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

자녀: 정다유 (딸/6세), 정다애 (딸/4세)
지원동기: 큰딸 선택적함구증 치료 후 둘째 양육방향을 잡기위해. 큰아이 친구 중 가스라이팅 하는 아이 대처.
삶선나눔
인격적이고 사랑 많은 엄마와 부재중 아빠 사이에서 엄마를 나의 우주로 여기며 행복하다가 10살에 암으로 엄마가 소천하셨습니다.우주를 잃어버리고 세상에 외톨이가 된 것 같아 비행도 하고 애정결핍으로 남자친구들에게 애정을 갈구했고 20살에 아이를 낳아서 낙태하고 그 후 남자친구가 자살하는 사건으로 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우리들교회에 오면서 이슬비처럼 말씀이 젖어 들어 재혼하신 부모님과 갈등을 직면하고 용서와 화해하여 고점을 찍고 남편과 결혼했지만 신혼생활이 너무 힘들어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교회와 목장, 상담을 다니며 서로를 인정해가며 좋아지는 듯했지만 최근 제가 쌓였던 생색이 폭발하며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지수현
자녀: 16개월 아들, 임신 6개월차 아들
지원동기: 원래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요즘 부쩍 육아에 지쳐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서
삶선나눔
저는 순하고 무난한 아이로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았어요. 아빠는 일하느라 부재중일 때도 많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이사도 많이 다녔지만 저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산 거 같아요. 10살 때 중국으로 온가족이 이사를 가서 살았는데 아빠의 사업으로 중2 때 카자흐스탄으로 가게 됐어요. 그때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사춘기이기도 하고 내가 중국에서 잘 쌓아 놓은 인간관계와 편한 언어, 환경을 두고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항심이 생겨 친구들에게 마음 열기가 어려웠던 거 같아요. 이때 제가 처음 선택적함구증이 생겨서 학교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안하고 집에 오는 날이 많았어요.
저 자신만 보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가 너무 아름답고 색다른 문화가 흥미롭기도 했고 좋은 교회를 만나서 좋은 선교사님들과 교제하는 시간이 있어서 좋은 점도 많았어요. 짧았던 카자흐스탄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중국으로 왔을 때는 불신이었던 아빠도 함께 교회에 나가는 은혜도 주셨어요. 그러다 2살 위에 언니가 대학을 한국으로 가면서 온가족이 한국으로 나오게 됐는데 이때가 저한테는 정말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었어요. 아빠는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돈을 빌려서 한국에 나와야 했고 저희 다섯식구는 단칸방에서 살아야 했어요. 저는 또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해서 선택적함구증 증상이 또 생기면서 소수의 친구들과만 어울렸어요. 이때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내 한마디가 그냥 내가 되어버리는 거 같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말을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을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나오면서 저희 가족은 엄마의 결정으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어요. 엄마는 중국 코스타에서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시고 계속 인터넷설교를 듣고 계셨다고 하셨어요. 우리들교회에서 나를 돌아보는 말씀을 들으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평탄하게 살았는데 속은 다 썩어 있었던 걸 발견했어요. 치열한 회복의 시간을 통해서 힘들었던 가족 관계가 회복되고 피해의식과 교만으로 꼬여있던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회복시켜 주셨어요. 그후 청년부에서 형제를 만나서 25살에 신결혼했고 부부목장의 도움으로 신혼의 갈등도 무사히 지나왔어요. 지금은 육아 말고는 힘든 게 없어 말씀이 안 들려 목장에만 꼭 붙어있는 고난 없는 목원입니다. 1월1일이 예정일인 둘째를 기다리며 미래는 기대와 소망으로 그려보라고 하셔서 높게높게 그려보았어요ㅎㅎ 끝
조한나
자녀: 첫째 유다온 (6살 남아), 둘째 유다연 (2살, 9개월 여아)
지원동기: 둘째가 태어나면서 둘째 케어와 동시에 첫째 양육에 대해 도움받으려고 지원했습니다.
삶선나눔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적으로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고, 어려서부터 잦은 해외생활을 했습니다. 어머님은 신앙에 열심이셔서 어딜가나 큐티모임을 주도하셨고 그런 어머니 덕분에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크게 모나지 않게 살았지만, 신앙에 대해 큰 반감도 동시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십대 때 신앙적으로 반항이 젤 심했는데, 당시 살고 있었던 곳이 많이 열악한 나라라 나에게 아침저녁으로 교회 반주에 유치부교사에 여러가지 섬김을 강제로 시키는 부분에서 반감이 생겨 반항심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서 좋은 목사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20대까지는 또다시 순탄하게 살아오다가 대학교 졸업할 때쯤 취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인생에 가장 예민했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때 통역 알바를 하다가 돈도 떼여봤고, 폭력적인 남자친구와 연애를 했는데, 무섭고 두려웠던 이 연애는 다행히 하나님께서 단 한 번의 기도로 잘 끊어내 주셨고 그 이후 은사 같은 청년부 목자언니를 만나 미뤄왔던 입교와 일대일양육을 거치면서 인생의 전환점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때 교제하던 새로운 남자친구를 통해 성격적으로 많은 부분들이 바뀌게 되었고, 나에게 완벽한줄로만 믿고 싶었던 백마탄왕자 같았던 남자친구와도 목자님의 적용으로 헤어졌습니다.
신앙적으로 가장 갈등 충만했던, 그리고 뜨거웠던 시기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첫째를 바로 임신하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었음) 아니라 낙담했지만, 20대부터 계속 생리불순으로 다난성난포증후군이 있었기에 (그 당시 직장목장 목원들이 다 불임이나 시험관으로 힘들어하고 계셨음) 하나님께서는 나의 속상함을 감사함으로 바뀌게 해주셨습니다. 5년간 첫째를 양육하면서 엄마로서 좋고 행복은 하지만 힘이 너무나 드는 육아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엄마의 아내라는 사명에 계속 지쳐만 갔고 무기력 해졌는데, 이 감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울부짖던 차에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사건을 맞이했고 수술과 동시에 2주 입원이 불가피하게 되면서 둘째는 6주째 친정부모님과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재활치료 중에 있는데 수술보다 뼈를 억지로 꺾는 고통이라 매일매일 두려움과 우울감에 낙담하고 있는 요즘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치료효과가 생각보다는 미미하고 무엇보다 치료기간의 끝을 알 수 없으니 너무 답답합니다.
지금은 다시 육아로 힘들어도 좋으니 우리 둘째를 언넝 데려와서 제가 안아주고 이유식 먹이고 응가 씼어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ㅠㅠㅠㅠㅠ
이주연
자녀: 12개월 남
지원동기: ADHD와 불안장애도 있고 감정적 표현을 못하니 자녀양육에 대해배우고 싶어서
삶선 나눔
1남3녀중 장녀로 태어났고 엄마아빠는 맨날 싸우시고 아빠는 저를 장남처럼 키우려고 많이 때리고 하셨는데 어릴 적 좋은 들도 있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고 안 좋은 것도 부분으로만 기억을 합니다.
크면서 동생들이 태어날 때는 기뻤지만 막내가 태어나고 1,2년정도 있다가 엄마가 집을 나가셨고 그 뒤 일년간 아빠가 돌봐 주다가 아빠도 나가시고 고모가 저희 사남매를 키워 주셨는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 할 때 여서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여자로서 빨리 일할 수 있는 실업계 미용과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의외로 인정을 받아 열심을 내어 빨리 일 하려고만 했고 성인이 되면서부터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고모마저 우리를 버릴까봐 집에서는 말 잘 듣는 아이로 연기를 하고 집 밖에서는 망나니처럼 살았습니다.
고모가 교회를 다녔기에 교회와 신앙에 대해 밀어 부쳐서 주일에 일하는 곳에 갈 수가 없었는데주일에 쉬는 것에 이곳저곳에서 일하다 우리들교회 다니는 분과 같이 일을 하며 만나고 친해지면서 그분이 하시는 것들 큐티나 양육 등 궁금해서 물어보고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골교회 다녀서 어르신들 밖에 없어서 더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와서 말씀 들으며 많이 살아나고 믿는 남편만나 신결혼하고 아이가 생길 줄 알았는데 생기지 않아 심적으로 너무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병원가서 검사하니 난임 판정을 받고 아이를 주셔서 감사하고 좋았는데 임신초기부터 유산기가 있어 안정기까지 침대서 누워만 있으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안정기까지 지내다 이제 움직여야지 할 때에 입덧이 심해지고 코로나가 터져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만삭때에도 유산기가 있어서 다시 침대생활을 하며 어렵게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너무 감사하고 좋지만 길어진 코로나로 혼자 아이를 감당하고 어디 다니지 못하는 것에 우울 할 때도 있고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으니 아이를 양육 하는 것도 어찌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길어지는 남편의 재택으로 남편과 아이를 다 케어하는 것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중입니다.
송지나
자녀: 손민하(딸/2세-11개월)
지원동기: 독박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서 아이에게 쉽게 짜증내며 혈기를 부리는 제 모습을 보며내가 교회에서 말하는 문제 부모인 것 같아 이를 개선하고자 신청했습니다.
삶선 나눔
어릴적 10대)
평범한 교육자 집안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인생은 평범하고 큰 고난 없는 인생으로 10대엔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 전쟁을 견뎠고, 고등학교때엔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심적으로 많이 방황했습니다.
20대)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으나 적성에 딱 맞는 과를 선택해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고 운이 좋아 누구나 가고 싶은 명문대 경영학과에 편입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뛰어나다고 하는 애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내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자존감과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26-27세)
졸업을 하면서 원하던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으나 인턴 전환에서 실패하였고, 적성과는 전혀 맞지는 않으나 연봉 많이 주는 회사에 입사하였습니다.
입사한 회사는 극악으로 보수적인 회사였고 멋대로 지원부서에서 타부서로 이동시켜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했고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는 차별과 고졸 출신 직원들의 이상한 텃세로 복장이 불량하다며 불려 다니는 (목감기로 스카프하고 있었는데 끌려감)경험하며 힘든 시간을 겪었습니다.
32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콩깍지가 씌어4개월만에 결혼을 했을 때 잠시 기뻤으나 ....
남편과의 성격차이 등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순간부터 피 터지게 싸우다 이혼을 하네 마네 난리를 쳤으나 부부목장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넘겼습니다.
33세-35세)
남편과 조금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세번의 유산을 겪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공황장애까지 와 회사를 휴직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36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신앙고백 후 감사하게도 아기가 생겼으나 10달 내내 입덧을 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입덧 고난에 대한 보상인지진통과 출산을 짧고 굵게 겪게 해 주신 하나님의 센스에 노산 임에도 빠르게 몸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37세 현재)
어렵게 생긴 아기라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독박육아로 심신이 지칠 땐 그 혈기를 아이에게 냅니다.
아기만 낳으면 마냥 좋을 것 같았고
남편이랑도 안 싸우고 행복 할 줄 알았는데 서로 예민하니 ....
(저는 육아로 지치고 남편은 회사일로 지쳐서)
옷깃만 스쳐도 으르렁 댑니다.
그러나 요즘 저의 꿀 같은 자유시간을 포기하고 아이가 자면 같이 자고 일어나면 같이 일어나며 낮에는 스마트폰을 전혀 보지 않는 적용을 하니 아이의 까닭 없는 보챔이 줄어들어 저도 혈기가 나지 않아조금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향춘
자녀: 문하선 (2세, 12개월, 여)
지원동기: 자녀양육에 넘 지혜가 없어서 (혹시 나로 인해 잘못된 영향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들이 잘 올라옵니다.)
삶선나눔
저는 교회 다니시는 어머니 밑에서 동네교회친구들과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불신과 주사가 심하셨던 아버지로 인한 갈등으로 점점 힘든 10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제가 중학교때 이혼하셨는데 그 때 엄마는 다른 남자를 만나시고 동거하시면서 교회도 떠나시고 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도 더욱 심해지는 주사로 인한 아버지와의 갈등과 아버지가 술 먹고 온 저를 만지는 사건으로 남동생을 혼자 두고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오니 고등학교때 친구와 남자친구들과 음란, 술, 담배로 더욱 방황을 했습니다.
당시 무용을 시작했는데 우울했던 저의 청소년기에 즐거운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울하고 열등감이 많았던 제게 무언가 집중해서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장학금도 받으며 긍정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제게 더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무용선생님을 통해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 애정결핍으로 우상 같던 불신 남친과 신앙으로 인해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헤어지는 사건으로 힘든 시간을 지났습니다.
대학졸업과 남자친구와 결별과 동시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한 개척교회를 만나 신앙생활에 집중하게 되었고 우울과 불안이 깊었던 제게 도피처가 되어서 매일 교회 가는 게 생활이 되었습니다.
집을 나와 교회근처로 이사까지 하고 교회직원까지 되어 매일 10년을 교회가 집이 되어 살았습니다. 애정결핍과 인정중독이 있던 저는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다가 음란까지 가게 되었고 그 일이 다 드러나면서 교회에서 나오고 교회가 해체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제 인생의 수치와 죄책감의지옥을 맛보았고 그 후 우리들 교회로 인도되어 말씀과 공동체로 제 인생들이 해석되어 점점 회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청년부에서 적용 간증하고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하고 바로 임신하고 출산까지 은혜로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양가 부모님들이 많이 아프셔서 아기를 데리고 병원 오가며 섬기게 되는 상황이 고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