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종
딸 넷에 막내로 관심이 없이 태어났다. 고아처럼 지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이 혼자 다쳐도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방치되어 자랐다. 혼자 힘든 것을 삭이며 살았다. 부모님이 교회에서 장로님 권사님이시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셔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교회에서 즐겁게 지낸 기억이 있다. 가장 힘들었던 삼수 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지만 학교에 진학하며 하나님을 잊고 불신교제도 하고 그랬다. 취업도 너무 잘되고 불신교제가 이어져 불신 결혼을 하며 급격히 떨어지고 아이를 낳으며 남편이 실직으로 더욱 떨어졌다. 첫사랑이었던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우리들 교회에 왔다. 기복적으로 교회에만 나와 이혼소송을 당하는 사건이 왔는데 해석이 안됐다. 기업무르기에는 관심이 없고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한 내가 이혼소송의 사건으로 그는 나보다 옳도다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연약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내가 공기업에 다니는 것이 남편의 우상이었는데 퇴직을 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작년 자녀가 희귀병이 있고 환청 환시로 자해하는 일이 있어 힘들긴 했지만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 되시니 무너지지 않고 잘 견디고 있다. 자녀가 회복되는 과정 중에 있으면서 내가 정말 문제 부모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이혼소송을 철회했다. 구속사적인 것이 없어 인간적인 마음으로 남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아이 다섯 살 때 교회를 나오지 않았었다. 남편이 무서워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작년 소년부 캠프를 온 이후 많이 회복 되었다. 결혼을 기점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임정
3대째 모태신앙 집에서 3녀 1남의 맏이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맏이로서의 대우는 받았지만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유복했지만 청소년기에 집이 망하면서 우울했다. 직장생활하며 자존감이 회복되었지만 불신결혼하고 바로 이혼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어 마흔까지 열심히 바쁘게 살아왔다. 이혼 후에도 전남편과의 관계가 이어졌다. 전남편은 불교였지만 내가 맏이이고 크리스찬이라 재결합을 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것도 결국엔 안되었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전남편과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다가 망해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양가 집안에서 반대가 심해 해외로 갔는데 잘 안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이유로 전남편과는 관계가 끊어졌다. 죽고 싶었던 그때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리가 안되어 그 전에는 혼란스러웠는데 전남편 관계가 정리가 되고 내가 낮아지니 하나님 말씀이 들리고 관계가 회복된 것 같다. 교회에 잘 정착하고 가다 소개로 믿지 않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양육도 받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서 재혼을 해서 목장에서 잘 붙어가고 있었다. 전남편도 현남편도 둘 다 돈이 하나 없이 재혼을 하게 됐는데 목장에서 시험관을 권유했다. 나이도 안되고 해서 국가 지원이 안 되는데다 불가능해 보여서 고민했다. 목장에서 자꾸 권유해서 고민하다가 시험관을 47세에 했는데 48세에 딸을 낳았다. 남편이 유아세례 때 간증도 했다. 남편과 내가 49인데 아이가 지금 두 살이라 양육에 대해 하나님께 맡기는 부분이 있다. 인간적이 어려움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고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데 배우기 위해 부모학교에 오게 됐다.
박나래
41세. 작년에 결혼했다. 올 초에 아기가 생겨서 임신 8개월 차 이다. 우리들 교회에 5월에 왔다. 남편과 같이 부모학교 신청을 했다. 부모학교 끝날 즈음에 출산예정이다. 남편은 불교인데 내가 교회를 다녀야 결혼할 수 있다 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지인 분의 권유로 휘문 성전으로 다니고 있다. 외가 친가 모두 기독교이다. 모태신앙으로 컸고 세 살부터 기억이 있는데 부모님이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셔서 놀러 다닌 기억이 많다. 성장이 늦어 17세에 사춘기가 오고 아빠의 권위적인 모습이 너무 싫어 아버지와의 갈등이 심했다. 딸 둘과 엄마가 아빠의 모든 심부름을 해야 했다. 대학가서 교회 안 나가고 엄청 놀았다. 강원도 중학교 과학교사로 가게 되었는데 교감선생님이 회식자리를 자꾸 만들었다. 친구가 대치동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식에 나도 그렇게 돌아와 돈을 많이 벌며 살았다. 26세에 정점을 찍었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삶의 중심이 없었다. 그래서 교회에 다시 오게 되었다. 어머님이 미용인이신데 엄마 살롱을 다시 하나 차려드렸다. 개수가 하나씩 늘어나 4개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려웠다. 28세에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매장을 지분을 주고 팔아 지금은 두 개의 매장만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 헤어샵이 만들어져 판교 교육센터장으로 있다. 외부사람들을 만나며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며 많이 내려놓게 되어 다시 올라갔다. 결혼과 아이를 가지며 정점을 찍고 있다.
이세진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 받고 자랐다. 십 년을 넘게 발레를 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십대 시절 다리를 다치는 사건이 첫 큰 좌절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욕심이 많아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20대 영국 유학 시절 이기고 이기는 삶을 살며 세상에서는 잘 나갔지만 유일한 기도제목의 딸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이 하혈을 하고 길에서 쓰러지는 사건으로 강제 귀국을 하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다른 교회에서 남편을 만나 신결혼을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어머니로 인해 힘들었고 임신 후 시어머니와의 스트레스로 조산 위험으로 병원신세를 지며 생각지 못하게 퇴사를 하게 되는 사건이 왔다. 출산 후 남편과 우리들 교회로 왔고 건강의 흉년과 시댁의 어려움이 아직 있지만 양육을 받으며 올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