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은 딱히 힘들 것도 없고 어려울 것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양보가 없고 당신이 옳다 생각하면 나와 관련된 일이래도 나에게 묻지 않고 실행하시는-어린 내가 보기에는- 마음대로인 엄마 때문에 속상한 일은 있었지만 삶선 그래프를 아래 위로 그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학생이 되어 이제 막 예민한 중2 때 할머니가 계신 미국으로 저 혼자 유학을 갔고 그 시기에 받아야 했을 가족의 사랑이나 관심이 결여 되어 제 속에 저도 몰랐던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지 못한 다는 생각에 자신감은 바닥이었고 친구 좋아하는 저였지만 처음엔 친구도 없었습니다. 언어 구사 능력이 좋아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해가며 다시 활기차게 생활하고 학교 임원단까지 맡을정도로 적극적으로 지냈지만 7년 유학생활동안 한 번도 한국에 나올 수 없던 상황이었던지라 한국 친구들이나 교회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또 내 주위 사람들은 겪어 보지 못할 어떤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과 미국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체험하는 새로운 경험들 때문에 그래프가 계속 마이너스에 있진 않습니다.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던 시절인지라 마이너스, 플러스 정하지 못하고 오르락 내리락 그래프 선을 그렸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처음으로 이성친구를 사귀었고 몇 개월 되지 않지만 그 기간에는 행복해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귄지 몇 개월 되지 않아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함으로 임신과 불신결혼으로 이어졌고 그 남자친구는 지금 제 남편이 되었습니다. 결혼이 어떤 것인지 한치도 몰랐던 상태에서 결혼한 21살 저희 둘은 서로 부딪히고 힘들어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가 되니 육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고 저에게 육아는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육아도 육아이지만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편과의 불화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유학와서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 식구들이 잘해준다 하더래도 저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빈 공간이 있었나 봅니다. 남편 사랑을 갈구하는 데 남편과는 싸우기만하고 남편은 무관심으로 돌아서니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자살도 하고 싶고 집을 나가고도 싶었습니다.
대학을 중간에 자퇴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도 남편과의 관계와 육아는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여러 일을 지나고 공동체의 섬김으로 한국에 온 뒤 몇 개월 뒤에 우리들교회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말씀 들으며 공동체에 붙어만 가니 조금씩 나아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째 출산 뒤에 다시 육아 때문에 힘들어서 그래프가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래프가 내려갈 때에는 항상 남편과의 불화도 같이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오고 나서도 여전히 남편 때문에 울고 웃고 힘들어하는 제 모습이 있습니다. 지금은 둘째도 두 돌이 지나서 전보다는 육적으로 덜 힘든 상태입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서로 요령이 생기니 전보다는 덜 싸웁니다. 여전히 육아는 힘들고 아직 불신인 남편과는 내가 원하는 관계로 만들어지지 않으니 그래프를 높이 그리진 못 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가니 구원 때문에 아이들과 남편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면서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