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해 집사님
4살에 부모님 이혼으로 친척 집에 맡겨져 눈칫밥으로 살다가 8살부터 엄마와 살게 되었는데 일하는 엄마로 부재중이셨다. 그래서 늘 외롭고 죽고 싶다를 생각하며 속으로는 우울로, 겉으로는 자존심 쎈 대장부로 살았다. 성악을 시작함으로 어려운 형편에 장학생으로 학업을 배우며 강한 척의 가면을 쓰고 찬양 사역, 신인 성악가로 승승장구 하였다. 결혼하여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 였는데 불륜으로 낙태, 임신으로 혼외자를 갖게 되어 최악의 은둔 생활과 미혼모의 삶을 살게 되었다. 아이 6살 때 속하게 된 교회에서 공동체를 경험하며 즐겁게 지냈지만 삶을 오픈한 것으로 인해 이상한 사람이 되어 교회와 아이의 유치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지인의 간증과 목사님 저서를 통해 우리들 교회를 알게 되었고, 김양재 목사님이 동네 교회에 초청 목사님으로 오셨을 때 룻기서 말씀을 듣게 됨으로 아이와 친정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친정집과 우리들 교회가 가까워 출석하게 되었고 나와 친정엄마, 딸이 함께 양육 받고 훈련 받으며 주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성명원 집사님
친정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죽을 것 같은 삶을 살다가 대학과 직장 생활을 통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였고 내 맘대로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딸, 아들을 낳고 직장 다니며 살던 중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직장 상사의 인도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도저히 일할 수 없는 감정과 집안의 상황으로 사직을 결정하게 되었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교회에 등록하여 다니게 되면서 목장과 말씀에 즐거웠고 등록 후 3년간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다가 아들의 틱과 경계성 ADHD 진단을 받음으로 놀라게 되었다. ADHD인이 많은 우리들 교회라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게 되고, 아이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래프를 그리고 보니 나의 가장 큰 기쁨의 때가 내 맘대로 산 시기이고 교회 등록 이후의 삶이 아니 였음을 보게 된다.
이지수 집사님
만성 우울증이라 감정이 100점까지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일본에서 아빠가 주재원으로 일하실 때 살았던 기억이 좋았다. 엄한 부모님으로 인해 나머지 생활은 보통이었다. 사춘기도 없었고 눌려왔기에 반항을 못했다. 부모님 말 잘 듣고 살다가 결혼을 탈출구로 삼아서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즐거움이 50점 정도다.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춘기를 겪지 않아서 첫째 낳고 우울증 약 먹기 시작했고, 둘째 낳고 외도 하여 6년 동안 지내다가 지금 목장 나가면서 조금 회복 단계에 있다.

이현정 집사님
3녀 1남 중 장녀다. 아빠가 공무원이셨고 함께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전업주부인 엄마는 혼자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으셨기에 우울해 하셨다. 엄마의 상태가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고 이기려는 노력을 많이 하신 엄마가 학원을 많이 보내주셨지만, 내 생각과 결정권이 없는 우울한 유년기였다. 아빠가 서울대, 연대, 이대, 고대 외에는 대학으로 인정하지 않으셨기에 대학은 4개 외엔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고 우울한 재수의 과정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즐거움이 생겼다. 기복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정죄도 많이 하며 살았다. 입사하여 바쁘게 살던 중 남동생의 조현병이 발병했고, 자살 시도를 막기 위해 온 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자는 시기가 있었다. 이때 나는 점점 회사에서 말수도 줄고 인생이 망하였다는 생각만 들었다. 엄마는 계속 기도하셨고 조금씩 남동생의 증상이 좋아지기 시작해서 2년 만에 많이 회복 되었다. 결혼 후 그래프가 상승 되는데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부모님이시니 결혼 자금에 대한 가치관이 자유로운 외국인과 결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 우상이 심한 나인데 남편이 무직으로 있으니 싸움이 잦았고, 가게를 오픈 한 후에는 남편이 언어가 서툴러 수입을 내기 어려웠다. 나 역시 육아 휴직으로 물질적인 어려움이 더하였다. 상담을 받고 우리들 교회 오게 되면서 조금씩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임지은 집사님
모태신앙이다. 부모님은 장로님, 권사님이셨고 나는 당연스럽게 열심히 반주하며 섬겼다. IMF때 망하는 사건으로 형편이 어려워져 대학 시절 유학 준비 포기하고 내가 돈을 벌어서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 내가 돈 벌어서 결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시댁부모님도 장로님, 권사님이셨다. 우연히 받은 소개 였지만 대학 시절 같은 과 친구 였기에 의심 없이 잘 결혼 했다고 생각하였다. 늦은 나이 35세에 결혼하여 3개월 후 임신으로 아이를 낳고 잘 지내고 있었다. 신랑은 경제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학원 강사와 대학 강의로 돈 버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신랑이 돈을 안 벌어도 괜찮다 여겨졌다. 아이가 3살 때 결혼 전 앓았던 신랑의 암이 재발하여 40세에 사별을 하였다. 완치할 수 없었던 병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남편과 사이가 좋았기에 슬프지만 딸과 잘 살아가고 있다.
김다정 집사님
18세까지는 큰 결핍 없이 그 나이다운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의 외도사건이 찾아오면서 부모님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온 가족이 교회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암 사건이 찾아오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데 큰아이 임신 때 어머니가 소천하시게 되고 산후 우울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워킹맘으로 힘겹게 지내다 결국 퇴사했지만 내 삶이 해석되지 않아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성경 통독과 큐티를 하며 구름이 걷히고 광명을 만났다. 큰아이 키울 때 힘든 기억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주님께 내어드리는 순종 하니 작년에 둘째를 출산하였고 초등 1학년과 8개월 된 딸 둘을 양육하고 있다.
남지현 집사님
약간의 우울감은 있었지만 그런데로 잘 지냈었다. 26살에 엄마가 우울증 약을 드시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고 깊은 무기력과 우울감이 있던 차에 친오빠의 전도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나름 친정 아빠의 고난이 있었기에 말씀이 잘 들렸고 청년부 활동을 열심히 하며 잘 지내게 되었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31살에 첫 아이를 7개월에 조산하게 되면서 아이의 상태도 안좋았고 깊은 우울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동체의 기도와 말씀으로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말씀이 안들리기 시작하면서 붙어만 있는 삶을 살았다. 36살에 계획에 없던 셋째가 생기고 또 조산기로 계속 누워있던 중에 7~8개월차 조산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두 달여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고 잘 퇴원했지만 37살 봄이 되던 날에 갑상선암을 발견하게 되었고 막바지 여름에 암을 수술했다. 면역이 워낙 약하고 체력적 힘겨워 아이들 양육에 많이 힘들다.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지 않은 환경에 우울감이 심했고 이제 우울감에서 나오려는 차에 부모 학교를 신청하게 되었는데 코로나로 육체의 고통과 육아에 메이게 되었다.
이은아 집사님
비교적 행복한 가정에서 아빠 엄마 장녀로 잘 지냈는데 자존감이 너무 낮고 삶의 이유를 찾질 못해 허무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다. 크리스찬 남편을 만나 믿음 생활도 시작하게 되었고 두 아들 육아로 10여년 주부로만 지내다가 캐나다를 남편의 권유로 가게 되면서 자존감은 바닥, 육아에만 홀로 해야하는 현실이 버거워 우울증으로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한국으로와서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많이 좋아졌고 자신감도 조금씩 회복해서 8세까지 야뇨증 앓던 둘째와 틱증세가 보이던 첫째도 내가 회복되며 좋아졌다. 아직도 부족하고 미숙한 성격탓에 아이들이 상처 받을 때가 많아 부모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