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옷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분주한 하루를 마무리 하고 평온한 잠을 자기 위한 의식인 잠옷 갈아입기를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엄마가 비명을 질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붉게 충혈된 눈의 아버지와의 싸움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
방 구석에 숨죽이고 떨다가 쓰러지듯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잠들었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전에 잠옷을 갈아입는
일이 익숙지 않아 해 본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집이 산속에서 30분을 걸어내려가야 하는 강원도의 깊은 산골에서, 커다란 방 하나로 이루어진
집에 살았기에 부부싸움이 시작되면 어디 숨어있을 방도 없었고 더구나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하면
그 폭력을 막기 위해 데려올 사람도 없었기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싸움의 발단은 대게 저였습니다, 백점을 맞지 못해서, 즉시 순종을 안해서, 찾아오라는 공구를 바로 찾아오지 못해서
다양한 이유로 아버지는 술을 드셨고 그때마다 싸움과 폭력이 이어졌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즉시 1초 안에 대답하며 방안에서 나와야 했고 늦잠과 말대꾸는 절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밥상머리에서 말을 했다고 밥 그릇에 머리를 맞고는 밥상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밥만 꾸역꾸역 밀어넣었습니다.
성적표가 나온 날이면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고 똑바로 누워잘 수 없었습니다,
세수를 하고 바로 얼굴을 닦지 않아서 방바닥에 물을 떨어뜨렸다고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는 온 몸을 밟아대던 아버지
아버지의 말을 듣지 못했기에 대답을 못했던것 이었는데 손님들 있는데서 아버지를 무시했다고 하시며 밤에 도끼를 들고 죽이겠다고 하신 아버지. 그 아버지를 피해 새벽까지 컴컴한 숲에서 떨던 기억.
그런 아버지에게서 자랐기에 아이들이 내게 말 대꾸를 하고, 내가 주는 옷을 입기 싫다고 하고, 반찬 투정을 하고
빨리 빨리 준비하지 않는 일에 분노가 솟았습니다.
실수해도 얻어 맞고 정신을 똑바로 안 차려서 그렇다고 " 나사가 하나 빠져서 나왔다느니" 떠리하다느니"
소리를 들었기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나를 꼭 닮아서 덜렁대고 실수가 잦은 둘째를 보며 나처럼 나사가 하나 빠져서 나왔구나... 하며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의 말은 항상 1단계의 언어 수준이었습니다.
빨리 빨리 준비해서 나가지 않을때, 말 대꾸를 하며 불만스럽게 말할때, 저희들끼리 싸우며 소리를 지를때
나의 말은 맞아야 돼 였습니다, 디지게 맞아야 정신 차리지 였습니다.
디지게 맞았어도 아직도 물을 쏟고 문과 서랍을 대강 닫고 다니는 나였는데, 나의 아이들에게 학습된 태도로
부모가 하라면해! 강요를 하는 권의주의적 부모였습니다.
병적인 화를 내며 아이들을 때리고 난 후 후회와 죄책감으로 미칠것 같았지만 마치 수도꼭지 처럼 특정한 상황이
되면 손이 올라갔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집어 던졌습니다.
내가 던진 책에 맞아 코피를 흘리는 둘째,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도 나의 폭력성은 멈추어 지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 삶의 결론으로 4학년인 첫 아이는 반항적인 태도로 동생을 밀치고 화를 내고
둘째는 adhd 판정을 받고 약을 먹고 있습니다. 막내는 소리만 질러도 겁을 먹고 방에 들어가 숨고 있습니다.
그토록 싫었던 아버지의 폭력성을 저의 모습에서 보면서 절망과 낙심으로 차라리 이런 엄마는 없는게 낫지 않나
생각하며 자살을 하거나 집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사람이 나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보다 더한 폭력과 알콜 중독으로 온 집안 식구들을 괴롭히다가 큰 아들이 자신의 폭언에 자살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아버지가 국민학교 2학년때 음독 자살하신 할아버지
가난한 환경에서 술 지게미를 먹으며 고학을 하면서 결국 대학을 가지 못하고 꿈을 펼치지 못했던 아버지
그래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 공부를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으면서도 아이들을 때리는 엄마인 나
그 악순환의 고리는 이제 내가 끊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 일을 도와줄 공동체가 있고 이렇게 부모학교가 있고 주님이 계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10주뒤 나의 양육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너무 너무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