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학교 1강 삶선 그래프 8조 나눔입니다.
1. 강영은집사님

저는 1남4 녀중 셋째로 태어나 시골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때 인천으로 야반도주 하듯 부모님과 올라와서 지냈고 화목한 가정으로 사는 줄 알았으나 느닷없이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때 가출을 하시고 2차성징을 겪으며 자존감은 떨어졌고 우울했습니다. 돈을 벌어야하기에 내 삶에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실업고등학교를 가고 취업을 하고 기뻤습니다. 회사생활하며 대학에 가고 싶어졌고 나의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여 입학을 했지만 다음 등록금도 내가 마련을 해야했기에 자퇴를 하게 되고 제조업체 경리부에 입사하여 신랑을 만나고 혼전동거가 시작되면서 무척 행복했고 2년 뒤 결혼식 후에 첫아이도 출산하며 둘째아이 출산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셋째를 임신하고 7개월 후 큰 아이가 잠자는 중 의식이 없어 병원에 가니 뇌전증이라는 병명을 알고 굉장히 낙담하여 날마다 울며 지냈습니다. 네이버에 병명을 검색하고 울고를 반복하다 검색하지 말고 말씀보며 기도하자는 목장의 권면으로 차차 우울이 진정이 되었고 큰아이 뇌전증을 통해 타교인으로만 출석하던 목장이 우리들교회에 등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셋째 출산 후 둘째아이의 심리적으로 불안이 강박이 된 줄도 모르고 왜 저리 유별나냐고만 생각했고 이해하지 못하고 지적하고 타박만하다 둘째가 유치원 가기 거부를 시작으로 학교가기도 거부하고 지금은 스마트폰 게임 중독으로 반항하고 분노 조절이 힘든 사춘기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남편은 목자이고 저도 부목자이지만 깨어있지못하고 문제 부모임이 인정이 안 되니 치시고 치시는 문제 가운데서도 심각성을 못느끼고 가는 부모의 실체를 보이고 갑니다. 날마다 전쟁 같은 고난 속에 있지만 이번 부모학교를 통해 제가 변하고 남편이 변하여 자녀가 변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것을 믿고 희망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2. 김수인집사님

딸둘 (8,5) 37살 별거중이고 전남 사는 김수인 집사입니다.
어려서는 주사있는 아버지와 자기의 충만한 어머니의 가정불화와 폭언과 폭력에 힘들었고 무서운 조부모 아래 자랐습니다.
유치원때 하원길에 지나가던 차를 얻어탔다가 성폭행을 당했지만 뭔지 모르고 지나갔고, 감정표현이 서툴고 화가 욱으로 표현되어 중2때 절친들에게 왕따를 당한후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19살 학교취업나가 직장에 적응을 못하고 순결을 허락한 첫 이성친구와 헤어지고 동성친구의 관심을 받으며 25살에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24살부터 골프장 캐디로 큰돈을 벌고 어리고 예뻐 인기도많았습니다. 몸이 고되고 남자친구들에게 돈을 퍼주다보니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남편을 만나 혼전임신이 되어 사후피임약을 2번이나 먹었지만 유산이 안되니 결혼을 했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기쁘게 결혼을 하고 첫딸을 낳았지만 그뒤부터 남편과 가정불화로 결혼 5년만에 별거하여 3년째 별거중입니다.
얼마전에 뇌수막염이 와서 공동체로 돌아와 다시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고 공동체에 딱풀성도로 가기로 작정하며 말씀과 예배를 우선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3. 김재희집사님

안녕하세요 저는41세 김재희입니다. 현재 베트남에 살고있고 8살 남자아이가 한명있습니다.
어린시절 아빠의 잦은 음주로 거의 날마다 부부싸움하시는 부모님의 싸움을 말리고 중재하며 불안과 우울한 상황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나 없으면 두분이 얼마나 싸울까 불안하여 매일 전화로 부모님의 안부를 챙기며 살았습니다. 대학졸업 후 돈이 우상이 되어 적성에 맞지않는 직장을 10년 다녔고 그 10년도 지옥같이 힘들었습니다. 돈을 포기 못해서 교회다니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니나 말씀이 들리지않는 남편입니다. 결혼 후 아이가 없을때는 내성품으로 살만했는데 아이를 낳고나니 더 이상 성품으로 버틸수없어서 주님께 매달리게 되었고 지금 자녀의 수고덕분에 주님과 만나는 중입니다. 우리들교회를 만난지 2년...드디어 내인생에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입니다.
4. 김혜연집사님

안녕하세요.저는 8살 아들, 6살 딸을 키우고있는 40살 김혜연입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여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던 아빠와 남편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던 엄마로부터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감당하며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안했던 가정환경은 저를 두려움과 염려, 근심이 많은 아이로 자라게 했습니다. (1-20살)
21살 떠났던 중국 유학생활 중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사건은 그동안의 가치관이 변하는 큰 사건이 되어주었고, 그곳에서 만난 공동체 식구들의 시간은 제 삶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구원의 사건이 어느덧 나에게만 특별히 임해주신 축복이라 자랑하며,선민의식에 쌓여 성공만을 쫒아 가족들의 구원은 뒤로한채,
남보다 더 잘살고 싶고 잘 살수 있을 것에만 마음과 열심을 다해 살았었습니다.(22-26살)
그랬지만 연이은 취업실패와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 떠나는 사건은 나를 다시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26-27살)
결혼을 하면서 어느정도 정서적인 안정을 누린다하였던(30살) 저에게 아이를 가지고 낳는 과정은 또 다시 하나님께 무릎꿇고 묻고 공동체의 중보기도를 받는 사건들이 되어주었습니다. (32-35살)
38살. 시한폭탄 같던 친정부모님의 가계부채가 제 발등에 떨어지는 사건을 겪게되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의 고난과 아픔을 등지며,세상 기준에 가득차 늘 만족을 모르셨던 친정부모님을 비난하고 정죄하기 바빴던 저였지만,말씀을 듣고 삶을 돌아볼 수록 두분의
구원을 위해 기도와 수고를 감당해야 할 자로 저를 이가정에 보내셨음이 깨달아졌습니다.
부모님을 대신해 어려운 상황들을 정리하면서 부모님은 그간 완고하고 강팍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마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지금은 저에게 허락하신 이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임을 인정하며 자녀의 역할,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을 감당하고있습니다.
5. 윤수진집사님

저는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29살 윤수진입니다. 8살 아들 한명 있습니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9살 때 갑작스러운 미국 이민을 가게되었는데 인종차별과 적응하기에 힘들어하던 와중, 엄마의 심한 우울증과 오빠의 괴롭힘으로 항상 불안하여 매일 잠도 못자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며 혼자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매일매일 제가 한국에 돌아가자고 떼를 써서 결국 다시 한국에 돌아왔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사춘기로 인해 방황을 하게되어 대안학교까지 갔었어요. 정신차리고 일반학교로 돌아오고, 고등학교를 좋은 미션스쿨에 입학하고 우리들교회 고등부에 마음을 붙이게 되면서 꿈꾸던 대학에 합격하고 22살에는 평생 꿈이었던 미국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간지 2주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되어 모두 다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휴학하고 임신 출산 육아에 힘을 쏟았지만 남편직장 때문에 연고도 없는 경기도 외딴 곳으로 신혼집을 잡아 외로운 육아생활을 하며 남편의 폭언과 산후 우울증, 너무 어린나이에 이런 처지가 된 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후회로 너무 우울하고 늘 죽고싶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이 돌 이후에 복학하여 학교생활을 다시 할 수 있었고, 제 수준낮음을 아시고 육아와 병행한 학업에서도 전과목 A+ 로 수석졸업, 취업 성공을 하였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법적으로는 이혼, 다만 주말 부부의 형태로 자주 만나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아이 아빠와 둘이 지내는 탓에 엄마의 부재가 길어 제대로 케어받지 못하고 스마트폰에만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운데 뭘 어떻게 해줘야될지 모르겠어서 부모학교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6. 이승은집사님

1남2녀중 원치 않은 둘째 딸로 태어났고 부모님은 늘 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두 분 다 부재중에 술 문제도 있었고 딸들에게 폭행 폭언은 너무나 쉬웠습니다. 두 분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살면서 저능아 소리 듣고 자랐고 그런가보다 했지만 학교도 잘 가고 직장도 잘 다녔습니다. 늘 마음이 곤고하니 학교 기독교 중창단에서 섬길때 하나님 만나주셨고 생각해보니 믿음의 친구들이 늘 있었습니다.
대학 재학중에는 교환학생을 가고 졸업 후에는 집에서 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곧 바로 해외취업을 했고 이민 가방 싸서 떠나 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가방을 싸서 늘 그렇게 다녔지만 아무도 서운해 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엄마의 독촉으로 29살에 선을 봤고 교회만 다니지 말으라는 시어머니에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불신결혼을 했습니다.
가족우상인 시댁에서 불 같은 결혼생활을 하며 잦은 이사와 출산으로 오랜세월 숨어있던 우울증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시자 시댁식구들에게 반찬으로 혼이 나가며 세월을 보냈고 밤에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딸아이의 ADHD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해주었고 시어머니 소천 하시고 3개월후 아이와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2년간 목장 나가며 술도 끊고 세례받고 양육받고 교회 나가면 이혼한다던 남편에게 죽은듯 살았더니 얼마전 예수님이 구주이시다 라고 시인하는 문자를 받게 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딸과 큐티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쉽게 가시지 않지만 잘 살아내고 있어 감사가 있습니다.
7. 정란영집사님

어린시절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가정예배도 드리고 하지만 부모님은 친할머니의 피박이 많았습니다. 장남이고 반대하는 결혼에 딸 셋.
자주 싸우셨고, 기복이 신앙이 심하셨습니다. 대학원 시절 캐나다 유학을 다녀 왔고, 28살 소개로 만났고 날 기다려 준 남자와 불신을 결혼을했습니다. 모태신앙이지만 교회 오빠들은 다 찌질해 보여서 내가 꼭 전도하리라! 하지만 미저리같은 개천에 용난 시댁의 집착으로 제가 끝을 내고, 처음으로 독립을 하고 4년 동안 제 인생에 제일 기쁨의 시간을 보냈고 하지만 여전히 기복 신앙이였습니다. 엄마가 듀요에 가입 시켜서 지금의 세상 스펙이 너무 훌륭한 불신결혼을 했습니다.신랑은 자기 의가 너무 강한 사람입니다. 높은 지위에서 접대늘 받고 그 상황이 너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다시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고 양육 받고 이 모든게 제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갑니다.
내년 부활주일에 신랑을 전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8. 조현아집사

2녀 중 둘째로 태어나 올해 40세가 되었고, 9세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빠의 잦은 폭력과 경제적인 이유로 별거를 반복하던 부모님으로 인해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할머니집에서 지낼 때가 많았습니다.
유치원 시절 돌봄의 부재로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와 지내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었으나, 반복되는 아빠의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목격하면서 아빠에 대한 분노를 키우며 자랐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했기에 막연하게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친구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만나는 집사님과 사역자분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지내오던 중
대학교 1학년 때 기독교 동아리 엠티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제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제적인 고난이 찾아오면서 교회 집사님, 선배, 친구 집에 얹혀살며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은혜의 날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부에서 만난 남편과 신결혼하여 가난한 신혼시절을 보냈지만 서로 의지하며 1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평탄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까지 죄인 줄도 모르고 가정에서 제가 왕노릇하며 지냈으나 지금은 가정의 질서에 순종하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쌓인 분노들이 아이 양육에서 폭발할 때가 많은데 이 시대의 순교는 혈기부리지 않는 것이라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가정에서 죽어지는 적용을 해 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