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명의 시작인 모태에서부터의 시간은 심하게 불안정한 가운데 10달을 지내고 아주 약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엄마를 통해 들었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심하게 다투셨고, 아빠는 늘 술과 폭력으로 가족들을 불안에 떨게하셨다. 나의 기억속에는 늘 부모님의 심한 다툼으로 엄마의 몸이 늘 멍으로 덮여 있었고, 학교를 다녀오면 집안 분위기부터 살펴야 하는 불안한 성장기를 보냈다.
내 삶이 기억에 있을 때부터는, 비록 부모님의 관계를 불안정 하셨지만 엄마는 늘 우리 삼남매를 사랑으로 돌봐주셨고 지금도 엄마의 사랑의 손길이 나에게는 기억에 남는 행복한 시간들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억을 무색하게 할 만큼 부모님의 불화는 심각했고, 아빠의 심한 폭력을 피해 나가있어야 하는 엄마의 가출로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야 했었던 나는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성장 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자라난 나는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심한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그런 나는 중2때 친해지게 된 친구들 역시 불안정한 아이들이였고 그 아이들과 부모님 몰래 방황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웠었다. 집에 들어갈 때는 다시 착한 딸로 변하여 아무일 없었던 아이처럼 들어갔다.
비록 집을 나와 있으면 나 없을 때 엄마가 맞을까봐 불안하긴 했지만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였다.
그렇게 보낸 10대의 끝. 고3말 수능을 끝내고 피아노 실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교회 청년부 오빠로부터 교재의 제안을 받고 만나기 시작한 사람과 결혼을 하였지만 전남편이라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긴 시간의 연애끝에 끝에 결혼을 했지만, 연애 중에도 긴 시간 고난을 겪고도 결혼을 결정하여 고난의 연속이 되었던 나의 분별 없는 선택은 낮은 자존감, 열등감으로 바른 분별력을 갖지 못한 내 인생의 결과인 것이다.
전남편과의 교재 가운데 이미 폭력을 경험하고, 구치소에 면회다니는 일이 여러차례 있었고,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연애시절을 보냈지만 끊지도 못하고 감당해 내지도 못하는 그런 시간 속에서, 기도하면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결혼을 결심하였다. 그때는 그것이 믿음의 결정인줄 알았지만, 이상한 사람 변화시켰다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대의 삶은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였다. 자살시도를 하기도 하고, 한강 다리를 자주 올라가 강을 보며 갈등을 하는 시간을 자주 보냈다. 모든 것이 죽음과 연관된 생각으로 언제 죽을까.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며 살던 중에 예수전도단 제자훈련을 받게 되었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많은 회복이 있었고 치유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과 외국을 다니며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전남편과 교재는 자연스럽게 끊겼지만,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보니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결혼을 안 해준다고 하니 자살 시도까지 자행한 전남편과 또 다시 교재를 시작하면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나는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거라고 믿으며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 폭력, 알콜, 외도, 무능력을 다 갖춘 전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결혼생활 1년, 별거 1년으로 길지 않게 끝이 났다.
이혼을 하고 난후 정죄감과 죄책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전남편과의 분리된 인생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이혼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되었다. 두 아들이 있음에도 재혼을 결정하게 된 것은 교재하는 1년 반 시간 동안 너무도 큰 사랑을 보여준 것에 이런 남자라면 두 아이를 키우면서라도 잘 살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의사였기에 신데렐라를 꿈꾸며 재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프리카 선교보다 더 어렵다는 재혼은 진짜 아프리카 선교를 다녀왔던 나에게 너무나도 현실적인 말로 다가왔고, 재혼 중에도 이혼을 여러번 결심하던터에 주은이가 생기면서 또 한번의 이혼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정말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부부의 갈등은 상상을 넘어섰고, 셋은 늘 한편이고 나는 외톨이 같은 시간을 보내며 지옥을 살았고, 나의 삶선 곡선은 바닥을 쳤다.
하지만 이혼 직전 알게 된 우리들 교회를 이혼 후 잠시 떠나 있다가 재혼 후 돌아와 말씀들으며 남편을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가족을 말씀으로 양육해 가시면서 각자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죄를 보고 가니 입다물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삶은 숨을 쉴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상향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고 있다. 때로는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떨어진 그 자리라도 이전보다 올라갈 것이기에 소망을 가져본다.
말씀이 있는 공동체를 허락하셔서 회복시켜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시니 감사하다.
이제는 나의 고난과 상처와 열등감이 약재료가 되어 별이 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