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기질의 이해와 부모양육태도
♠ 일시: 2014. 5. 13. 화
♠ 참석: 성혜옥, 김상희, 박남현, 문정란, 백혜영
<나눔주제>
1. 나의 자녀는 어떤 타입의 기질에 속하는가?
기질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변화시켜볼 나의 접근법은?
2.가정에서 부부(또는 육아를 도와주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달라서 문제가 되는 상황은?
#65279;3.기질을 우선 고려해야 할지, 일관된 적용을 해야 할지 갈등되는 상황은 없었는가?
♥ 성혜옥
자녀가 셋인데 다 집을 떠난 상태다.
큰 딸은 40이 넘었는데 아직 미혼이고 둘째 딸 손주는 6학년이고 막내 아들은 외국에 있다.
갑자기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썰렁하다.
애착형성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살지 못한것이 슬펐다.
백프로 죄인이다 라는 명제 속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 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슬픈 것이다.
오늘도 기질을 보면서 너무 실력이 안되서 슬프고 모래알 빠져 나가듯
자녀들을 다 놓쳐 버린것 같아 무력감이 느껴진다.
우리 아들은 느린 타입이다. 그런 기질을 생각도 못하고 직장생활 하느라 늘 바빠서 그냥 허용적이었다.
23년 교사생활을 했고 5남매 장남으로 시동생 둘 , 시누이 둘과 함께 살면서 자녀 셋까지 낳았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무거운 짐을 지고 그 힘듦이 우리 자녀들한테 간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느린 아들의 기질을 이해하지 못했던 같아 마음이 아프다.
♥ 문정란
여섯 살 아들이 5세때 작년 여름쯤에 엄마인 나를 미워하는걸 알게 되었다.
나는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엄마였다. 뭐든 통제하고 명령적이고 지시적이었다.
아들은 순한기질인것 같다. 그런데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하는 말이
이 다음에 커서 엄마한테 복수할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복수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복수는 엄마를 죽이는거라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 엄마는 뭐든 못하게 하고
하지 말라고 하고 늘 자기를 혼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멘붕이 왔고
아이가 왜 그런 얘기를 하고 내가 그렇게 지나친 부모였나 책을 찾이보다가
유아 사춘기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유아사춘기를 잘 지낸 아이들이 커서 사춘기를
잘 지낸다고 크게 걱정할게 없다고 하였다.
우리들 교회로 인도 받고 부모학교를 통해서 늦기전에 내가 좀더 허용적인 부모가 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는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순한 기질인것 같으면서 예민한 부분도 있다. 요즘 좀 허용을 했더니
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표현을 했다.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무시했는데 앞으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말하기 전에 한 템포 늦추고 생각
하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 백헤영
7살 여아를 돌보면서 부모학교를 하게 되었는데 두 아들 (33살, 31살 ) 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돌아보라고
하나님이 기회를 허락하신것 같다.
큰 아들은 순한 기질이다. 자라면서 누구하고 부딪쳐서 싸우거나 다툰 적이 없을 정도로 순하게 자랐다.
반면에 작은 아들은 까다로운 기질에 가까와서 주위도 산만하고 자기 의사 표현력도 좋고
이렇게 서로 다른 기질이지만 두 형제가 친구처럼 의좋게 자랐는데 지금 상황은
집안에서 말을 안하고 지내는 세월이 5년이나 되었다.
나는 순한 기질의 엄마인데 나의 틀에 맞춰 명령적이고 지시적으로 키웠다.
특히 남편의 개념없는 삶 때문에 힘들어서 아이들한테 가해지는 요구는 모범의 틀에 집어 넣으려 했고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작은아들 4학년때 남편이 집을 나가고 생계를 위해 살아야 하는 나는
늘 고달파서 그 이후의 양육은 거의 방임에 가깝게 나둔 상태가 된것이다.
부모 영향, 도움 받지 않고 거의 독립적으로 커서 무례하고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힘들었는데
우리들 교회에 와서 #44704;달은 것은 내가 문제 부모인 것이 인정이 되어 무시받는걸로 훈련받고 있으며
말없이 섬기는데 나역시 무시로 올라오는 화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적용해야 할것은 일관성으로 가야한다는걸 깨닫는다.
♥김상희
양육에 대한 별 할말이 없다.아들만 셋인데 첫째 둘째는 미국에서 혼자 키웠는데 너무 힘들어서 야단을 많이
하고 키운것 같다.
두 아들은 너무 순했다. 옆에 놓고 할 일을 다했다. 막내는 서울에 와서 낳았는데 낳으면서도 이 아이를 안 기
를거야 하면서 낳았다.
왜냐하면 두 아들을 외국 생활에서 살림에만 묻혀 키워서 한국에 와서 아들을 낳고는 나도 친구들처럼 자유롭
게 살고 싶었다.
셋째도 순했는데 형들 틈에서 혼자 피아노, 컴퓨터등 어깨 넘어로 다 배우면서도 실력도 좋았고 순탄하게들
자라줬고 모두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