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강 애착의 상실과 회복
허은미
큰 아이가 어릴 때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주 양육자가 되지 못했다.할머니와 어린이집에서 키웠기에 아이에게 분리 불안이 있었다. 아이가 중1이 되었을 때 집이 숨이 막혀 나가고 싶다라는 말을 하여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아이에게 강요를 하지 않고 들어주기를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잘해 준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이에게 오늘 말씀을 들으며 불안정 회피 애착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부터 교회에 목장을 다니게 되었지만 1년간을 나눔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난 후에는 폭풍 나눔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목장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지만 나는 냉담한 엄마로 애정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스킨십이 싫은 엄마로 자녀들 통하여 사랑을 배워가고 있고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딸에게는 눈 마주치며 안아 주는 것을 해야 할 것 같고 아들에게는 내 말을 줄이고 이야기를 잘 들어 주며 기도해야 할 것 같다.
민선주
첫 아이를 낳고 주 양육은 엄마가 해 주셨다. 아이의 양육을 2년 해주셨는데 동생이 아이가 태어 나서 엄마는 동생네로 가게 되었다. 그 후에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힘이 들었다는 말을 그 당시에 했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직장을 그만 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중에 둘째가 생겨 낳게 되었고 오늘 말씀 들으며 불안정 회피 저항이 나에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임호 부인이 나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아이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사랑 표현이라고 했던 것이 전도서 말씀처럼 헛된 것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가 학원 가지 않겠다고 할 때 왜 그런지를 물어보고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윤소영
아이가 셋이다. 체력이 안되니 아이 욕구 충족을 시키지 못하는 둔감한 엄마였던 것 같다. 큰 아이는 열 세살인데 초4학년 때 부터 저의 힘듬을 알아 주듯 혼자 알아서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 또한 큰 아이는 혼자서 알아서 할 수 있잖아 라는 생각으로 아빠를 닮아 예민한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둔감한 엄마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애가 강하여 내 몸이 피곤해서 불안정하게 아이들을 키웠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즉각적으로 눈맞춤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할 것 같다.
유희원
아이들과 부정적 소통방식으로 대했던 것 같다.부모학교 12기에 참석하여 아이들과 관계가 회복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부정적 소통으로 짜증을 잘 낼 때가 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냉전이 있을 때 아이들 말이 안들리는 것 같고 잔소리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자기애가 49대 51 이라고 하니 조금씩 변화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눈 마주치고 밝은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 같다.
홍태은
부모와의 애착이 없이 자랐고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도 학대를 받는 것과도 같은 매 맞는 일들이 어려서 부터 많았다. 중학교 때는 집단 성폭력도 경험하게 되었고 누구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라서 그런지 불안 장애가 많은 것 같다. 보고 배운 것이 없어 아이 양육이 힘이 들었고 큰 아이가 나의 분노조절에 화풀이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아이 어릴 때는 생계를 위해서 양육자가 되지 못하고 어린이집 샘들이 양육자가 되었지만 두 번 바뀌었는데 요로 감염도 걸린 적도 있었고 알 수없는 아이의 울음이 많았는데 어릴 때 부터 방임과 둔감한 부모로 회피하며 키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청소년기의 큰 아이가 공부에 관심이 없고 늦게 다니며 규칙이나 질서가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이전 처럼 강압적으로는 아이를 대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혈기가 많다. 오늘 말씀대로 부드럽게 말해야 할 것 같고 둔감한 엄마에서 민감하게 아이를 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