , 대학을 갔고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첫아이를 유산하면서 제가 다시 아이를
가질수 있을까? 굉장히 힘들게 가졌었는데 하면서 바닦까지-90 떨어졌다.
다시 아이를 갖고 아들과 딸을 출산을 하고, 제가 이제 그중에는 즐거운 경험들로 그려질 것 같고 39에서 40이 넘어가는 그때 해외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서 나가게 되고 주재기간은 5년이였는데 5년동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그런 생활들을 하면서 인생의 선물같은 그런 시간들을 보냈다 생각을 해요~
그런데 남편이 돌아오고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서 거기서 돌아올수가 없어서 거기서 학교를 졸업시키고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중에 제가 거기서 새 사업을 하게 되고 남편은 한국에서 혼자 지냈다.
퇴직을 하고 남편이 제 사업을 같이 하면서 둘 사이에 서로 잘못 한건 없는데 같이있으니까 굉장히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어요
중간에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난 내 부모님이 돌아가길거라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업체에 공격을 받고 성격상 싸우지도 못하고 그런 가운데 제가 신이 없나? 있나를 따져보게 되었고 그래서 교회를 다녀보겠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성경공부를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애들이 졸업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들이 공항장애가 있고 현재는 다 들어와 있어요.
현재 취업을 했고 저는 사업을 다른사람한테 넘기고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남편이 들어온지는 6개월 되어가고 있고 아들이 어려운 가운데 있어요,
지금되게 고난중이라 숫자로 -90정도 되는 고난중에 살고 있습니다.
*김재순
남편이 사업장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그일에 시간을 많이 뺏겨 가지고 수업도 제대로 못들었어요.-70
가장 힘들었던때는 남편하고 결혼하면서 지금이 가장힘든데 남편이 하고 싶다고 우기면서 시업을 시작했다
나이도 있기때문에 감당할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이름으로 사업자를 내서 하고 싶다고
계속 우기는 바람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괴정이 지금 너무 힘들어요,-70
2019년도 우리들 교회왔는데 그 해에 술 먹고 자기의견이 관철이 안된다면서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었지요
자기의견을 무시한다고 난동을 피워서 아들이 말리면서 경찰이 오고 그때좀 힘들었어요.-95
아들이 나서서 이혼하라고 했었어요.
*손금순
전라도 정읍에서 부모님이 낳지않으려고 하다 태어나게됨.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서 항상외롭고 슬펐다.
19세에 은행에 취업+90 예수님 믿게됨 , 행복지수 +50, 24살 부모님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서 +50, 25살첬째딸 태어남 +90
44세 친정 부모님의극심한 차별대우, 아빠 돌아가시면서 부모님의 마음은 딸은 없다! 하면서아들들 한테만 상속해줌.
저하고 언니한테 조금만 주라고 하다 엄마와다툼(-80)
45세 우리들 교회왔다, 남편하고 싸웠는데 ,시댁하고의 관계가 항상 부모는 1순위, 다른사람 2순위. 나와자녀3순위였다.
나는 항상 마지막 이었다.
싸움을 계속 했고 , 작년에 야간절도 사건으로 경찰에 전화가 오면서 사업하면서 형사, 민사소송까지 잤엇다.
남편이 올해 목자가 되면서 달라질 줄알았는데 별로 달라진게 없음에 그때가 가장힘든시간 (-99-100)2021년 이었다
지금은 말씀듣고 큐티하면서 해석받고 내죄 보면서가고있습니다.
*이정희
저는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 3학년때 대전으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 아버지가 취직을 하셨는데 일하시다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고
부모님은 나이도 믾으셨고 고생을 많이 하신 옛날분이신데 어머니가 치매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을 많이 나가시면서 그땐 참 힘들었어요, 행복지수가 낮았어요.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해서도 힘들었어요,
그런 가운데 제 위로 언니둘이 있는데 언니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어요,
애들 3명을 키우면서 정신없이 보냈어요,
힘든상황이었고 때로는 자녀세명을 키우다보니 즐겁기도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남편이 약간 언어장애가 있었는데
머리는좋고 실력도 있었는데 사회생활 직장생활 꾸준히 못하니까 집에 있는시간이 굉장히 길죠~~~~
그래서 아이들한테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줬던 것 같아요.
행복지수가 -60~70 이었던것 같아요 그 시기가 20년이상 계속되면서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애들이 성장하면서 힘든 상처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교회로 인도함 받았죠,
그전에 믿음생활 했지만 이렇게 말씀을 따라서 하지않고 했었는데 , 실질적인 고난앞에서 우리들교회 목자님이
부동산 하셨는데 그목자님의 전도로 제가 죽게 되니까 ,우리들교회 와서 첫날부터 목사님 설교 말씀에 은혜가 되고 들렸어요~
직분에 상관없이 오픈을 해가면서 강요하지않고 하는게 애들로 인한 아픔과 고난때문에 와서 하나되지 못했던
님편이랑 하나되어서 4년차 5년차되는데요,
같이예배드리고 목장에 참석하는 지금의 행복 지수가 내 삶에서 소망되고 하는게 50~60%되어서 지금이 가장행복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