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화)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양육하며 자기연민이 있었고, 아들에게는 가해자였고, 엄마 역할 잘하기 위해 부모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10대~20대에 크게 좋았던 기억이 없다. 항상 우울하고, 불안했다. 어려서 아빠의 가정폭력으로 엄마는 아빠를 피해 집을 나가 있었고, 딸4 아들1였는데, 다들 집에 있지 않았고, 나와 남동생이 아빠의 폭력과 술주사를 온전히 받아냈다. 그당시에는 몰랐지만 조현병 증상도 있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20대 초반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남편과 살면서도 불안했고 남편을 원망하며 살았다. 아이를 부유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 남편을 섬기지 못했고 남편을 무시했다. 이혼을 결심했고, 일적으로 몰두하다보니 아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30대에는 너무 힘들었다. 이혼과 동시에 일하며 아이를 혼자 양육했다. 죽으려고 시도도 했었고, 그당시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아들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힘들어서 술과 담배, 남자에게 위로받으며 살았다. 우리들교회로 인도함을 받아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환경은 비록 변하지 않았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임성은)
2009년도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했고, 지금도 많이 아파서 목장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났고, 성은이란 이름도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은혜란 뜻으로 지어주셨다. 부모의 불화로 어려서부터 힘들었고 어른아이처럼 살았다. 지금의 큰아이를 보면서 어릴적 내모습이 자주 생각난다. 어렸을적 엄마의 부유한 외가에서는 딸을 이혼시키기 위해 항상 저희집에 포진하고 계셨다. 그래서 항상 불안에 떨었는데, 부모님이 싸워도 항상 가정예배를 드렸다. 하나님과 아빠가 편하지 않고 불편한 존재로 자리잡게 된것 같다. 착한아이로 살아오다보니 어느새 아픈아이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IMF가 왔고 아빠는 은행원이었는데, 엄마와 함께 아르헨티나에 가서 살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것이 처음으로 내 인생의 기쁜 일이 되어서 명문고등학교, 대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 아빠가 은행 지점장, 엄마는 가정주부였는데, 두분 다 파산을 하게 되었고, 외교관의 꿈도 접고, 외무고시도 포기한채 대학교 4학년때 가정을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빚으로 시작했고, 월세집을 얻고 빚쟁이 생활을 시작했다.억에 달하는 빚으로 숨이 안 쉬어졌고 공황장애가 시작되었다. 우리들교회에 남동생의 인도로 오게 되었다. 파혼을 당하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손을 내밀었다. 파혼했던 남자친구인 동료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세례받는 날 연락이 왔고 그 사람 덕분에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지금은 제 남편이에요. 그리고 신혼초기에 우리들교회에 같이 다니는 친정부모님이 여전히 제 급여를 달라고 요구하셨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 당시 목장에서는 부모님과 경제적으로 단절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왔다. 정신과에 다니며 최고치의 약을 먹으며 그 상황을 버티고, 거절을 했고 거절의 복을 누리게 하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경제적으로 끊고 나니 아이도 주셨고 살아있는 복을 누리게 하셨다.
내가 얼마나 강하고 교만한 죄인인지 알게 하시고, 여전히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혈기와 분노를 많이 낸다. 처음에 부모학교를 남편의 이름으로 신청했는데 평일 낮이라 대부분 여자들이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남편을 시키려다 내가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부끄럽고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허영진)
2015년도 우리들교회에 왔다. 고난때문에 등록했다. 남편은 영국인이라 외국인 목장에서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과 잘 나누며 가고 있다. 남편과 공통점이 전혀 없는데유일한 공통점이 신앙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합의점을 찾고자 부모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김애영)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어서 어렸을 때 상처가 많았다. 8살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재혼을 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중학교때부터 자살시도를 했다. 사람이 죽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자살시도를 하며 깨달았다. 본격적으로 중학교 2학년때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다. 밑으로 남동생이 둘 있는데 고등학교를 야간으로 다니면서, 낮에는 일을 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20살이 넘어서 친엄마와 합치게 되었다. 그때 제대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인격적으로 만났다. 2년후 엄마가 재혼을 했는데, 그때가 마지막 자살시도였던 것 같다.피해자란 의식 있었지만 엄마란 대상이 둘이고 아버지도 두명이 되니 힘들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기독교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있으면서 즐거웠고, 32살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신혼 1년간 첫아이를 출산하기까지는 좋았다. 아이와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지만 옆에서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달랐다. 아이를 출산하며 중3때 부터 쉬지않고 일하다가 처음으로 쉬게 되었는데, 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았고 잠깐 복직했다가 다시 셋째를 임신했다. 막내가 돌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않아서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암 때문에 힘들진 않았다. 아프게 되면서 1년 가까이 요양병원에 있었고 복음을 많이 전하면서 평안을 누렸다. 우리들교회를 소개받고 오게되었다. 나는 왜 이런 부모를 만났는지 그런 피해의식 속에 살다가 말씀 속에서 해석되어 감사한 시간을 지내게 되었다. 친정엄마와 관계도 단절하고 있다가 이번에 피해자가 회복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에 엄마와 화해를 하게 되었다. 친정엄마는 단도암 판정을 받고 최근에 소천하셨는데, 엄마를 돌볼 시간을 주시기 위해 내게 먼저 암을 겪게 하셨구나 깨달아졌고, 감사가 되었다.
김진희)
4대째 모태신앙이다. 할머니 외가에서 첫 손주였던 나는 집안의 기대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교만하게 생각했다. 고1때 아버지가 가슴통증을 호소하셨고, 그날 주일예배를 드리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천국에 가시는 사건이 왔다. 나의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었고, 그때부터 참 인생이 우울했고 슬펐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높은 콧대는 꺽일줄 몰랐고, 급기야 동기들 사이에서 왕따 사건이 있었다.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아무 일 아닌 척 살았던 것 같다. 27살~28살 약 1년동안 룸메이트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날 정신교육 시켜준다며 금전을 요구하며 때리기 시작했다. 돈이 되는 모든 물건은 팔았고, 주위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고, 투잡을 뛰며 죽지못해서 그 시간을살았다. 그시간이 너무 지옥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날 중심으로 돌고 있던 세상의 해달별들이 떨어지고 나의 세상에 제대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29살에 남편과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임신하고 갑자기 아이에게 신앙을 물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온갖 사건사고의 연속이었지만, 위로해주는 말씀공동체가 있었고 말씀으로 내 삶이 해석되기 시작하니 하나씩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옛습성이 남아있어서 아이들에게 분노와 혈기를 퍼부어대는 버릇이 남아있어서 부모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