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10세
어린시절 기억의 저 언덕 너머에 짙은 슬픔이 깔려 있습니다.
6세 때 엄마가 막내 남동생을 낳고 산후조리도 못 하신 채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가시면서 아기를 봐야 하는 임무로 저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엄마는 이른 새벽부터 밤 늦도록 일하시고 아기에게 젖 주는 시간 외에 동생을 돌보아야 하는 일은 제가 도맡아 해야 했기에 어린 나의 인생은 참 고달팠습니다. 아기를 등에 업고 엎드려 졸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이보다 더 슬픈 기억은 두 살 아래 4살 여동생이 엄마가 보고파서 종종걸음으로 찾아와서 대문앞에서 엄마가 보이는지 기웃거리다 내게 발견되면 엄마께 일러 주었던 매정한 언니였고 그리운 엄마를 찾아온 어린 딸을 돌려보내야 하는 엄마의 심정과 어린 동생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방앗간을 운영하고 대 지주였던 큰 부잣집의 주인집 아저씨가 큰기침하면서 들어오시면 모든 사람들이 긴장을 하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아기 울음소리가 나서도 안되고 아이들이 보여서도 안되어 바깥 출입이 제한되는 억눌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런 속박의 환경에서 지내면서 나 자신을 잘 드러내는 것도, 표현하는것도 할 줄 모르는 낮은 자존감의 성향이 자리잡게 된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인집 아주머니는 엄마를 친 여형제처럼 생각하며 오랜동안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당시에 주인집 큰 자녀들은 서울 유학파였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 주인집의 큰 언니의 적극적 권유로 그 시절에 드문 예쁜 이름을 획득하는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 10세~25세
부모님들은 법 없이도 사시는 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으며 열심히 사셨지만 자녀들로부터는 평생을 가난을 면치 못하는 무능력한 부모로 무시와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착하신 성품을 닮아 6남매 모두가 순종적이며 우수하고 모범생의 학교생활을 했지만 위로 오빠 둘, 언니까지는 간신히 초등학교만 나오고 상급하고 진학을 못 시켰고 객지로 나간 두 오빠의 인생이 그리 평탄하지 않고 방황의 시기를 지내다가 아예 가족과 연락을 끊고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행방을 모른채 생을 마치셔야하는 기구한 사연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합격을 하고도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주경야독하며 홀로서기를 하였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오직 배움에의 길에 촛점을 맞추고 대학에 도전하였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낙방에 좌절하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나의 허영심을 채워 줄만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혼전 임신하여 거의 만삭이 다된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 25~47세
그런데 나의 허영심을 채워줄 것 같던 남편의 학벌, 가정환경, 경제력등이 모두 실상이 아닌 허상으로 드러났고 복잡한 가족의 구성과 환경 속에서 자라난 여자 형제들은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성격 파탄자같은 기질과 성품들이어서 바람 잘 날 없는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아들을 낳고 살면서 결혼 4년차부터 시작된 남편의 외도로부터 끊임없는 사고,실직,사업, 부도 ,사기,감옥, 가출등 종합세트를 안겨 주었고 무엇보다 힘든것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서 남편의 지인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어쩌다 남편의 지인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면 전혀 알지 못하는 질문에 순발력과 언어에 지혜가 부족한 저는 난감하고 당황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 주일학교 때부터 청년시절까지 들쑥날쑥 기복의 신앙생활로 불렀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힘든 결혼생활 동안 내내 마음속으로 부르고 찾았던 주님 앞에 강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무서워 나가지 못했는데 남편이 가출을 하고 시댁식구들로부터 완전히 외면을 당하면서 이웃의 전도를 받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나니 집 나갔던 남편이 2년만에 돌아오기도 했지만 더많은 사고를 치고 또다른 여자의 사건으로 집을 다시 나간 5년 후 결혼생활 24년만에 이혼으로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김양재 목사님의 월요 큐티 모임에 나가 은혜를 받고 수없이 이혼을 꿈꾸던 생각을 접기도 했지만 말씀으로 함께할 공동체가 없었기에 오히려 교회 지체들의 격려를 받고 이혼의 요구에 동의했고 특히 두 아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 47~58세 현재#65279;
다윗이 힘든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하여 잠시 편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해서 아말렉을 통해 치게 하시므로 회개를 받아 내시고 책임을 물으신 것처럼 저에게도 힘든 사울같은 남편을 피하고 힘든 아버지를 더이상 겪게 하고 싶지않은 두 아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혼을 내 생각대로 결정하고 잠시 편하게 산듯 했지만 책임을 물어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이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 가운데서도 엄마 따라 교회도 잘 다니고 큰 아들은 여타의 도움없이 명문대,대학원도 장학금 받으며 나와서 취업도 순조로이 하고, 작은 아들은 공부는 좋아하지 않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드럼을 특기로 교회의 반경 안에서 지낸다고 안심했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처럼 사이좋은 형제애로 지내던 두 아들이 반목하며 침묵으로 지낸지 5년이나 되었고 두 아들 다 거의 신앙생활도 떠난 상태가 된것입니다.
특히 큰 아들은 환경의 상처로 분노가 탱천하고 세상의 가치관에 휘들려 세상 성공에 목말라하며 무능한 엄마, 지질한 동생이 무시가 되는것 같습니다. 그동안 말씀이 없어 성경의 가치관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영적자녀로 양육하지 못한 저의 삶의 결론으로 두 아들을 세상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65279;
두 아들의 배반과 세상에 사로잡힌 사건에 '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며 통곡하고 고통받으며 죽을 뻔 했는데 다윗처럼 울 기력이 없도록 우는 회개가 저에게도 일어나고 부모학교를 통해 아이들 어린시절 어떤 엄마였나 돌아보며 현재를 잘 직면하며 구원으로 인도하는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지금 현재 7살 여아를 돌보며 영적자녀로 돌보고 섬기고 싶어 부모학교에 지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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