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기옥 집사님
부모님과의 추억?이라고 할만한것이 없을만큼 부모님과의 애착관계가 없이 자랐던거같습니다 ㆍ그래서 애를 낳으면 나는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가 되어야지 결심했습니다ᆢ
그래서 첫아이 딸을 낳고 정말 저의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민감하게 키웠습니다ᆢ밤에 아이 입에서 우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기도 전에ᆢ바로 깨서 엎고 안고 젖물리고 애가 돌이지날때까지 젖을 먹이고 있었습니다ᆢ
그러다 둘째로 아들을 낳았습니다ᆢ친정엄마가 아들을 못낳으셔서 아버지의 바람과 구박에 힘드셔하는걸 보아왔기에 제속에 아들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첫째딸은 제게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모든 정성을 아들에게 쏟았습니다 큰딸은 아직도 엄마의 사랑이란게 뭔지 알다가도 모를듯 제게 헷갈려 할만큼 마음의 상처가 큽니다ᆢ
그리고 늦게 막둥이가 왔습니다 나이도있고 마음도 힘들때 키우게된 막둥이는 이쁘고 좋으면서도 나의 자유를 막는 존재같아서 애기때부터 어린이집등에 돌리면서 안정되게 키우지 못해서ᆢ아이가 중3인데도 여전히 엄마의 애정을 간구하는 행동을 합니다ᆢ그때마다 다큰녀석이 왜그러냐며 그러지말라고 하며 아이를 밀쳐내곤했는데ᆢ이번주 강의듣고 뱃속에서부터 거절감과 위기를 느꼈을 아이가 결핍이 있는건 당연하다는걸 알았습니다ᆢ비록 중3이지만 아이를 애기처럼 받아줘야겠다는걸 알았습니다ᆢ
세상나이와 겉모습이 아닌 아이의 결핍을 제가 이제 인정하고 사명으로 잘 돌볼수있기를 기도합니다
김동녀 집사
첫아이 때 아이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 하고 함께 있어주고 함께 놀아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믿음이 없이 성공우상에 사로잡혀했던 양육이라 나중에 돌아보니 아이에게 맞춰주는 양육이 아니라 내 생각이 중심이 되어 했던 부정적이고 권위적이며 비판적인 양육이었던 거 같습니다.
이후 결혼 8년만에 남편의 가출로 아이 셋을 혼자 키워야하는 상황이 되어 영,육간 많이 힘들어 아이들의 필요와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둔감한 엄마였던 거 같습니다.환경적 요인으로 우울했었기에 제가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양육하고 육적으로만 채워줄려고 노력했던 거 같습니다.
남편이 부재중이고 환경의 힘듬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큰 아이한테 쏟아내던 거 같고 또 남편에게 향한 기대가 그 아이에게 가서 아이가 해낼 수 있는 기대보다, 아이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감정보다 더 큰 걸 요구해서 부담을 주었던 거 같습니다.
공동체에 속하여 가면서 큰 아들한테 엄마가 그 때는 양육 방법도 모르고 아빠에 대한 기대를 너에게 했고 환경의 힘듬을 너에게 쏟아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여러번 해서 조금은 해소가 된 거 같습니다.
둘째 아들과 셋째 딸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때 공동체에와서 말씀으로 양육을 그래도 많이 받았고,공동체의 사랑을 많이 받아 비교적 건강하게 자란 거 같습니다.저도 공동체의 처방대로 반응하려고 하여서 부재중 아빠의 결손은 있겠지만 아이들이 환경을, 부모를 받아들이게 된 거 같습니다.
큰 애는 결혼을 했고 둘째 아들과 딸하고 살고 있는데 아이들이 다 커서 자기 방에 각자 들어가서 생활을 주로 하지만 아이들과 식사할 때 만큼은 대화를 많이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좀 더 요구가 많지만 목자님이 아이들이 잘 자랐다고 하시니 제가 아이들에게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고, 딸한테 청년부 일대일 양육을 신청하라 해서 했고 10 주 무사히 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얼굴표정이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제 청년의 나이라 말해도 안된다는 것을 아니혼자 기도하고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자가 지금 하나있고 하나는 임신한 상태인데 손자들하고 새큐하고 동화책 읽어주는 날이 오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박재선 A 조장님
돈과 시간을 잘 써야한단고 강조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닮아 삶을 내 신념으로 의롭게 경영하였는데
남편의 부도 로 이혼재결합은 결국 돈 때문이었음이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일때문에 방목한 아들에게서 남편의 모습이 나타나는 요즘 모습은 유라굴라광풍같았습니다
공과금 연체 용지를 보며 한숨이 나왔고 돈을
먼저 급하고 충동적으로 쓰는 다큰 아들의 모습에 내한계상황을 느꼈습니다
어릴적 어디로튈줄모르는 호기심많은 아이를 눌러고 경직되게하였던 어긋난 양육태도가 아들은 엄마가 없는곳에서는 거침없이 본능을 절제 못하고 하고싶은것을 즉흥적으로 하였던것 같습니다.
3주에 한번정도 컷트해주러가면서 집도 치워주고 급하게 돌아 오는데 잔소리는 안하지만 여전히 환경에만 민감하고 구원을 위한 내 마음을 주께 드리지 못하였음을 깨닫습니다
아들의 나쁜 습관들을 성령의 문제로 여기고
근원적인 애착의 문제로 풀고 급하고 바쁜 모습을 회개합니다.
ㅡ 아들집에갈때 쫒기는모습 이 아니라 평안한 시간과 모습으로 다음 스케줄을 여유롭게 하겠습니다
이수정 집사님
무능한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사이에서 자란저는 남자를 무시하고 억척같은 면이 많아 이혼후 혼자 아이키우며 아빠역할까지 하려니 아이가 부담스러워하고 생각이나 감정을 풀어서 얘기하지 못하니 아이도 꾹참기만하고 참다가 울보가되는 소통을 못하는관계로 서로 우울증으로인한피해가 컸지만 정신의학과에서 약 치료받으며 큐티하니 중3인 딸이 며칠전 '나는 요즘 행복해'라는 기적의 말을 듣게되었습니다.
적용하기ㅡ약을 꾸준히먹으며 말할 때 잘 들어주고 들은 말을 따라공감해주겠습니다.
신진희 집사님
저는 유아기 때 저를 무조건 사랑해주시는 친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랐습니다. 엄마는 그 때부터 장사를 하시고 가끔 저를 보러 오셨는데 엄마에게 제가 고모라 불렀다고 합니다.
제 어린시절 내내 부부갈등이 계속 되었던 저희 부모님은 제가 초등6학년 때 이혼을 하시고 저는 엄마와 둘이 살며, 능력있는 엄마의 경제적 지원을 듬뿍 받고 지냈지만 아빠의 부재로 인한 결핍은 제 안에 늘 있었나 봅니다.
제 아이들을 양육하면서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고자 늘 아이들 곁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썼는데 제 힘과 열심으로 하다보니 어느덧 강하게 통제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제 안의 인정 중독과 경건주의로 아이들을 사춘기가 되어서는 오히려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
현재 24살 큰 아들은 교회를 떠나있고 18살 큰 딸은 정신과 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데 비행의 원인이 우울에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셋째 아이는 중3인데 교회를 떠나 있고 예배도 드리지 않습니다. 넷째 15살과 막내 9살만 겨우 예배와 큐티에 붙어있는 상태로 남겨두신 것이 되었습니다.
자녀들로 배신감을 느끼고 힘든 게 제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며 가려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부모학교까지 끌려(?) 왔습니다..
이순덕 집사님
저는 혼란된 애착관계 형성이었던것 같습니다.
출발부터가 엄마(선천적지적장애.조현병.오랜가출로 함께 살아본적이 없음) 아버지(무능한 박수무당8세때돌아가심) 환경이 이러다 보니 애착관계란것이 부모하고는 1도 형성이 안되어 엄마, 아버지란 단어가 참 어색합니다~
그나마 4살터울 작은오빠가 저의 보호자였기에 그나마 그 부분이 애착관계가 되었다면 되었는데, 제겐 오빠가 부모역할을 했기에. 저의 모든 의지대상이 되었었고, 점점 성인이 되어가면서부터는, 저를 8년동안 키워준 5촌당숙모가 연약한 남편을 지극히 섬기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고 자랐는데, 그것이 참 존경스럽게 보여서 저도 결혼을 하면 그렇게 해보리라 다짐하게 되었었고, 지인중에서는 친정부모(특히아버지)와 사이좋아 보이는 집사님을 모델로 삼고 그들이 자녀와 부모에게 하는것을 보고 저도 모방하며 자녀들을 양육했 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계상황이 많았었고 뒤죽박죽 일관성 없이 제 기분대로 두살터울 자녀들을 양육하다 보니, 잘못된 애착관계형성이 제 보호자였던 작은오빠의 성품을 많이 닮은 아들과 오버랩되서 의지대상을 심하게 삼게되어, 내 유일한 의지대상자 아들이 군입대하는 시점부터 이 모든것이 제게 감당이 안되는 한계상황으로 치다르게되니 거식증까지 걸리게 되었고, 이로인해서 남편도 딸도 내가 다 죽이겠구나 생각이 번쩍들어서 우리들교회로 오게되었고 또 이렇게 부모학교도 신청하는 수지맞은 인생이 되었 습니다.
그동안 무개념, 무질서로 인생을 살던 저이기에 51년동안 이 몸에밴 못된 악습들이 고쳐질것이라고 바라는것은 저의 욕심일 것입니다ㅠ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심히 패역한 저도 아내로 엄마로 허락하셨기에, 이미 자녀들이 장성했지만, 또 보육교사의 역할도 허락하셨기에, 구속사로 해석하여 제게 딱 맞게 허락해 주신 부모의 자리, 아내의 자리, 보육교사의 자리에서, 올바른 구속사 가치관으로 조금씩 적용하며 가보려고 합니다.
성영희 집사님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집착으로 저는 애착이 형성되지 않아 열등감이 많고 비교의식으로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저이기에 정말 교만한사람이였다. 야망과 자기계획으로 일중심으로 열심이 특심인 저이기에 22살부터 회사를 꾸리고 30세에 또 다른 회사를 운영하다 이석증으로 어지럼증때문에 일년을 집에 머물면서 신앙이 다시 회복되여 성경읽고 전도하고 더나아가 신학공부까지 하게 되었다.
고스란히 자녀에게 집착하고 저의 남편은 무관심하고 방치한데다가 저와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언어폭력까지 하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주니 자녀는 자존감이 없고 혼자고독으로 너무 긴 세월이 흐른것 같다.
지금에 와서 저의 자녀는 부모가 믿는 그 예수 나는 믿고 싶지 않다. 믿는 자들이 더 악하다. 어느 종교나 큰 차별이 없다. 다 사람이 만든것이다 라고 하며 신앙은 자유이니 강요하면 안된다고 한다.
이 모든 결과는 나의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고 회개가 됩니다.
중앙대 졸업후 순풍이듯 했지만 국적취득하면 미국에 가서 자기좋아하는 여자면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자녀가 어릴때부터 보모를 두어 아이를 돌보았다. 저는 낮에는 회사에 근무하고 밤에는 힘드니 아이를 재우느라 바빴다. 그렇게 방치한 아이가 6-10세때는 아빠가 한국에 돈벌러 갔으니 저만 아이와 함께 있으며 소통도 자주 하지 않고 또 방치 했다. 초등학교때 운동대회에 저의 자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책상에만 앉아 경직되여 머리도 들지 않고 로봇같이 앉아만 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겠지 하며 염두에 두지 않고 방치했다.
초등학교5학년때 전학하게되고 중학교올라가서 얼마 안되여 14세때 필리핀으로 유학하게 되고 고등학교는 다니지 못하고 있다가 미국으로 커뮤니티 칼리지에 유학가게 되였다. 2년이면 졸업인데 돈이 없으니 결국 또 일년만에 한국오게 되였다.
자녀가 한국에서 부모와 같이 있는게 지옥이고 숨막힌다고 러시아로 일년반동안 있게 되였다. 후에 한국에 와서 중앙대 4년 다 졸업하였지만 경영학은 쓸데없다고 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 배우겠다고 하다가 지금은 미국가고싶다고 계획한다. 거기서 마음드는분 있으면 결혼하고 미국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것이였다.
자녀가 자존감이 없고 열등감이 많은데다가 저를 닮아 허황된 꿈을 목표로 모험적인것을 추구하며 자기확신으로 자기생각한그데로 된다고 착각하고 현실을 회피하고 현실감각이 없다.
저도 공동체에 오기전에 그렇게 살아왔다. 사역을 10년 해왔지만 저의 삶은 공백이였다. 무능한 남편은 무시가 되고 나의 열심으로 뭔가 다이루었다고 착각하다 사역이 망하니 너무 원망이되고 좌절이 되여 힘들었는데 공동체에 와서 해석이 되고 객관적으로 저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저가 얼마나 교만하고 자기 중심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왔음을 회개가 되였다.
저의 아들이 똑 저의 성향과 같고 교만한것. 허황된것을 잡으려는 것들도 어쩌면 그대로 같다. 할말이 없다. 그저 자녀를 보고 회개하고 부부가 하나가 되여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님이 아들의 마음을 만져 언젠가는 돌아오게 된다는 처방이다.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이 됩니다.
저는목장의 처방으로 받아주고 기다려준다고생각을 했는데 정말 거리가 멀었다. 바로 복음을 앞에 세우지 않고 문제해결을 앞에 세운것이다.
이 광풍같은 사건 통해 복음을 멀리하고 지식으로만 나는 죄인이다고 하였던것 회개가 됩니다.
다시 복음앞에 세워져 사명으로 왔다가 사명으로 가는 저의 인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저의 자녀를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문제부모때문에 고독으로 살아야만 했던 자녀를 성령의 임재로 말씀이 들려 공동체에 나오도록 기도합니다. 성령의 경영가운데 아들이 신교제 신결혼하고 공동체에 들어와 주님이 택한 자녀로서 남은자가 되길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전숙례 집사님
요양병원에서 연명치료중에 계신 친정엄마를 2주에 한번씩 면회를 갈 때마다 항상 마음속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넣고 가는 마음으로 가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계시고, 치매중증으로 소통도 어려우신 엄마.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와 매일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늦게 얻은 자녀를 양육해야 했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비롯 세자녀를 살갑게 양육하지 못하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때로는 남편에 대한 화풀이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시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면 또 어떻게 살으셨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랜시간 엄마의 양육방식에 원망하는 마음과 또 그 이면에는 받지 못한 인간적인 사랑을 계속 받고 싶어 무던이도 노력했던 제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는 엄마와의 애착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주님께 엄마를 온전히 맡기고 저도 엄마를 영혼구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구원을 위해 묶여주신 공동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가려고 합니다. 큰아들과의 애착관계도 인간적으로 친정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핑계로 방패삼아 외면하고 귀찮아했던 저의 이기심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