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시골에서 쌀농사를 꽤 하셨던 할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주 크게 부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고파 본 적 없고 고기 반찬에 쌀밥 먹고 여동생들이 할아버지 등쌀에 농사일 돕는다고 학교에 못갈 때도 소달구지 타고 학교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경제관념도 강하지 못했고, 돈사고가 생기면 늘 할아버지가 해결해주시는 식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작은 키와 대학입시 실패 등이 컴플렉스가 되어 평생 발목 잡히며 살았고,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면 서기가 되었고 엄마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너무 다르게 방탕한 생활 습관을 가진 아버지가 싫었지만 결혼하고 바로 내가 생기는 바람에 차마 이혼하지 못하고 살다보니 오늘까지 깨끗한 호적을 유지하고 계신다.
2. 미취학 시절
막연한 불안함, 엄마말을 잘 들어야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강박 속에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무덤덤하게 보냈던 것 같다. 디즈니 명작 동화를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커서 어른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공주도 되고 갑자기 예뻐지기도 하겠지.. 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의 외모 컴플렉스가 시작된 것 같다.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예쁘다고 한 것 같지 않다. 못생겼다고 놀렸고, 먹고 살기 힘들어서 예쁜 옷을 입힐 수도 없었고, 아버지의 실체(?)를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그리워하고 기다렸던 것 같다.
3. 초2때 신앙을 가지다.
학교 숙제를 하면서 매번 엄마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날은 엄마가 꼭 나가야 한다면서 나를 두고 일을 가버리셨다. 너무 불안했고 서러웠고, 엄마 없는 하늘아래 누가 날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무릎끓고 기도라는 것을 했다. 나는 앞으로 하나님/ 예수님을 믿으며 살겠노라고... 지금 돌아보니 그때 오죽했으면 9살 짜리가 나를 지켜줄 사람이 신(God)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을까? 얼마나 외롭고 아슬아슬하게 불안하게 살았으면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니.. 나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4. 고등학교 까지 학창 시절
학교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곳에서는 집안의 우울한 일을 잊을 수 있고, 나는 원래 생긴 성격처럼 명랑하고 재미있고 푼수같은 아이로 살 수 있었다. 성적도 좋은 편이어서 성취감도 있었고 워낙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엄마의 깔끔하고 강박적인 생활 습관은 늘 긴 잔소리를 불러왔고 버럭하는 혈기가 있으셨기에 내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었고, 엄마는 예측 불가능이라고나 할까? 시간표가 있고, 명확한 규칙이 있어서 학교는 도리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학업 성취를 통해서 인정받고 사랑받았다. 집에서 받지 못한 것들을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통해 얻어가면서 학교를 정말 사랑하고 즐거워 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나는 단순히 빨간머리 앤 처럼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소녀라고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학교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채워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5. 대학 시절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갑자기 삶의 목표가 사라졌다. 시간표도 내가 관리,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없이 내가 스스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내가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인 줄만 알았는데, 타지에서 아는 사람하나 없이 친구를 사귀기엔 나는 너무나 컴플렉스 덩어리였다. 나를 보호해주던 울타리가 없이 홀로 벌판에 던져지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시기... 극심한 우울증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괴로워만 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만 고민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원망하던 시기였다.
6. 졸업 그 이후
우여곡절 끝에 취업하게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이라는 것을 규칙적으로 벌게되고 엄마로부터 정서적,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나의 상태는 좋아진 것 같다.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아빠와 영원히 독립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 보지 않아도 되고 기대지 않아도 된다. 아쉬울 것이 없고, 엄마를 도울 수도 있다. 엄마 옆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던 내 모습이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는데, 이 모든 것을 월급이 해결해 주었다.
7. 결혼 그 이후
아버지와 완전히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엄마의 첫 번째 조건인 키 큰 남자였고, 신앙이 있는 남자였고, 아버지와 다르게 성실하고 경제관념 투철한 남자였다. 처자식을 굶기지 않을 것 같은 남자.. 그래서 좀 답답해 보이고 재미없어도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넘기며 결혼했다. 막상 결혼하고 나니.. 모든 사람들의 동일한 레파토리처럼.. 장점이 단점이 되었다. 많이도 싸웠다. 재미없다고, 눈치 없다고, 분위기 모른다고.. 남편은 참 나에게 눌려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 계획 임신이었지만, 정말 간절히 원한 아이라기 보다는 결혼했으니 아이가 있어야 하겠고, 지금이 시기 상 적절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기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나에겐 그리 모성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를 출산하고 얻게 된 5개월 간의 출산 휴가에 난 영어 점수를 따겠다며, 학원 새벽반을 다녔고, 학원 교실 옆 창고 방에서 유축을 하면서 스터디를 했다. 몸을 만든다면서 운동을 다니고 아이가 자면 내 할일 하면서 놀고.. 철저히 아이는 없이 나만 위하면서 보낸 5개월이었다. 그 뒤로도 친정 이모가 아이를 봐주시게 되면서 정말 100% 믿고 맡겼다. 나는 무늬만 엄마, 그저 왔다갔다하는 엄마였다. 친정엄마의 비난이 다 맞는 말이었는데 그때는 억울했다. 회사다니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남편에게도 갑질 와이프였다. 직장 생활을 계속하게 되니, 여차하면 엄마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고 당당하게 헤어지고 아이들도 보란듯이 키울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 남편에게 아무 문제가 없었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을 잠재적인 문제 남편으로 보고 혼자서 칼을 갈고 있었다. 아버지를 업신여기면서 자라왔기에 남편의 가장된 자리, 아버지된 자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면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더욱더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악순환...
아이가 불안정 애착으로 나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놀이치료를 150회 이상이나 다녔지만 내 죄를 보지 못하는 나는 그저 이것이 아이의 문제라고만 여겼다. 우리들 공동체에 오고 목장에 나가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야 내 죄로 인해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수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삶 곡선 그리기를 통해서 전체를 조망하게 되니, 나의 죄가 보이고 상황이 해석되는 은혜가 있다.
어머니가 일방적인 피해자도 아니고, 아버지도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이며 무엇보다도 나를 예수믿게 해 준 부모님이라는 것이 깨달아진다. 어린 시절이 이런 불안이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말이다. (어머니의 집은 대대로 불교 집안이고 어머니의 외가는 사찰을 운영했다.)
아버지와 반대되는 사람을 찾다 보니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찌질할 정도이지만 무척이나 성실하고 가정적이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기준에서 재미없고 멋지지 않은 지금의 남편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어머니 삶에 대한 연민은 직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정의 질서와 권위에 순종하게 하지 못하는 갑질 와이프가 되게 한 죄의 뿌리가 되었다. 이 죄는 아들과의 불안정한 애착 관계로 이어지니 나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적용만이 내 가정을 살리는 적용이 될 것이다.
요즘은 남편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가장으로 존중하고 사모하는 적용을 하고 있다. 특별히 아들에게도 그 동안 친정어머니처럼 혈기내고 강박적으로 대하고 했던 것들을 회개하면서 수치를 당하거나 욕을 먹어도 참는 적용을 하고 있다. 버릇없는 아이가 될까 하는 조바심이 나지만, 아들의 마음속 화를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속으로 십원짜리 욕과 주님을 동시에 부르면서 겨우겨우 참아가고 있다.
나로 인해 수고하신 친정부모님, 남편,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하며 흠많은 나를 참아주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로 인한 수고가 어서 끝이 나고 친정 부모님이 하나님 자녀로 택함 받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