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기 10조 삶선 그래프
1.김서영
1남4녀중막내로 태어나 바로 위 오빠와 차별을 받았습니다. 폭력을행하는 오빠에게서 보호받지 못하고 마음속에 상처와 분노가 쌓여갔고 결혼 후 강박과 결벽증, 외롭게 만드는 남편 때문에도저히살 소망이 없다고 여길 때 우리들교회를 만났습니다. 차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공동체에 붙어 갔지만 쉴틈 없는 자녀고난으로 인해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큰아들의 adhd와음성틱으로 학교부적응과 폭력사건을 겪으며 내가 얼마나 딸만을편애했고 아들을 영육으로 폭력을 행하며 키웠기에 내 삶의 결론이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고난보다 죄가 약해보이기에지옥을살뻔했는데 말씀 있는 공동체에 속해 양육받게 하시니감사합니다.
2.. 정재경
저는 삼녀로 태어났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과 세대차이가 많이 나는 관계를 유지하며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엄격하시고, 때로는 방임으로 저를 양육하셨고, 어머니께서도 경제활동을 왕성히 하셨기 때문에 어려서 부터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성격으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때 공부하기가 참 어렵다고 생각이 들었고, 입시 문화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우울한 사춘기를 보낸거 같습니다. 대학 후에 독립적인 나의 삶이 더 견고해 졌고, 지금의 남편을 일찍 만나 10년의 긴 연애끝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남편과 미국유학 생활을 했으며,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임신 소식을 알게 되어 태교부터 출산, 양육을 미국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축복임을 알지만, 부모님과 친척들 없이 오롯이 저희 가정의 힘으로 육아와 양육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고, 남편의 긴 유학생활로 미국에서 매일매일 생존하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과정안에서 출석하는 교회에서 큰 은혜를 체험했고, 죄인임을 깨닫고, 성경과 말씀에 중심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인도하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과정을 마치고, 직업이 연결되어 2020년에 서현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고, 선물이었음을 고백하는데, 이 깨달음 마져 저는 오늘에서야 조금씩 인정하고,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귀국 후에 적응하느랴고 가족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코로나와 그리고 적응에 긴장을 많이 한 탓이라 건강이 많이 쇠약해졌어요. 잦은 두통과 더불어 오늘 건강검진을 했는데 병원에서 2차 검사를 받아야 된다고 해요. 부모교육을 들으면서 저를 많이 되돌아 봤으면 하고요, 적용하는 지혜를 주님이 주시길 기도합니다.
3. 박시영
저는 딸넷 아들 한명 중 넷째딸로 제 바로 아래 남동생이 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 훌륭하신 부모님이신데, 왜 제 안에 우울과 서러움이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아무래도 제 위로도 딸이기에 몇번의 유산을 하셨을텐데 저도 딸인지 아셨지만 어떤 스님의 복덩이라고 하셔서 지우지 않으셨다는 후문을 들었어요.
저도 넷째 딸을 낳았지만, 아들 둘 딸 둘인 저와 달리 엄마는 저를 갖고 또 낳으실때 심정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때 공부도 잘했고 반장도 계속하며 주목 받았지만 친구를 넓게 사귀지는 않았고, 깊이 허물없이 지내는건 잘 몰랐던것 같습니다. 중학교부터 예술학교 입시를 치르며 극도의 경쟁속에 있으며 그것이 알게모르게 제 영혼을 황폐화시킨것 같았습니다. 제 부모님은 불교신자신데 중학교 미션스쿨 영향으로 그때부터 신앙을 가졌습니다. 부모님은 마산에 계시고 저는 언니들과 서울에서 유학했는데, 어린나이에 그것이 고난이었는지 학교 갈때 기도실 들르며 하나님께 의지하며 신앙을 가졌습니다.
대학때 선교단체 하며 you are special 에니메이션 보며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동안 능력으로 나를 증명하려하고, 평가받아온 것이 얼마나 상처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선교단체 친구였던 목사님 아들인 남편과 결혼했고 4년동안 아이가 없다가 첫째를 낳고 이어 넷을 낳았습니다. 각각이 하나님 주신 생명임을 약속과 함께 주셔서 아이들 볼때마다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삶선 그래프의 올라가고 내려감이 저의 성취에 따라 제가 그리고 있는것을 보며 지금 육아로 내가 하고자 하는것을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함과 답답함을 깨닫습니다.
4. 서영미
저는 미혼모 가정입니다. 어려서 외가에 맡겨져 어린나이지만 눈치보며 살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중2쯤 기다리던 엄마와 함께 살게되어 부푼 기대감을 가진것도 잠시 엄마의 동거남과 함께 살아야한다는것에 또한번 실망을 했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란 저는 또 눈치보는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그리고 중3 정도로 기억하는데 엄마의 동거남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엄마에게 얘기는 했지만 동거남과의 생활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 스스로를 지켜야한다는 강한 인식이 생긴것 같습니다. 누구와 쉽게 말을 섞지 않고 대인관계에도 항상 보이지 않는 투명막을 치고 살아온것 같습니다.
29살에 지금의 남편을 선자리에서 만나 5개월후 결혼을 했습니다. 친정을 뒤로 하고 남편을 타라 경북청송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시아버님을 모셔야하는 상황에 너무너무 힘든 신혼생활을 했고 얼마 있지않아 첫아이를 임신하고 우울증세도 경험했습니다.
첫아이 출산을 위해 친정인 인천에 오게 되었는데 여러가지 상황으로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엄마의 유방암4기 판정을 받는 사건이 생겼고 육아와 병간호,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2월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아아닌 고아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해달별이 떨어지는 일이였습니다. 그리고 고향같은 인천을 뒤로하고 남편 직장의 이전으로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오면서 큰형님의 인도로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고 세례,양육을 받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오게된것은 경제관념이 없는 제가 남편모르게 큰 빚을지는 사건으로 혼자 감당하기 힘든 저는 무엇이든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처음 발걸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남편의 결정으로 귀농을 목적으로 경북안동에 이사왔고 남편은 시댁인 청송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성향이 저와 다른 사춘기 중1 첫째아들과 얼마전 성추행사건을 당한 둘째딸의 문제로 부모학교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5. 정수린(진석진원맘)
저는 평범하고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짜증이 좀 있으신 엄마였지만, 그래도 항상 행복했습니다. 사춘기시절은 친구들과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4학년 아빠가 퇴직을 하시고 잠깐 혼란스러웠는데 다시 다른회사에 취직이 되셨고 다시 평온하게 살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편은 아니었으나 부모님들의 지원으로 대학원까지 졸업했는데 취업에 실패를 하고 몇달 외국에 머무르면서 다시 취업준비를 했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청년부터다녔고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형제를 만나 김양재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해서 지금껏 살아오고 있습니다. 첫째를 낳고 너무나 예민한 아이 덕분에 남편과 예민함으로 대립하기시작했고 친정엄마와 이모님이 상주해서 그나마 버티어갈때쯤 둘째를 가졌습니다. 남편은 호주로 발령이나서 먼저나가있고 둘째를 혼자 출산하고 호주로가기위해서 검진을 받았는데 심장결함으로 재검을했고 선천성심장질환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호주로 가는것은 포기하고 7시간에 걸친 심장수술을 받고 남편은 다행이 프로젝트가 짧은시간에 진행이되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들어온지 1년만에 베트남으로 재발령을 받았고 온가족이 베트남에서 4년간 살았습니다.
몸이 약했던 아이들과저는 쉴새없이 한국을 드나들며 병원치료를 받았고 결국 나오기 1년전부터 이석증과 구안와사를 앓고 체력이 바닥이나있는채 지금까지 근근히 버티고 있습니다. 첫째아이는 요즘 사춘기인건지 아님 저랑 너무 안맞는건지 매일 전쟁을 치루고 있지만 제가 변해야하는걸 알기에 부모학교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6. 김미진 (세빈,세아맘)
저의 삶선 그래프는 어릴적 20년은 외로움과 절망감으로 하향 곡선 입니다 8세에 엄마의 조현병이 발병하고 저희 가정과 제 인생도 먹구름으로 덮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하시고 성실하셔서 가정을 지키셨고 4남매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독립적인 성향으로 각자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약을 드시고 누워계신 날이 많았고 청소년기에는 저는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에 철없어 보이고 스스로 인생의 고뇌에 빠져 스스로를 고상하다고 여기며 문학책에 몰입하기도 했습니다 애정이 결핍되어 에너지가 없으니 외로움과 불안으로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주기적으로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대학 진학에 실패하니 복음을 듣고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0대는 교회 공동체안에서 전공을 바꾸는 방황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내 적성에 맞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자신감과 안정감을 찾아갔습니다 작지만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적으로도 자립과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31세에 교회에서 만난 책임감있는 남편은 효를 중요하게 강조하는 문화에서 절대적인 효자로 자랐고 저는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었기에 문화적 갈등의 한계 상황으로 저의 삶선 그래프는 하향선을 치닫게 되었습니다
상대의 문화를 인정하고 공감과 소통이 안되니 남편은 시댁과 연합하고 저는 두 자녀와 세 식구라고 여기며 자녀들에게 위로받으며 버티고 살아왔지만 남편에게 받았다며 배신 실망 절망으로 연민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렇게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이중적인 모습의 거짖 화평으로 회칠한 가정이 되어 갔습니다 이렇듯 하향 곡선으로 치달았던 삶선 그래프가 바닥을 찍고 어찌하여야를 외치며 방황할 때 우리들교회 목장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어린시절 1차 흉년 속에서도 내 성실함으로 버티고 살아온 내 인내심 9단의 내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 2차 흉년으로 찾아온 시댁고난이 해석되었습니다
내 교만을 회개하고 상대의 문화를 인정하고 공감하기 시작하니
불통이 소통이 되어 부부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편한 관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매주 목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시댁의 사건을 나누고 해석하며 내 애정결핍과 시기 질투 생색을 보게 되었고 내 연약함과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되었다함이 없이 생색이 올라 오는 저의 모습이 있어서 뒤로 후퇴할때가 많습니다
시댁의 어려운 형편이 저희 가정의 겸손한 환경인 것에 감사하며 잘 나누며 붙어가겠습니다
7. 권수정
어릴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외가 친가 할것 없이 모두 교회를 다니셨기때문에 신앙생활을 당연하게 했습니다. 엄마 아버지 두분다 어릴적부터 각자 사업체를 가지고 매장, 사무실을 운영하셔서 바쁘셨지만, 늘 엄마 가게와 붙어서 집이 있어서 바쁘셨어도 부모님의 부재를 느끼지는 않았고 무난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부모님과의 상호소통은 활발했고 성향이 다른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서 똑똑한 맏딸로 늘 두분이 의견갈등이 있으실때에는 중재자 역할을 맡으며 자랐습니다. 두분사이에서 늘 사업에 대한 이야기와 처세, 인간관계 등을 듣다보니 높은 자기효능감과 성취, 성공주의도 생겼지만 동시에 피로감도 있었습니다. 나는 개인사업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맘에 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제자훈련도 받고 주일학교교사생활을 하고 집에서도 반듯하게 생활했지만, 대학때 처음 남자친구를 2년정도 사귀면서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술 담배도 궁금증에 잠깐씩 다 해보았습니다.
모태신앙에 오래들은 성경말씀이 안에 있어서 죄라는 것을 알았지만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고 딱 이렇다 하게 주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에 말씀에 비추어 볼때 유약하고 죄짓는 청년기를 보낸것 같습니다. 말씀과 복음보다는 세상의 것들에 더 관심이 많았고 대학교2학년때 떠난 유럽 건축여행을 기점으로 방학때 캐나다로 교환학생도 몇개월 가고 이후에는 해외로 나가 공부해보고싶다는 강렬한 소망이 생겼습니다.워낙 어릴적부터 갖고싶은것 하고싶은것은 꼭 하고마는 갖고마는 성격이라 계속 그쪽으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졸업하면 제가 사업을 이어 하시길 바라셨기에 유학은 안갔음 하셨는데. 그래서 제가 방법을 찾아낸것이 1년간 가는 단기인턴십이였습니다. 대학교 4학년때 마지막 한학기를 휴학하고 한국에서 인턴십과정을 준비해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미국의 직장에서 인턴기간1년을 마치고 돌아오기 1달전쯤 직장동료였던 교포2.5세인 남편의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어 2년이란 시간을 장거리연애를 하고 3년째 되던해에 결혼을 하여 미국에서 5년간 신혼살림도 하고 첫째와 둘째를 낳았습니다. 결혼과 임신 육아중에도 남편은 계속 학교 공부를 하고 있어서 시어머니댁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5년째가 되니 너무 답답해져서 밖으로 나가 살 방법을 모색하다가 마침 상황이 맞아 떨어져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친한 친구의 소개로 우리들교회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한국어구사가 자유롭지 않아 영어예배 공동체를 찾고 있었는데 우리들교회에 외국인부부목장이 있어 남편과 함께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특별한 고난도 죄도 없어보이는 그저 해맑은 우리부부는 부부목장에 속해있은지 1년이 되어 연애시절 함께 저지른 낙태의 죄와 저도 몰랐던 남편의 죄고백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면서 공동체안에서의 눈물의 죄고백과 회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일대일 양육과 교사양육을 받는도중 셋째를 잉태하는 축복을 주셔서 현재 세 아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원인모르게 계속 되는 두통과 약 복용 그에 이어 최근의 공황장애진단으로 또 약을 복용하고 있어. 부쩍 무기력해진 남편을 보면 저는 남편이 불쌍한 마음보다는 혼자 육아,일 ,집안일, 남편까지 챙겨야하는 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에너지가 많은 저에 비하면 남편은 시키는 몇가지 집안일도 미루고 미루다 느릿느릿 하는걸 보면 속이 터질것 같고. 코로나때문에 학원강사일도 들쑥날쑥해서 그나마 고정 줌강의로 가족 생활비의 3분의 1도 안되는 수입을 벌어오면서도 맘이 하나도 급해보이지 않는 남편을 보면 또 속이 터집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이후로 계속 삶선그래프의 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바뀌면 이 삶이 좀 나아질까 싶지만 공동체의 말씀을 들으면 내 환경은 내 죄를 보라시는 주님의 완벽한 세팅이라고 하니 이것도 주님의 뜻인건가 싶어 그렇게 생각하며 울분이 일어날때마다 덮고 또 덮습니다. 세상도 나도 이렇게 악한데, 아이들은 셋이나 되니 엄마인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아이들 건사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부모학교를 신청하였습니다. 부모학교에서 잘 듣고 소화하여 내것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양육할수 있길 기대합니다.
8. 김경희
저는 가난하지만 예수님 믿으며 가정을 힘겹게 일구신 엄마를 존경했고, 능력 없으신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교 1학년 교회오빠를 통한 성폭행을 당하면서 저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건강한 이성관을 갖지 못하게 되었지요. 졸업후 ccc간사로, 교회 사역자로 복음의 열정이 있다고 믿음 있다고 착각하였으나, 20대의 상처와 연결되어 늦은 나이에 만난 남편을 통해 저의 믿음 없음과 교만, 옳고그름, 생색, 스스로 사랑 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사역자였으나, 조증, 우울을 반복하면서 정신적, 영적, 경제적, 사회적 삶은 피폐하였고 2번의 강제입원과 저의 우울, 아이의 분리불안, 파산 등으로 힘겨운 결혼생활이 이어졌습니다.
큐티를 한지는 오래되었으나, 구속사의 말씀으로 제 인생가운데 해석되는 것은 우리들교회에 와서 양육을 받으며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사명을 다시 발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역할을 해야 하기에 가정을 깨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신념이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업무상 난청이 와서 그만두게 되면서 지금은 실업급여 받으며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초6 딸이 사춘기가 와서 말대꾸를 또박또박하며 온갖 짜증의 감정을 표현하니 동역자였던 자녀가 왠수같은 존재가 되어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적인 앎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변화되고 관계속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