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는 제가 어릴적 혼자가 되셨습니다. 생계도 꾸리시고, 집안일도 하셔야 했던 엄마는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오빠와 저를 받아줄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엄마의 관심과 인정에 목말라 하던 오빠는 가출을 반복하는 반항으로 저는 말하지 못하는 억압으로 엄마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자녀로서 아물지 않은 상처는 저에게 뿐만 아니라 제가 부모로서 양육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엄마가 저를 야단치시다가 우와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는게 혼자 세상에 맞서 생존해야 하는 엄마에게 꼭 필요한 페르조나인줄 몰랐기에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좋은 것, 좋은 말은 남에게 하고, 자식들에게는 너무나 엄격하게 대하시는 엄마처럼 키우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놀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게 놀아주다가, 어느순간 욱~~~!!!해서 소리를 높이고, 무섭게 다그치며 나는 솔직한 엄마라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칭찬에 목말랐기에 아이가 하는 것보다 훨씬 추켜세우는 칭찬을 하며 나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엄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언제가부터 제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엄마, 화났어?" 하며 눈치를 살피고, 엄마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저의 어릴적 모습과 닮아있었습니다. 양육에서 제일 중요한 일관성이 없는 너~무 좋다가 너~무 화내는 엄마였기때문입니다. 부모학교를 들으면서 제 마음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아픈 것을 고쳐주고 싶지만 저도 아직 자녀로 아프기 때문에 아들에게 맞추지 못하고 상처의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남편이 출장을 갔을때 둘이 누워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다훈아, 엄마가 아직도 무서워?" "응."
"왜? 엄마 요즘 화 많이 안 내지 않아?" "안 내"
"그런데도 무서워?"
"어, 엄마가 화내지는 않는데 웃지도 않잖아. 웃지 않고 있으면 화난거 같아
우리 선생님도 화내시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무서운데 생각해보니 웃지를 않으셔"
" 맞아, 엄마가 가만히 있으면 다 차갑고 무섭대. 대학교때는 엄마 과사에 있으면 아무도 안 들어왔대. 근데 다훈이는 엄마 안 닮아 잘 웃어서 좋아."
" 아니야, 나도 잘 안 웃었는데 2학년인가 사회시간에 웃는 사람이 보기 좋다고 해서 고친거야. 근데 엄마는 왜 안 고쳤어?"
망치로 머리를 맞은거 같았습니다. 냉정하다, 차갑다는 말을 20년이나 들었고, 말씀을 들으며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미성숙한 태도라고 인정했음에도 그 오랜시간 저는 왜 고치지 못했을까요? 깨달음의 은혜와 적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안 웃었는지 웃으려고 노력하니 얼굴 근육이 땡기고 아팠습니다. 결국 혼자서는 어려워 아들에게 엄마가 무표정하면 웃으라고 말해주거나 손가락으로 스마일표시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여러달이 지난 지금도 저는 가끔씩 아들이 웃어 하면 주저없이 웃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가끔 때에 맞지 않는 요구에 나의 오픈을 이용하는거 아니야? 싶어도 속으로 주여를 외치며 씩~웃고 지나갑니다.
나의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넘어 아들이 원하는 사랑을 하는 엄마가 되기까지 이런 적용들이 때마다 쌓여야겠지요.
부모학교를 들으며 이제 저희 아이는 커서 놀이를 함께 하거나,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지만 아들의 지적질을 그대로 수용하고, 실패해도 끊임없이 적용하는 모습으로 다시 일관성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수용하고 변하려고 삶으로 보이는 엄마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