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압형, 방임형, 축소형, 감정코치형 중 어떤 부모인가?
가 집사님
엄마의 역할이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역할 이상으로 받아들여져서 ‘아이의 시중을 드는 존재’라는 것에 화가 난다. 옛날에는 다 알아서 컸는데 말이다.
4살 아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내 말을 잘 듣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tv에서 아이들이 얌전하게 놀고, 적당히 노는 모습처럼 놀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모래놀이를 하면 얌전하고 용도에 맞게 놀았으면 좋겠는데, 머리에 뿌리고 그 손을 눈에 비비다가 아프다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반복하는 모습들... 하지 말라는 것, 하면 안 되는 행동들은 꼭 한다. 그래서 “너는 왜 그래?”가 나의 주제가이며, 매 주 나오는 문제부모가 “나”임을 인정한다.
부모님의 이혼 후 친척집과 부모님댁을 옮겨다니며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엄마가 있는 내 아들은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조장님
아이는 정상인데 엄마가 아파요... 임신 중이시기에 약을 먹을 수 없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부모가 있든 없든 각 가정마다 문제가 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어린 남동생의 죽음을 봤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서 저는 내 부모처럼 안 하기 위해 자녀들에게 과잉보호했다면, 제 동생은 자녀들을 방임하고 학대를 하더군요.
결국 어떤 부모에게서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보다는 나의 상처회복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가 집사님
제 속의 억울함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오늘 배운 것처럼 I-메시지를 해봤지만, 결국은 “나 힘들다”를 많이 토로했던 것 같다.
나 집사님
5학년 큰아이를 별 지식없이 그냥 키웠다.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감정코칭은 전혀 아니었다. 고학년이라 소리지르며 야단치기 보다는 말로 공감해주고 좀 통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2학년인 작은 아이에게는 공감도 적고 대충 듣고 있는 모습이다.
감정코칭만 제외하고 축소전환형, 억압형, 방임형의 태도로 육아했던 것 같다.
다 집사님
요즘 아이들에게 감정을 코칭해주려는 적용과 이번 강의가 일치한다.
나를 전도한 친구의 양육태도를 보면서 많이 배워가고 있다. 처음에는 자녀에게 감정코칭을 하는 친구의 모습이 유별나거나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방임형인 나를 합리화했고,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큰 아이의 아이답지 못한 참을성을 보게 되었고, 엄마인 나의 양육방식에 문제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보다는 내 기분과 감정, 내 기준으로 아이를 대하고 무시했음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과 부모학교를 통해 일관성 있게 아이를 대하며, 화를 안 내고 아이의 감정을 읽어보려고 노력중이다.
큰 아이에게 ‘엄마, 그 교회 교육받으러 나가면서부터 좀 달라져서 참 좋아~~~.’ 칭찬을 받았다.
라 집사님
아이가 10개월 때 복직을 하고 3살 때 다시 휴직을 했습니다. 엄마의 부재를 보상해주기 위해 감정코칭형으로 양육했지만, 애착형성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며 저도 복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잘 적응하지 못했고, 또래보다 소근육, 대근육 발달이 현저히 떨어지며 성격도 예민해져가니, 점점 심판자와 비판자부모가 되어 아이의 감정은 축소, 억압하고 옳고 그름으로 대하며 아이와의 갈등은 증폭되어 갔다.
올해 초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던 중, 아이가 감각통합 및 심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니, 아이가 또래보다 늦은 이유, 실수에 대해 심하게 좌절하는 모습 등이 체휼되었다.
낮은 자존감, 시력, 감각통합, 불안심리 등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지만, 부모학교를 통해 진정한 사랑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싶다.
마 집사님
억압형 아버지와 방임형 어머니 사이에서 나는 감정코치형으로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며 모성의 부정적 영향을 사랑이라고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일관성 없는 억압과 방임으로 키웠기에 아이들은 소심하고 의존적인 성향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결론은 배려 받지 못한 나에 대한 투사와 보상의 지나친 과잉보호였다.
지금은 아이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드리고 인정하는 적용을 하고 있다.
바 집사님
어떤 것도 우연이 없듯 부모학교를 시작하자마자 주신 둘째의 갑작스런 발작 사건은 하나님의 의도이신 것 같다.
시아버님의 바람이 드러나며 저희 집으로 들어오신 시어머님과의 갈등으로 인해 우리들교회로 오게 되었고, 내 고난에 집중하며 아이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못 했다.
강박적이고 현실적이며 리드하는 나의 기질과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환경이 맞물려 아이에게 억압과 방임의 육아를 했던 것 같다.
둘째 임신 때 시댁의 사건이 시작됐고, 내가 집에서 나오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것이라 생각하며 두 돌도 되기 전에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했고, 아이들 케어는 어머님이 얻으신 동거의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며 애착의 시기를 놓쳤음을 알았다.
2학년인 둘째는 밤 10시에 수학숙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5장의 문제를 풀고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5시에 숨이 안 쉬어진다며 우리 방에 왔고, 6시경에 경기를 했다. 응급으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입원실에 있는 동안 둘째와 큐티를 하며 내가 외식하는 바라새인이었음을 고백했다.
순한 기질의 둘째는 자신의 것 보다 강박적인 나에게 리드 되었고, 스스로 잘하는 둘째에게 기대를 많이 하며 아이가 하고 싶은 것 보다는 내가 시키고 싶은 것을 하게 했기에 이 사건에 옳소이다가 되었다.
검사결과는 경기를 일으키는 뇌파가 발견되었지만 약을 먹을 정도가 아니며 없어질 확률이 높다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수업위주의 특기적성을 끊고 둘째가 좋아하는 만들기 수업으로 변경했고, 집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아이의 채워지지 못한 사랑받지 못한 감정과 억압되고 강박적인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것을 목표로 미술치료를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