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 조장님
객관적으로 보면 행복한 현실은 아니었으나 타고난 성품이 밝고 명랑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한달에 한번 정도 집에 오셨고 엄마는 늘 우울해서 집에 누워계셨다,
6학년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버지집에서 언니와 나만 새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고 2때 이민을 갔는데 아버지와의 의견차이로 쫓겨나서 대학까지 고학을 했다, 복수로 성공을 결심했고 경제학과를 나와서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로 화려하게 한국에 복귀했으나 목적 의식이 없어지니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어울렸지만 허무했다, 하나님에 대한 기복으로 신앙 생활을 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계속 공부하려고 했으나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게 되고 결혼으로 잠시 행복한 듯 했으나 남편은 미국에서 2년 동안 게임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 12년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아서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았다, 아이 키우며 집안을 하는 것을 제일 못할일이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정확히 그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의 13억의 숨겨진 빚이 드러났고 너무 힘들었다
나의 가장 큰 고난은 나의 실직이었다, 바로 그때 우리들 교회로 입성하게 되었다, 첫날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 치신 것이 인정되었고 말씀이 들렸다, 목장에 갔는데 나는 국제적인 비즈니스 우먼인데 아줌마들 보며서 수다떠는것 처럼 느껴졌었으나 지금은 너무 좋다, 시험관으로 아이를 출산해서 현재 4살이고 아이를 보면서 주부로서의 삶을 살기가 쉬워진것이 있다, 육적으로도 풀어주셔서 남편과 같이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이 감사하다.
강수형 집사님
열심히 살고 밥 주시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 밑에서 컸고
대학에서 내 세상이다 싶고 즐겁게 연애하고 그 남자와 23살에 결혼했다, 그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는데 너무 우울해서 계속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고 남편과의 트러블만 있으면 죽고 싶었다. 아이를 가지고도 더 우울했다, 남편은 프랑스에 정착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너무 우울해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친정 엄마가 말씀이 좋은 교회가 있다고 해서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다. 밥 먹으러 목장 다니면서 힘들다 징징거렸다,
남편이 부목자로 세워지면서 많이 좋아졌고 불평 불만 하면서도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마영금 집사님
딸 다섯에 막내 딸인데 고 3때 아버지가 교통사로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그때 부터 가난해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직해서 강남에서 직장을 다니며 잘사는 사람들과 꾸민 사람들을 보며 나도 꾸미는것으로 살았었다.
26살때 학교에 진학했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불교집안에 둘#51760; 아들인데 불신결혼인지도 모르고 결혼했다
맞벌이를 하다 회사 언니한테 남편 모르게 2천만원을 빌려주고 못받았는데 이번에 목장에서 고백을 했다
2013년 11월에 우리들교회로 왔는데 둘째 아이가 약해서 열성 경기로 입원을 자주 했고 그 아이가 보석이라 발달도 좀 늦고 해서 자녀 고난으로 우리들교회 오게 되었다, 첫 아이를 온갖 육아서를 읽으며 잘 키우고 싶었는데 둘째가 아프다 보니 첫 아이들 못 챙겨주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나한테 더욱 집착을 하고 자녀 고난이 있다,
박소연집사님
어릴때 가난으로 부모님이 맞벌이로 친척집에 맡겨졌고 칭찬을 받지 못했기에 자존감이 낮고 말에 상처를 받았다,
부모님도 교회를 다니시지만 한 말씀이 아니기에 찌르는 말을 많이 하시고 상처를 받는다
남편과 신결혼인줄 알았고 감사하며 29세에 결혼 했다, 7 세부터 부모님 구원을 위해 기도했기에 기도 응답받고 너무 감사했다, 결혼하고 바로 미국유학을 가서 첫 아이를 낳았고 가족들 도움없이 자녀를 키우는게 힘들었다
엄마 며느리 아내가 뭔지 모르고 환상가지고 뛰어들었다가 아이둘 키우며 많이 울고 남편과도 싸웠다
6년 만에 학위를 따고 한국에 왔는데 남편보다 낮은 학력으로 열등감이 심하다, 한국 은행 다니는데 남편은 사람들과 너무 잘 어울렸다, 셋째를 가졌는데 유산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한국에 와서 옛 여자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 으로 싸우고 여러가지 일로 싸우다 남편이 출장 가면서 식탁에 이혼서류를 놓고 나가버렸다, 이혼 서류에 내가 아주 나쁜 사람으로 되어있더라, 3번을 들어 왔다 나갔다 하면서 계속 이혼을 요구하고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변호사를 사고 대응을 하다 우리들 교회로 인도되어서 왔는데
첫날 부터 말씀이 들리면서 내 죄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내 삶의 결론이 너무 인정되고 이혼하지 않겠다
결심하고 남편에게도 사과 했다, 목장에서 토요일 남편이 올때마다 밥차려 주라 하셔서 죽을것 같았지만 적용했더니 남편이 다시 집에 들어왔는데 지금 또 무릎을 꿇으면서 이혼을 해달라고 한다. 다시 집을 나갔다, 이혼소송중이고 상담도 다 끝내고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인생의 밑바닥을 쳤다, 미국 있을때 한국에서의 멋진 삶을 꿈꾸었는데 한국 오니까 더 비참하더라, 그 동안 이혼한 사람한테 정죄하는 맘이 있었는데 내가 이런 상황에 있으니 그들이 너무 체휼되고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의 말 한마디가 나를 살리고 있다, 지금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소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오규정집사님
딸 셋의 막내인데 중 1때 언니가 아빠의 전부인의 딸인것을 알게 되었다. 수치스러워서 혼란이 왔고 고등학교때
아버지의 부도로 엄마와 아버지의 가정 불화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 도피로 유학을 갔다
유학 생활을 하다가 가정 불화가 너무 심해서 들어오라고 하셔서 왔지만 친구 관계가 안되고 피해 의식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남자 친구들을 사귀면서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아서 좋아졌다가 남편을 만났다.
아직 자녀가 없고 회개하며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고야 집사님
알콜중독과 폭력을 행하시는 아버지때문에 5살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고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데 해가 지면 슬펐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나고 아버지가 엄마한테 찾아갔는데 꼬질꼬질한 내 모습을 보고 다시 집에 들어오셨다
나 때문에 술을 드신다고 하시는 아버지 나 때문에 이혼 못했다고 하시는 엄마, 그리고 술을 드시고 엄마를 #46468;리고 우리를 때리는 아버지로 인해서 초등학교 중학교는 슬픈 기억들이 더 많다,
그러다 고등학교때 안동으로 이사를 왔고 물질 고난은 해결되었는데 여전히 낮은 자존감으로 모태 신앙이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교회 뜰만 밟고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대학을 가서 술을 마시게 되었고 술을 마시면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아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마시던 술이
중독이 되어서 남편과 연애하는 10년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러다 분식집을 하시는 부모님을 돕게 되었고
낮은 자존감을 더 낮아져만 갔고 여전히 나때문에 술을 드시고 부부싸움을 하신다는 아버지의 얘기에 상처받고
말 다툼끝에 집을 나와서 남편과 동거하다 혼전 임신으로 결혼 했다
남편 직장의 월급이 나오지 않고 물질 고난과 10년 동안 나를 받아주던 남편이 밖으로 돌면서 하나님을 다시 찾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알콜이 끊어지고 담배도 끊게 되었으나 개#52433;교회에서 8년 동안 기복적인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해결되어지지 않는 나의 의부증으로 힘들어 했다, 그러다 흩으심의 사건으로
2013년 12월에 우리들교회로 인도 되었고 남편과 같이 부부 목장에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