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에 온지 14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무너질뻔한 우리 가정이 회복되는 은혜를 주셨는데, 고난이 축복이란 말을 가슴으로 느끼며, 지금은 날마다 큐티와 모든 예배를 중수함으로 거룩한 삶, 영혼구원을 위한 사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신지혜 삶 선 그래프
1남1년 둘째로 태어난저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이 오빠를 더 사랑한다는 생각에 차별받는게 억울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크면 오빠보다 잘살아야지 했습니다 대학도 제가만족하지.못한 결과가나와 절망했다가 중국으로 어학연수와 교환학생그리고 취업까지이어져서 4년정도 중국에 살았다가 취업하고 외국에살다보니 여자혼자 외국에있다보니 심적으로 많이힘들었습니다 한국에귀국을 하게되엇고 귀국한지 얼마안되서 지금의남편을 만나결혼햇습니다 친정아버지가 엄청 엄격하셧는데 말투가 부드러운 신랑에게 도피하려햇는데 더 크나큰 산이였습니다 . 목소리만 부드러울뿐 자기가하고가 하는건 꼭해야하는성격때문에 계속부딪혔고 일주일을 꼬박 술을먹고오는 신랑이 이해가되지않아 신랑을.무시했습니다 . 결혼준비를하면서 남편은 저에게 사업을해보라고 권유를 하였고 제가 권유를 거절하면 불같이.화를냈습니다. 관계에 두려움이있던저는 남편의 요구를 결국 들어주었고 본인이 돈 다대줄테니 사업해보란말을 믿었습니다 케익제조업을 했눈데 초창기에 자금이많이들어가니 남편은 이제 돈달라고 그만하라고 저를 몰아세웠고 평생 돈에 쪼들리게 살아본적이없는저는 죽고싶은생각이들었고 고층에올라가면 뛰어내리고 싶은생각이 계속들었습니다 . 1년정도 그랬는데 남편에게 말을하니 남편이 교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해서 우리들교회에 오게되엇습니다 . 목장에서는 사업을 접으라고 권면하셧는데.투자한돈이 너무 아까워서 정리를 허지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끌고오다가 둘째임신과 일련의사건들로 내려놓게되엇습니다 3억을 투자했는데 우리수중에는 돈천만원이 전부인 인생이되었습니다 . 아이도 그때당시 12월생이고 아들이라 말이 늦겟지 하는 안일한생각에 5살때 어린이집선생님께서 발달 검사를 권유하셧는데 언어지연이있엇고 그러인해 사회성도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게되엇습니다 남편은 받아들이지않았고 저는 저만의열심으로 아이를 치료했습니다 눈에띄게 좋아진거같은 저만의생각에 사업도 망하고 돈도없던 저는 아이의 치료를 제스스로 그만두었고 아이는 그렇게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오기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교실밖으로 나간다는 전화였습니다 . 아이는 adhd였고 5학년인 지금까지 치료중입니다.1학년때보다는 많이 호전된 상태입니다 얼마전엔 난독증인거같다고 병원에서 말씀해주셧는데 치료방향을 알아보는중입니다 . 제나이 37살에 유독 피로감이 계속 느껴졌는데 병원에 가보니 유방암 이라고 하셨습니다 . 사업도 망하게하고 이제이런일까지 이런생각보다는 ...아직 내가 주님께 회개하지못한 저를 돌아보게되는 사건이되엇고 8번의항암후 수술을 마쳤고 현재 추적관찰중입니다. 암판정 사건이후로 남편도 가정을 더 돌이켜보게되는 사건이되었고 저를포함한 우리가족이 영적으로 한걸음 주님께 다가간 사건이된것 같습니다.

최주연
청소년기때까지 경제적인 어려움과 부모님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주눅들어 있는 환경에서 영국에가서 적응하려니 너무 힘든 시기를 겪고 왔습니다.
사춘기때 영국에가니 성인때 사춘기가 찾아와서 대학 생활도 그리 좋은 시기를 보내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때부터 술을 마시는 것이 버릇이 됐습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꼈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유학가는 남편과 결혼 했습니다.
영어 과외를 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했는데 남편의 박사학위는 좌절되고 취업또한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자기 눈높이에 맞지 않는 직장을 2년마다 옮기고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 교회에서 양육을 받고 양육 교사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이 외교관에 합격하여 일본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 학교에서 한국엄마들과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를 겪고 있습니다.

임윤정 삶 선 그래프
저는 목장에 나가지 3주된 자매입니다 세례를 받으려고 강의 들은지 1주되었구요 아직 어렵고 모르는게 많지만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QT를 읽으면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많이 배우시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따뜻하신 분들이여서 저희들 만큼은 사랑으로 키우신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아빠엄마는 친가쪽에서 아빠가 버신 월급에 일부를 달라고 하는 문제로 다투셨습니다. 돈문제와 집문제로 힘들기는 했지만 가족이 같이 있는게 좋았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는 이제껏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는 감정을 가진채로 살아 왔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 소개로 남편을 만나 혼수문제, 시댁과의 갈등, 혼자짊어진 육아로 남편에 대한 신뢰감을 잃은채 11년을 버텨왔습니다. 아직 풀지못한 미움이 많지만 말씀으로 극복하고 싶습니다. 큰아이 친구의 엄마가 여기로 저를 이끌어 주었는데
고집이 있고 제 몸 편한것을 우선으로한 저를 놓지 않아 주어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붙어서 가고 싶습니다.

정성옥 삶 선 그래프
저는 2남1녀 둘째로 태어 났으나, 제가 태어나는 사이 오빠가 폐결핵으로 먼저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사건으로 슬픔과 두려움에 허공만 바라보며 모유를 하는 엄마품에서 첫 세상을 경험하며 시작했습니다.
어린시절은 도박으로 무능력한 아빠와 늘 가장이 되어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났기에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한 시절이였습니다. 태어나 돌이되기 전 외할머니 댁에 보내져 6살까지 엄마와 떨어져 자라나서인지 10대에는 애정결핍으로 눈에 틱이 있었고 늘 외로운 외톨이로 감정적 방황하는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중학교때 도박으로 아빠가 돈을 다 탕진하여 어느날 갑자기 돈을 벌러 일본에 가야 한다며 통보를 한 후 일본으로 간 엄마를 대신해 11살 차이 나는 남동생을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다, 고1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제 인생 전체에 가장 큰 터닝포인트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부분이 말씀으로 해석되며 평안과 소망을 경험하게 되었고,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신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과의 결혼이 안정되고 좋으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경험해 본적 없어 막연히 두렵고 불안했지만 결혼 5년차가 되니 조금씩 긴장이 풀리며 첫째, 둘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좋으면서도 모유수유와 육체피로가 있어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지키겠다 우상 삼고 스스로 갇혀 목숨걸고 지켜보려 지옥을 사는 줄도 모른채 평신도비지니스 선교로 이란까지 갔지만.. 결국 제 열심과 노력으로 쌓은 행복가정우상이였기에.. 이란 이란 나라에서 30억 부도와 연이은 고난들 속에 밑바닥이 드러난 저와 남편의 불화가 시작 되었고 결혼 13년차에 권태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몸도 맘도 지친 상태에 한국에 아이들만 데리고 와서 허리 디스크수술과 상담치료를 9개월간 받고 다시 이란으로 돌아갔는데..한인교회 목사님께서 한국으로 추방 당하시고 교회가 혼돈에 빠져 있었고 저와 남편의 갈등도 나날이 심해지더니 더이상 큐티도 예배고 안드릴거고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겠다는 남편은... 세상남자보다 더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더니 3년전 내맘대로 내멋대로 살겠다며 이혼하고 싶다고 지랑총량부려주어 우리들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축복이 되어 고1 때 이후 또한번에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 이젠 말씀으로 43년 인생에 억울하고 힘들고 외롭던 부분들과 평생 피해자로 살던 제가 가해자 였음을 해석받게 되고, 더이상 혼자가 아닌 믿음의 공동체도 선물 받게 되어 인생 중 지금이 가장 평안한 때를 지내고 있습니다. 남편만 의지하며 외롭게 살다 남편을 섬기는 배우자로 살며 외로움이 많이 기쁨과 감사로 계속 바뀌어 가는 삶을 겅험중입니다.
이젠 제 열심이 아닌 말씀으로 제 현주소를 정확히 알고 연민이나 생색으로 열심만 내는 엄마가 아니라, 깨닫고 회개하고 적용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의 엄마가 되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사춘기를 잘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믿음의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이 삶이 또한 이타적인 사랑을 정하는 약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