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3월25일 화요일
[나눔 질문]
-기뻤던 일 1가지, 힘들었던 일 1가지 대표적인 것을 선택한다.
-부모학교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말한다.
-삶선 그래프를 그려본 느낌을 말한다.
A집사님
10대중반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가족 모두 교회도 다녀서 솔직히 모두가 부러워 하는 집이었다. 그러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다.
사업 부도 나니 대학 때 계속 1등을 하며 지내면서도 돈에 대한 압박 때문에 즐겁지는 않았다. 더 이상 돈이 해결이 안되니 용인 수지로 이사까지 오게 되었다. 그때가 최악이었다. 수지로 이사온 것이 인정이 안되고 화가 났다. 남동생이랑 이사 가는 내내 울었단 기억이 있다.
회사에서 남편 만나서 우리들 교회 데려왔다. 돈에 대한 압박으로 십 몇 년을 살다가 결혼하며 돈에 대한 압박이 사라졌다. 시댁에서 차도 집도 사주셨다. 돈에 대한 압박이 사라져서 마음이 편해졌고 출산도 원하는 때에 바로 바로 하게 해주셨고, 양가 부모님들이 주말에 아이들을 돌봐주셔서 육아에 힘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첫째가 30개월 지나도 말을 못해서 계속 이상해서 병원 갔는데 또래보다 1년8개월 느리다는 결과를 받고 1년에 2-3천씩 쓰면서 놀이치료 했다. 지금 어린이 집에 어울림 반에서 지내다가 치료 받고 많이 나아져서 일반 반으로 옮겼는데 또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다시 무너졌다. 그러고 소아정신과 3군데를 돌고 있는데 한 의사 선생님이 최악의 말을 하시는데 자폐성향이 있다고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게 저번 주여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병원 검사하기로 했는데 두꺼운 검사지에 다 안됨, 안됨에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 좌절스러웠다. 의사선생님이 군입대 때문에 장애 등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에 너무 화가 나서 눈물도 안 나는 상황이다.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들 교회 부모학교 지원한 동기이기도 하다.
B집사님
세자매 막내로 귀엽게 태어났다. 10살때 큰집으로 이사를 가서 생일에 친구들 초대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16살때 예체능을 한번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건이 와서 방황했고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서 좋았는데 26살때 남자친구가 바람 펴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일 할 때 진급이 안 돼서 수치스러웠다. 화가 나서 술을 먹다가 왼쪽 팔을 다쳤고 그때가 최악이었다.
35살에 결혼하면서 다시 올라갔다. 바로 임신했고 그때 아이를 안 주셨으면 남편이랑 헤어졌을 것 같다. 37살 때 남편이 여자 사진을 찍고 다녀서 정신과를 가게 된다. 제가 불안이 높다고 하더라.
아이가 작년에 어린이 집에서 친구들이랑 안 어울리고 똑 같은 데만 왔다 갔다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가 티비를 많이 보여줬고 그러면서 방치가 된 것 같다. 용인시 상담센터에서 저와 같이 상담 받았고 놀이치료 하려고 한다. 부모학교는 작년에 못 받고 아이 사건으로 오게 되었다.
C집사님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엄마 집에 가서 대학생활을 했다. 20대에 방탕 생활하다가 남편을 만났다. 돈이랑 사랑 중에 고민을 많이 했다. 점도 보러 다니고 그랬다. 친 아빠가 탈장 재수술하셨는데 의료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빠가 항상 교회 가라고 하셨는데 장례식 끝나고 목사님이 오셨다. 남편 부모님이 장로님이셔서 그 교회 목사님이랑 얘기를 했는데 마음이 편안했다. 수술에 실력이 있는 의사였는데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의사한테 가서 하나님에 대한 책도 선물했다.
친정이 사업을 하는데 남편에게 하라고 해서 하게 되었는데 난 중간 입장에서 힘들었다. 우리들 교회 와서 목장하고 첫째 태어나고 위례 청약도 되어 잘 살고 있고 지금은 위에 있는 것 같다.
D집사님
어릴 때 특별히 힘든 것 없었고, 남편과는 연애 20살 초반에 만나서 결혼까지 쭉 왔다. 애기를 너무 좋아해서 빨리 낳자 해서 낳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저는 사회성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첫째가 그 부분에서 제가 생각하는 만큼 안 따라오니 애를 많이 혼냈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고 힘든 육아를 했다. 애가 크니까 어느 정도는 괜찮다. 그러다 우리들 교회 다니는 언니를 만나면서 우리아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상했구나 알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아이 때문에 오게 된 거다. 친구들이랑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사춘기는 안 온것 같은데 계속 사춘기 같다.
E집사님
저도 사춘기 전까지는 별 큰일 없이 살다가 사춘기가 늦게 와서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하나님이 찾아오신 사건은 백혈병 사건이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렸구나 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었다. 그때부터 취업도 잘 되고 살다가 이혼을 안 좋게만 생각했는데 우리들 교회 와서 가정을 지키는 것이 대단한 거구나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신 교제, 신 결혼 꿈꾸며 정착 하다가 제 안에 남아있는 기복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남편도 잘 해줬지만 아이를 가질 때쯤 회사에 승진을 하고 싶었다.
아기가 20주때 심장 쪽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믿음으로 낳았다. 결국 나아서 보니까 심장 판막 쪽 문제로 수술을 한 번 했다. 그때부터 육아가 항상 힘들고 어떻게 될까봐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항상 정신이 기쁜 상태였는데 육아와 동시에 요동을 치면서 아기가 뭐 하나 못해낼 때마다 말이 늘긴 했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느리고 할 때마다 나는 왜 힘든 아이를 주셨을까 원망 하는 상태이다.
부모학교의 동기도 육아하는데 요동치는 것이 아니고 아이를 감당해야 하니까 평안하게 하나님께 맡기면서 가고 싶어서 왔다.
F집사님
어렸을 때 집이 매우 가난했다. 단칸방이지만 김치찌개만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서를 못써서 자동 재수를 했다. 재수하면서 인생 힘듦을 느꼈다. 원하는 전공을 하게 되면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면서 기쁨이 올라왔다. 결혼하면서 최고치를 찍었다. 우리들 교회 와서 8년만에 임신을 했다. 출산함과 동시에 제 인생에서 제일 바닥으로 내려갔다.
남편과 많이 싸우고 둘째 낳으면서 더 싸우고 경찰들이 올 정도였다. 일, 집안일, 육아를 같이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저희 남편은 무기력한 사람이었고 저는 외향적인 사람이어서 안 맞았다. 1년 전에 위암 사건이 오면서 일을 내려놓게 되었다. 일을 거의 내려놓고 애를 케어하게 된 것이 암 사건이었다. 암 사건을 겪으면서 제 육체적 체력과 정신 건강을 챙기게 되었고 엄마의 때를 드디어 살게 되어 일을 안하고 엄마, 아내의 때를 살면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부모학교 신청하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들었다. 항상 나는 낮에 일하니까 못해 라고 했지만 위암 사건 덕분에 이번에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