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
구은정
어렸을 때 언니가 외모가 뛰어나 각종 미인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며 주목을 받았는데 어느 누구도 저에게 예쁘다고 해주지 않으니 주눅드는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사람에 인정이 고픈 저는 남자에게 그 사랑을 채우려했고 사회생활을 하며 음란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삶을 청산하고자 직장도 성품도 좋은 남편을 소개 받아 결혼을 하였는데 결벽증이 너무심해 육적관계가 전혀 되지 않는 고난으로 우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외로움으로 자녀를 잘 돌보지 못했는데 지금 사춘기 딸이 그 상처로 욕을 하며 분노를 다 쏟아내니 힘이 들고 자녀의 관계도 회복하고 싶어 부모교육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이주영
저는 불신가정에서 2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5살 될무렵 시골할머니집에 오빠들과 놀러갔다가 둘째오빠가 물놀이중 하늘나라에 가는 사건으로 가족 모두 힘들었고 엄마가 슬퍼할까봐 사진도 없애고 오랜 시간 오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어야 할 정도로 조심하며 살아야했기에 제 감정이나 생각을 늘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려워 표면적으로만 사람을 사귀어 왔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2학년때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주일엔 교회가고 계절별로 교회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교회중심적으로 청소년기까지 살았습니다. 엄마의 권유로 고등학교를 실업계로 진학했지만 대학가고 싶었던 마음에 기도하며 공부했고 실업계에서는 어려웠던 4년제를 가게되어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하며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가니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술문화와 유흥이 너무 재밌어 4년내내 하나님을 떠나살았습니다. 그러다 졸업을 하니 취직도 안되고 남친도, 친구들도 다 떠나 허무한마음과 자신에 대한 실망과 무가치함이 올라와 죽고싶은 심정에 이르러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간 교회에서 설교말씀 중에 내가 너를 안다는 말씀이 귀에 들렸고 4년내내 하나님 모르는 사람처럼 죄지으며 살았던 시간들이 회개가 되어 매주 눈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무렵 배우자기도를 해야한다는 권유로 배우자 기도를 하는 중에 불신이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교회에서 청소년부회장도 맡았다던 믿음 좋아 보였던 남편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청소년시절 믿음이 끝이었고 지극히 세상적인 사람으로 강박도 심하고 대화시작하고 오분이 지나면 언성이 높아지는 소통불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니 산후우울로 이어졌고 둘째까지 낳고는 너무 힘들어 사촌언니에게 하소연 하던중 우리들교회를 소개받아 오게되었습니다. 늘 싸우는 엄마아빠 밑에서 첫째와 둘째도 싸우고 가끔은 딸과 엄마도 육탄전을 벌이니 아직 어린 둘째가 우리집은 전쟁터다!! 라고 말합니다.
요 몇년 친정아버지의 건강악화와 친정오빠와 엄마가 하던 일이 넘어가게 되는 등 정신없이 이어지는 친정사건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신경을 못 쓰니 첫째는 사춘기라 더 힘들어지고 둘째도 점점 스마트폰중독과 adhd성향을 보이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어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됐습니다.

김은경
저는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까지 큰 어려움 없이 평범한 가정에서 학교생활도 원만하게 하며 초6학년때 처음으로 전도 받아 교회를 가게 되었고 중학교2학년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최고의 행복한 나날을 학교생활과 신앙생활하며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무렵 올케언니의 암사건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하루아침에 오빠네 집으로 가서 여섯살,일곱살 두조카와 오빠의 사업일과 언니의 병수발이란 옥에 갇히는 힘든 경험을 하였고 언니천국가고 얼마후 생각지도 않은 대기업에 입사하여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신앙을 놓아버리고 세상맛을 보게되어 술과 음란으로 살다가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번 돈으로 서울에 전세집을 구하여 살았는데 전세만기 무렵 전세 집이 경매 넘어가 전세금 떼이는 힘든 사건 앞에서 하나님이 생각났고 이십대 후반에 다시 신앙생활하면서 또다시 하나님 만나는 은혜로 날마다 회개하며 살다가 삼십대 초 갑작스런 아버지소천의 힘든 시간에 또다시 하나님 은혜로 극복하며 일중독으로 일만하다가 서른이 지난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만난지 7개월만에 결혼을 하였고 화가 많은 남편이 이해가 안 되었고 소통과 말이 없는것에 죽을만큼 힌들었으며 신혼도 없이 싸움의 연속이었고 이혼을 준비할려고 할 때 로마서8장 말씀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셨어 이혼을 접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오랜 직장생활에 눈이 높았고 나의 의와 교만이 남편을 뛰어넘었기에 나보다 센 남편으로 저를 훈련하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었고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아이가 크가고 저의 완벽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힘들게하는 나의 모습은 알겠는데 변화가 없는 모습에 죄책감에 너무 힘들어 살고 싶어서 우리들교회로 오게되었습니다
윤정아
저는 4대째 모태신앙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중학교에 진학하며 공부를 이유로 교회를 떠났습니다 평범한 중산층이었으나 아빠는 과묵하시고 엄마는 부부싸움 중에 달리는 차 문을 열 정도로 혈기가 많고 강압적이셨습니다. 자유를 찾아 서울로 대학 진학하였고 음란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같은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27살에 불신결혼하였습니다. 남편은 타 회사에 스카웃되어 베트남 주재원으로 3년 살며 한인교회로 다시 출석했습니다 갑자기 한국으로 발령 받아 왔지만 회사의 법정관리로 이직하였고, 이직한 회사 역시 법정관리로 또 이직하였으나, 2014년 남편은 마지막 대기업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 사이 홀로 주재원을 하던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는 알콜 중독이 되었습니다. 8년 만에 늦둥이 둘째 아들을 낳은 후 남편은 목디스크 수술하고 고혈압,부정맥 등으로 평생 약을 먹습니다 실직 후 에어비앤비를 하고 계약직을 전전 하면서도 우리 부부의 욕심으로 큰 아들 초등6학년때 대치동으로 두 번째 전학을 하였고, 학교 부적응으로 힘들어 하다 이전 교회에서 읽었던 목사님 저서 복 있는 사람은에서 읽은 것을 기억나 게 하셔서 2016년 11월 우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2018년 남편에게 다시 실직과 말토마암이 찾아왔고 이 것이 구원의 사건이 되어 드디어 제가 저보다 학벌이 낮다며, 행위가 옳지 못하다고, 술, 담배, 게임중독에 빠졌다고 남편을 저의 율법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남편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한 죄인임이 깨달아져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남편은 8개월 만에 계약직으로 취직되었고 작년1월 49세의 나이로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작년 2월에는 둘째 아들이 adhd,반항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 중입니다 충동적이고 분노가 많은 둘째 아들 양육과 내년에 고3인 학업 성적 낮은 큰 아들과 함께 힘든 입시의 시간을 잘 통과하고자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13조 신우용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항상 싸우셨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언어폭력과 육체적인 폭력도 하셨기에 집안 분위기는 늘 어둡고 불안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웠기에 항상 말 잘듣고 순종적이었지만
불안과 우울,열등감이 심했습니다
고등학생때 주님을 만나고 교회생활하며 즐겁게 생활했지만 저의 우울감과 열등감으로 남과 비교하며 힘든 마음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의 사랑으로 많이 회복되는 듯 했으나 출산후 우울,무기력,열등감으로 하루를 살아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살기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살려주시는 은혜를 받았지만 일반 교회에서 저의 상태를 나누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큰아이의 학교폭력 사건으로 우리들 교회에 오면서 저의 수치를 드러내며 나누는 나눔을 통해 우울.무기력.열등감에서 자유로워지는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첫째 둘째에게는 강압적인 부분들이 많았고 막내에게는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부모학교를 통해 중심을 잘 잡고 자녀들에게 공감하며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하고 싶습니다

김혜정
어렸을 적 부모님의 직장 때문에 할머니 손에서 세손녀중 장손녀로 자랐고 고3때부터 부모님과 한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안 계셔도 모범생으로 공부 잘 해 인정받고 살았고 대학교도 과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노력한대로 인생이 흘러갔지만 대학시절 세상에 휩쓸려 악하고 음란하게 지내다가 일본유학시절 만난 남편과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해 미국에서 아이들 낳고 귀국하였습니다.
남편은 ADHD에 경조증인데 결혼후부터 계속 사업의 꿈을 꾸었고 미국에서 큰 집빌려 하우스렌트하는 중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저에게 베이비시터하길 원했습니다. 아이 낳은지 넉달째부터 18개월짜리 다른 아이를 돌보았는데 산후우울증과 돌봄받지 못한다는 슬픔 때문에 큰 아이와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았고 우리들 교회 온 이후 남편이 부목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안함때문에 회사다니면서 영어학원, 닭강정가게, 올해 주식1억손해까지 항상 상의않고 독단적으로 일 벌리는 통에 저 돌볼새 없이 자녀와 남편으로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그 수고덕에 결혼한지 14년만에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해결사로 있을 때는 몰랐던 제 불안, 강박, 남편과의 불화로 자녀에게 상처준 제 죄가 조금씩 보이면서 그동안 내 인생의 모든 원망의 대상인 남편과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이 제게 말씀이 들리게 하는 고마운 대상임을 알기는 하지만 자녀가 사춘기이고 저의 유년시절 부모님의 부재였지만 학습적인 면으로는 모범생이어서 자녀의 반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ADHD에 아스퍼거스펙트럼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현재 남편, 저, 큰아들까지 다 정신과 약 복용중이고 의견이 맞지 않는 평행선인 남편과 자녀까지 더해져 가정이 건강하지 못한데 억압적이고 강요가 많은 남편과 저를 대표해 제가 먼저 부모학교에서 처음인 부모역할 잘 감당하고 싶어 부모학교에 신청했습니다.

안명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못배우신 부모님 밑에서 5녀중 장녀로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지만 순하신 아빠덕분에 비교적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3학년때 받은 8시간에걸친 심장수술이 가장 힘들었고 불안증이 심해 공황증까지 와서 한달정도 학교를 못다녔습니다
그당시 해외근로자로 나갔던 아빠가 중학교때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부싸움이 심해졌고 이혼얘기가 오갔기에 정서적으로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학교가 정말 재미있었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은편이라 학교가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릴때부터 했으나 청년때 가장친한 친구의 변화된 삶으로 저도 다시 주님을 제대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온누리교회 청년부에 다녔습니다
신랑은 3살 연하로 둘다 첫사랑이며 순정파인 남편덕분에 제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혼전임신으로 결혼하게 되면서 문화가 너무다른 시댁과 알콜중독인 남편이 넘 힘들고 아이양육이 힘들어서 깊은 터널에서 헤맸습니다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듣던중 학부모 한분이 큐티책을 정기적으로 보내주셔서 읽다가 목장모임 참석만 한 후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도 힘들 때는 있지만 좋은 목자님과 목장식구들 덕분에 잘 붙어가고 있어요

오지연
1. 아동기(0-12세)
어린시절은 시골에서 자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저는 얼굴이 빨갛게 튼 저를 우리딸 예쁘다고 사람들한테 못난 딸을 자랑하고 다녔다고 엄마가 얘기해 주셨습니다. 어릴적 시골 바닷가에서 살면서 포니를 타고 가족여행을 다니고 동네에 차가있고 전화기가 있고 세탁기가 있는 집은 저희집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기억은 부유하고 여행 잘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 5학년때 이사와 개명을 하고 전학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습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전학간 학교에서 육상선수를 했고, 아버지가 경찰대학을 가길 원해서 태권도도 시켜주셨는데 시골에서 여학생이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처음이였던 것 같습니다.
2. 사춘기와 청년기(13-19세)
아버지가 원하던 고입을 실패하고 변두리 학교를 다니다가 그곳에서 전교1등을 하면서 그학교 친구들이 너무 무시가 되어서 고1때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 간 학교에서 완전 공부에 손을 놓았다. 그렇다고 불안해서 놀지도 못하고 모범생으로 학교, 집을 오가며 틀에 갖춰서 적당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3. 청년기(20-29세)
대입을 실패하고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는 것 같아서 낮고 낮은 곳을 찾아 겨우 대학을 졸업했는데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대기업에 입사를 할 수 있었다.
대학때 만난 남자친구는 나보다 학력도 좋고 장래희망이 교수라고 해서, 나의 채워지지 못한 열등감을 결혼을 통해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24세 후반에 혼전순결을 지키기 못한 죄책감에 결혼을 했습니다. 홀어머니에 외아들의 조건을 어린나이에 문제 삼지 않고 결혼했는데, 퇴직하고 정신분열증 시어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싫고, 아들만 바라보는 남편을 보면서 이집에 왜 시집을 왔을까 후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영국 어학연수 1년을 다녀왔습니다. 도피성으로 간 영국에서는 목사님 댁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말씀과 예배를 드리며 지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결혼을 지키고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다시하고 두명의 자녀를 출산을 하고 자녀양육에 시어머니의 존재를 무시해 가면서 살았습니다.
4. 장년기(30세 ~ 현재 44세)
7년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폐렴으로 입원하셔서 요양병원에서 7년이상을 사시다가 저희가 우리들교회등록을 하고 4개월쯤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돌아가시기 몇 년전 커피전문점 사업을 한다고 남편은 다니던 대기업 연구원직을 그만두고 카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잘되어 3개까지 매장을 확장했지만, 세월호와 메르스등 환경적 요인으로 알바비도 못주고 망하는 사건이 찾아와서 카페 정리를 하고 남편은 우울증과 분노조절, 혈기로 저를 다스리고 남편이 할 수 있는 일로 학원을 차려 하던중 이것 또한 잘되어 확장을 하면서 남편 친구에게 투자를 받았습니다. 투자받고 잘 될 줄 알았던 학원은 먹고살 정도여서 남편친구에게 투자금을 못주게 되고 남편부인과 저의 카톡내용을 보게된 남편은 병신같이 이런 문자를 보고도 가만히 있냐며 돈이 생기기만 하면 그 친구에게 송금을 하면서 저를 코너로 몰고 욕을 하고 생활비도 없고 애들 학원비도 못내고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끊으며 악으로 돈을 갚겠다며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서 남편과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녀들은 불안해 했으며 특히 둘째는 더 불안해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이 전쟁이 끝날 것 같아서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남편 학원 수업하는 시간에 조용히 집에 들어와서 먹고있던 우울증 약을 있느대로 먹고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남편은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집으로 와서 저를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자살 사건은 우리들교회 와서 부목자를 하면서 시도한 것이고 삶선그래프 잘못 표시했네요...
남편의 실직 다음 우리들교회왔고 현재 남편은 목자이고, 저는 부목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의 멈추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청소년부 심방을 받고 올 3월쯤부터 청소년부 교사 다른 아이들도 함께 보면서 가라는 권면을 받고 청소년부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둘째는 지금도 학교 생활이 안되고 6학년때부터 중2인 지금까지 수업일수만 채워라, 의무교육이니 중학교는 졸업하자며 하루 하루 살얼음을 걸으며 큐티와 예배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욕심이 많아서 내가 만든 고난임이 요즘은 깨닭게 되고 수없이 많은 부모교육을 받고, 부모교육을 하는 사람인데 넌 부모교육 그만해도 되지않냐는 남편의 비아냥에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고 새부대 새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새롭게 부모교육을 받으며 내죄를 직면하고 말씀으로 회개하고 세자녀를 다시 바라보고 말씀으로 양육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 자녀 고난으로 힘들지만 말씀으로 해석해 줄 공동체가 있고 저를 붙들어주는 목장과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