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 조원 : 손미나 조장님, 김지혜, 박주미, 정선우, 박은영, 고한나, 이호정, 김상은.
1. 손미나 조장님:태어나서 백일 좀 지나 아빠가 큰사고로 다리를 다치셨다. 병원에서 5살 될때까지 엄마랑 아빠랑 셋이 살았다. 언니 둘이 있었지만 아빠가 퇴원후에야 처음 언니들을 만날수 있었다.나이차가 있다보니 언니둘은 서로 살가운데 죽으나사나 엄마아빠랑 살았다는 거 하나로 시기와 질투를 받았는데 엄마가 사랑이 많으셔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것 같다.엄마따라 교횔 다닌것도 저 혼자뿐이다.아빠가 불구자인것이 부끄러워 친구가 없었지만 그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떨어지게 됐고 겨우 2지망학교로 진학할수 있었다.대학을 진학하고 나서 교회를 떠났고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20살때 소개팅으로 만난 아이랑 사귀다 24살때 결혼했다.25살에 아들을 낳고 28살에 딸을 낳았다.시댁이 전기사업을 하고 있어 부족함없이 10년쯤 살다 웬만큼 아이들이 컸으니 우울해하는 저를 생각해서 아버님이 장사해보라며 가게를 차려주셨는데 거기서 대시하는 남자와 바람이 나고 말았다.2년 가까이 넘게 속이다 들켜 이혼을 했다. 외도남과 3년 동거하다 뱃속에 아이도 있었지만 낙태하고 헤어졌다. 혼자 몇년 살다 한참 아이러브스쿨이 유행일때 동창을 만났는데 두아이를 둔 이혼남과 사귀게되고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그러다 43에 아이를 낳게 돼 출생신고를 하는데 애아빠가 아직 이혼이 안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역삼동에서 크게 제 명의로 한우식당을 했는데 더 욕심내서 벌려 하다 망하게됐고그 빚더미가 다 내게로 왔다.
애아빠는 돈벌 생각도 않고 생활비를 안주니 7개월인 아이랑 다닐만한 직장을 알아보다싱글시절 룸메였던 언니가 원장님으로 계신 어린이집에 취직했다.원장님이 우리들교회를 다니셔서 알게 되었고 거기서 큐티도 처음 접했다. 교회 목자님이 선생님으로 오시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인도받아 전도되고 하나님은 나의 손을 놓지않고 붙잡고 계셨음을 깨닫고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목장에서 나의 치부를 부끄럽지만 하나하나 끄집어낼 용기가 났고 그러다 아이아빠 집에서 나오라는 처방을 받게 되었다.6개월을 기도로 준비하고 몇가지 안되는 살림을 챙겨 나온 날 말씀은 마가복음 5장 혈루증 앓은 여인이 예수님옷자락 손을 대 구원얻은 분문이었다그뒤로 여러사건이 있긴했지만 1대1양육,양육교사 받고 살아나게 되었다. 방세개짜리 매임임대주택 당첨도 되고 기초수급혜택도 받게하시는 은혜도 주셨다.저의 죄보다도 정말 낮은 고난으로 다뤄가심에 감사할따름이다. 근데 요즘 아이가 초5가 되되니 더 다루기가 힘에 부치고 원래 ADHD약을 4년간 먹었는데 약을 거부한지 1년정도 되었다.맨날 다투고 혈기내고 분만 내게 되는 게 자책이 많이 들고 그러다 본이 안되는 저때문에 하나님과도 멀어질까봐 두려워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되었다.
2. 김지혜 :친할아버지가 목사님인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신앙으로 큰 문제 없이 신앙을 유지하며 자라온 어린 시절이였다. 18살 무렵 아버지가 정치에 빠지셔서 선거에 출마하시고 경제적인 타격이 있었다.그 후부터 사업이 어려워졌다. 60평대의 집에서 방1에 아주 작은 거실이 있는 원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아버지는 회사에서 생활하며 2년동안 함께 살지 못했다.사춘기였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던 공부도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혹시나 친구들이 우리집 망한 사실을 알게될까 노심초사하며 졸업날만을 기다렸다. 이후 사업이 조금씩 풀리고 회사가 있던 공간에 공간을 쪼개어 집으로 사용하게 되었다씻는 공간은 있었지만 주거용이 아니였기에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 공용 화장실을 써야 했다. 그럼에도 전집보다 훨씬 넓었고 졸업을 하니 친구들의 시선에서 멀어짐에 행복했다.가족이 다 함께 살게 되었고 그 과정중에 다행히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았던거 같다. 아버지는 늘 긍정적이고 현명하고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있는것 같다.20대엔 딱히 정착한 교회가 없어서 매주 주일만 섬기다 그마저도 다니지 않게 되자 주님과 멀어졌다. 그 후 쭉 불신 교제를 하게 되고 죄인지도 모른채불신결혼까지 하게 되었다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쌍각자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다행히 대한민국에서 그 분야에 가장 명의인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주님이 도와주신것인지 교수님덕분에 초기 입원생활을 통해 출혈을 잡고 아이를 지켜 나갈 수 있었다.14주에 경부를 묶는 더블맥수술을 하게 되고 38주까지 누워지냈다. 아기가 너무 작은 자궁이였기에 역아로 있었는데 제왕절개로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출산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근육이 다빠진 다리와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 너무 큰 우울감을 가져왔다
아이는 돌봐야하고 멀리있는 양가 도움이 없이 이를 악물고 아이를 키웠던거 같다. 워낙 예민하고 입이 짧은 아이였는데 원래 한 열심하는 나는 하루종일 아이에게 억지로 웃으며 최선을 다하고 밤이 되면 좌절했고 많이 울었다내 마음의 울화는 깊어졌다. 아기 8개월쯤 언니의 권유로 목장에 나가게 되었고 목자님 목원분들의 도움으로 점차 정착하게 되었다. 눈물도 흘리고 웃고 힘든 시절이 있었지만 버틸만큼만 주님이 허락하신거 같고 교회에 다시 나가니 불신결혼의 고난도 시작되었다.교회에 데려다주면서 주차 문제로 매주 주일마다 남편과 다투고 목사님이 이상하다며 비난하는 남편의 혈기를 받아내며 울며 돌아왔다. 목장에서 조금씩 내 죄를 깨우치고 모든것을 남편탓만 했던 나를 돌아보게 하셨다.아이가 5세쯤 유치원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보다 젊은 엄마가 아직도 집을 안사고 뭐했냐는비아냥에 너무 큰 충격이였던 사건이 있었는데 기분이 정말 나빴지만 청약만 기다리다가 이게 뭐하는짓인가 싶었다나는 늘 집을 사자 라는 입장이였고남편은 청약을 포기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출은 막혀가고 집값이 너무 오르는것이 두려워 급히 기간도 다 안채운 전세를 빼고 오로지 내 욕심으로 지금의 첫 집을 구매하게 되었다.그때 목장에 알리지 않고 진행을 했었는데 그것도 내 자격지심이 있어서 말을 안했던거 같다 모든 집사님들은 다 자가의 집이 있었고다들 고난없이 좋은 상급지에 살고 있었기에 나에게 늘 내 기준보다 높은 집을 추천해줬다근데 저지르고 나니 견딜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때 대출 규제가 또 막힐까봐 부랴부랴 기도를 요청하고 내가 저지른 모든 상황을 회개했던거 같다다행히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되었고남편과 매일 집때문에 싸웠는데이사하고 집값이 계속 오르니 이제는 내 말을 듣고 행동한것에 대해 고맙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도 내가 내 스스로 행한 행동덕에 집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서 그래도 불쌍히 여겨주셔서 허락하신 사건임이 깨달아졌다그 후 이사에대한 스트레스가 없음에 너무 감사하고 있다 여전히 기질이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고 불신자인 남편에게 정기적으로 밟히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3. 박주미 :유년시절 : 나쁜경험(70) 5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엄마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항상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좋은기억(40) 셋딸중 막내인 나는 할머니와 아빠에 사랑을 많이 받으면 잘 자랐다. 완도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였는데도 동네에 교회가 있어서 중학교까지 교회 안에서 자랐다.
청소년기 : 나쁜경험(60) 중학교 2학년때 새어머니가 집에 오셨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새어머니와 싸우고 그날로 집을 나왔다.
같은 동네에 사시던 할머니집으로 가서 그날부터 할머니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를 가면서 교회도 안다니게 되고 성적도 떨어지고 세상에서 방황이 시작되었다.
청년기: 좋은경험 (90)대학을 원하는 대학에 못가게되어 자퇴하고 재수해서 다시 대학에 갔지만 취업도 안되고 임용고시 시험준비도 너무 힘들어 다시 교회에 가게 되었다.
졸업후 수원으로 와서 수원 온누리교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2007년 일본 아웃리치 저녁집회에서 성령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다.
그후 성경을 보는데 출애굽말씀에 너는 내백성이 되고 나는 너에 하나님이라는 말씀으로 나에 출애굽을 확증해주셨다.
하지만예수님의 십자가는 몰랐기에 세상 성공과 높아짐을 위해 열심히 나의 성을 쌓다 모두 실패하고 불신결혼이라는 가장 큰 죄를 짓게 되었다.
나쁜경험(80)2008년 두번째 아웃리치에서 돌아오는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중학교때 집을 나온 후 아버지와 관계회복을 하지 못했는데 막내딸이 너무 열심히 교회다녀서 돌아가시지 한달 전 정도부터 교회에 나가셨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있으셨는지는 알수 없어 지금까지 마음이 무겁다. 이제 진짜 고아가 되었다는 마음에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결혼후 : 나쁜경험 (50)불신 결혼으로 세상으로 거의 떠내려가 주일예배만 겨우드리며 10년을 보내다 2020년 남편이 사표를 내고 사업을 한다고했는데 코로나로 다 안되었다.
세상에 큰용사로 키우고 싶었던 큰아이 친구 엄마와의 갈등 사건까지 왔다. 결국 집을 전세주고 그 자금으로 남편이 편의점을 인수하게 되었고 그 근처 용인으로 이사까지 오게 되었다
좋은경험(100) 2020년에 속한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때 지인이 우리들교회 새벽설교 링크를 보내주어 교육과 함께 듣고 우리들 교회 김양재목사님 설교와 책을 보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십자가에 죽어지는 삶을 살기 위해 매일 큐티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지원동기 : 이제 내가 만난 예수님을 아이들에거 잘 전해주고 싶은데 아직 디테일한 방법을 몰라 부모학교를 통해 배우고 싶어서
4.정선우 :1남2녀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각각 다른 지역으로 가서 받은 스트레스 정도 있었는데 곧 잘 적응하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냈습니다.고등학교때 대입준비를 하면서 힘든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성취감이 있었고 대입후 교내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나름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해외 어학연수와 봉사활동으로 휴학을 하게 되서 어려운 전공수업을 친구없이 혼자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결국 졸업을 했고 곧 취업을 했습니다.취업후 사내커플인 남편과 결혼하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결혼과 함께 계속 아래로 그래프가 하강했네요. 결혼후 임신한 아기를 5~6개월쯤 사산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시부모님과의 갈등이 계속되었습니다.저는 계속되는 유산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목회자이신 시부모님은 사역자의 길을 저희 가정에 계속 요구하셨습니다. 어쨌든 부모님께 신앙의 독립을 선언하며 그 관계가 완전 단절되었다가 남편의 주재원파견으로 외국에서 아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하였고 30주 조산으로 이른둥이를 출산했습니다.아이들을 출산하면서 그 동안의 슬픔과 수치가 회복되었지만, 셋째를 출산하면서 아이들의 퇴행과 틱 등으로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아이들이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고 울기때문에 달래고 비위맞추며 사는것이 넘 힘든 요즘 부모교육이 절실히 필요하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5. 박은영 :저는 1남1녀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배체트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병원치료 목적으로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고 6학년 때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는 집을 나갔습니다.나라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으로 고등학교까지 나올 수 있었고 고3 때 취업을 하고 큰돈을 벌게되니 돈과 세상이 주는 쾌락에 빠져 살았습니다.21살 1월 출근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수술 없이 회복했지만 합의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고 더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화려해 보였지만 속이 빈 공허함이 있었고 부모에게 받지못한 애정결핍을 사람들로 채우고자 술과 음란에 빠져살았습니다.20대 후반 고등학교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를 버리고 간 엄마가 남겨준 예수씨가 있었기에 거부감없이 재미삼아 간 예배였는데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고 제 삶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가족을 돌아보게 되고 집나간 엄마와 재회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저의 모습에 반해 예수님 믿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돈 잘 벌고 교회 잘 다녀줄 것 같아서 편하게 살고싶은 마음에 결혼을 하였습니다.결혼 후 남편은 매일 술 마시고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으며 아이를 임신중일 때 시아버님이 자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일로 힘들어하던 남편이 도박을 하고 회사도 그만두고 빚만 남는 사건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가족과 교회에 터놓고 나누지 못하니 결국 교회를 떠니고 말씀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재기를 하겠다고 뛰어든 선물투자가 사기도 드러나 재판을 받게 되었고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지인들의 빚까지 떠 안게 되었습니다.남편월급에 가압류가 걸리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저의 카드로 생활하게 되었고 영업일을 하는 남편의 일이 계속 어려줘지자 카드빚 독촉에 삶이 괴로웠습니다.그 쯤 아빠가 치매판정을 받게되고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과 관계가 깨지는 사건들로 매일 괴로워 다 포기하고 죽고싶은 생각과 우울증이 왔습니다.고등학교 친구에게 나누었더니 우리들교회로 인도해주었고 말씀과 목장을 통해 저의 죄와 저를 오래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지금은 남편과 한 말씀 들으며 목장에 잘 매어가고 있습니다. 재혼가정에서 자란 남편과 저는 아들을 대할 때 늘 어렵고 부족함을 느낍니다.부모학교를 통해 말씀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영육이 건강한 본이 되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6.고한나 :저는 모태신앙으로 목사님인 아버지와 어머님 밑에서 자랐습니다.매일 새벽마다 기도해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신앙적으로도 잘 크고 있다고 자부하며 청소년기때 만성 중이염으로 4번 수술하는 상황에서도 기도하며 이겨냈었습니다.부모님이 목회사역으로 인해 다투시긴 했지만 아빠가 무섭지만 그래도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면 자란것 같습니다.그러다 29살에 남편을 만나고 결혼하면서 부모님은 목회를 정리하시고 허한 마음에 이단 교회에 들어가셨습니다. 처음엔 이단인지도 모르고 부모님께서 뜻이 다 있으셔서 간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러다가 30살에 첫아이를 낳고 5개월의 육아휴직후 복직하며 바쁘게 지내는 중에 아이의 언어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인지하여 큰아이 14개월 경에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옆에 있어주지 못하여 느렸다고 생각했지만 27개월 경에 센터에서 자폐 스펙트럼일수도 있다는 소식에 대학병원에 검사를 하러 다녔습니다.둘째 아이를 임신하던 중에 들은 소식이라 충격도 컸지만 자폐가 아니라는 결과에 안심하며 둘째를 출산하고 둘째가 50일때부터 센터를 쫓아 다녔습니다.
센터를 다니면서 5살때부터 문장으로 말을 하며 대화가 가능하니 이제는 괜찮겠거니 안심도 되었습니다.
둘째아이가 15개월 경에 남편의 월급이 몇달 넘게 나오지 않으면서 생활이 힘들어지니 재취업을 하게 되면서 센터, 직장, 육아에 지쳐서 허우적 대며 살았습니다.2020년에 큰아이가 종합검사를 통해 ADHD로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게 되었고,그시기에 부모님이 이단교회 사역자로 활동을 하시면서 이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그러던중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시던 동생의 시아버님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수 있다며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단이라는게 너무 확실해지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원망이 되었습니다. 그러고서 부모님과 연을 끊고 지내게 되었습니다.그러던 중에 2020년 7월에 하원 도우미의 코로나 확진자 접촉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남편에게 월급도 안나오니 집에서 육아를 해달라고 요청하여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그런데 남편이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유년시절과 비슷한 아이를 보며 자신 때문에 큰아이가 ADHD인것 같다는 죄책감도 가졌습니다.환청과 망상으로 갑자기 작년 5월에 베란다에서 뛰러 내리려는 충동을 보여 경찰서에 신고후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약이 잘 들어서 현재는 급성 우울증으로 인한 것으로 꾸준히 지켜보며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합니다.남편의 사건으로 더이상은 내가 버틸 힘도 의지할 대상도 없어지니 어떻게 살아야하나 매일밤을 울면서 보냈습니다.잠이 오지 않아 매일밤 여기저기 설교를 듣던 중에 김양재 목사님 말씀에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말씀에 내가 얼마나 하나님 자리에 나를 놓고 열심내며 살아왔는지 행복이 목적으로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그후에 남편의 지인 추천으로 우리들 교회 등록을 권유 받고 2021년 6월에 등록하였습니다.
날마다 큐티 말씀과 예배를 사수하며 조금씩 부부관계도 나아지고 살아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데 지혜가 부족하여 부모학교에 지원하게되었습니다.
7. 이호정 :저는 집성촌인 시골에서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불신가정에서 컷고, 엄마에게만 귄위적인 아빠와 저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엄마 밑에서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 1지망에서 떨어지고 뺑그르르 돌아 신생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집에서 두시간 걸리는 통학거리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에 가서 우울증이 올 거 같았고 결국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집 가까운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17살 때 처음 두려움과 뭔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됐고 그렇게 저는... 공부랑은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들과 놀기에 여념이 없었고 연애 하기에 바빴습니다( 제일 후회 되는 부분)그렇게 수능을 망치고 지방대에 진학했지만 슬프지 않았습니다. 편입 하면 된다는 계획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편입 공부를 시작했고 2년만에 수도권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노오력 했습니다.26살부터 노력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맛보고 좌절 아닌 좌절을 했지만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계속 도전했습니다. 대기업에 문만 두드리며 ㄱㅖ속 낙방 28살에는 마음이 급해 대기업 ㄱㅖ약직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저는 자존감이.바닥을 쳤고 정직원보다 스펙의 부족함이 없는 내가 계약직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단순한 업무나 하고 앉아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했고 비참했습니다.당시에 지금 남편과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나이는 30이 다 되어가고 계약은 끝나가고 운 좋게 좋은 부서로 이동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업자가 됐고 이제는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자는 마음으로 30살에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습니다.하지만 명예와 학벌 우상이 있던 나에게 그.곳은 너무 초라해 보였고 어찌 저찌 30살 12월에 신랑이랑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 인 줄 알았습니다.신혼생활은 참...임신 기간 동안 입덧이.심해서 일도 그만두고 집에서 갇혀 있었는데 당시에 신랑이 영업직이어서 급여도 너무 적었고 참 가난했습니다 . 그치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줄 알고 내 힘으로 이겨내고자 했고뱃속에 애기가 만삭일 때 우리들교회에.등록을 하고 목장에.나오라는 권면에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안 나가고 뻐팅기다가 첫애 낳고 목자님에게 전화가 너무 자주 와서 큰애 26개월쯤 여자 목장에 처음 나갔습니다.34살 처음 나간 목장에서 지체들의 고난을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안 좋았고 하지만 거기까지 내 죄는 못봤습니다. 그러다가 일대일 양육을 하고 나니까 엄마가 남동생을 혼낼 때 방관하고 있던 내가 가해자인걸 알게 됐고 회개하며 남동생에게 미안했다고 사과도 할 수 있었습니다.35살 일대일 양육을 마치고 터키 주재원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친정식구랑도 떨어지고 목장도 못나가서 내가 가는 곳이 광야라고 생각했는데....터키에서의 생활은 물질적 정서적으로 모든 것이.안정 됐고 내 생에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터키에서의.신앙 생활이 내 생에 제일 모범생적인 신앙생활이었습니다.그리고 둘째를.임신해서 출산하려고 들어 온 한국. 하나님의.은혜로 집을 사게 됐고 인테리어를 해야하는데 어머니가 자기네.집은 이제 돈이 없다고 하는데 돈우상이.있는 저는 시댁의 재력도 우상이었는데 재력이 없다니..너무 허탈했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둘째는.아토피에 예민한.기질인 아이라서 밤에는 세시간에 한번씩 깨서 울고 낮에도 안 자고 울고 저는 멘탈도 약한데 코로나도 오고 집에서 가정보육 하는 와중에 아빠는 암 4기.진단을 받으시고 내 인생 최악의.시기가 옵니다. 아빠가 아프시니까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힘들고 둘째는 여전히.치대고 코로나때문에 첫째는 집에.있고 정말 끔찍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제가 아들들에게 하는 행동이 우리엄마가 남동생에게 했듯 하대하고 멸시 비난하는 말투와 행동을 하는 저를 보고 정신 차리자 싶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8. 김상은
삶선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