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5조 이공례 자기소개서
저는 목포에서 7남매 중 5째로 태어나 3살 때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흑산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는 술집이 밀집되어있어서 술취한 어른들이 부등켜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살았는데 그 환경이 너무 싫어 그곳을 빠져나올 생각만 하고 살았습니다.
삶이 항상 곤고했던 나는 엄마에게 왜 나를 낳았냐고 따져 물었고 흑산도에 들어온 것을 원망하며 엄마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가난했던 탓에 그 환경을 항상 벗어나고 싶었는데 말 잘듣으면 서울에 사는 돈 많은 고모네 집으로 보내준다고 하였기에 내가 그 대상이 되고자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내 힘으로 고모네 집으로 들어와 살면서 집에다가는 간호학원을 다닌다고 부모님께 돈을 받아서 운전에 관심이 있던 나는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게 되었고 지나가던 남자가 운전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인연이 되어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혼전임신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전 임신이 수치스러워 가족들에게 말은 못하고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 살면서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습니다. 시댁에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며 부모 없는 고아라고 호된 시집살이와 핍박을 받을 때 너무 외로웠고 그때 친정엄마가 보고 싶어 혼자 울며 지냈습니다.
임신 8개월 무렵 친 언니에게 연락을 했더니 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며 잘해주었고 그때부터 가족과 다시 연락하며 자냈습니다. 첫아이 딸을 낳고 남편의 병역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군에 입대를 해야 했고 둘째 아이가 임신중이라는 확인서가 들어오면 제대를 해준다고 해서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끊임없는 여자문제와 노름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너무나 힘들어 이혼을 요구 했는데 양육비를 주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두고 혼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말씀을 몰랐기에 힘든 상황을 피하는 것이 살길이었는데 아들이 계단에서 넘어져 뇌를 다쳤다고 해서 병원으로 가는 중에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아만 있으면 다시 들어가 두아이를 돌보리라 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결과는 아이의 죽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이가 죽으니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딸아이는 잘 키워 준다고 했지만 결국 딸아이도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텅비어 있는 마음을 달래려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면 잘해줄 것 같아 22살에 11년 연상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또 실패하고 싶지 않아 받아들이고 또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남편의 외도와 무능력으로 인한 궁핍으로 힘들었고 남편의 두아이는 계속 문제를 일으켜 경찰서에 들락날락 했기에 너무 힘들어 피하고 싶어 내가 낳은 아이를 데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아들을 주지 않아 할 수 없이 또 몇 년을 살다가 도저히 참고 살 수가 없어서 나중에 데리고 올 생각으로 이혼을 하고 먼저 나오게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아들을 데려오리라 하는 욕심으로 까페를 하게 되었고 아들에게 돈을 보내주며 빨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 아이를 데리고 오려고 준비하던 중 까페를 시작한지 4개월정도 되었을 때 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아이를 보내주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과 증오와 복수심이 가득했고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아이의 이름을 절에 올려놓고 천도제를 드리며 자주 찾아가곤 하였습니다.
모든 걸 다 잃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인생이 너무나 허무해 삼성프라자 백화점 vvip 회원으로 쇼핑을 하며 내 공허함을 채웠고 화려한 겉치레로 나를 포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내 나이 45세 때 집에 들어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머리를 세차례 강하게 얻어맞는 사건이 생기며 잃을 것이 없는 줄 알았던 내 삶에 아직 잃을 것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남아있는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삶을 조율한다는 생각이 들어 알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간 첫날 꿈속에서 무당이 칼로 찌르려고 할 때 십자가가 없어서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주님을 부르며 깼던 경험을 하고 그 주님을 알고 싶어 cts를 보며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우리들 교회 성도들이 부러웠고 멀리에만 있는 줄 알았던 교회를 우연한 기회에 정자동에서 보게 되면서 2012년 8월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출석한 날 말씀이 룻기말씀이었는데 처음부터 말씀이 들렸고 제가 나오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남편이 싫어 더 좋은 남편을 찾아 떠났지만 더 훙년 든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두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제 삶에 등장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주님을 부르게 하도록 수고 한 사람들이란 말씀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내 삶이 조금씩 해석이 되니 바닥이었던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이 되는 것을 느꼈고 나를 때려준 강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날 그동안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기쁨과 평안은 제안에 큰 힘이 되어 주님의 사랑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여주에 있는 시댁에 성경책을 들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몰라서 그랬다고 용서를 빌게 되었고 그 후 시댁 식구들이 모두 영접하는 놀라운 은혜도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친정식구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니 감사하게도 한명씩 주님 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건이 하나님 안에서 해석이 되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텀 목장에서 정신과에 가보라는 처방에 병원에 가게되면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빛의 자녀가 되었는데 왜 우울증이 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아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잘 있는 나를 괜히 쓸데없이 병원을 가게 했을까 라는 원망에 힘들었고 나는 이제 새로운 사람이기에 우울증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가로막았기에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며 받았던 은혜는 사라지고 또 다른 힘듦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비가일 공동체에 붙어있었기에 지체들의 증보기도와 말씀으로 내가 우울증이 있을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니 다시 살아나 지금은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 먹으며 내 삶의 힘들었던 부분들을 직면하고 그 안에서 내 죄를 조금씩 보며 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해석하고 가야 할 많은 사건과 훈련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공동체에 오픈하며 간증을 통해 나를 다듬어 가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가기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