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교회가 놀이터처럼 익숙할 정도로 주일학교를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회다니는 것을 핍박하셨지만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섬기면서 저희 1남 5녀를
공부하라는 소리는 안하셨지만 믿음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우리들을
교회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경제적으로 너무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 노점 장사하여 우리들을 학교에
보내시는 엄마가 불쌍하여 효도하는 맘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월급이 많은 제2금융권에 취직하여 돈을 쓸 줄을 모르는 스크루지처럼
모으기에만 집착하였고 37살이 되도록 아버지처럼 무능력한 남자를 만날까봐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17년동안 봉사하였고 처녀집사직분도 받고 십일조생활도 하였지만
저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채 내 열심으로 신앙의 바벨탑을 열심히 쌓고 살고
있을 즈음 2001년 목사님의 QTM을 다니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함께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러 QTM을 다녔습니다.
제 결혼식날 매일성경 QT제목은 '내 인생의 최대의 축제일' 이였는데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날 이였습니다.
그렇게 출애굽 하여 들어간 가나안땅 시댁은
술집하다 망해 빚더미 속에 있는 시누이, 정신분열증시누이, PC방에 빠져있는 시동생..
그런 시댁의 빚과 이자를 말없이 감당하는 남편이 해석되지 않아 집에서는 날마다 싸우며#65279;#65279;
목장예배에서 하늘아래 이런 집구석이 없다고 울부짖던 영적지진아의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난다고 했음에도
이런 시댁고난에다 자녀들도 아토피로 왕따를 당하는 사건이 겹쳐지자 공동체를
떠나 캐나다로 이민가려고 두번이나 시도했으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비자거절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시댁도 우리들 공동체에서 예배를 회복하며
믿음으로 한걸음씩 나가고 있으며 저도 목자로 교사로 사명감당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아들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급한 성격과 혈기로 화를 내고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힘들고 있으나 초등부 교사로 섬기면서 내 아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인내하는 지혜도 생기고 있습니다
아울러 부모학교를 통해 구체적인 적용을 배워나갈 예정입니다.