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15기 부모학교 4조(김인숙 조장님) 조별 나눔 보고서
- 날짜 : 9월 7일 화요일
- 참여 인원 : 총 8명 (이효선, 조명은, 이현진, 이정민, 박꽃보라, 정여진, 김인숙, 전희재)
삶의 선 그래프 & 개별 나눔
1. 이효선 님 (2자녀 A, B)
어릴때는 기억이 안나지만 어린시절 기억나는건 아빠가 무서운아빠 술먹는아빠 이고 엄마랑 자주 싸우곤 했어요초등학교 4학년쯤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그 모습을 제가 보았습니다 아기인 동생둘이 누워있고 그옆에서 한참울었어요 (저희는 1남3녀) 그러다가 아빠와 증조할머니 손에 커지다 고모가 6학년쯤 온거같아요 고모손에 쭉 자랐습니다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보건계 대학에 입학하고 국시도 붙고 취업도 하고 아빠와 반대인 술담배 안하고 착한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고모의 반대에 집에서 난동도부리고 화를 주체 못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결혼을 하여 재취업하며 첫째를 가지고 출산까지 하고 육아를 하는중에 첫째가 야경증이야서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둘째를 임신 하자마자 안면마비가와 임신중이라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우울에빠졌어요 둘째를 출산라고 한달만에 둘째가 탈장 수술을했고 그 이후로는 무탈한 일상을 보내는 중입니다.
2. 조명은 집사님 (6세 베아, 6세 디아로체)
어머니에게 믿음을 물려 받았으나 불신자인 아빠와의 피똥 싸는 결혼 생활을 보고 자란 저는 결혼만큼은 믿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어려서 부터 다짐했습니다.
권위적인 아빠와 부모님의 식당을 도와야 했던 유년시절을 지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된 대학은 저에게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가는 남자에게 매달린 적은 있어도, 오는 남자 막지 않았던 저는 온전히 저의 편이 되어주는 지지를 남자친구들에게서 찾으려 애썼습니다.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이후로는 내 세상이 왔다며 본격적으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쯤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고 죄짓는 중에 있었기 때문에 말씀이 들렸으며 항상 찔림이 있었습니다.
지금 남편과의 관계가 진지해 지면서 성품과 직장 외모 모든걸 갖췄어도 신앙이 없는 남편에게 '당신이 믿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 미래는 없다'는 저도 모를 하기 싫은 말이 튀어 나왔고 남편은 성품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그러다 남편이 홍콩 출장 중에 또 다시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갔던 것을 저에게 들킨 것을 계기로,남편은 자신이 예수님의 피값이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남편에게 배신감과 커다란 분노와 상처를 느꼈지만 나중에 그 감정들이 내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느끼신 마음이라는 것이 깨달아 졌습니다. 결혼후 쌍둥이를 임신 했으나 27주만에 제왕절개로 아이들을 꺼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술전 의사는 아이들이 7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는 만큼 뇌출혈, 장님, 호흡 불가능 여러가지 장애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 했고 저는 예수님처럼 이 잔을 내게서 비켜 주시되, 주시려거든 감당할 능력도 함께 주십사 기도 했습니다. 저의 수준 미달이었는지 큰 아이는 정상 회복했고, 둘째 아이는 자가호흡을 할 수 없지만 영구 장애는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9개월간 니큐 신세를 지고, 10번이 넘은 이후로 세지 않은 수술을 받고 집으로 왔지만 24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하여 3교대로 간호사들이 상시 집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지금 까지 하고 있습니다. 22개월 간의 유축과 밤간호사가 구해지지 않아 일주일에 4일 밤을 우리가 직접 아이를 지키며 지새야 했던 기간에는 다 같이 죽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20대에 마음대로 낙태한 생명을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제 아이들을 그것도 수준에 맞게 영구장애 없이 살려주셨기에 지은 죄보다 받는 죗값이 덜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성장하고는 그나마 삶이 안정되었는데 찾아온 코로나로 호흡 장애가 있는 둘째의 상태가 염려되어 저희 가정은 1년 반이 넘게 모든 외부 활동을 차단하고, 간호사도 밤 근무만 유지한체 지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격리되어 지내는 만큼 아이들은 건강한데, 아이들이 조금만 건강하고 삶이 편안하면 저의 관심사는 여전히 안목적 정욕에 사로잡혀 몸매 관리에 여념이 없습니다. 매사 때에 충실하지 못한 경향이 있는데 엄마의 때에 충실하고 이타적인 엄마가 되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순종적인 아빠와 가족모두에게 복종을 원하는 독단적인 엄마에게서 자랐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가난으로 다하지 못한 학벌의 한을 어려서부터 똘똘하단소릴 듣고 초등학교때는 영재반에 들어가는 저에게 풀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유년시절은 늘 우울했고 답답했고 엄마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채찍질 당할때마다 저를 보듬어주고 사랑해주는 아빠가 있어 견딜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정말 저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뉴질랜드로 6개월 어학연수를 가게 되어 처음으로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지만 다시 들어온 한국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중학교 생활은 정말 너무 지옥같았습니다. 도피유학겸 엄마의 못다한 한을 풀어줄겸 고등학교때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으로 떠나 말도 잘 못했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저는 올 A를 받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한다, 무엇이든 열심히 할테니 제가 A를 받을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열심히 유학생활을 보내고 미국 대학을 진학하려고 계획을 세우던 고3때 아빠의 부도와 바람으로 한국에 들어와 한국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아빠는 집을 나갔고 바람을 핀건 아빠지만 그 원인제공을 한건 엄마라는 원망을 품고 아빠를 우상삼으며 집에서 엄마에게 딸의 역활, 남편, 친구, 등등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반항적인 동생보다는 순종적인 저에게 아빠에게 생활비달라는 연락 등등을 시키고 너는 니 아빠 닮아 싫다며 혼내고 저는 정말 고통속에 살았습니다. 그나마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해 하나님이 정말 나를 아직 사랑하시는구나 하며 집에서 일주일 내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되는것에 너무 감사했던 대학교 생활을 보내고 취업을 하자 엄마가 생활비를 내놓으라며 매달 월급의 일부분을 요구했고 월급날에는 소고기를 사라며 혹은 집에 뭐라도 사오라며 계속 남편의 역할을 저에게 요구했습니다. 아빠는 바람난 그여자와 그여자의 딸의 아빠행세를 하며 그여자와 살고 있는것을 우연히 제가 발견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고 현재 아빠는 지금도 그 생활을 유지중입니다. 지금도 제가 아빠 우상이 있어 많이 힘이 듭니다. 엄마의 인도로 우교에 오게되었고 목장에서 처음으로 저만 불행한 존재가 아닌것을 알게되었고 고난을 나누며 갈 지체가 생겨 너무 행복했습니다. 당시 만나던된 남자친구는 우교에 함께와 청년부에 정착하고 원택진목사님 주례하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넓은 집에 엄마와 사는것보다 작은집에 남편과 살게되어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꼈지만 곧바로 생각치도 못하게 아이가 생겨 낳게되었습니다. 자식으로 사는것이 너무 힘이들어 항상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을거라고 외쳣던 저에게 바로 하나님이 아이를 주신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임신기간 내내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고 목장의 권유로 일과 대학원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육아중입니다. 육아를 하며 그때 내가 엄마에게 당했던것이 정서적 학대인것을 알게 되었고 당한 나를 되돌아보며 연민에 휘말려 목장에서는 매일 울었습니다. 어느날 엄마가 저에게 가게를 차리겠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에 목장에 물었더니 부모자식관계에서도 돈거래 하지말라는 답에 빌려주지않았더니 나는 정말 네가 싫다 다시는 자기에게 연락하지 라는 말로 지금 3년째 연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엄마는 현재 직장목장 부목자 이십니다. 그때부터 목장의 권유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되었고 아이는 항상 영상을 틀어주고 저는 누워만 있었습니다. 지금 아이가 48개월인데 아직 말이 트이지 않아 다섯단어 정도 밖에 못합니다. 대학병원 진료를 봐도 뚜렷한 원인이 없이 단순언어지연인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려서 확실치 않다는 답만 받고 이치료 저치료 하며 일주일을 보냅니다. 아이의 발달상황이 현재 저의 가장 큰 기도제목입니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고 싶고 어떻게 아이를 하나님 안에서 잘 키울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4. 이정민 집사님 (6세 김희수, 4세 김희찬)
저는 치과의사,피아노교수이신 부모님 밑에서 온 가족이 좋은 학벌과 배경을 자랑하는
마치 아덴과 같은 환경에서 자랐고 저 역시 사립예중, 예고를 거치며 미술을 전공했는데,
중학교때, 아빠가 주식으로 1차 망하게 되면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저는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열등반에 속하고 살이 찌면서화려한 아이들 틈에서 미운오리새끼처럼 열등감과 교만으로 뒤범벅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릴적부터 계속된 입시시험과 미술레슨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고2때 아빠가 주식중독으로 망하면서 그 때 당시 큐티모임에 나가고 계시던 부모님의 적용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후대책으로 마련되어 있던 단칸 사무실형 오피스텔에 이사하게 되면서, 갑자기 가장 예민한 시기에 모든 것이 노출된 단칸방에서 4식구가 지내게 되면서 제게도 고난이 찾아왔고, 재수생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기복적으로 오직 대학에 가고 싶어 알지도 못하는 큐티말씀을 빼곡히 적으며 미션스쿨인 학교에서 큐티모임을 인도하기도 했는데 믿음이 연약한지라 가까스로 대학에 붙여주셨고,
청년부시절부터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오랫동안 말씀을 들었지만
말씀따로 삶따로로 삶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 말씀이 지식이 되어 머리만 커져서 내가 정해놓은 답에 스스로를 맞추고자 부던히도 애쓰며 믿음 좋은 척 했지만, 한켠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되어지지 않는 모습에 교만함과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습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변변찮은 직업도 없고 결혼도 되지 않자, 제 이상과 현실의 갭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졌고 정신과도 다니며 가장 암흑기의 우울한 시절을 보냈는데 그래도 공동체에 붙어 있기에 아웃리치에서 8살 연하의 남편을 만나 신결혼 하게 하셨습니다.
오래 말씀은 들었지만, 저 자체가 너무나 의인 모범생이고 죄패가 무엇인지 몰라 유대인처럼 말씀이 들리지 않아 개척멤버인 아빠가 아직도 주식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해석이 안되고 인정못받는 것같다 생각하며 장년부 올라와서 더욱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혼 생활하며 저 자신을 조금씩 직면하고 이제야 비로소 말씀을 삶으로 가져와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아주아주 조금씩 양육되어져 가는 중이라 지금이 그 어느때보다 안정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기력하고 우울질에 회피형이라, 아이들 양육하는데 있어서도 걱정만 앞서고 적용은 잘 안되는 연약한 부모인지라, 부모학교를 통해 조금은 더 지혜있는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신청했습니다
5. 박꽃보라 집사님 (6세 김시안, 3세 김시윤, 0세 태명 선물이)
어린시절 사찰집사님이시던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 7살때부터 시작된 아빠의 바람으로 교회에서도 치리받고, 쫒겨나듯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터 시작된 고부갈등과 함께 겪게된 13년의 시잡살이 때문에 빨리 집을 떠나고싶고,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대학교때 서울로 오면서 13년의 힘든생활이 마무리되는듯 하였으나, 부모님은 여전히 사이가 안좋으셨고, 엄마의 별거생활과 음독의 사건도 겪었습니다, 저또한 쭉 이어진 우울과, 자존감하락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우리들 교회에 인도받아 삶이 해석되고 수지맞은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직장고난, 연애고난, 결혼고난이 와도 예전처럼 우울에 빠지지않고, 말씀으로 해석받고 공동체에 의지하며 온예배와 모임에 참석하고, 섬기면서 초원까지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되어 목사님 주례로 신결혼 하게되었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않아서 고난의 시간이 있었지만 말씀보고 적용하며 나아가니 자연임신을 허락해 주셨고 셋째(선물이 0세) 출산을 앞두고있습니다.
6. 정여진 집사님 (6세 정지아, 4세 정하율)
할아버지께 학대를 당하시며 살아오신 아버지는 뱃속에 저를 임신하고 있는 어머니를 구타하실 정도로 폭력적이셨습니다 무서운 아버지 부재중 어머니 그런 두분의 불화와 어릴적 시력을 잃게된 사고 진로의 어려움이 전반적으로 제 삶의 어려움이었지만 덕분에 예수님과 공동체에 잘 붙어올수 있었습니다 행복을 꿈꾸며 결혼한 남편이 어느날부터 저를 멀리하기 시작하며 혼자있으려 하고 양육에서조차 잘 도와주지 않으니 별거를 외치다가 우리들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7. 김인숙 조장님 (8세 임하연, 7세 임민재)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1남 1녀로 태어났어요 연년생으로 태어나 10대 20대때 공부잘하는 오빠에 비해서 소외된 청소년기를 보내고 우울한 매일을 보냈습니다. 재수를 하면서 공부를 해 대학에 갔는데 음주가무도 즐기고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버니 시대의 흐름을 따라 눌러왔던 욕구가 분출되어 흘러갔습니다. 하고싶은걸 다 했어도 우울했고 학벌 좋은 남편과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이 재혼이었는데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남편이 재혼의 본색을 드러내서 산후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 육아를 하고 남편과 교류가 되지 않아서 유교적인 남편과 살면서 우울이 끝을 달렸어요. 첫째아이가 교통사고로 천국에 간 이후로 남편을 정죄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힘들어 제가 먼저 집을 나가고 이후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너무 힘든시기에 우리들교회로 왔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공동체의 위로와 양육을 받으면서 변화되었습니다. 영적으로 회복되고 부목자로 세워졌습니다 코로나때문에 두 아이와 함께 살게되었는데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육아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다른 교회를 다녔지만 세상으로 떠내려가있습니다 남편이 구원을 받고 영적 제사장으로 세워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합쳐지고 권찰이 되는것이 꿈입니다.
8. 전희재 부조장 (5세 강태온, 4세 강유주)
모태신앙으로 믿음 좋은 어머니를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겪으시며 교회에 등을 돌리신 어머니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멀어져 세상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후 친구의 권면으로 청년예배와 모임도 나가보았지만 율법주의와 믿음 없는 성실로 말씀 없는 가짜 신앙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술과 여행으로 채우며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보내다 홧김에 잘 다니던 회서에 사표를 냈고 이후 어린나이에 짧지 않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수개월간 재취업이 되지 않아 힘들어 했습니다. 해달별이 떨어지는 암흑 같은 시기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들교회와 가까운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직장 상사의 권면으로 우리들교회 수요예배에 처음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은 수요예배 말씀이 돌같이 딱딱한 제 가슴을 울리며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설교에 단번에 사로잡힌 저는 청년부에 새가족으로 등록하여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항상 즐겨왔던 술자리가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알코올 냄새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본 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를 사수하며 하루하루 생기가 충만해졌고 양육과 부서봉사를 하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기쁨과 사랑을 충만히 느끼며 청년 생활을 하다 은혜 가운데 신결혼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한달만에 귀한 생명을 일찍이 허락해주셨고 돌이 되지 않은 첫째를 양육하며 힘들어하던 시기에 둘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년생 육아가 두렵고 겁이 났지만 이내 전도를 못하면 아이라도 낳아야 한다 라는 공동체의 처방이 떠오르며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한 저에게 거룩하게 감당할 사명으로 둘째를 주셨음이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온이와 유주를 양육할수록 우리 아이들이 양가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이 모두 불신인 저희 가정에 구원의 통로로 쓰일 아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태온이를 양육한 것 처럼 유주 또한 매일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귀한 두 생명을 맡겨드릴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부모학교에 성실히 참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