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부모학교제1강 양손잡이 뇌, 책 읽기로 미래요구 길러가기]
6조 나눔 보고서 : 삶선 그래프
★박소연 집사님

어린 시절 마냥 행복하고 즐겁기만 했던 내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었고 그로 인해 큰 비행은 없었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던 것 같고 학교 가기가 싫었고 힘들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 열등감과 실업계 학교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가 피아노학원에서 만난 동네 언니의 권유로 보육교사가 되며 아침엔 미술학원 피아노 선생님으로, 밤엔 보육교사 교육원에서 공부했다.실업계 딱지를 떼기 위해 면접을 보면서도 고등학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어린이집의 선생님을 하면서 피아노과에 합격하면 반주자가 되겠다는 서원 기도를 하며 말도 안 되게 기도가 응답이 되었지만 대학 생활을 나는 죽어라 해도,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초견이 좋지 않아 피아노 봉사를 안 하며 지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며 살이 찐 나를 보며 '너는 죽어도 살 못 뺀다.'는 동료 교사의 말로 보란 듯이 살을 뺀다는 집념으로 26kg의 살을 빼고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34살의 노처녀의 모습을 보며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걱정과 직장을 너무도 싫었던 내가 탈출하는 길은 결혼 뿐이라는 생각으로 짧은 연애를 마치고 현재의 불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쨍하고 해 뜰 날을 줄 것 같던 남편은 긴 시간 일을 하지 않고 백수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마이너스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큰아이가 3살 되던 해 확장성심근병증을 앓게 되고 희귀질환이라는 소식을 듣고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새벽예배를 드리며 작정 기도를 하는 첫 날 <천부여 의지 없어서> 무반주로 찬양을 하는데 마치 내가 지금 반주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우리 아이는 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벽예배 반주를 하고 있다
첫째는 결혼 당시 5개월이었고 둘째는 결혼 3년 만에 갖게 되었다. 나는 큰아이가 5살 때 유치원 부모교육을 통해서 내가 우울한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 마냥 행복하기만 할 거 같았는데 어딘가 모르게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자연적으로 아이들이 사람들과 교류가 없어진 것 같다. 분명 큰아이 조리원 시절까지는 좋았는데.... 하루하루 지나며 사람들과 관계가 매끄럽게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교회 다니는 친구가너무 좋은 부모학교 프로그램이 있다며 함께 듣자는 권유로 신청하게 되었다.
큰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 하는 것과 감정 표현 못 하는 것, 작은 아이가 선생님과 말을 못 했다. 지금은 너무 잘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아이가 자신감을 느끼고 친구들과 소통 잘하도록 변화되길 원한다. 이번 부모학교를 통해 내가 변화되고 고치면 받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장세영 집사님

어렸을 때의 기억이 없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들을 차단했던 것으로 최근에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미국으로 유학가면서부터 기억이 있고,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한국에 돌아오면서 적응이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여 즐겁게 지내던 중, 아빠가 미국으로 발령 나서 가족이 다시 미국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이 기간은 잘 지냈다.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다 떨어졌을 때, 졸업 후 취직이 안 되었을 때 힘들었지만 지나갔고 원하던 대학원에 합격하고 다니던 동안 행복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취업이 뜻대로 안 되었지만 회사를 몇 차례 옮기면서 원하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2번의 바람 사건과 1번의 폭행 사건 후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왔고, 지인을 통해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
부부목장 3년 차에 남편이 양육을 받으면서 희망이 생겨 다시 합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몇 개월 후 승진이 안 되고 그 사건을 하나님 탓을 하며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아이의 높은 불안도로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고 하여 최근에 합치게 되었지만, 남편의 지킬과 하이드 같은 모습에 저와 아이 모두 불안이 나아지지를 않고 있지만, 목장과 말씀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고 나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심경미 집사님

술을 드시면 가정폭력이 많으셨던 아빠가 5살에 돌아가시고 엄마만 계셨지만, 점점 나은 삶을 살았습니다.
7살에 처음 간 교회에서 주기도문을 외우고 미미인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의 말씀을 잘 들으며 살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 마음대로 술, 담배, 음란을 즐기다가 21살에 낙태를 하게 되었습니다.이때도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여 여전히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친오빠의 괴롭힘으로 독립을 원하였는데 엄마의 반대로 하지 못했으나 합법적 독립인 결혼을 32살에 하면서 2개월간 행복했습니다.
그 후 남편의 빚 사건과 결혼 후 처음 한 임신에 유산이 되었고,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님께 상처를 받은 후 엄마가 다니시는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첫째가 태어난 후 발가락 기형과 늦은 발달로 재활의학과와 발달센터를 오가면서 둘째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임신을 알게 되었고 2차 초음파 검사에서 담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둘째 아이는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담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둘째는 언어가 늦어서 치료센터를 다니고 첫째도 어린이집 등원 거부로 심리검사를 받기로 한 상태입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어서 부모학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황은미 집사님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굴곡 없이 평범하게 무난하게 살았던 거 같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대입과 편입으로 20대 초반에 힘들었고 편입에 한 번에 성공해서 20대 때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기독교 영어예배 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동아리 지도자셨던 목사님을 통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겁도 나고 무서웠지만 혼자 먼 타국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힘들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다가 저보다 늦게 입사한, 회사 사장님 아들과 2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남편이 우리들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결혼을 하며 오게 되었습니다.
연애하고 결혼 준비하는 동안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으로 많이 싸우고 흔들렸는데 정이 들어 헤어지지 못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결혼하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며 24시간 붙어있으니 싸우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결혼 한 달 만에 임신하게 되었고 준비 없는 임신과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첫 번째 임신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둘째를 임신하며남편이 당뇨와 고혈압 판정을 받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를 탓하며 여전히 싸웠습니다.
둘째를 출산하고 둘째가 소이증(작은 귀: 한쪽 귀가 형성이 안 됨)이라는 사건으로 제 인생에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남편과 같은 말씀을 듣고 가니 서로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시간이 되었습니다.그즈음 남편이 회사에서의 과중한 업무와 책임감으로 스트레스가 많으니 그것을 둘째한테 함부로 대하는 태도로 풀면서 남편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 심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그토록 원하던 큰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잠깐이나마 결혼생활 중 가장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우긴 했지만 말씀 듣고 가다 보니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며 평범한 결혼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이후 셋째를 임신하게 되어 또다시 육아의 감옥에 갇힌 자 되었고, 동시에 둘째 시은이 1차 수술 사건으로 임신 기간에 아이를 돌보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둘째 사건으로 셋째 출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다행히 건강하게 출산하게 하셨고, 시은이는 1차 수술이 잘 되었지만 이후 수술 부위가 막혀서 10월에 2차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부모학교는 남편과 같은 교회 다니며 같은 말씀 듣고 가지만 아이들 양육과 훈육 문제에 있어서 너무 의견이 다르고 남편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양육 태도로 매번 싸우니 저라도 중심 잡고 가려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엄수연 집사님

유년 시절 부모님의 사업번창으로 유복하게 보냈지만,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게 되었고, 잦은 부모님의 싸움과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와 언니를 예술 전공시키기 위해 한부모 가정임에도 열심을 내며 저를 키우셨고, 언니와 저를 예고, 예대를 보내기 위해여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엄마에 대한 연민이 생기고 아빠에 대한 분노가 생겼지만, 늘 아빠는 넉넉한 용돈으로 저의 불만을 채워주셨습니다.
낮아진 자존감은 쇼핑으로 많이 채웠고, 부족한 것은 아빠에게 부탁하면 거의 다 성사가 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아빠처럼 나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채워주는 슈퍼맨 같은 남자를 찾아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나의 기대와는 반대였고, 꼼꼼하고 짠돌이 같은 남편이 싫었습니다.
임신 기간에도 전혀 저를 위하지 않는 모습과 배려 없는 행동에 결혼했으니 끝이냐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고 자살 시도를 몇 차례 했습니다.
폭언을 일삼는 이 남자와는 더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혼을 결심했을 때 우리들교회를 어머님으로부터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공동체에 속해있지만, 예배와 목장은 소홀하고, 사업확장과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아이와의 소통이 부족하고 대화가 안되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어떤 사건이 와도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나와 같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 않다는 결심으로 부모학교에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솔지 집사님

어릴 때 화목한 가정 분위기에서 안정적으로 자랐지만 고3 때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컸지만, 그 빈자리를 친구들과 남자친구로 채우며 20대에 하고 싶은 일하며 지냈다. 이후5년 연애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그러나상견례 자리에서 집을 해주시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시댁과 갈등이 생겨 남편과도 매일 싸웠다.
미주집회에서 만난 김양재 목사님을 알게 되신 엄마의 소개로 이혼 직전에 남편과 우리들 교회에 인도되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도 싸우고 문제가 많았지만, 부부목장에 붙어가며 가정이 많이 회복되었고 작년에는 둘째도 선물로 태어났다.
현재에는 약을 먹고 말씀을 들으며 몸과 마음이 쉼을 얻고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2년 전 부모학교를 수강했지만 입덧하며 몸이 힘들어서 잘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에 목장에서 많은 분들이 재수강하시는 모습을 보며 목자님의 권유에 얼떨결에 다시 지원하게 되었다.
6살 첫째와 2살 된 둘째를 잘 양육할 수 있는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김현미 집사님

가난 때문에 학업을 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최고의 사랑은 학업을 위한 물질적인 후원이었고, 부재중 부모님 대신 6살 위인 오빠가 부모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오빠는 폭력으로 저를 통제했고 부모님은 방관자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에 하나님께 오빠를 죽여달라 기도했고, 제 삶의 목적은 집을 나오는 것이며 수단은 공부가 되었습니다.그러나 고3 때 대입에 실패하며 목적이 좌절되니 죽고 싶었지만 독끼로 무장하며 재수시절을 보내어 부산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고 이때부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가족을 완전히 끊어내고자 결혼은 목적, 연애는 수단이 되어 악하고 음란하게 살며 두 번 낙태하였습니다.
이후 공무원이 되어교만과 열등을 오갈 때 아빠의 폐암 말기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빠는 암을 삶의 결론으로 받으셨고, 목사님이시냐는 말씀도 들으실 정도로 투병의 때에 순종하시며 사명 다하시고 소천하셨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우연히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를 읽게 되어 구속사의 말씀을 처음 들었습니다.
가족은 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부모 역할로 책임을 다하려는 어린 오빠를 미워한 내 죄가 보였고, 오빠가 내 구원의 일등공신임이 해석되었습니다.
이후 큐티도 하고 우리들교회 주일설교도 들었지만, 공동체의 중요성은 안 들렸습니다.
음란은 계속되었고 세 번째 혼전임신으로 계약직인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육아서를 독파하며 첫째, 둘째를 키웠습니다. 하지만남편이 살림으로 잔소리를 할 때면 내가 공무원이라며 내가 더 잘났다고 남편을 무시했고 남편은 애들 아빠일 뿐이었습니다.
가정과 직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완벽한 직장맘이 되는 꿈을 꾸며 복직했는데, 출근하면 방긋방긋 웃다가 퇴근하면 지하철 안에서 내내 울었습니다.
결국, 이석증, 기침, 두통 등 스트레스성 질병이 생겼고 삶이 해석되지 않아 불행했습니다.그때 우리들교회에오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육아서대로 키우며 순종적인 아이로 잘 키웠다고 칭찬을 들았는데, 공동체에서는 '첫째가많이 아프다.', '엄마가 무서운 사람인가보다'라는 피드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 홀로 신앙에서 공동체에서 말씀을 듣다 보니 나뿐 아니라 가정도, 자녀들도 병들어가고 있었음을 알았고, 아내가 달라졌다고 남편도 오게 되었습니다. '예배부터 사수하라'는 말씀에 휴직을 했고 내가 우울증, 성인 ADHD임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에 묻자와 가로되 하며오다 보니 나도, 자녀들도 살아나고 남편과 소통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40세에 셋째를 주셨고, 공동체에 물으며 올해는 퇴사하였습니다.
중2, 초6, 4세 아이를 키우며 들었던 말씀 밑천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체력도 떨어져서 아이들의 나이에 맞게 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둘째 남자아이의 모습과 여러 가지가 잘 넘어가 지지 않습니다. '존나'는 많이 들어와서 넘어가지는데 '개같네'(요즘 아이들이 쓰는 개시리즈의 말들)라는 말은 계속 듣다 보면 은어,속어가 아니라 자꾸 비유로 들립니다. 아이가 아닌 내 문제인데 어떨 때는 정신과 약발도 안 먹혀서 화와 잔소리를 합니다. 이런 모습에 4살 꼬맹이는 불안해하고 큰딸은 또 시 작이라는 반응입니다. 이 시기를 잘 통과하길 바라며 부모학교 지원했습니다.
★김경진 집사님

교육열이 높으셨던 부모님은 집안 형편과 맞지 않지만 저를 추첨으로 들어가는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셨고, 어릴 때부터 미술, 스케이트, 탁구, 수영, 피아노 등등 각종 개인 과외를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에서 늘 이기고 이기는 경쟁으로 각종 경기나 경연대회가 있으면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어린 아이에게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했고, 그 중 특히 제일 스트레스 받았던 피아노 경연대회를 위해 하루에 8시간까지도 연습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비록 금메달을 받았으나 잠깐만 기뻤고 허무했다.
아버지 발령으로 1년의 미국 생활을 마친 뒤, 위장 전입으로 집에서 먼 학교에 다녔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엄마의 간섭에서 조금은 벗어나서인지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중학교는 너무 즐겁게 생활했다.
하지만 외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초등학교 때 라이벌이었던 친구랑 같은 반인 것을 확인하고 절망하고 두렵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아버지의 발령으로 미국으로 가게 됐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운전까지 할 수 있는 미국의 고등학교 생활이 즐거웠고, 늘 모범생이여만 했던 나에게 단짝 친구가 모는 차를 타고 '금요예배 간다' 하고 카페에 가는 등의 일탈이 즐거웠다. 하지만 친구 차가 사고가 나면서 부모님이 알게 되셨다. 그래서 그 친구랑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고 지금까지도마음이 아픈 사건이다.
대학교에 가서는 완전히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엄마의 통제와 간섭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너무 즐거웠다. 자유를 만끽하며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살면서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힘든 사건이 터졌다. 몇 백 명이 듣는 교양 강의에서걸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친구 숙제를 베껴서 제출했음이 들켜서F학점을 받게 되었다. 인생이 끝난 것같은 두려움으로 너무 힘들어서 새벽 기도마다 울면서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인턴을 거쳐 취업을 하고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같이 졸업해서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과 살면서 즐겁게 교회와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때 눈앞에서 직장 동료들이 떠나가는 것도 두려움 가운데 보았다.
교회에서 만난 오랫동안 친구였던 남편이 알고 봤더니 우리들교회에 다니고 있어 자연스레 결혼하게 되었고 첫째를 낳고 이사를 가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둘째 그리고 올해 셋째를 낳았다.
부모님께서 한국에서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러 오셨다. 이번 년도는 코로나 때문에 특히나 조심했는데 엄마부터 몸살, 근육통으로 시작해서 아프더니 남편을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아팠다. 그 와중 애를 낳으러 갔더니 코로나 양성이라고 해서 남편도 병원에서 쫒겨나고 다른 병동으로 옮겨져 고생을 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아이는 따로 격리를 해야 해서 조심했다.
퇴원하고 온 새벽에친정 아버지께서 정신이 없으시고 산소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바로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아버지의 폐가 코로나로 50%가 망가져서 2주 가량 입원했고 퇴원하실 때는 일상생활을 하시기 힘든 정도였다.
이렇듯 코로나가 지진이 나는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더 큰 사건이 왔다. 엄마가 정신적인 질병을 겪고 있고(피해망상증) 평생 가족우상이신 엄마 말만 듣고 살아서 몰랐는데, 내가 알고 듣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피해망상증으로 인한 것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그 한 사람이 되어 이혼하지 않고 온갖 억울함과 폭언, 폭행을 견디셨으며 또한남편이 공격 대상이 되어 남편도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목장에 속하게 되고, 말씀으로 해석을 하게 돼서 많이 평안해졌다.
그러나 막내 리안이의 입원사건이 생겨서 엄마의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한계상황을 지나고 있다.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고,아기의 뇌에 어떤 영향이 갔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말씀이 있어서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이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믿음의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두렵지 않겠다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