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저는 7남매중 막내로 부모님과 형제의 무관심속에서 막무가내로 자란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이혼의 상처와 의사인 큰오빠 뒷바라지로 일찍 철이든 엄마사이에서 2남1녀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알콜중독으로 매일밤 의식처럼 치러진 부부싸움과 가정폭력으로 저의 유년시절은 늘 우울하고 슬펐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엄마의 기대를 채워주는 딸이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한창 열심히 공부해야할 고등학교시절 밴드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치며 하나님과 부모와 세상을 향한 모든 분노를 쏟아내고 세상의 악하고 음란한 밤문화를 즐기며 보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육교사로 취업한 어린이집에서 주임선생님의 이간질로 쫓겨나듯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청첩장까지 돌린 결혼이 파혼이되면서 사람에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불신으로 힘든 청년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모든 시간들이 신결혼으로 말미암아 재앙이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에게 더욱 좋은것으로 주시기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그당시 예례미야 큐티를하면서 깨닫게 되어습니다
중학생시절 엄마따라 참석했던 김양재집사님 큐티모임이 기억나 수요예배는 우리들교회서 나홀로 드리다가 판교성전 입당예배때 온가족이 등록하고 공동체에 묶여 한말씀을 들으며 가고있습니다 가정적이나 인본주의적인 남편과는 불통하고 큰아이는 올해 중학생이 되어 부모와 동생에게 섭섭하고 화난것만 주문처럼 읊어대고 입양한 막내딸은 산만하고 ADHD약을 먹어야 학교생활이 가능하여 매일매일이 전쟁을 치루는것 같이 느껴지나 말씀이 있는 열두공동체에 속해있으니 성령님의 경영하심따라 그날그날을 사는 은혜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제목 >
1 큰애(중1 엄기찬) 눈 깜박이는 틱증세 잦아들도록
2 막내(초3 엄기쁨) ADHD 약부작용으로 입맛이없다고 약먹기 싫어하는데 의사 상담통해 조율되도록
3 부모학교 통해 분노와 혈기대신 온유와 사랑의 언어를 훈련토록
정영희

어려서 아버지의 폭력으로 지옥을 살다가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부터 가난했지만 따뜻한 가정이었습니다. 15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결혼한 친정 언니집에서 가족이 아닌 더부살이 하는 심정이 되어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20살에 취업해 날개를 단듯 언니네서 독립도 하고 사회에서 인정 받으며 많은 물질을 모으게 되면서 자존감이 회복 되었지만 36 에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남편의 폭력과 불임으로 다시 지옥이 시작되어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41살에 남편의 주재원발령으로 북경에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남편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마침내 46살에 혼외 자식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가 되니 아이키우는 기쁨이 있긴 했지만 남편의 여전한 폭력과 이기적인 행동은 저를 지치게 했고 올 초에 남편의 폭력으로 갈비뼈가 골절 되는 사건이 오자, 갱년기에 코로나와 육아로 지친 저는 이혼을 결심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이혼 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미워하고 그에게 받은 상처로 괴로워하는 날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
1. 부모의 잦은다툼으로 불안감 증상이 있는 아이(요셉)가 놀이치료 통해 안정감 찾을 수 있기를.
2. 남편에게 받은 상처, 미워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와 질 수 있기를.
김정옥

저는 7살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엄마와 살아본 년수가 7년이 안됩니다 아빠는 기초생활수급자 알콜중독이셨고 밤마다 괴롭히는 아빠를 피해 고등학교때는 10번도 집에서 자지 못하고 절친한 교회친구 집과 교회에서 잠을 자며 가방에는 핸드폰 충전기와 스타킹을 항상 들고 다녔습니다
아빠가 고등학교 졸업후 돈 벌어 먹여살려라고 하셔서 인생이 끝날거같아 부산에서 쫒아올 수 없는 서울로 왔고 주경야독으로 공부해 같이 올라온 쌍둥이언니는 가천대 전체 수석 저는 학과 수석으로 졸업하는 은혜를 주셨고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석사를 공부하고 언니는 박사까지 장학금으로 공부했습니다
남자 잘못 만나면 인생이 종칠거같아서 아빠같지 않은 사람 만나는게 소원이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개팅을 해서 만난 남편이 30년 가까이 개척교회에서 혼자 성가대복 입고 앞에 나와서 찬송한다는 말에 내 환경을 알고도 나를 배신하고 버릴것 같지 않아 교제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s대에 대기업을 다니고 있어 시부모님이 말도 못할 반대와 핍박을 하셨고 첫애를 낳고도 집안 회의를 했으니 너만 결정하면 된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독일에 아주버님까지도 이혼하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연금과 보험을 과도하게 넣는 바람에 월 40만원을 줬는데 시댁에서는 출산 3개월 후에도 직장을 무슨 일이 있어도 가라고 하시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남편이 깊어지는 고부갈등에 우울증이 걸리고 식칼로 목에 대며 저에게 이혼소송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우리들교회에 온지 한달만에 있었던 일인데 남편이 목장과 말씀이 들어가서 이혼을 철회하고 지금은 부목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친정엄마에게 전화하셔서 막말과 거짓말을 퍼부으셔서 엄마가 자살 직전에 건져지는 사건과 설명이 안되는 사건들이 다 지나서 지금은 하나님 은혜로 시어머니가 변화되어 때때마다 용서를 구하시고 물질로 섬겨주시고 저에게 집안의 기둥이라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그 어느때보다 은혜의 때를 보내고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진주

안녕하세요 7조 고진주 집사입니다
저는 폭언이 심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우울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말만 하시면 욕설과 비난을 일삼던 아버지 탓에 중고등학교 시절은 자존감이 바닥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한집에 있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들어가고 2년여간 해외에서 교환학생생활로 집을 떠나 생활을 하며 세상적인 것을 맘껏 누리며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누가 욕해주는 사람이 없다는게 이렇게 큰 행복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서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 제 자존감은 차즘 회복되어가는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저희 아버지와 같이 폭언이 심한 직장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제가 아직도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아픈사람이라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자존감을 아직도 바닥이라는걸 나약해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힘들어하던 제에게 아버지의 핍박으로 교회를 다니시던 엄마의 권유로 우리들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를 전도해서 같이 청년부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차츰 회복도 되었고 신결혼을 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결혼 생활은 마냥 행복할 줄 알았지만 거룩이 아닌 행복을 목적으로 둔 저를 주님은 다시금 철저하게 낮아지게 하신 것 같습니다. 살아온 배경도, 성격도 전혀 다른 남편과의 마찰로 결혼 초기부터 많이 싸우고 전쟁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초딩,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들 셋 엄마로 아이들과 매일매일 육아 전쟁 중에 있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 때가 많지만 그 훈련속에서 저를 단련해 가시는 주님을 봅니다. 아들 셋을 상대하기에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많이 부족한 엄마지만 아이들을 이 믿음 안애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아이들 말씀안에서 키울 수 있도록 영적, 육적 체력주시기를
박지연

저는 혈기 많으시고 원가족으로부터의 상처가 많은 아버지와 사회성이 부족하고 자기 의가 높은 어머니 사이에서 삼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임신되었을 때 아버지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내내 온갖 욕을 하며 낙태를 종용하셨지만 신혼 초 여러 고난으로 믿음이 들어가신 어머니가 저를 지켜주셨다 합니다. 아버지는 혹시 아들이려나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셨다가 딸이란 소리를 듣고 술 드시며 통곡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큰 언니의 성격이 강하고 무서웠기에 철없고 눈치없는 저는 늘 야단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안에서 천덕꾸러기로 엄마에게 붙어서 살아남기 위해 사랑에 목말라 하며 자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릴 때 누가 칭찬 한 마디 해 주면 그것이 그렇게 기억에 남고, 나를 조금이나마 애정어리게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기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함께 교회에 나가시며 저희들을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지내게 하신 것이 제겐 큰 자산이었습니다. 교회 집사님들께 의지하기도 하고 교회 언니들,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지낸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초 3,4학년 때쯤이었던 거 같은데 이유 모를 복통으로 일주일 넘게 고생을 했습니다. 그 때 아빠가 교회 목사님과 싸워서 예배를 안 나가고 계셨을 때라 합니다. 엄마는 병원에 가도 원인을 못 찾아 약도 없으니 밥만 먹으면 아파하는 저를 붙잡고 대적기도도 하시고 걱정을 하시다가 하루는 교회 목사님께 데리고 가셨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계신 방에서 상담을 하시고 목사님의 기도를 받았는데, 목사님이 저를 안고 배를 쓸어주실 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엄마는 저를 데리고 교회 지하 교육실에서 기도하시다 제가 자는 사이 새벽예배 드리러 올라가셨을 때 살며시 깼는데 따뜻한 기운이 저를 감싸고 위층에서 기도 소린지 찬양 소린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이 하나도 무섭지 않고 평안해서 다시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복통이 깨끗하게 나아서 그 뒤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 후로 저는 사춘기 없이 학창시절에 오직 부모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에 가서 그곳 기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깊이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훈련 받던 지체들의 지지와 애정을 받으며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따뜻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나를 미워하거나 위협하는 사람이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즐겁게 공부하고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그런 시기가 2년쯤 지나고 신앙적으로 사람들의 인정 받는 것이 너무 좋아 저의 치우친 자기 열심이 고개를 들어 제자훈련이나 선교단체 훈련에 올인하다 보니 세상으로 나갈 진로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즈음 우울증, 폭식증, 도벽에 시달리던 한 언니의 고백을 듣고 그 언니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다가 몇 개월만에 크게 다투면서 실패를 했습니다. 메시아 신드롬처럼 제가 언니를 구원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도 받고 심리상담쪽으로의 진로 결정에 힘을 얻고 싶었는데, 그 실패 영향으로 저도 우울과 자괴감, 수치심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보상심리로 선교단체에 참여했다가 엉겹결에 졸업 후 간사까지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방향을 잃은 자기 열심으로 간사 활동을 하니 훈련생들과 갈등도 생겼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힘들어 우울증이 왔습니다. 부모님이 명절에 집에 왔던 저의 상태를 보시곤 강하게 반대하셔서 모든 사역을 중도포기하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느닷없이 모범생 딸에서 우울과 무기력증에 걸린 백수딸로 전락을 하니 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어떻게든 사역을 마치고 올라왔어야 되었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원망도 되었습니다. 취직 과정에서도 계속 어려움이 있어 그 뒤 1,2년 정도 과외만 하면서 외롭고 처절하게 낮아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의 실패와 방황을 인정하기가 너무 힘들어 그동안의 인맥도 모두 끊게 되고 순수했고 열정을 다했던 비전과 꿈들이 이렇게 무참히 흩어지는게 허무했습니다.
그러다 나의 꿈들이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것들이었음을 인정하고 하루를 잘 살자고 마음 먹을 즈음 한 중견 출판사에 취직을 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도 그 때 출판 학원에서 만났습니다. 믿음 1세대로 신앙이 있고, 회사 다니며 건실하니, 외모나 집안도 딱 내 수준만큼 수수한 이 사람이 배우자 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년 연애 후 결혼을 앞두고는 진짜 이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 계속 올라와 갈등했습니다. 연애하고 있던 중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제자훈련 단체의 간사로 불러주셨는데, 그곳 사람들과 교제하다 보니 남편이 한국 교회나 은혜 받는 것에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것, 기도나 찬양 등을 너무 건성으로 하는 것 등... 신앙 공동체에서 인정 받는 것을 생명처럼 여겼던 제게 남편의 신앙적 외모는 제 유치한 기준에 좀 부끄러웠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단체에서 섬기시던 한 여자 전도사님이 지금 이 남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제게 경고를 많이 하시고 반대하셨습니다. 부모님과 단체를 이끄시던 교수님은 적극 찬성하셨는데, 결혼하고 싶은 욕심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같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혼동을 겪었습니다. 아빠와 언니들을 무시하던 교만, 거룩보다는 내 행복만 중요했던 이기심, 그동안의 신앙적 실패만 봐도 내가 이보다 더 나은 신앙인을 신랑으로 바라는 건 무리야 하며 불신을 합리화하는 비겁함 끝에 결국 저는 엄마와 환경에 순응하는 쪽을 선택했고 감행했지만 확신 없는 선택으로 인한 결혼생활은 신혼초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저는 우울로 빠져들었고 남편과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사람들 앞에 서면 초라해지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특히 섬기던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에서 빛좋은 개살구처럼 행복해야 할 신혼의 겉모습과 달리 제 마음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제 마음의 고통을 1도 모르는 남편, 감성적 공감과 영적 대화가 되지 않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너무 외로워도 어디가서도 호소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마치 돈과 결혼 우상을 사랑하다가 바벨론 포로가 된 거 같은 기분이었고 건널 수없는 강을 건너온 것 같이 비참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4년여의 외로운 싸움의 기간 동안 다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기도가 회복되었습니다. 남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즈음 하나님께서 첫 아이를 주셔서 반짝 행복이 시작될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1도 못 돕는 육아치 남편으로 인해 다시 바닥을 치고 남편도 회사 상사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우리들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말씀을 들으며 삶을 해석받기 시작했고 조금씩 숨이 쉬어졌습니다. 또 둘째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여러가지 환경을 열어주셔서 아.. 진짜 감사하다.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되겠다 하는데 초등에 입학하며 큰 아이가 학습과 관계에 어려움이 많아 ADHD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유년부 공동체와 목장 공동체를 통해 위로와 조언과 기도를 받으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들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버리고 자녀를 혈기와 권위로 대했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잘 되지 않아 아들의 분노와 반항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부모학교를 통해 기초부터 잘 배우고 훈련하며 조금씩 자녀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부모로 성장해 가길 소원합니다.
황연주

안녕하세요 7조 황연주입니다.
모태신앙이지만 가난한 환경과 분노 조절이 어려운 엄마 밑에서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특별히 잘 했던 언니와 늘 비교 당하며 불만이 많은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불신교제에 허덕일 즈음에 부모님이 우리들교회 말씀을 듣고 교회를 옮기셔서 저도 언니와 함께 우리들교회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불신교제 끊으면 교회오빠 금방 만날 줄 알았는데 8년이나 솔로의 기근을 겪었습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희귀 난치성 질환인 베체트 확정진단을 받아서 교수님께 추천 받았던 직장에 들어가지 못 하고 1년 넘게 투병하며 낮아지는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들 교회에서 훈련받는 모든 시간동안 세상적으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몸도 아프고 교제도 안되고 취업도 안 되고...교회에서는 유치부 교사로, 수련회 스텝으로, 새가족 목자로 많은 위치에서 섬겼지만 질병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 뺑덕어미 같았습니다.
절친이었던 친언니마저 신교제를 시작하자 평소에 이성으로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오랜시간 알고 지낸 지금의 남편과 신교제, 신결혼 했습니다.
첫째 낳고 남편과 공동체의 권면으로 즐겁게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자녀 양육만 하기로 결단했고 둘째, 셋째까지 허락해주셔서 7,5,1살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
남편 출퇴근시간 길어져서 피곤할텐데 오가는 시간 지켜주시기를
세자녀 양육하는데 지혜와 체력 주시기를
부모학교 완주할 수 있게
임은령

당대 신앙이신 엄마와 일대독자이시자 술을 좋아하시는 아빠가 불신 결혼한 가정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술을 많이 드시고 무뚝뚝한 아빠는 늘 무서운 존재였고, 화가 나시면 집안의 물건을 던지거나 큰 소리를 내시는 아빠는 어린 저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게 만들었습니다. 아빠는 일대독자 이셨기에 아들우상의 집안이었습니다. 제 위로 엄마는 몇 번의 유산을 하시고 어렵게 출산하셨는데, 딸인 제가 태어났습니다. 저와 두 살 터울인 남동생이 태어난 후로 가족의 모든 사랑과 관심은 동생에게 갔습니다. 그로 인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욕심 많고 질투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생일이 빨라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저는 키가 매우 컸습니다. 1학년 때는 한 살이 어리다며 저를 힘들게 하는 아이도 있었고, 또래들보다 덩치가 너무 크다는 느낌이 저를 자신감 없게 했습니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영향으로 저는 열등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쯤부터 성격이 활발해지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저와 키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아 그 친구들과 어울려 매우 즐겁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초반에 이사로 전학 온 지역은 고등학교 연합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전 학교와는 분위기도 친구들도 너무 다르고, 공부만 강조하고 고등입시로 친구들과 경쟁하도록 만드는 분위기 였습니다. 고등학교는 원하는 곳에 들어갔지만, IMF를 겪으며 지낸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대학은 원하는 곳에 가지 못했고, 원하는 전공이 있는 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형교회에 다니던 대학시절 학교 지역으로 지구와 목장이 편성되어 학벌위주의 우리 나라 문화에서 바닥을 치는 열등감이 드러났습니다. 학벌로 차별을 당하는 경험을 하며 열등감은 더 깊어졌습니다. 대학 졸업 후 2년의 직장생활 후 원하는 학교 학사편입에 성공하였습니다. 가족들도 모두 기뻐했고, 특히 어린시절부터 리액션이 없으신 아빠는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저의 인정중독과 성공우상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학사편입한 대학 생활은 매우 즐거웠고, 졸업 후 우수동문으로 전액장학금을 받고 석사 입학도 했습니다. 석사입학하며 유치부 교육전도사(학사편입 전 학교가 신학대의 유아교육관련학과여서 사역의 기회 얻음)로 사역을 시작해 10년간 사역을 하였습니다. 석사 졸업 후 바로 육아종합지원센터에 취업하여 기뻤고 일도 잘 맞고 유능함도 인정 받았습니다. 하지만 힘든 상사와 동료로 인해 정신적 고난으로 결국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교회 청년부에서 만나 교제한 형제와 결혼까지 가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후 만나는 형제들과도 인연이 되지 못하고, 친한 친구들은 결혼하고 출산하고 돌잔치하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일적으로는 잘 되었지만 가장 원하는 결혼이 점점 늦어져 마음은 조급하고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 그 당시 일하던 직장 상사는 그 전 상사보다 더 심하게 힘들게 해 영적으로까지도 다운이 되었습니다. 결국 사표를 내고 휴식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휴식 기간동안 예상치 못한 소개팅에서 지금의 신랑을 만나 신결혼 하였습니다. 신랑은 대학시절부터 쌓아 온 배우자 기도의 열매였습니다. 결혼 후 박사과정 입학을 하고 임신도 하였습니다. 친정과 가까운 곳에 살았고 친정엄마도 육아를 도와주실 수 있어, 첫째 출산 후 박사과정 복학하여 공부하며 사역, 강의, 보육컨설턴트, 연구원으로 활발하게 일 하며 지금까지의 인생 중 전성기라 생각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직업군인인 신랑이 강원도로 발령을 받았고, 진급 3차에 들어가는 시기라 여러 고민 끝에 모든 일을 내려놓고 난생처음 지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에 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임신을 해 임신 동안은 서울로 오가며 하던 강의를 했습니다. 둘째 출산 후엔 강의마저도 모두 내려놓고 육아맘으로 주부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강원도에 3년 있으며 그 안에 진급될 거라 예상했던 신랑의 진급은 계속되지 않았고, 결국 전역을 준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모든 일을 내려놓고 지방까지 와 아내와 엄마로 군관사에 살며, 5차 이상 진급되지 않은 신랑의 신분이 저의 신분이 되어 제가 쌓아 온 학력과 경력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께서 마지막 군생활은 원하는 지역에서 다시 저의 일도 복귀하게 인도해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 못한 곳인 가평으로 오게 되고 관사도 원치 않는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가평에서 진정한 3차 흉년이 시작되었고 진정 감옥같은 갇힌 삶에 직면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 하던 중 친한 친구의 인도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3차 흉년을 통해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고, 사역하며 10년간 부재해 갈급했던 목장공동체에 속하게 되고, 날마다 큐티가 회복 되었습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제 인생의 고난이 해석되어 마음이 시원케 되어가고, 우리들교회에서 성령의 작정으로 이끌어져 가는 인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부모학교를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누리며, 성령의 경영으로 엄마의 때를 살아가는 인생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고성희

저는 사랑이 많으시고 믿음 좋으신 어머니로 인해 행복한 유아시절을 보냈지만, 항상 바쁘셨던 아버지는 초등학생이 되어서 바라보니 의처증에 술만 드시면 엄마를 괴롭히셨고, 무교였던 아버지는 믿음생활에 열심인 어머니를 광신도라며 자주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셨습니다. 3남매 중 막내였던 저는 매일 밤 부모님의 싸움 속에서 무섭고 불안하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이 밤만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 남자친구를 만나서 13년 가까이 연애하였고 단 한 번 다툼 없이 사랑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벌, 집안, 성품 등 세상조건 다 갖췄지만 불신자인 남자친구와 결혼할 때가 다가오자 저는 평생 아빠의 종교탄압 속에 살아온 엄마의 삶을 알기에 불신결혼이 두려웠습니다. (평생 원망하고 미웠던 친정아버지가 저의 구원을 위해 가장 수고해주신거 같습니다 ㅜㅜ) 상견례까지 했지만, 결혼해도 교회는 혼자 가라는 그쪽 어머님의 말씀에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이별했습니다. 이별하고 정말 바닥을 치는 우울감과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그 후 저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친구가 없었던 한가지가 믿음이었기 때문에 배우자를 고를 때 오직 믿음 하나만 보게 되었고 당시 기복신앙적인 모교회에서 전도사님이었던 남편이 단상에 나와서 자신의 치부를 간증하고 적용하는 말씀을 듣고 믿음적인 도전을 받아서 가진 것은 없었지만 남편의 믿음의 삶이 좋아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믿음도 성품도 좋았지만, 제가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처럼 감수성이나 공감력이 좋지 않아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혼자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이별하고 일년도 안되서 결혼한 저는 난 행복하지 않다고 우울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담임목사님의 책을 통해서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말씀을 읽고 제 삶이 리셋되었습니다. 함께 예수님 믿으며 살아가는 구원동반자로 남편과 신결혼하게 하신 것이 감사하고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우리들교회로 출석하며 우리들공동체를 주셔서 제 삶을 말씀으로 구속사적 해석을 할수 있게 해주시고 평생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살던 교만한 제가 100% 죄인임을 알게하시는 은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편이 희귀난치병이 있는데, 우리들교회 오고 나서 첫째 아이가 유전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참 아픈 마음이 들었는데 남편에게는 방탕한 삶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 병이기에 아들에게도 하나님이 평생 잘 붙어가게 하시려고 주셨구나 생각이 들어서 아들과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아픔으로 여겨집니다.
부모학교를 통해서 제가 가진 자녀우상이 깨어지고 말씀으로 자녀양육을 잘 배워서 엄마라는 사명의 자리에서 잘 죽어지고 감당하게 하시길 기도합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