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1강 삶 선 그래프 그리기 (21.03.16)
참석자 : 이정희, 황은이, 이주연, 이지영, 정유경, 정채림, 정수아(총 7명)
정수아집사님

지원동기
이혼후 한부모로 양육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말씀과 큐티로 내 죄를 보며 회개하는 은혜가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좀더 체휼하고자 지원하였습니다.
이혼과 아빠의 부재로 인한 불안을 겪고 있는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잘 돕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 믿음의 본을 보이는 엄마가 되고 또 다른 이혼가정의 가족들이 믿음으로 잘 설수 있도록
먼저 가는 길을 잘 닦고 싶습니다.
나눔
통영에서 1남 3녀중 막내딸로 태어났다.여러고난 중에도 남편고난을 통해 전도받고 35세때 예수님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을 만나도 남편 우상을 내려놓지 못하니 결국 이혼하게 되었고 지금은 두딸을 키우며 주님께 붙어가고 있다.
이정희 집사님

20대까지 부모님 밑에서 별 문제 없이살다가 학교 졸업하고 27살에 처음 직장생활하게 되었다.
어렸을때부터 교회 다녔지만 말씀이 없어서 돈 많이 벌어서 잘먹고 잘 사는게 목적이었다.
직장생활 3년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1년 놀다가 재취업을 한후 다시 돈을 벌게되어 행복했는데 그때 밑바닥까지 가게 된 이유가 계속 승진누락과 40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게 되었다. 44살에 우리들교회 만나는 남자인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남편과 갈등, 시어머니와 갈등, 자녀가 생기지 않는 고난이 있다가 말씀이 들리면서 결혼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54세이고 아이가 생기는 것은 완전 포기하고 중등부는 별지기로 섬기고 있고 지금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
황은이집사님

완벽주의 엄마, 의지 약한 아빠, 공부, 돈, 성공만 부르짓는 가족들 속에서 1남3녀중 둘째로 엄마, 언니, 여동생의 강한 성격에 이리 저리 치이면서 살았다.
11살때 모르는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수다떨기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무서운 엄마덕분에 평생 나만의 수치스러운 비밀를 가지고 살았다.중1되면서 성에 눈에 떠지기 시작하니 불안이 찾아왔다.
친구에게 '너는 혹시 누군가에게 성폭행 당하면 어떻게 할거야 '라는 질문에 그친구는 '자살할거야'라는 답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외롭고 공허하다가 중2에 친구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교회안에 있고 방언도 받고 했지만 말씀이 없고 교회생활만 열심히 다녔다.
고2때 나를 좋아하는 남학생과 음란을 행했는데 이미 버려진 몸이라 여겨 내몸을 쉽게 생각했다. 간호대를 들어갔고 병원을 취직하면서 음란과 낙태를 했고 교회속에 있었지만 여전히 죄가운데 거하는 나를 향해 정죄를 했지만 반복적으로 또 음란을 행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작은 교회에 새벽예배를 다니며 행복해 보이는 목사님 부부를 보며 사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여전히 죄가운데 있었지만 막상 신학생인 남편과 결혼한 이유가 남편 뒤에 숨어 내죄를 감추고 거룩한 척, 의로운 척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내가 꿈꾸던 행복한 결혼생활이 아니었기에 결혼생활 내내 지옥을 살며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내게 행복을 안겨주지 않는 남편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16년도 우리들교회를 오게 되었고 20년5월 로마서 큐티를 하며 본격적인 매일의 큐티생활을 하게 되며 나의 모든 인생이 해석되었다.
정유경집사님

출생을 ampndash50으로 시작했다. 엄마가 힘들게 임신해서 아들을 기대를 했는데 내가 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실신하고 나를 1주일동안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안계시고 엄마는 일하시고 할머니는 항상 우울하여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냈고 10대가 되면서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외도를 하며 부모 갈등이 너무 심하고 매일 싸우고 엄마가 다쳐서 입원하는 일도 여러번 있었다.
재수를 하며 의과대학을 들어가 내성적 성격이 활발해지고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 동아리 활동등을 통해 인정받아서 처음 받으니 너무 좋았고 연애도 많이 하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 마지막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아 헤어짐을 당했다.
전남편과 만나서 혼전 임신과 낙태를 했고 결혼 후 일시적으로 플라스의 생활을 하는 것 같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마이너스 삶을 살다가 임신이 안되었다.
시험관 아이를 간신히 하여 임신한 채로 미국을 오게 되어 레지던트 하면서 출산 과다출혈로 죽을 뻔했다.
남편이 아이들 키우면서 남편 갈등이 심해져서 이혼하게 되었다. 혼자서 미국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살았는데 맨해튼에서 살면서 다정하게 놀아주는 미국아빠들을 보면서 인생의 바닥을 쳤다. 아들이 감정발달, 언어발달, 사회성발달이 문제가 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후 갑상선 암이 걸렸던게 기회가 되면서 교회공동체에 소속되어 지체들과 교제하기 시작하며 소그룹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인데 42살 때 본격적으로 아들로 인해 고난이 와서 1주일에 몇 번씩 학교에서 전화와서 자존감이 바닥쳤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시이면서 ADHD,틱, 강박증, 불안증 등 진단 받아 내가 아이들도 못키운다는 생각과아들고난으로 김양재목사님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큐티를 하게되었고 2년전에는 학교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 아들이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일하는 곳에서 자살사고 나는 청년들을 치료하는 곳인데 나의 아들을 통해 나의 고난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들의 사건 때문에 작년 2월에 우리들교회로 오려고 했다. 모든 게 정리되고 사직서까지 냈는데 코로나와 국제학교 입학이 취소가 되었다. 지금은 우리들교회에 교인으로 플러스 인생을 살고 있다.
이주연집사님

13세까지 행복한 가정인 줄 알고 살았다.중학생이 되고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중 2때 부모님 이혼으로아빠와 오빠와 함께 살면서 방황하고술담배를하며 힘들었다
이런 나를 이해해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가출 했었고 가출 몇개월지나고1때 다시 부모님 재결합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학교적응못해 자퇴하고부모님의 갈등을 더적날하게 목격하며 괴로웠다.
20살에 부모님 다시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나왔고 엄마가 같이 나와줄땐 힘이되었지만나오고나선 내가 짐처럼 느껴졌는지 학벌도 기술도 없어 갈피를 못잡는 나를보아주지 못해 잦은 싸움끝 엄마와도 헤어져 독립했다.
20살에 만난 남친과 서로 의지하며26살에 결혼 27살~29살에 첫째 둘째 출산으로 기뻤다.하지만 주변 아무도움도 없고의지 할곳없이 육아를 하다보니 너무 힘들었다.
첫째아이 말이 느려 몇년동안 치료다니며 걱정되고 힘들었지만 초1때부터 경계성에서 벗어났다.그후 고등학교 검정고시시험 합격 학교도 못나왔다는 서러웠던 지난날이 조금 회복되었다.35살 전직으로 바빠진 남편으로더 외롭고 곤고함이 더해졌고10년넘게 절친의 전도에도 끄떡없던 내가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다.
하나님을 뜨겁게 너무 기쁘게 만났고3년동안 교회 모든 양육 프로그램 졸업했고 전도대원으로 임했지만여전히 속은 썩어져있는 내가 너무 힘들었고 삶은 변한게 없었다 더 무거운 짐을 진느낌 ..
신앙으로 방황할때 우리들교회 다니는 친구를 만나 우리들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1년동안 구속사의 말씀과 목장으로 내 가치관들이 뒤짚히니 지진이 난것 같은 괴로움을 맛보았다 점점 자유해지고 말씀이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손과발이 가는적용과 비비고 문지르는 삶이 힘들다 친정식구들 중에 믿음의 일대가 나이기에 .. 그 사명과 가정에서 나의자리를 잘 감당하고 싶다.
이지영집사님

모태신앙으로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큰 상처 없이 잘 자랐다. 고1때 아빠의 무리한 주식투자로 집안 경제가 바닥이 나고 아빠가 자살시도를 하시면서 저의 믿음이 커졌다.
20살이 되어 한인선교를 위해 출국을 준비하시는 출석교회 목사님을 따라 군대에 간 오빠를 제외하고 북경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홈스테이를 운영했지만 쉽지 않았고,어린 나이에 사역도 벅찼으며 너무 공부하고 싶었는데 열린 미국유학의 길을 사역 때문에 포기하게 되었다.사스 때문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귀국하게 되었고 귀국 후 가출청소년 쉼터에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상관없이 살겠다며 돈 많은 남편을 만나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한지 한달만에 아이아빠는 섬유근유통 증후군이라는 병이 생겨하루 하루 짜증을 받아내야 했고,아이가 있으면 괜찮을 것이라 하여
계획임신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임신 후 바로 혼인신고를 했고 이어서 결혼식을 하였으나 본인이 아픈데 가장이 되었다는 부담감에 남편의 짜증은 멈춰지질 않아 결국 남편 손에 이끌려 이혼하게 되었다.
이혼 후 친정아빠가 그 충격으로 급성 조증이 왔고 그때부터 8년을 병원에 입원하셨고 최근 안정을 찾으셨다.
이혼하고 아이를 보여 주지 않아 아이를 못 보는 고난과 아빠의 조울증 고난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우교에 오면서 말씀이 인생으로 해석되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멈추게 되었다.
말씀따라 재결합을 했지만 아이를 때리고 화가나면 굶기고 안 재우는 남편이 너무 무시가 되었고 결국 가정폭력 신고를 하면서 다시 가정이 깨어지게 되었다.이번에도 아이를 주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아이아빠를 용서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아이를 보내주셨다.
아이가 방황을 심하게 하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는데...큐티하고 예배만 드리면 법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 허용되는 것은 엄마도 ok! 라며 양육하는 제가 너무 수용적인 것은 아닌가 하여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채림집사님

출생은 환영받지 못했고 집안 분위기도 나빴다. 5세 때 교회나가기 시작했는데 아주 즐거웠다. 유치원/초딩 때 친구를 사귀지 못해 외롭고 수치심, 불안증에 시달렸다.
중2 때부터 학교 일진에 속해서 일탈행동을 하다가 고1 때 새벽기도회에 갔다가 성령체험을 하고 모범생으로 변화받고 원하는 대학, 직장에 들어갔다.
미국 유학가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던 반면, 저는 그렇지 못해 집안 분위기가 나빴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좀 나았는데 그 후 ** 사건으로 2-3년 간 어두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지냈다. 남편과의 관계는 1년 전부터는 많이 좋아졌으나 두려움, 낮은 자존감, 자살충동을 많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