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기 1강 9조 조별 나눔
▷일시: 2025. 03. 25(화) 09:50
▷장소: 우리들교회 판교성전 3층 테라스
▷참석: 6명 / 6명
▶과제: 삶 선 그래프로 소개하기 & 부모학교 신청 동기
☆가
-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과외 알바 하면서 만난 3살 연하 학생과 13년 연애 후 결혼했고 7년을 살았다. 출산과 함께 바닥을 찍었다. 시댁과 같은 아파트에 살다가 친정으로 나오면서 남편에게 이혼 소송을 받았다. 함께 소송을 걸었고 우리들교회에 온 후 5, 6년을 소송 했지만 재판 이혼을 했다. 폐인처럼 살다가 회복 중이다. 이혼 소송에 맞서기 전에 우리들교회로 좀 더 빨리 와서 이혼에 맞서는 대신 가정을 지키려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부모학교 신청 동기는 9살 딸을 둔 싱글맘으로 불안이나 폭언 폭력 혈기가 올라오고, 이런 것이 아이의 결핍으로 나오면서 제가 겪었던 완벽에 대한 부담을 아이가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신청했다.
☆나
- 어릴 때 좋았던 건 아빠랑 여행 다닌 것, 힘들었던 건 가난 가정불화 유전병 재발로 수술반복, 고1때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후 엄마가 술먹고 싸우고 해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아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30살에 결혼 후 32살에 자가마련을 했는데 부부사이는 안 좋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의 언어 문제로 담임 강권에 의해 회사생활을 멈췄고 열심히 가르치려고 하다가 많이 때렸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친정 불화도 여전하고 남편과도 원수고, 안 그러려고 해도 아이를 매일 학대하니, 차라리 죽고 없는 엄마가 낫지 않겠나 바닥을 치던 와중에 우리들교회에 왔다. 이후 목장에서 병원에 데려갔고 아이는 ADHD약을 먹으며 언어와 사회성치료를 받았고, 나는 ADHD약과 우울증약을 먹고 있다. 중2가 된 아이는 상처도 많고 여전히 관계도 학습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교회를 좋아하고 등교도 잘해줘서 감사하다. 친정엄마, 남편과도 처음 화목을 경험해보는 지금이 정점 같다.
- 지원동기는 빈도가 극감했어도 여전히 가다가다 아이를 힘들게 하는데, 작년에 중등부에서 심방을 오셨을 때 부모학교 10회 수강을 약속했다.
☆다
- 밝은 아이였는데 부모님의 장애를 인지한 후 우울해졌다. 부족한 부모 대신 역할을 감당했다. 가장 좋았던 기억은 아파트로 이사한 것, 힘든 기억은 아버지 신장 투석 후 도와 드려야 하는 삶이다. 불신 결혼 후 갈등을 겪고 있다. 남편이 시댁으로부터 독립도 안되었다. 오늘 말씀에 공감 된 부분이 남편 여동생이 장애인이다. 장애 가정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다면 더욱 비장애 가정을 선택했어야 하는데 같은 장애 가정을 선택했다. 아버지 소천하시고, 부부갈등을 거치면서 우울감 가운데 유방암 사건을 겪으며 친구 전도로 우리들교회에 왔다. 고난은 해석 되지만 남편과의 전쟁 계속 중이다.
- 신청 동기는 12살 딸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
☆라
-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부모님은 사랑이 많은 믿음의 어머니, 불신이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아버지셨다. 유일한 부부싸움은 교회 못 가는 핍박이었다.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여 의대에 갔다가 아버지가 원하셔서 한의대에 갔다.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과 7년 연애했고,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던 시기에 미국에 의대를 보내준다는 말을 믿고 결혼했다. 그런데 이게 다 사기였고 혼인신고 후라 울면서 예식을 진행했다. 시댁 문제로 이혼하려다가 분당우리교회에서 하나님 체험 후 취소했다. 내 인생 망했다 여기며 4년간 피임했고 출산 후에 나는 양가를 챙기며 먹고 살기 버거운데 주변에 보면 다들 부유해서 힘들었다. 우리들교회에 오고 1년후에도 말씀이 안 들리면 이 관계 정리하리라 했다. 그 사이 남편이 집을 나가 아이 셋을 혼자 보고, 오픈 했던 병원을 정리했는데 그 시기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남편과 회복이 되었다.
- 동기는 힘든 아이들에게 의학을 넘어서 신앙적으로 전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어 도움을 받으려고 왔는데 오히려 내 안에 가족신화 등이 있는걸 보고 있다.
☆마
- 외로운 유년시절. 원하는 대입실패 후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모태신앙이지만 교회 가기 싫어 집도 나갔다. 자가 면역 질환 진단 후 슬픔이 시작되었고, 불신자와 교제하다 상처를 받은 후 신결혼 했다. 결혼 후 카이스트 박사, 대기업 연구원이지만 코칭형인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과 이단을 믿는 시댁으로 인해 출산을 회피했다. 좋았던 것은 남편 따라 박사 취득 후 간호학과 교수가 되었다. 자녀 없이 살다 보니 룸메이트 느낌이었고 이혼 없이 살려면 끈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셋째 입양 과정에서 힘들었고, 작년에 망막수술이 힘들어지면서 바닥을 쳤다.
- 동기는 내가 나이가 있지만 아이들은 이제 초입, 7살, 5살이라 막막하고, 육아도 외롭고 양육도 잘 못하고 있는듯하여 도움을 받고자 지원했다.
☆바
- 우리들교회 출석 1달째이다. 아버지가 가부장적이셨다. 고1때 부산 전학 후 부모님의 불화, 수능실패, 경제 고난 가운데 부모님이 이혼했고 혼자 벌어 살다가 취업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지금 남편 만나서 결혼했다. 신혼은 행복했고 첫 애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었지만 행복했는데 둘째 낳고 자폐 소견을 받았다. 15개월에 발견 후 대학병원 가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아이를 안고 베란다 뛰어내리고 싶고, 힘들었고 퇴사했다. 8살 가기 전에 다시 검사 받는데 자폐가 아니라고 진단이 나왔고 병원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해서 엉엉 울었다. 딱 한달 전 남편이 보이스피싱으로 6억을 날렸고, 남편 멘탈이 무너질까 걱정하던 중 남편 주변 분의 권유로 우리들교회 왔고 회복 중이다.
- 동기는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못 헤아리는 것 같고, 사춘기 앞둔 아이들과 저와 가족을 위해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