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나는 어떤 페르소나로 내 아이를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미술작업으로 표현해보고 느낌을 적어보기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거나 바깥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해주는 엄마나 아이의 생태적인 개인적 특성(adhd)을 고려한 개별적인 배려를 해주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일관성에 대한 잘못된 적용으로 양육서적에 나온 양육 스킬들을 시험해보며 행동이 나아졌나 아닌가에만 관심이 있고 정한 규칙대로 엄격하게 판단해주고 늘 공정한 규칙을 들이대는 엄격한 교사나 훈계자, 심판자의 모습으로 양육해 왔습니다. 친구와 다투는 일이 있어서 억울하다거나 부당하게 당했다고 하소연을 해도 아이 마음을 먼저 알아주지 않았고 네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으니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들었고 그렇게 대답하기도 해서 아이가 폭발하게 하곤 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아닌 심판자가 되어 시시비비만 가리고 책임소재만 따졌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어 사달라고 하거나 해도 항상 약속한 날이 되기까지 반드시 예외 없이 기다려야했고 처음 약속한 그 이상의 것은 낭비라 생각해서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마음 편하게 요청하기 힘들게 했기에 거짓말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아이 입장에 온전히 서서 막아주고 대신 싸워주고 정당한 대우를 해줄 것을 소리내서 요구하는 엄마의 입장을 자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려고 하고 있고 아이가 자기의 요구보다 더 풍족하게 누린다고 느낄 만큼 인색하지 않으려 해보고 있습니다.
한번 정하면 바꾸지 못하고 꼭 지키게 했던 학습량이나 규칙들도 약간의 융통성을 두고 변화를 원할 땐 허용해 주고 다 못하면 할 수 없지 다시 계획을 바꿔보자고 얘기해주니 최근에는 아이의 분냄이 조금 덜한 것 같습니다.
교사와 심판자의 페르소나를 벗고 그동안 부족했던 보호자와 위로자로서의 엄마의 페르소나를 쓰고 대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전과 같이 크게 성내지 않고 지낸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그래도 아직 불쑥 불쑥 예전의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적시에 잘 하지는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표정으로도 사랑의 언어를 쓰기까지 계속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